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35자) · 마흔이 스물 몇에게 밀렸다

마을째 먹인다

이름을 먹는 드래곤 · 백해원

도성이 그해 오월에 남쪽 들판에 사람을 보냈다.

들판에 불빛이 열둘이 되었다는 것을 도성도 알았다.

성벽에서 세는 사람이 있다.

보낸 것은 병사 마흔이었다.

그해 오월에 왕궁에서 사람이 하나 내려왔다.

문서관이라고 했다.

소맷부리에 은실이 두 줄 박혀 있었다. 두 줄은 왕궁 문서를 다루는 자리다.

마흔쯤 된 여자였다.

내려와서 지하 첫째 문 명부를 봤다.

보는 데 사흘이 걸렸다.

사흘째에 아셀을 불렀다.

“네가 봄에 안 먹힌 아이냐?”

“그렇습니다.”

문서관이 물었다.

“이 궤 넷을 세어 봤느냐?”

아셀이 말했다.

“지하 관리인이 세었습니다.”

“…누구냐?”

아셀이 말했다.

“보른입니다.”

문서관이 명부를 넘겼다.

“그런 사람 없다.”

아셀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문서관이 말했다.

“나는 열여섯 해 왕궁 문서를 다뤘다.”

“…”

“열여섯 해 동안 로한 호적 수가 안 맞았다.”

아셀이 물었다.

“…얼마나 안 맞습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해마다 스물쯤 모자란다.”

아셀이 그 수를 들었다.

문서관이 말했다.

“병으로 적힌 것과 도망으로 적힌 것을 빼도 스물이 빈다.”

“…”

“열여섯 해면 삼백이 넘는다.”

아셀이 물었다.

“그것을 아시고 내려오셨습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아니다.”

“…”

“세고 싶어서 내려왔다.”

아셀이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문서관이 궤를 닫았다.

“이름 없는 삼백은 나라가 못 센다.”

“…”

“못 세면 못 지킨다.”

아셀이 물었다.

“…지켜서 무엇 하십니까?”

문서관이 아셀을 봤다.

“나라가 사람을 세는 까닭을 아느냐?”

아셀이 말했다.

“세금 때문 아닙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그것도 있다.”

“…”

“그런데 세는 것이 곧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문서관이 서판을 하나 들었다.

“여기 금이 넷이다.”

“…”

“이름은 지워졌는데 금은 남았다.”

“…”

“금은 누가 그었겠느냐?”

아셀이 말했다.

“…적은 사람입니다.”

문서관이 말했다.

“적은 사람도 먹혔다.”

“…”

“그런데 금은 남겼다.”

문서관이 그 서판을 아셀한테 줬다.

“그 사람이 마지막에 한 일이 이것이다.”

“…”

“이름은 못 남겼으니 수라도 남긴 것이다.”

아셀이 그 금을 손으로 만졌다.

문서관이 말했다.

“나는 그 금을 세러 왔다.”

마흔이 들판에 가서 첫째 마을에 닿았다.

마을 어귀에서 대장이 말했다.

“여기는 로한 땅이오.”

마을 사람이 나왔다. 마흔쯤 된 여자다.

“…압니다.”

“그러면 호적을 내시오.”

여자가 말했다.

“없습니다.”

대장이 말했다.

“호적이 없으면 살 수 없소.”

여자가 말했다.

“열두 해 살았습니다.”

대장이 병사들을 봤다.

“…비우시오.”

여자가 물었다.

“어디로 갑니까?”

대장이 말했다.

“도성으로 오시오. 호적을 새로 내 드리겠소.”

여자가 말했다.

“호적을 내면 이 마을은 없어집니다.”

대장이 말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성 땅이 되는 것이오.”

여자가 말했다.

“같은 말입니다.”

그날 마흔이 첫째 마을에서 물러났다.

물러난 까닭은 하나다.

