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32자) · 마지막 불
가까운 쪽을 골랐다
이름을 먹는 드래곤 · 백해원
칠월에 마지막 마을이 꺼졌다.
여섯 가운데 셋이 병이 나서 도성으로 갔다. 남은 셋으로는 불이 모자랐다.
꺼지던 밤에 아셀이 거기 있었다.
아셀이 그 밤에 마을에 앉아서 세비를 생각했다.
세비가 누나를 두 번 부른 날이 있었다.
생일이라고 했다.
두 번 부르면 어떻게 되는지 아셀은 그때 몰랐다.
지금은 짐작한다.
한 번 부르면 냄새가 나온다. 배가 열린다.
두 번 부르면 두 번 열린다.
열린 자리로 못 참는 것이 나온다.
세비가 그날 밤에 먹힌 것이 아니다. 그 뒤로 석 달 더 살았다.
석 달 동안 세비는 날마다 한 번씩 불렀다.
한 번씩 여는 것이 석 달이면 아흔 번이다.
아셀이 그 셈을 하고 앉아 있었다.
세비가 저를 조금씩 열어 놓은 것이다.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아셀은 모른다.
아마 몰랐을 것이다.
알았으면 안 불렀을까.
아셀이 그것도 생각했다.
세비는 알아도 불렀을 것 같았다.
「안 부르면 잊어버려.」
그 말을 하던 얼굴을 아셀은 기억한다.
기억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세비는 먹혔는데 아셀은 그 얼굴을 안 잊었다.
미르가 안 먹은 사람은 미르가 지우지도 못한다.
그래서 아셀 안에만 세비가 남아 있다.
아셀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서 두 이름을 불렀다.
“세비.”
“세하.”
들판에서 그 소리가 멀리 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노인이 어귀에 앉아 있었다.
“…꺼지오.”
아셀이 물었다.
“어르신은 어찌 되십니까?”
노인이 말했다.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오.”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예?”
노인이 말했다.
“나는 도성 사람이오. 호적이 있소.”
“…”
“이 마을은 형 것이오.”
아셀이 물었다.
“그럼 꺼지면 어르신은 남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남소.”
“…형님은요.”
노인이 말했다.
“들어가오.”
아셀이 그 자리에 앉았다.
노인이 말했다.
“열두 해 동안 나는 여기 살았소. 호적은 도성에 두고.”
“…”
“그래서 이 마을이 열두 해 갔소.”
아셀이 물었다.
“어떻게 열두 해 갔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내가 날마다 불렀소.”
“…”
“하루에 한 번씩 형 이름을 불렀소.”
아셀이 물었다.
“열두 해를요.”
노인이 말했다.
“사천삼백여든 번쯤 되오.”
아셀이 그 수를 들었다.
노인이 말했다.
“오늘은 못 부르오.”
“…왜요?”
노인이 제 목을 짚었다.
“…소리가 안 나오.”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노인이 말했다.
“댁이 불러 주겠소.”
아셀이 물었다.
“…제가요?”
노인이 말했다.
“이름을 알려 주겠소.”
아셀이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 제가 부르면 미르가 뱉습니다.”
“…”
“뱉으면 배가 빕니다. 비면 도성이 마을째 넣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아오.”
아셀이 물었다.
“아시는데 부르라고 하십니까?”
노인이 말했다.
“댁이 안 부르면 오늘 밤에 형이 들어가오.”
“…”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오오.”
아셀이 오래 앉아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댁 어머니도 그렇소.”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노인이 말했다.
“댁이 부르면 나오고, 안 부르면 안 나오오.”
“…”
“그리고 부르면 어디선가 하나가 들어가오?”
노인이 아셀을 봤다. 눈이 안 보이는데 봤다.
“그게 이 셈이오.”
아셀이 그날 밤에 마을에 남아 노인 옆에 앉아 있었다.
노인이 물었다.
“…댁은 왜 안 부르오?”
아셀이 말했다.
“부르면 하나가 들어갑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건 나도 아오.”
