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57자) · 환기구

둘을 먹이면 하나를 뱉는다

드래곤이 처음으로 먹지 않은 아이 · 황보겸

아셀이 열두 번째 문에 다시 들어간 것은 닷새 뒤였다⁠.

보른이 열쇠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셋 가운데 하나다⁠. 셋이 다 있어야 열리지만 지하 관리인에게는 다른 길이 있다⁠.

환기구다⁠.

아셀이 환기구를 알아낸 것은 세비 때문이다⁠.

세비가 마당 아이들 가운데 제일 작다⁠. 작아서 도성 안 구멍을 다 안다⁠.

아셀이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세비가 봤다⁠.

“⁠…형⁠, 어디 가⁠?⁠”

“⁠…지하에⁠.⁠”

세비가 말했다⁠.

“⁠열두 번째 문⁠?⁠”

아셀이 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알아⁠?⁠”

세비가 말했다⁠.

“⁠거기 옆에 구멍 있어⁠.⁠”

아셀이 물었다⁠.

“⁠…들어가 봤어⁠?⁠”

세비가 고개를 저었다⁠.

“⁠무서워서 못 들어갔어⁠.⁠”

“⁠…⁠”

“⁠그런데 거기서 소리가 나⁠.⁠”

아셀이 물었다⁠.

“⁠무슨 소리⁠?⁠”

세비가 말했다⁠.

“⁠사람 소리⁠.⁠”

아셀이 이 자리에 섰다⁠.

세비가 말했다⁠.

“⁠한 번은 우리 누나 소리인 줄 알았어⁠.⁠”

“⁠…⁠”

“⁠가서 들어 보니까 아니었어⁠.⁠”

아셀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세비가 말했다⁠.

“⁠우리 누나는 나를 세비라고 안 불러⁠.⁠”

아셀이 물었다⁠.

“⁠뭐라고 부르는데⁠?⁠”

세비가 웃었다⁠.

“⁠…비야⁠.⁠”

“⁠…⁠”

“⁠누나만 그렇게 불렀어⁠.⁠”

아셀이 이 말을 듣고 구멍으로 갔다⁠.

아셀이 이날 밤에 마당으로 돌아가니 세비가 자고 있었다⁠.

담 밑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잤다⁠.

아셀이 옆에 앉았다⁠.

앉아서 낮에 맡은 냄새를 떠올렸다⁠.

사람 냄새라고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많은 방 냄새였다⁠.

방에 사람이 많으면 이 냄새가 난다⁠.

마당에 마흔이 자고 있다⁠.

아셀이 이 냄새를 맡아 봤다⁠.

같았다⁠.

아셀이 일어나 앉았다⁠.

미르 배 속 냄새가 이 마당 냄새와 같다⁠.

그러면 배 속은 방이다⁠.

방에 사람이 갇혀 있는 것이다⁠.

아셀이 이날 밤에 잠을 못 잤다⁠.

새벽에 세비가 깼다⁠.

“⁠…형⁠, 왜 안 자⁠?⁠”

아셀이 말했다⁠.

“⁠…생각할 게 있어⁠.⁠”

세비가 물었다⁠.

“⁠무슨 생각⁠?⁠”

아셀이 말했다⁠.

“⁠…거기가 어떤 덴지⁠.⁠”

세비가 물었다⁠.

“⁠어딘데⁠?⁠”

아셀이 말했다⁠.

“⁠짐승 배 속⁠.⁠”

세비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춥진 않을까⁠?⁠”

아셀이 말했다⁠.

“⁠안 추울 거야⁠.⁠”

“⁠…왜⁠?⁠”

아셀이 말했다⁠.

“⁠사람이 많아⁠.⁠”

돌 세 겹 옆으로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구멍이 있다⁠. 짐승한테 바람을 넣으려고 뚫은 것이다⁠.

아셀이 그리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미르가 자고 있었다⁠.

자는 것이 아니었다⁠. 눈 둘이 감겨 있고 목 아래 눈이 떠 있었다⁠.

목 아래 눈이 아셀을 봤다⁠.

아셀이 섰다⁠.

“⁠…미르⁠.⁠”

미르가 코를 벌렸다⁠.

