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16자) · 보른

눈에서 지운다

드래곤이 처음으로 먹지 않은 아이 · 황보겸

돋은 마을 열하나에는 눈먼 사람이 많았다⁠.

아셀이 이것을 세어 봤다⁠.

첫째 마을에 눈먼 사람이 넷이었다⁠. 스물 몇 채에 넷이면 많다⁠.

두 번째 마을에 일곱이었다⁠.

세 번째 마을에 셋이었다⁠.

열하나를 다 도는 데 스무날이 걸렸다⁠.

다 돌고 나니 눈먼 사람이 마흔둘이었다⁠.

마흔둘 가운데 서른아홉이 나면서 먼 사람이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 먼 사람이다⁠.

아셀이 이 서른아홉한테 하나씩 물었다⁠.

“⁠언제 머셨습니까⁠?⁠”

대답이 다 비슷했다⁠.

「⁠누가 없어지고 나서⁠.⁠」

아셀이 이 말을 열한 번째 마을에서 다시 들었을 때 알았다⁠.

미르가 이름을 먹으면 이 사람을 본 사람들의 눈에서 먼저 지운다⁠.

지우는 자리가 눈이다⁠.

눈이 성한 사람은 지워진다⁠.

눈이 먼 사람은 안 지워진다⁠.

그런데 먼 사람들은 이전에 성했다⁠.

성할 때 본 얼굴이 지워지고⁠, 다음에 눈이 먼 것이다⁠.

아셀이 보른한테 이 말을 하러 도성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니 스무날 만이다⁠.

아셀이 돌아와서 세비를 찾았다⁠.

마당에 없었다⁠.

담 밑에도 없었다⁠.

관리인한테 물었다⁠.

“⁠서른하나가 어디 갔습니까⁠?⁠”

관리인이 말했다⁠.

“⁠…서른하나는 저기 있다⁠.⁠”

관리인이 가리킨 아이는 세비가 아니었다⁠.

여덟쯤 된 아이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아셀이 물었다⁠.

“⁠…저 아이는 언제 왔습니까⁠?⁠”

관리인이 말했다⁠.

“⁠두 해 됐다⁠.⁠”

아셀이 이 자리에 섰다⁠.

두 해 전에 온 것은 세비다⁠.

관리인이 말했다⁠.

“⁠왜 그러느냐⁠?⁠”

아셀이 물었다⁠.

“⁠…세비를 모르십니까⁠?⁠”

관리인이 물었다⁠.

“⁠세비가 누구냐⁠?⁠”

아셀이 대답을 못 했다⁠.

아셀이 담 밑으로 갔다⁠.

담 밑에 아무것도 없었다⁠.

세비가 날마다 앉던 자리다⁠. 앉던 자리라 흙이 눌려 있었다⁠.

눌린 자국이 아직 있었다⁠.

아셀이 이 자국에 앉았다⁠.

앉아서 불러 봤다⁠.

“⁠세비⁠.⁠”

아무 일도 없었다⁠.

아셀이 알았다⁠.

부르는 것은 배 속에 있는 사람한테 하는 것이다⁠.

밖에 있는 사람 이름을 부르면 아무 일도 안 난다⁠.

세비는 배 속에 있다⁠.

아셀이 일어섰다⁠.

일어서서 다시 앉았다⁠.

세비 누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이제 없다⁠.

아셀이 안다⁠.

아셀이 이것을 소리 내어 봤다⁠.

“⁠세하⁠.⁠”

안 잊었다⁠.

아셀이 이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

세비가 말한 것이 떠올랐다⁠.

「⁠안 부르면 잊어버려⁠.⁠」

아셀이 이날부터 두 이름을 불렀다⁠.

아셀이 이날부터 마당에 안 갔다⁠.

마당에 가면 서른하나가 다른 아이다⁠.

이 아이를 보면 세비가 없어진 것이 확인된다⁠.

확인하지 않으면 없어진 것이 아닌 것 같다⁠.

아셀은 이것이 틀린 생각인 줄 알면서 열흘을 그렇게 했다⁠.