마을 사람 스물 몇 가운데 넷이 눈먼 사람이었고, 그 넷이 어귀에 서서 이름을 불렀다.

부른 이름이 병사들 이름이었다.

대장 이름을 불렀다.

대장이 그 자리에 섰다.

눈먼 사람이 병사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병사들이 몰랐다.

아는 까닭이 있다.

눈먼 사람은 소리를 안 잊는다.

도성 병사 마흔 가운데 열둘이 들판 출신이었다.

들판 출신이라는 말은 이 마을 출신이라는 말이다.

열두 해 전에 이 마을이 없어졌을 때 도성으로 간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자식이 병사가 되었다.

넷이 그 열둘의 이름을 불렀다.

열둘이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장이 물러나라고 했다.

물러나서 도성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서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자리에 열쇠를 가진 셋이 앉아 있었다.

첫째가 말했다.

“마흔이 스물 몇한테 밀렸소?”

대장이 말했다.

“…이름을 불렸습니다.”

둘째가 물었다.

“이름을 부르면 어찌 되오?”

대장이 말했다.

“…발이 안 떨어집니다.”

셋이 서로를 봤다.

셋째가 말했다.

“그러면 이름을 없애면 되오.”

첫째가 말했다.

“마흔을 다 먹입니까?”

셋째가 말했다.

“마을을 먹이시오.”

방이 조용해졌다.

첫째가 말했다.

“마을째 먹인 지 이백 해 됐소.”

셋째가 말했다.

“이백 해 전에는 했소.”

둘째가 말했다.

“미르가 배가 불러서 안 먹소.”

셋째가 말했다.

“배가 부르면 비우면 되오.”

첫째가 물었다.

“어떻게 비우오?”

셋째가 말했다.

“뱉게 하면 되오.”

둘째가 말했다.

“뱉으면 마을이 돋소.”

셋째가 말했다.

“돋은 자리를 먼저 치우고 뱉게 하면 되오.”

셋이 그날 정했다.

아셀이 그날 밤에 문서관을 찾아갔다.

문서관이 숙소에서 서판을 세고 있었다.

“…무엇이냐?”

아셀이 말했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말해라.”

아셀이 물었다.

“돌아온 사람은 호적에 어떻게 적습니까?”

문서관이 붓을 놓았다.

“…돌아온 사람?”

아셀이 말했다.

“먹혔다가 나온 사람입니다.”

문서관이 아셀을 오래 봤다.

“…나온 사람이 있느냐?”

아셀이 말했다.

“남쪽 들판에 마을이 열둘 돋았습니다.”

문서관이 일어섰다.

“…돋았다고.”

“돋았습니다.”

문서관이 창을 봤다. 남쪽이 보이는 창이다.

“…불빛이 그것이냐?”

“그것입니다.”

문서관이 그 자리에 섰다.

“나는 그것을 들판에 사는 짐승이라고 들었다.”

아셀이 말했다.

“사람입니다.”

문서관이 물었다.

“…몇이냐?”

아셀이 말했다.

“모릅니다. 마을이 열둘입니다.”

문서관이 다시 앉았다.

앉아서 붓을 들었다.

“…적어야겠다.”

아셀이 물었다.

“무엇을 적으십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호적이다.”

아셀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어제가 없습니다.”

문서관이 고개를 들었다.

“…어제가 없다고?”

아셀이 말했다.

“먹힌 동안이 없습니다. 나오면 그 사이가 비어 있습니다.”

“…”

“어제가 없으면 호적을 못 낸다고 들었습니다.”

문서관이 붓을 놓았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건 우리가 정한 것이다.”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문서관이 말했다.

“어제가 있어야 호적을 낸다는 것은 사람이 정한 법이다.”

“…”

“법은 고치면 된다.”

아셀이 물었다.

“…고칠 수 있습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나 혼자는 못 고친다.”

“…”

“다만 적을 수는 있다.”