냄새를 맡는 것이다⁠.

“⁠제 어머니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미르가 코를 닫았다⁠.

대답이 없었다⁠.

아셀이 다시 말했다⁠.

“⁠배 속에 계십니다⁠.⁠”

미르가 고개를 들었다⁠.

들어서 아이 쪽으로 목을 뻗었다⁠.

목 아래 눈이 아이 앞으로 왔다⁠.

아셀이 안 물러섰다⁠.

미르가 입을 열었다⁠.

입 안에서 냄새가 나왔다⁠.

물비린내도 짚 냄새도 쇠 냄새도 아니었다⁠.

사람 냄새였다⁠.

여럿이 한꺼번에 나는 냄새다⁠. 방에 사람이 많으면 나는 냄새다⁠.

아셀이 이 냄새를 맡고 한 걸음 물러섰다⁠.

물러선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숨이 막혀서였다⁠.

미르가 입을 닫았다⁠.

그러고 소리를 냈다⁠.

말이 아니었다⁠. 목에서 나는 소리다⁠.

소리가 두 번 났다⁠.

아셀이 이것을 들었다⁠.

두 번째 소리가 첫 번째보다 짧았다⁠.

아셀이 물었다⁠.

“⁠…둘이요⁠?⁠”

미르가 소리를 한 번 더 냈다⁠.

아셀이 알아들었다⁠.

“⁠둘을 먹여야 하나를 뱉습니까⁠?⁠”

미르가 고개를 내렸다⁠.

내리는 것이 그렇다는 뜻이라고 아셀은 알았다⁠.

아셀이 물었다⁠.

“⁠왜 둘입니까⁠?⁠”

미르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코를 벌렸다⁠.

아이 냄새를 맡았다⁠.

맡고 나서 목을 돌렸다⁠.

돌리는 것이 안 먹겠다는 뜻이다⁠.

아셀이 물었다⁠.

“⁠…저는 왜 안 드십니까⁠?⁠”

미르가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길게 한 번이었다⁠.

아셀이 못 알아들었다⁠.

밖으로 나와서 보른한테 이것을 말했다⁠.

보른이 듣고 한참 앉아 있었다⁠.

“⁠…둘에 하나라고⁠.⁠”

“⁠그렇게 알아들었습니다⁠.⁠”

보른이 셈을 했다⁠.

“⁠백사십 해 동안 백사십을 먹였다⁠.⁠”

“⁠…⁠”

“⁠둘에 하나면 일흔을 뱉어야 한다⁠.⁠”

“⁠…⁠”

“⁠한 번도 안 뱉었다⁠.⁠”

아셀이 물었다⁠.

“⁠부를 사람이 없어서요⁠?⁠”

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있고⁠.⁠”

“⁠또 무엇입니까⁠?⁠”

보른이 말했다⁠.

“⁠뱉으면 마을이 돋는다⁠.⁠”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돋습니까⁠?⁠”

보른이 말했다⁠.

“⁠이름이 돌아오면 호적이 돌아온다⁠. 호적이 돌아오면 그 사람이 살던 마을이 지도에 돌아온다⁠.⁠”

“⁠…⁠”

“⁠지도에 돌아오면 땅에도 돌아온다⁠.⁠”

아셀이 물었다⁠.

“⁠들판에요⁠?⁠”

보른이 말했다⁠.

“⁠들판이 원래 마을이었다⁠.⁠”

아셀이 이 자리에 섰다⁠.

보른이 말했다⁠.

“⁠도성이 그것을 안 원한다⁠.⁠”

“⁠…왜요⁠?⁠”

보른이 말했다⁠.

“⁠남쪽 들판은 지금 도성 땅이다⁠.⁠”

아셀이 물었다⁠.

“⁠마을이 돋으면요⁠.⁠”

보른이 말했다⁠.

“⁠그 마을 땅이 된다⁠.⁠”

아셀이 오래 서 있었다⁠.

“⁠…그래서 안 부르는 것입니까⁠?⁠”

보른이 말했다⁠.

“⁠그래서 이름을 지운다⁠.⁠”

이날 밤에 아셀이 환기구로 다시 들어갔다⁠.