열흘째에 마당에 갔다⁠.

가서 담 밑에 앉았다⁠.

새 서른하나가 이것을 보고 왔다⁠.

“⁠…형⁠, 거기 왜 앉아⁠?⁠”

아셀이 말했다⁠.

“⁠…여기 앉던 애가 있었어⁠.⁠”

이 아이가 물었다⁠.

“⁠누구⁠?⁠”

아셀이 말했다⁠.

“⁠너보다 먼저 서른하나였던 애⁠.⁠”

이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 말고 서른하나가 있었어⁠?⁠”

아셀이 말했다⁠.

“⁠있었어⁠.⁠”

이 아이가 물었다⁠.

“⁠이름이 뭔데⁠?⁠”

아셀이 말했다⁠.

“⁠세비⁠.⁠”

이 아이가 이 이름을 따라 했다⁠.

“⁠세비⁠.⁠”

아셀이 이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한 사람 더 알게 됐다⁠.

아셀이 이 아이한테 물었다⁠.

“⁠…너 이름 있어⁠?⁠”

이 아이가 말했다⁠.

“⁠없어⁠.⁠”

“⁠…⁠”

“⁠번호만 있어⁠.⁠”

아셀이 말했다⁠.

“⁠하나 지어⁠.⁠”

이 아이가 물었다⁠.

“⁠…지어도 돼⁠?⁠”

아셀이 말했다⁠.

“⁠돼⁠.⁠”

“⁠…⁠”

“⁠지으면 안 넘어가⁠.⁠”

이 아이가 물었다⁠.

“⁠…뭐가 안 넘어가⁠?⁠”

아셀이 말했다⁠.

“⁠번호는 다음 애한테 넘어가는데 이름은 안 넘어가⁠.⁠”

이 아이가 한참 생각했다⁠.

“⁠…어려운데⁠.⁠”

아셀이 말했다⁠.

“⁠천천히 지어⁠.⁠”

하루에 한 번씩⁠.

세비와 세하다⁠.

지하로 내려가니 보른이 없었다⁠.

지하 첫째 문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서른쯤 된 자였다⁠.

“⁠…보른 아저씨는요⁠.⁠”

그자가 물었다⁠.

“⁠누구요⁠?⁠”

아셀이 말했다⁠.

“⁠여기 삼십 년 계시던 분입니다⁠.⁠”

그자가 말했다⁠.

“⁠여기는 내가 오 년 지켰소⁠.⁠”

아셀이 이 자리에 섰다⁠.

“⁠…오 년이요⁠?⁠”

“⁠오 년이오⁠.⁠”

아셀이 물었다⁠.

“⁠그전에는 누가 지켰습니까⁠?⁠”

그자가 말했다⁠.

“⁠내가 지켰소⁠.⁠”

아셀이 물었다⁠.

“⁠오 년 전에는요⁠.⁠”

그자가 말했다⁠.

“⁠…모르겠소⁠.⁠”

아셀이 계단에 앉았다⁠.

보른이 먹혔다⁠.

아셀이 없는 스무날 사이에 먹혔다⁠.

먹히면 아무도 못 알아본다⁠. 오 년 지켰다고 하는 사람이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아셀은 알아본다⁠.

알아보는 까닭을 아셀은 이때 알았다⁠.

아셀은 이 얼굴을 봤지만⁠, 아셀 눈에서는 안 지워졌다⁠.

지워지지 않은 까닭이 있다⁠.

아셀은 미르가 안 먹은 사람이다⁠.

미르가 안 먹은 사람은 미르가 지우지도 못한다⁠.

아셀이 이날 밤 환기구로 들어갔다⁠.

미르가 자고 있었다⁠.

목 아래 눈이 떠 있었다⁠.

아셀이 앞에 섰다⁠.

“⁠…보른 아저씨를 드셨습니까⁠?⁠”

미르가 코를 벌렸다⁠.

아셀이 말했다⁠.