아셀이 물었다.

“적으면 무엇이 됩니까?”

문서관이 말했다.

“적힌 것이 쌓이면 법이 따라온다.”

“…”

“순서가 그렇다. 법이 먼저 오는 일은 드물다.”

문서관이 그 밤에 서판을 하나 더 꺼냈다.

꺼내서 첫 줄을 비워 두었다.

비워 두는 까닭을 아셀이 물었다.

문서관이 말했다.

“첫 줄은 나중에 적는다.”

“…왜요?”

문서관이 말했다.

“무엇을 적는 명부인지는 다 적고 나서야 안다.”

정한 것을 적어 두지 않았다. 적으면 남는다.

아셀이 그것을 들었다.

지하 계단 위에 환기구가 하나 더 있다. 회의방으로 통한다.

보른이 삼십 년 동안 그리로 들었다.

아셀이 그 자리를 알고 있었다.

아셀이 그날 밤 열두 번째 문으로 갔다.

“미르.”

미르가 목 아래 눈을 떴다.

“도성이 들판을 치우려고 합니다.”

미르가 코를 벌렸다.

“치우고 나서 당신을 비우려고 합니다.”

미르가 소리를 냈다.

짧게 두 번이었다.

아셀이 물었다.

“…아십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몇 번째입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이었다.

아셀이 셈을 했다.

“…열둘이요?”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그 자리에 앉았다.

지워진 나라가 열둘이다.

열둘이 다 같은 식으로 지워졌다.

돋으면 치우고, 치우고 비우고, 비우면 또 먹인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당신은 열두 번 하셨습니까?”

미르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소리를 냈다.

길고 낮았다.

아셀이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

「시켜서 했다」가 아니었다.

「못 참았다」였다.

아셀이 물었다.

“…못 참으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르가 코를 벌렸다.

벌리고 아셀 쪽으로 뻗었다.

아셀이 안 물러섰다.

미르가 코를 닫았다.

아셀이 말했다.

“냄새 때문입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무슨 냄새입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짧게 한 번이었다.

아셀이 못 알아들었다.

아셀이 그날부터 미르 옆에서 잤다.

환기구로 들어와서 돌기둥 밑에 짚을 깔고 잤다.

이레를 잤다.

이레 동안 아셀이 알아낸 것은 셋이다.

하나. 미르는 하루에 한 번 코를 크게 벌린다. 새벽이다.

둘. 새벽에 벌릴 때 목 아래 눈이 감긴다.

셋. 그때 미르가 떤다.

아셀이 여드렛날 새벽에 미르 앞에 앉아 있었다.

미르가 코를 벌렸다.

목 아래 눈이 감겼다.

미르가 떨었다.

아셀이 물었다.

“…배가 고프십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배가 부르신데 고프십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배가 부른데 고픈 것을 아셀은 안다.

도성에서 아셀이 그랬다.

밥은 나왔다. 하루 두 번 나왔다.

그런데 늘 고팠다.

고픈 것이 배가 아니었다.

아셀이 물었다.

“…무엇이 고프십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이었다.

아셀이 그것을 이레 동안 생각했다.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들판으로 갔다.

눈먼 노인한테 갔다.

“어르신.”

“왔소.”

“미르가 소리를 내는데 제가 못 알아듣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내 보시오.”

아셀이 그 소리를 냈다.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이다.

노인이 그것을 듣고 한참 있었다.

“…그건 부르는 소리요.”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를요?”

노인이 말했다.

“모르오. 그런데 그건 이름을 부르는 가락이오.”

“…”

“내 형이 나를 부르던 가락하고 같소.”

아셀이 물었다.

“미르가 누구를 부릅니까?”

노인이 말했다.

“먹은 것 중에 하나겠지.”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노인이 말했다.

“먹은 것을 부르는 짐승이 어디 있소?”

아셀이 말했다.

“…없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러면 안 먹은 것이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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