들어가서 미르 앞에 앉았다⁠.

“⁠미르⁠.⁠”

미르가 목 아래 눈을 떴다⁠.

“⁠둘을 먹이면 하나를 뱉으신다고 했습니다⁠.⁠”

미르가 소리를 냈다⁠.

“⁠그럼 제 것으로 하나 치겠습니다⁠.⁠”

미르가 고개를 들었다⁠.

아셀이 말했다⁠.

“⁠제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미르가 코를 벌렸다⁠.

맡았다⁠.

맡고 목을 돌렸다⁠.

아셀이 말했다⁠.

“⁠왜 안 받으십니까⁠?⁠”

미르가 길게 소리를 냈다⁠.

아셀이 이 소리를 두 번째로 들었다⁠.

두 번 들으니 조금 알 것 같았다⁠.

미르가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 것이다⁠.

못 먹는 까닭을 아는 데 이레가 걸렸다⁠.

아셀이 이레 동안 환기구로 드나들었다⁠.

드나들면서 미르 냄새를 맡았다⁠.

미르한테서 나는 냄새가 날마다 달랐다⁠.

첫날은 쇠 냄새였다⁠. 굶은 냄새다⁠.

사흘째에 짚 냄새가 짙어졌다⁠.

닷새째에 물비린내가 올라왔다⁠.

이레째에 사람 냄새가 났다⁠.

배 속 냄새다⁠.

아셀이 이때 알았다⁠.

미르는 배가 찬 것이다⁠.

아셀이 보른한테 갔다⁠.

“⁠아저씨⁠, 미르가 배가 부릅니다⁠.⁠”

보른이 고개를 들었다⁠.

“⁠…백사십 해를 한 해에 하나씩 먹었는데⁠.⁠”

“⁠그게 많은 것 아닙니까⁠?⁠”

보른이 말했다⁠.

“⁠백사십이면 적다⁠.⁠”

“⁠…적습니까⁠?⁠”

보른이 말했다⁠.

“⁠미르가 먹은 것이 백사십이 아니다⁠.⁠”

아셀이 물었다⁠.

“⁠몇입니까⁠?⁠”

보른이 벽을 봤다⁠.

“⁠지하 첫째 문에 명부가 있다⁠.⁠”

“⁠…명부요⁠?⁠”

“⁠지워진 사람 수를 적은 것이다⁠. 삼십 년 동안 내가 봤다⁠.⁠”

아셀이 물었다⁠.

“⁠몇이라고 적혀 있습니까⁠?⁠”

보른이 말했다⁠.

“⁠사천이백열아홉이다⁠.⁠”

아셀이 이 수를 들었다⁠.

“⁠…백사십 해에 사천이백열아홉이요⁠?⁠”

보른이 고개를 저었다⁠.

“⁠백사십 해가 아니다⁠.⁠”

“⁠…⁠”

“⁠그 명부는 삼백 해 것이다⁠.⁠”

아셀이 셈을 했다⁠.

삼백 해에 사천이백열아홉이면 한 해에 열넷이다⁠.

한 해에 하나가 아니다⁠.

아셀이 물었다⁠.

“⁠한 해에 하나씩 먹인다고 하셨습니다⁠.⁠”

보른이 말했다⁠.

“⁠지금은 그렇다⁠.⁠”

“⁠…전에는요⁠.⁠”

보른이 말했다⁠.

“⁠전에는 마을째 먹였다⁠.⁠”

아셀이 이 자리에 앉았다⁠.

보른이 말했다⁠.

“⁠지워진 나라가 열둘이다⁠.⁠”

“⁠…나라가요⁠?⁠”

“⁠열둘이다⁠. 로한은 그 열둘 위에 서 있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미르 배 속에 나라가 열둘 들어 있습니까⁠?⁠”

보른이 말했다⁠.

“⁠그래서 배가 부른 것이다⁠.⁠”

아셀이 일어섰다⁠.

“⁠그럼 하나를 뱉게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보른이 말했다⁠.

“⁠모른다⁠.⁠”

아셀이 말했다⁠.