“…”
“그런데 댁은 그것 말고도 안 부르는 까닭이 있소.”
아셀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노인이 말했다.
“무섭소?”
아셀이 말했다.
“…무섭습니다.”
노인이 물었다.
“무엇이 무섭소?”
아셀이 말했다.
“제 옆에 있던 아이가 먹혔습니다.”
“…”
“그 아이가 날마다 제 누나를 불렀습니다.”
노인이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셀이 말했다.
“부르는 사람이 먹힙니다.”
노인이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열두 해 불렀소.”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노인이 말했다.
“사천삼백여든 번 불렀는데 안 먹혔소.”
아셀이 물었다.
“…왜 안 먹히셨습니까?”
노인이 제 눈을 가리켰다.
“눈이 안 보이오.”
“…”
“짐승은 눈에서 지우오. 지울 눈이 없으면 못 먹소.”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노인이 말했다.
“그러니 부르는 사람은 눈먼 사람이라야 하오.”
“…”
“성한 사람이 부르면 먹히오.”
아셀이 물었다.
“…그럼 마을마다 눈먼 사람이 많은 까닭이.”
노인이 말했다.
“부르다가 먼 것이 아니라, 먼 사람이 불렀소.”
“…”
“먼 사람만 살아남아서 부르고 있소.”
아셀이 그 말을 오래 들었다.
노인이 말했다.
“성한 사람이 부른 것이 훨씬 많소.”
“…”
“그 사람들은 다 배 속에 있소.”
아셀이 그 말을 듣고 물었다.
“…어르신, 그럼 저는 왜 안 먹힙니까?”
노인이 말했다.
“댁은 눈이 성하오.”
“…”
“성한데 안 먹혔소.”
아셀이 말했다.
“짐승이 제 냄새를 안 맡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왜 안 맡소?”
아셀이 말했다.
“제 이름이 지은 이름입니다.”
노인이 그 자리에 앉았다.
“…지었소?”
“여덟에 지었습니다.”
노인이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면 댁은 먹힐 것이 없구려.”
아셀이 말했다.
“없습니다.”
노인이 물었다.
“…그게 좋소?”
아셀이 그 물음에 대답을 못 했다.
노인이 말했다.
“먹힐 것이 없다는 말은 잃을 것이 없다는 말이오.”
“…”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안 지키오.”
아셀이 말했다.
“…지킬 것은 있습니다.”
노인이 물었다.
“무엇이오?”
아셀이 말했다.
“제가 아는 이름 셋입니다.”
노인이 그 밤에 아셀한테 물었다.
“…댁 이름이 무엇이오?”
아셀이 말했다.
“아셀입니다.”
노인이 그것을 두 번 되뇌었다.
“…아셀.”
“…아셀.”
되뇌고 나서 말했다.
“외웠소.”
아셀이 물었다.
“…왜 외우십니까?”
노인이 말했다.
“나는 눈이 안 보이니 안 잊소.”
아셀이 물었다.
“어르신은 열두 해 동안 그 셈을 아셨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알았소.”
“…”
“내가 형을 부르는 동안 어디선가 열둘이 들어갔소.”
아셀이 물었다.
“…아시면서 부르셨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불렀소.”
아셀이 말했다.
“…그건 나쁜 것 아닙니까?”
노인이 말했다.
“나쁘오.”
“…”
“그런데 안 부르면 형이 들어가오.”
노인이 말했다.
“둘 다 나쁘오. 나는 덜 나쁜 쪽을 못 골랐소. 가까운 쪽을 골랐소.”
아셀이 그날 밤에 부르지 않았다.
마을이 꺼졌다.
꺼지는 데 한나절이 걸렸다.
담이 먼저 없어지고 우물이 없어지고 집이 없어졌다.
노인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자리가 들판이 됐다.
아셀이 노인을 도성으로 데려왔다.
데려오는 길에 노인이 말했다.
“…댁이 옳소.”
아셀이 말했다.
