8화(5,042자) · 삼백구십팔
제 이름을 먹은 짐승
이름을 먹는 드래곤 · 백해원
삼백구십팔 가운데 아셀의 어머니가 있는지 아셀은 몰랐다.
물어보는 데 이레가 걸렸다.
미르한테 이름을 대면 미르가 코를 벌린다. 배 속에 있으면 냄새가 나온다.
없으면 안 나온다.
아셀이 서판을 들고 갔다.
두 자를 읽었다.
미르가 코를 벌렸다.
냄새가 나왔다.
사람 냄새다.
아셀이 그 자리에 앉았다.
“…계십니다.”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어떻게 안 타셨습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짧게 한 번이었다.
아셀이 못 알아들었다.
노인한테 갔다.
노인이 앓아누워 있었다.
“어르신.”
“…왔소.”
아셀이 그 소리를 냈다.
노인이 말했다.
“…그건 「위」요.”
“…위요?”
노인이 말했다.
“배 속에도 위아래가 있소.”
“…”
“먼저 먹은 것이 아래에 있고 나중 것이 위에 있소.”
아셀이 물었다.
“…탄 것이 아래입니까?”
노인이 말했다.
“들판이 아래요.”
“…”
“댁 어머니는 나중에 먹혔소. 위에 있소.”
아셀이 물었다.
“그럼 삼백구십팔이 다 나중 것입니까?”
노인이 말했다.
“그렇겠지.”
아셀이 셈을 했다.
삼백구십팔이면 스무 해 치쯤이다. 한 해에 스물이면 스무 해다.
한 해에 하나씩 먹인다고 했는데 삼백구십팔이면 안 맞는다.
아셀이 물었다.
“어르신, 한 해에 하나씩 먹인다고 들었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건 도성이 먹이는 것이오.”
“…”
“도성이 안 먹여도 미르가 먹소.”
아셀이 물었다.
“…어떻게요?”
노인이 말했다.
“못 참으면 먹소.”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보른이 그렇게 먹혔다.
노인이 말했다.
“한 해에 스물쯤 없어지오. 도성에서는 그걸 병이나 도망으로 적소.”
아셀이 물었다.
“그럼 미르가 한 해에 스물을 먹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그렇소.”
“…”
“그러니 삼백구십팔은 이십 년 치요.”
아셀이 문서관한테 그 셈을 가져갔다.
“삼백구십팔이 남았습니다.”
문서관이 붓을 들었다.
“…적자.”
문서관이 새 서판을 꺼냈다.
밀랍이 굳지 않은 것이다.
“이 서판은 왕궁에서 가져왔다.”
“…”
“지하 것은 다 지워졌으니 여기 적으면 또 지워진다.”
아셀이 물었다.
“왕궁 것은 안 지워집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모른다.”
“…”
“해 봐야 안다.”
문서관이 첫 줄을 적었다.
「삼백구십팔」
적고 나서 아셀을 봤다.
“이름을 아는 것이 몇이냐?”
아셀이 셈을 했다.
“…셋입니다.”
“말해라.”
아셀이 말했다.
“제 어머니, 세비, 세하입니다.”
문서관이 적었다.
세 줄이 됐다.
적고 나서 문서관이 물었다.
“네 어머니 이름을 아느냐?”
아셀이 서판을 내밀었다.
지하에서 찾은 것이다. 두 자가 남아 있다.
문서관이 그것을 보고 손을 멈췄다.
“…이건 밀랍이 새것이다.”
아셀이 말했다.
“보른 아저씨가 새기셨습니다.”
문서관이 그 두 자를 옮겨 적었다.
옮겨 적고 나서 잠깐 기다렸다.
글자가 안 지워졌다.
문서관이 말했다.
“…남는다.”
아셀이 물었다.
“…왜 남습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모르겠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아는 사람이 둘이라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문서관이 말했다.
“하나가 알 때는 지워졌다. 둘이 아니까 안 지워진다.”
“…”
“짐승이 하나는 지워도 둘은 못 지우는 모양이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셋이면 더 안 지워집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그럴 것이다.”
문서관이 붓을 놓았다.
“그러니 적는 것이 아니라 알리는 것이 먼저다.”
“…”
“적어 두고 아무도 안 읽으면 그것은 하나가 아는 것과 같다.”
아셀이 물었다.
“…미르가 왜 못 참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나도 모르오.”
아셀이 그날 밤에 미르 앞에 앉았다.
“미르.”
미르가 목 아래 눈을 떴다.
“한 해에 스물을 드십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왜 못 참으십니까?”
미르가 코를 벌렸다.
벌려서 아셀 쪽으로 뻗었다.
아셀이 맡았다.
풀 냄새가 났다.
들판 냄새다.
들판은 탔는데 냄새가 났다.
아셀이 물었다.
“…아직 있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타지 않은 들판이 있습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이었다.
부르는 가락이다.
아셀이 물었다.
“…부르면 나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무엇을 부릅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길게 넷이었다.
아셀이 그 소리를 노인한테 가져갔다.
노인이 듣고 한참 있었다.
“…그건 이름이오.”
아셀이 물었다.
“무슨 이름입니까?”
노인이 말했다.
“…미르 이름이오.”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노인이 말했다.
“미르는 이름이 아니오.”
“…”
“미르는 짐승이라는 뜻이오.”
아셀이 물었다.
“…그럼 이름이 따로 있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있었겠지.”
“…”
“먹혔겠지.”