“⁠둘을 먹이면 하나를 뱉는다고 했습니다⁠.⁠”

보른이 말했다⁠.

“⁠배가 부르면 둘을 먹여도 안 먹는다⁠.⁠”

아셀이 이 자리에 섰다⁠.

보른이 말했다⁠.

“⁠먼저 비워야 한다⁠.⁠”

“⁠…비우려면 뱉어야 하는데요⁠.⁠”

“⁠그렇다⁠.⁠”

“⁠뱉으려면 먹여야 하고요⁠.⁠”

“⁠그렇다⁠.⁠”

아셀이 말했다⁠.

“⁠…그럼 안 됩니다⁠.⁠”

보른이 말했다⁠.

“⁠한 가지가 있다⁠.⁠”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보른이 말했다⁠.

“⁠먹이는 것 말고 부르는 것이 있다⁠.⁠”

“⁠…⁠”

“⁠이름을 아는 사람이 부르면 미르가 먹은 것을 놓는다⁠.⁠”

아셀이 물었다⁠.

“⁠그건 먹이지 않아도 됩니까⁠?⁠”

보른이 말했다⁠.

“⁠된다⁠.⁠”

“⁠…그럼 왜 아무도 안 합니까⁠?⁠”

보른이 말했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셀이 밖으로 나오니 세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에 앉아 있었다⁠.

“⁠…들어갔었어⁠?⁠”

“⁠들어갔어⁠.⁠”

세비가 물었다⁠.

“⁠봤어⁠?⁠”

“⁠봤어⁠.⁠”

세비가 물었다⁠.

“⁠어떻게 생겼어⁠?⁠”

아셀이 말했다⁠.

“⁠소 두 마리쯤 돼⁠.⁠”

세비가 말했다⁠.

“⁠…생각보다 작네⁠.⁠”

아셀이 말했다⁠.

“⁠작아⁠.⁠”

세비가 물었다⁠.

“⁠무서워⁠?⁠”

아셀이 이 물음에 잠깐 있었다⁠.

“⁠…안 무서워⁠.⁠”

“⁠…왜⁠?⁠”

아셀이 말했다⁠.

“⁠눈이 셋인데 하나가 목 아래 있어⁠.⁠”

“⁠…⁠”

“⁠그 눈이 계속 뜨고 있어⁠.⁠”

세비가 물었다⁠.

“⁠그게 왜 안 무서워⁠?⁠”

아셀이 말했다⁠.

“⁠잠을 못 자는 것 같아서⁠.⁠”

세비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아셀이 말했다⁠.

“⁠삼백 해 동안 안 잤으면 나 같으면 울었을 거야⁠.⁠”

세비가 물었다⁠.

“⁠…울어⁠?⁠”

아셀이 말했다⁠.

“⁠모르겠어⁠.⁠”

세비가 계단에서 일어섰다⁠.

“⁠형⁠.⁠”

“⁠왜⁠?⁠”

세비가 말했다⁠.

“⁠다음에 들어갈 때 나도 데려가⁠.⁠”

아셀이 물었다⁠.

“⁠무섭다며⁠.⁠”

세비가 말했다⁠.

“⁠누나 이름 대 보게⁠.⁠”

아셀이 이 자리에 섰다⁠.

세비가 말했다⁠.

“⁠배 속에 있으면 냄새가 난다며⁠.⁠”

“⁠…⁠”

“⁠있는지만 알면 돼⁠.⁠”

아셀이 나중에 알았다⁠.

배 속에서 나는 소리는 부를 때만 난다⁠.

부르지 않으면 안 난다⁠.

부르는 것이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이날부터 아셀이 환기구로 드나들었다⁠.

드나드는 것을 세비만 알았다⁠.

세비가 이 구멍 앞에서 망을 봤다⁠.

망을 보는 것이 제 일이라고 했다⁠.

망을 보면서 세비가 늘 같은 말을 했다⁠.

“⁠…빨리 나와⁠.⁠”

아셀이 물었다⁠.

“⁠…무서워⁠?⁠”

세비가 말했다⁠.

“⁠아니⁠.⁠”

“⁠…⁠”

“⁠혼자 있으면 심심해⁠.⁠”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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