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58자) · 환기구

둘을 먹이면 하나를 뱉는다

이름을 먹는 드래곤 · 백해원

아셀이 열두 번째 문에 다시 들어간 것은 닷새 뒤였다.

보른이 열쇠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셋 가운데 하나다. 셋이 다 있어야 열리지만 지하 관리인에게는 다른 길이 있다.

환기구다.

아셀이 환기구를 알아낸 것은 세비 때문이다.

세비가 마당 아이들 가운데 제일 작다. 작아서 도성 안 구멍을 다 안다.

아셀이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세비가 봤다.

“…형, 어디 가?”

“…지하에.”

세비가 말했다.

“열두 번째 문?”

아셀이 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알아?”

세비가 말했다.

“거기 옆에 구멍 있어.”

아셀이 물었다.

“…들어가 봤어?”

세비가 고개를 저었다.

“무서워서 못 들어갔어.”

“…”

“그런데 거기서 소리가 나.”

아셀이 물었다.

“무슨 소리?”

세비가 말했다.

“사람 소리.”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세비가 말했다.

“한 번은 우리 누나 소리인 줄 알았어.”

“…”

“가서 들어 보니까 아니었어.”

아셀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세비가 말했다.

“우리 누나는 나를 세비라고 안 불러.”

아셀이 물었다.

“뭐라고 부르는데?”

세비가 웃었다.

“…비야.”

“…”

“누나만 그렇게 불렀어.”

아셀이 그 말을 듣고 구멍으로 갔다.

아셀이 그날 밤에 마당으로 돌아가니 세비가 자고 있었다.

담 밑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잤다.

아셀이 옆에 앉았다.

앉아서 낮에 맡은 냄새를 떠올렸다.

사람 냄새라고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많은 방 냄새였다.

방에 사람이 많으면 그 냄새가 난다.

마당에 마흔이 자고 있다.

아셀이 그 냄새를 맡아 봤다.

같았다.

아셀이 일어나 앉았다.

미르 배 속 냄새가 이 마당 냄새와 같다.

그러면 배 속은 방이다.

방에 사람이 갇혀 있는 것이다.

아셀이 그날 밤에 잠을 못 잤다.

새벽에 세비가 깼다.

“…형, 왜 안 자?”

아셀이 말했다.

“…생각할 게 있어.”

세비가 물었다.

“무슨 생각?”

아셀이 말했다.

“…거기가 어떤 덴지.”

세비가 물었다.

“어딘데?”

아셀이 말했다.

“짐승 배 속.”

세비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춥진 않을까?”

아셀이 말했다.

“안 추울 거야.”

“…왜?”

아셀이 말했다.

“사람이 많아.”

돌 세 겹 옆으로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구멍이 있다. 짐승한테 바람을 넣으려고 뚫은 것이다.

아셀이 그리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미르가 자고 있었다.

자는 것이 아니었다. 눈 둘이 감겨 있고 목 아래 눈이 떠 있었다.

목 아래 눈이 아셀을 봤다.

아셀이 섰다.

“…미르.”

미르가 코를 벌렸다.

냄새를 맡는 것이다.

“제 어머니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미르가 코를 닫았다.

대답이 없었다.

아셀이 다시 말했다.

“배 속에 계십니다.”

미르가 고개를 들었다.

들어서 아이 쪽으로 목을 뻗었다.

목 아래 눈이 아이 앞으로 왔다.

아셀이 안 물러섰다.

미르가 입을 열었다.

입 안에서 냄새가 나왔다.

물비린내도 짚 냄새도 쇠 냄새도 아니었다.

사람 냄새였다.

여럿이 한꺼번에 나는 냄새다. 방에 사람이 많으면 나는 냄새다.

아셀이 그 냄새를 맡고 한 걸음 물러섰다.

물러선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숨이 막혀서였다.

미르가 입을 닫았다.

그러고 소리를 냈다.

말이 아니었다. 목에서 나는 소리다.

소리가 두 번 났다.