“⁠대답하십시오⁠.⁠”

미르가 소리를 한 번 냈다⁠.

짧았다⁠.

아셀이 말했다⁠.

“⁠…드셨군요⁠.⁠”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왜 드셨습니까⁠?⁠”

미르가 대답하지 않았다⁠.

아셀이 말했다⁠.

“⁠배가 부르시다고 하셨습니다⁠.⁠”

미르가 소리를 냈다⁠.

길게 한 번이었다⁠.

아셀이 이 소리를 세 번째로 들었다⁠.

세 번 들으니 알겠다⁠.

이 소리는 「⁠안 먹었다⁠」가 아니다⁠.

「⁠못 참았다⁠」다⁠.

아셀이 이 자리에서 미르한테 물었다⁠.

“⁠…세비를 드셨습니까⁠?⁠”

미르가 코를 벌렸다⁠.

아셀이 말했다⁠.

“⁠열두 살입니다⁠. 마당에 있던 아이입니다⁠.⁠”

미르가 소리를 냈다⁠.

짧게 한 번이었다⁠.

“⁠…드셨군요⁠.⁠”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왜 그 아이를 드셨습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길게 한 번이었다⁠.

「⁠못 참았다⁠」다⁠.

아셀이 이 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가 여기 왔었습니다⁠.⁠”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누나 이름을 불렀습니다⁠.⁠”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부른 사람을 드셨습니까⁠?⁠”

미르가 대답하지 않았다⁠.

아셀이 다시 물었다⁠.

“⁠부르면 냄새가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

“⁠냄새가 나오면 배가 열립니까⁠?⁠”

미르가 목 아래 눈을 감았다⁠.

감는 것을 아셀이 처음 봤다⁠.

아셀이 말했다⁠.

“⁠…열리는군요⁠.⁠”

“⁠…⁠”

“⁠열리면 못 참으시는군요⁠.⁠”

아셀이 일어섰다⁠.

“⁠그럼 부르는 사람이 제일 위험합니다⁠.⁠”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이 자리에 섰다⁠.

부르면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부르면 부른 사람이 먹힌다⁠.

그래서 삼백 해 동안 아무도 안 나온 것이다⁠.

부른 사람이 먹히면 이 사람 이름을 또 아무도 모르게 된다⁠.

부르는 사람이 사라지는 구조다⁠.

아셀이 물었다⁠.

“⁠…저는 왜 안 드십니까⁠?⁠”

미르가 코를 벌렸다⁠.

벌렸다가 닫았다⁠.

아셀이 알아들었다⁠.

냄새가 안 난다⁠.

아셀은 어미가 호적에 없다⁠. 아셀이라는 이름은 지은 이름이다⁠.

지은 이름은 냄새가 없다⁠.

먹을 것이 없는 것이다⁠.

아셀이 이 자리에 앉았다⁠.

“⁠…배가 부른데 드셨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왜 못 참으셨습니까⁠?⁠”

미르가 코를 벌렸다⁠.

벌리고 아셀 쪽으로 목을 뻗었다⁠.

목 아래 눈이 아이 앞에 왔다⁠.

이 눈이 젖어 있었다⁠.

아셀이 처음 봤다⁠.

미르가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이었다⁠.

아셀이 이것을 못 알아들었다⁠.

밖에 나와서 성벽에 앉아 있었다⁠.

들판에 불빛이 열둘이었다⁠.

하나가 늘어 있었다⁠.

아셀이 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뱉었다⁠.

보른을 먹고 하나를 뱉었다⁠.

둘에 하나가 아니라 하나에 하나다⁠.

아셀이 이 셈을 하다가 멈췄다⁠.

보른이 먹히기 전에 누구를 불렀다⁠.

부른 이름이 있어야 뱉는다⁠.

보른은 삼십 년 동안 명부를 셋 번 세었다⁠.

이름은 다 지워졌고 금만 남았다⁠.

그런데 보른이 하나를 알고 있었다⁠.

아셀이 성벽에서 내려왔다⁠.

내려와서 지하로 갔다⁠.