아셀이 그 자리에 앉았다.
노인이 말했다.
“이름을 먹는 짐승이 제 이름을 먹었소.”
“…”
“먹고 나서 삼백 해 동안 배가 고팠소.”
아셀이 물었다.
“…그럼 제 이름을 부르면 나옵니까?”
노인이 말했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불러야 나오오.”
“…”
“짐승 제 이름을 아는 사람이 어디 있소?”
아셀이 그 밤에 문서관한테 갔다.
“문서관님.”
“…왜?”
아셀이 소리를 냈다.
길게 넷이다.
문서관이 붓을 놓았다.
“…무엇이냐?”
아셀이 말했다.
“그 짐승 이름입니다.”
문서관이 그 자리에 섰다.
“…이름이 있느냐?”
아셀이 말했다.
“있습니다. 사람 말이 아닙니다.”
문서관이 물었다.
“…적을 수 있느냐?”
아셀이 말했다.
“못 적습니다.”
문서관이 앉았다.
앉아서 한참 있었다.
“…못 적는 이름이 있구나.”
아셀이 말했다.
“있습니다.”
문서관이 말했다.
“나는 열여섯 해 동안 적을 수 있는 것만 있다고 배웠다.”
“…”
“적을 수 없으면 없는 것이라고 배웠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이 이름은 없는 것입니까?”
문서관이 고개를 저었다.
“있다.”
“…”
“내가 방금 들었다.”
문서관이 붓을 들었다.
들었다가 놓았다.
“적을 수가 없으니 다른 법으로 해야겠다.”
아셀이 물었다.
“…어떻게 하십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외우겠다.”
문서관이 아셀한테 말했다.
“한 번 더 내 보아라.”
아셀이 냈다.
문서관이 따라 했다.
세 번 만에 맞췄다.
맞추고 나서 말했다.
“…이제 둘이 안다.”
문서관이 그 서판을 궤에 넣으면서 말했다.
“…아셀아.”
“예.”
“네 이름은 누가 아느냐?”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셀이 말했다.
“…없습니다.”
문서관이 붓을 들었다.
“그럼 내가 알겠다.”
문서관이 적었다.
「아셀」
적고 나서 물었다.
“지은 이름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문서관이 말했다.
“지은 이름도 이름이다.”
“…”
“짐승이 못 먹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
아셀이 그 말을 듣고 오래 앉아 있었다.
여덟에 지은 이름이다.
그때는 번호가 넘어가는 것이 싫어서 지었다.
지금은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둘이다.
둘이면 안 지워진다고 했다.
아셀이 처음으로 제 이름이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셀이 일어섰다.
“하나 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아셀이 말했다.
“미르가 압니다.”
아셀이 이레 동안 미르 앞에 앉아 있었다.
이레 동안 한 가지만 했다.
미르가 내는 소리를 외웠다.
길게 넷.
그 넷의 길이가 조금씩 달랐다.
첫째가 제일 길고 둘째가 짧고 셋째가 길고 넷째가 제일 짧았다.
아셀이 그것을 소리로 흉내 냈다.
흉내 내니 미르가 고개를 들었다.
아셀이 다시 냈다.
미르가 목을 뻗었다.
아셀이 세 번째로 냈다.
미르가 떨었다.
아셀이 멈췄다.
멈추고 물었다.
“…이게 맞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이게 이름입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이걸 소리로만 냅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말했다.
“사람 말로 하면 무엇입니까?”
미르가 소리를 안 냈다.
한참 있다가 목을 돌렸다.
돌리는 것이 안 된다는 뜻이다.
아셀이 물었다.
“사람 말이 없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그 자리에 앉았다.
이름이 사람 말이 아니면 서판에 못 적는다.
적을 수 없으면 지워질 수도 없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안 지워졌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일어섰다.
“그럼 왜 못 부르셨습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길게 한 번이었다.
「못 참았다」다.
아셀이 그것을 다시 물었다.
“…무엇을 못 참으셨습니까?”
미르가 코를 벌렸다.
벌리고 아셀 앞에 댔다.
냄새가 나왔다.
이번에는 아무 냄새도 안 났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것이 냄새였다.
아셀이 그것을 맡고 알았다.
미르는 제 이름을 낼 수 있다.
낼 수 있는데 못 낸다.
제가 부르는 것은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르는 것은 남이 하는 것이다.
아셀이 앉았다.
앉아서 그 소리를 냈다.
길게 넷.
첫째가 길고 둘째가 짧고 셋째가 길고 넷째가 제일 짧다.
미르가 목을 들었다.
들어서 천장까지 갔다.
돌기둥 넷이 다 울렸다.
미르가 입을 열었다.
열고 뱉었다.
뱉은 것은 소리도 냄새도 아니었다.
빛이었다.
방이 밝아졌다.
밝은 것이 잠깐이고 곧 꺼졌다.
꺼지고 나서 미르가 작아져 있었다.
소 두 마리에서 소 한 마리쯤이 됐다.
아셀이 그 앞에 섰다.
“…뱉으셨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무엇을 뱉으셨습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짧게 한 번이었다.
「하나」다.
아셀이 물었다.
“…삼백구십팔에서 하나입니까?”
미르가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는 것을 아셀이 처음 봤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무엇입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길게 넷이었다.
제 이름이다.
아셀이 그 자리에 앉았다.
미르가 뱉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제 이름이었다.
제 이름을 도로 뱉어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