아셀이 그것을 들었다.

두 번째 소리가 첫 번째보다 짧았다.

아셀이 물었다.

“…둘이요?”

미르가 소리를 한 번 더 냈다.

아셀이 알아들었다.

“둘을 먹여야 하나를 뱉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내리는 것이 그렇다는 뜻이라고 아셀은 알았다.

아셀이 물었다.

“왜 둘입니까?”

미르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코를 벌렸다.

아이 냄새를 맡았다.

맡고 나서 목을 돌렸다.

돌리는 것이 안 먹겠다는 뜻이다.

아셀이 물었다.

“…저는 왜 안 드십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길게 한 번이었다.

아셀이 못 알아들었다.

밖으로 나와서 보른한테 그것을 말했다.

보른이 듣고 한참 앉아 있었다.

“…둘에 하나라고.”

“그렇게 알아들었습니다.”

보른이 셈을 했다.

“백사십 해 동안 백사십을 먹였다.”

“…”

“둘에 하나면 일흔을 뱉어야 한다.”

“…”

“한 번도 안 뱉었다.”

아셀이 물었다.

“부를 사람이 없어서요?”

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있고.”

“또 무엇입니까?”

보른이 말했다.

“뱉으면 마을이 돋는다.”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돋습니까?”

보른이 말했다.

“이름이 돌아오면 호적이 돌아온다. 호적이 돌아오면 그 사람이 살던 마을이 지도에 돌아온다.”

“…”

“지도에 돌아오면 땅에도 돌아온다.”

아셀이 물었다.

“들판에요?”

보른이 말했다.

“들판이 원래 마을이었다.”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보른이 말했다.

“도성이 그것을 안 원한다.”

“…왜요?”

보른이 말했다.

“남쪽 들판은 지금 도성 땅이다.”

아셀이 물었다.

“마을이 돋으면요.”

보른이 말했다.

“그 마을 땅이 된다.”

아셀이 오래 서 있었다.

“…그래서 안 부르는 것입니까?”

보른이 말했다.

“그래서 이름을 지운다.”

그날 밤에 아셀이 환기구로 다시 들어갔다.

들어가서 미르 앞에 앉았다.

“미르.”

미르가 목 아래 눈을 떴다.

“둘을 먹이면 하나를 뱉으신다고 했습니다.”

미르가 소리를 냈다.

“그럼 제 것으로 하나 치겠습니다.”

미르가 고개를 들었다.

아셀이 말했다.

“제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미르가 코를 벌렸다.

맡았다.

맡고 목을 돌렸다.

아셀이 말했다.

“왜 안 받으십니까?”

미르가 길게 소리를 냈다.

아셀이 그 소리를 두 번째로 들었다.

두 번 들으니 조금 알 것 같았다.

미르가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 것이다.

못 먹는 까닭을 아는 데 이레가 걸렸다.

아셀이 이레 동안 환기구로 드나들었다.

드나들면서 미르 냄새를 맡았다.

미르한테서 나는 냄새가 날마다 달랐다.

첫날은 쇠 냄새였다. 굶은 냄새다.

사흘째에 짚 냄새가 짙어졌다.

닷새째에 물비린내가 올라왔다.

이레째에 사람 냄새가 났다.

배 속 냄새다.

아셀이 그때 알았다.

미르는 배가 찬 것이다.

아셀이 보른한테 갔다.

“아저씨, 미르가 배가 부릅니다.”

보른이 고개를 들었다.

“…백사십 해를 한 해에 하나씩 먹었는데.”

“그게 많은 것 아닙니까?”

보른이 말했다.

“백사십이면 적다.”

“…적습니까?”

보른이 말했다.

“미르가 먹은 것이 백사십이 아니다.”

아셀이 물었다.

“몇입니까?”

보른이 벽을 봤다.

“지하 첫째 문에 명부가 있다.”

“…명부요?”

“지워진 사람 수를 적은 것이다. 삼십 년 동안 내가 봤다.”