첫째 문 궤를 열었다⁠.

서판 천이백을 하나씩 들춰 봤다⁠.

이레가 걸렸다⁠.

이렛날 밤에 하나를 찾았다⁠.

궤 바닥에 서판이 하나 더 있었다⁠.

밀랍이 새것이었다⁠.

거기 글자가 남아 있었다⁠.

지워지지 않은 글자다⁠.

두 자였다⁠.

아셀이 이것을 읽었다⁠.

읽고 나서 손이 떨렸다⁠.

이 두 자를 아셀은 들어 본 적이 있다⁠.

문 너머에서 제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의 주인이다⁠.

아셀이 이 서판을 들고 열두 번째 문으로 갔다⁠.

환기구로 들어갔다⁠.

미르가 목 아래 눈을 떴다⁠.

아셀이 서판을 들었다⁠.

“⁠미르⁠.⁠”

미르가 코를 벌렸다⁠.

아셀이 두 자를 읽었다⁠.

소리 내어 읽었다⁠.

미르가 목을 들었다⁠.

들어서 천장까지 갔다⁠.

돌기둥이 울렸다⁠.

미르가 입을 열었다⁠.

입에서 냄새가 나왔다⁠.

사람 냄새다⁠. 여럿이 아니라 하나였다⁠.

아셀이 이 냄새를 맡았다⁠.

맡아 본 적 없는 냄새인데 낯설지 않았다⁠.

미르가 소리를 냈다⁠.

길고 낮았다⁠.

그러고 뱉었다⁠.

뱉은 것은 덩어리가 아니었다⁠.

소리였다⁠.

목소리 하나가 방에 남았다⁠.

여자 목소리였다⁠.

“⁠…아셀⁠.⁠”

아셀이 이 자리에 섰다⁠.

목소리가 다시 났다⁠.

“⁠…아셀⁠.⁠”

아셀이 대답했다⁠.

“⁠예⁠.⁠”

목소리가 말했다⁠.

“⁠…네가 컸구나⁠.⁠”

아셀이 물었다⁠.

“⁠…어디 계십니까⁠?⁠”

목소리가 말했다⁠.

“⁠…여기 있다⁠.⁠”

아셀이 방을 봤다⁠.

아무도 없었다⁠.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아셀이 물었다⁠.

“⁠…몸은 어디 있습니까⁠?⁠”

목소리가 말했다⁠.

“⁠없다⁠.⁠”

“⁠…⁠”

“⁠먹힌 것은 몸이 아니라 이름이다⁠. 몸은 그때 남쪽에 두고 왔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지금 어떻게 됩니까⁠?⁠”

목소리가 말했다⁠.

“⁠마을이 돋으면 거기 있다⁠.⁠”

아셀이 성벽을 생각했다⁠.

불빛이 열둘이었다⁠.

“⁠…열두 번째가 어머니십니까⁠?⁠”

목소리가 말했다⁠.

“⁠아니다⁠.⁠”

“⁠…⁠”

“⁠열두 번째는 보른이다⁠.⁠”

아셀이 이 자리에 앉았다⁠.

목소리가 말했다⁠.

“⁠보른이 나를 불렀다⁠.⁠”

“⁠…⁠”

“⁠내 이름을 서판에 새기고 불렀다⁠. 새기고 나서 먹혔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어머니는요⁠.⁠”

목소리가 말했다⁠.

“⁠아직 안 나왔다⁠.⁠”

“⁠…⁠”

“⁠나는 지금 네 앞에 있는 소리일 뿐이다⁠.⁠”

아셀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나오십니까⁠?⁠”

목소리가 말했다⁠.

“⁠네가 불렀으니 반쯤 나왔다⁠.⁠”

“⁠…나머지는 어찌 됩니까⁠?⁠”

목소리가 말했다⁠.

“⁠마을이 돋아야 한다⁠.⁠”

“⁠…어떻게 돋습니까⁠?⁠”

목소리가 말했다⁠.

“⁠사람이 살아야 돋는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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