“안 옳습니다.”
“…”
“저는 고른 것이 아니라 못 고른 것입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게 다르오?”
아셀이 말했다.
“다릅니다.”
“…”
“고른 사람은 다음에 또 고릅니다. 못 고른 사람은 다음에도 못 고릅니다.”
노인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도성에 닿은 것은 사흘 뒤였다.
닿으니 남문에 방이 붙어 있었다.
가을 초하루에 열두 번째 문을 연다는 방이었다.
봄에 여는 것이 법도인데 가을에 연다고 했다.
아셀이 그 방을 읽었다.
방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다.」
아셀이 그 방을 보고 회의방 환기구로 갔다.
셋이 앉아 있었다.
첫째가 말했다.
“몇을 넣소?”
셋째가 말했다.
“쉰이오.”
둘째가 말했다.
“쉰이면 마을 둘이오.”
셋째가 말했다.
“마을 둘이 아니라 사람 쉰이오.”
첫째가 물었다.
“어디서 쉰을 뽑소?”
셋째가 말했다.
“호적에서 뽑으면 되오.”
“…”
“들판에서 데려온 것이 이백서른이오. 그중에 쉰이면 되오.”
둘째가 말했다.
“데려올 때 호적을 줬소.”
셋째가 말했다.
“줬으니 뺄 수 있소.”
방이 조용해졌다.
첫째가 물었다.
“미르가 쉰을 한 번에 먹소?”
셋째가 말했다.
“배가 비면 먹소.”
“…비었소?”
셋째가 말했다.
“아직이오.”
“…”
“그래서 그 아이를 부르게 해야 하오.”
첫째가 물었다.
“안 부르면요.”
셋째가 말했다.
“부르게 만들면 되오.”
아셀이 그 말을 듣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지하 첫째 문 앞에 앉았다.
앉아서 셈을 했다.
부르게 만드는 법이 무엇인지 아셀은 안다.
아셀이 부를 이름은 하나다.
어머니다.
어머니를 부르게 만들려면 어머니가 급해야 한다.
배 속에 든 것이 급해지는 일이 있는지 아셀은 몰랐다.
몰랐는데 이튿날 알았다.
이튿날 도성이 남쪽 들판에 불을 놓았다.
들판이 탔다.
사흘 탔다.
탄 자리에는 아무것도 안 돋는다.
들판이 타면 거기 돋을 마을도 못 돋는다.
아셀이 성벽에서 그것을 봤다.
연기가 사흘 동안 남쪽을 덮었다.
사흘째 밤에 아셀이 환기구로 들어갔다.
미르가 떨고 있었다.
새벽이 아닌데 떨었다.
코가 벌어져 있었다.
아셀이 앉았다.
“…미르.”
미르가 소리를 냈다.
길게 여러 번이었다.
아셀이 그 소리를 처음 들었다.
노인이 없어서 물어볼 데가 없었다. 노인은 도성 숙소에서 앓고 있었다.
아셀이 그 소리를 외웠다.
외워서 노인한테 갔다.
노인이 그것을 듣고 일어나 앉았다.
“…그건.”
아셀이 물었다.
“무엇입니까?”
노인이 말했다.
“…우는 소리요.”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노인이 말했다.
“댁, 들판이 탔소?”
“…탔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러면 미르 배 속이 탔소.”
아셀이 물었다.
“…배 속이요?”
노인이 말했다.
“배 속에 든 것이 그 들판이오.”
“…”
“땅이 타면 그 땅에 얹혀 있던 것이 다 타오.”
아셀이 물었다.
“…그럼 사천이백열아홉이요?”
노인이 말했다.
“몇이 탔는지는 모르오.”
아셀이 돌아가서 미르한테 물었다.
“…몇입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길게 셋, 짧게 여덟, 길게 둘, 짧게 하나였다.
아셀이 셈했다.
삼천팔백이십일이다.
사천이백열아홉에서 삼천팔백이십일을 빼면 삼백구십팔이다.
삼백구십팔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