아셀이 물었다.

“몇이라고 적혀 있습니까?”

보른이 말했다.

“사천이백열아홉이다.”

아셀이 그 수를 들었다.

“…백사십 해에 사천이백열아홉이요?”

보른이 고개를 저었다.

“백사십 해가 아니다.”

“…”

“그 명부는 삼백 해 것이다.”

아셀이 셈을 했다.

삼백 해에 사천이백열아홉이면 한 해에 열넷이다.

한 해에 하나가 아니다.

아셀이 물었다.

“한 해에 하나씩 먹인다고 하셨습니다.”

보른이 말했다.

“지금은 그렇다.”

“…전에는요.”

보른이 말했다.

“전에는 마을째 먹였다.”

아셀이 그 자리에 앉았다.

보른이 말했다.

“지워진 나라가 열둘이다.”

“…나라가요?”

“열둘이다. 로한은 그 열둘 위에 서 있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미르 배 속에 나라가 열둘 들어 있습니까?”

보른이 말했다.

“그래서 배가 부른 것이다.”

아셀이 일어섰다.

“그럼 하나를 뱉게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보른이 말했다.

“모른다.”

아셀이 말했다.

“둘을 먹이면 하나를 뱉는다고 했습니다.”

보른이 말했다.

“배가 부르면 둘을 먹여도 안 먹는다.”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보른이 말했다.

“먼저 비워야 한다.”

“…비우려면 뱉어야 하는데요.”

“그렇다.”

“뱉으려면 먹여야 하고요.”

“그렇다.”

아셀이 말했다.

“…그럼 안 됩니다.”

보른이 말했다.

“한 가지가 있다.”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보른이 말했다.

“먹이는 것 말고 부르는 것이 있다.”

“…”

“이름을 아는 사람이 부르면 미르가 먹은 것을 놓는다.”

아셀이 물었다.

“그건 먹이지 않아도 됩니까?”

보른이 말했다.

“된다.”

“…그럼 왜 아무도 안 합니까?”

보른이 말했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셀이 밖으로 나오니 세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에 앉아 있었다.

“…들어갔었어?”

“들어갔어.”

세비가 물었다.

“봤어?”

“봤어.”

세비가 물었다.

“어떻게 생겼어?”

아셀이 말했다.

“소 두 마리쯤 돼.”

세비가 말했다.

“…생각보다 작네.”

아셀이 말했다.

“작아.”

세비가 물었다.

“무서워?”

아셀이 그 물음에 잠깐 있었다.

“…안 무서워.”

“…왜?”

아셀이 말했다.

“눈이 셋인데 하나가 목 아래 있어.”

“…”

“그 눈이 계속 뜨고 있어.”

세비가 물었다.

“그게 왜 안 무서워?”

아셀이 말했다.

“잠을 못 자는 것 같아서.”

세비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아셀이 말했다.

“삼백 해 동안 안 잤으면 나 같으면 울었을 거야.”

세비가 물었다.

“…울어?”

아셀이 말했다.

“모르겠어.”

세비가 계단에서 일어섰다.

“형.”

“왜?”

세비가 말했다.

“다음에 들어갈 때 나도 데려가.”

아셀이 물었다.

“무섭다며.”

세비가 말했다.

“누나 이름 대 보게.”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세비가 말했다.

“배 속에 있으면 냄새가 난다며.”

“…”

“있는지만 알면 돼.”

아셀이 그 뒤로 알았다.

배 속에서 나는 소리는 부를 때만 난다.

부르지 않으면 안 난다.

부르는 것이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그날부터 아셀이 환기구로 드나들었다.

드나드는 것을 세비만 알았다.

세비가 그 구멍 앞에서 망을 봤다.

망을 보는 것이 제 일이라고 했다.

망을 보면서 세비가 늘 같은 말을 했다.

“…빨리 나와.”

아셀이 물었다.

“…무서워?”

세비가 말했다.

“아니.”

“…”

“혼자 있으면 심심해.”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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