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05자) · 안 먹었다
열두 번째 문
이름을 먹는 드래곤 · 백해원
로한 왕국 도성 아르한의 지하에는 문이 열둘 있다.
첫째부터 열한째까지는 창고다. 소금, 밀, 쇠, 기름, 그리고 전쟁 때 쓰는 것들이 들어 있다.
열두 번째 문은 창고가 아니다.
그 문은 돌 세 겹으로 되어 있고 열쇠가 셋이다. 셋을 가진 사람이 셋이다.
셋이 다 모여야 열린다.
한 해에 한 번 연다. 봄에 연다.
열두 번째 문 뒤에 미르가 있다.
미르는 이름을 먹는다.
무엇을 먹는지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사람 이름을 먹는다. 먹히면 그 사람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를 못 알아보게 된다.
이름이 없어지면 호적에서 지워지고, 호적에서 지워지면 그 사람이 살던 마을이 지도에서 사라진다.
마을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들판이 남는다.
로한 남쪽에 들판이 넓은 것은 그 때문이다.
들판은 처음부터 들판이 아니었다.
미르가 이름을 먹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는 기록이 없다.
기록이 없는 까닭도 이름을 먹혔기 때문이다. 적은 사람의 이름이 먹히면 적은 것도 같이 지워진다.
봄에 문을 여는 것은 먹이려고 여는 것이다.
한 해에 하나씩 먹인다.
누구를 먹일지는 도성에서 정한다. 정하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이 셋이다. 열쇠를 가진 셋과 같다.
그해 봄에 정해진 사람은 열네 살짜리 아이였다.
이름이 아셀이다.
아이가 뽑힌 까닭은 셋 다 대지 못했다.
기록에는 「호적에 어미가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다.
어미가 없는 아이는 먹혀도 우는 사람이 적다.
문이 열린 것은 사월 초였다.
돌 세 겹이 차례로 밀려났다. 미는 데 사람 열둘이 붙었다.
안에서 냄새가 나왔다.
먼저 물비린내가 나왔다. 지하수 냄새다.
그다음에 짚 냄새가 나왔다.
마지막에 쇠 냄새가 나왔다.
굶은 짐승한테서 나는 냄새다.
아셀이 그 냄새를 맡고 걸음을 멈췄다.
셋 가운데 하나가 등을 떠밀었다.
아이가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지하 방은 넓었다. 천장이 높고 돌기둥이 넷이다.
기둥 사이에 미르가 있었다.
미르는 크지 않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았다. 소 두 마리쯤이다.
비늘이 없고 가죽이었다. 회색이고 마른 가죽이다.
눈이 셋이었다. 둘은 앞에 있고 하나는 목 아래에 있다.
목 아래 눈은 감겨 있었다.
미르가 아이를 봤다.
아이가 섰다.
미르가 코를 벌렸다.
냄새를 맡는 것이다.
미르는 눈으로 고르지 않는다. 코로 고른다.
이름마다 냄새가 다르다. 사람은 그것을 못 맡는다. 미르만 맡는다.
미르가 아이 냄새를 맡고 코를 닫았다.
그러고 고개를 돌렸다.
먹지 않았다.
아이가 그 자리에 한나절 서 있었다.
한나절 뒤에 문이 열렸다.
셋이 들어와서 아이가 서 있는 것을 봤다.
셋 가운데 하나가 말했다.
“…안 먹었소?”
아이가 대답했다.
“안 먹었습니다.”
셋이 서로를 봤다.
한 사람이 말했다.
“백사십 해 만이오.”
아셀이 물었다.
“…무엇이 백사십 해입니까?”
그 사람이 말했다.
“안 먹은 것이.”
셋이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나오면서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아이를 어찌하오?”
또 한 사람이 말했다.
“내년에 다시 넣으면 되지.”
셋째가 말했다.
“안 먹은 것을 또 넣으면 또 안 먹소.”
첫째가 말했다.
“그럼 다른 것을 넣어야 하오.”
셋이 아이를 두고 올라갔다.
아셀은 그날 밤에 지하 계단에 앉아 있었다.
문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긁는 소리다.
아이가 문에 귀를 댔다.
긁는 소리 사이에 다른 소리가 있었다.
사람 소리였다.
말은 아니고 소리다. 여럿이 한꺼번에 내는 소리다.
아이가 문에 대고 물었다.
“…누구세요?”
소리가 멎었다.
한참 있다가 소리가 다시 났다.
이번에는 하나였다.
여자 목소리였다.
이름을 불렀다.
“아셀.”
아이가 그 자리에 앉았다.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지 오래됐다. 도성에서는 아이를 번호로 불렀다.
도성에서 아이를 번호로 부르는 데는 까닭이 있다.
호적에 어미가 없는 아이는 도성이 기른다.
기르는 데가 남문 안쪽 마당이다. 지붕이 있고 벽이 셋이고 한쪽이 트여 있다.
거기 아이가 마흔쯤 있다.
마흔에게 번호를 준다. 하나부터 마흔까지다.
번호를 주는 까닭을 관리인이 이렇게 말했다.
“이름을 부르면 정이 든다.”
아셀은 열아홉이었다.
열아홉이라고 불렸다.
아셀이라는 이름은 아셀이 여덟에 스스로 지었다.
지은 까닭은 하나다.
그해 겨울에 스물셋이 죽었다.
죽고 나서 마당에 있던 아이들이 그 번호를 잊었다.
잊은 것이 아니라 없어졌다. 스물셋이라는 번호가 다음 아이한테 넘어갔다.
새로 온 아이가 스물셋이 됐다.
먼저 있던 스물셋은 아무 데도 안 남았다.
아셀이 그것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
번호는 넘어가지만 이름은 안 넘어간다.
지은 이름을 아무도 안 불렀다.
여섯 해 동안 아무도 안 불렀다.
그래서 문 안에서 그 이름이 났을 때 아셀이 앉은 것이다.
여섯 해 만에 제 이름을 들었다.
아이가 물었다.
“…누구세요?”
문 안에서 여자가 말했다.
“…네 어미다.”
문 안에서 여자가 다시 말했다.
“…아셀.”
아이가 대답했다.
“…예.”
여자가 말했다.
“…그 이름을 네가 지었지.”
아이가 그 자리에 굳었다.
지은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아이가 물었다.
“…어떻게 아세요?”
여자가 말했다.
“…내가 지어 주려던 이름이다.”
“…”
“못 지어 주고 먹혔다.”
아이가 문에 손을 댔다.
돌이 차가웠다.
여자가 말했다.
“…같은 이름을 골랐구나.”
문 안이 조용해졌다.
아이가 한참 기다렸다.
기다리다가 물었다.
“…거기 계세요?”
대답이 없었다.
아이가 문에 이마를 댔다.
돌이 차가웠다.
아이가 한 번 더 불렀다.
“…어머니.”
대답이 없었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아침까지 기다렸다.
아셀은 어미를 모른다.
호적에 없다고 들었다.
호적에 없는 까닭을 그날 알았다.
마당에 아셀보다 두 해 어린 아이가 하나 있었다.
번호가 서른하나다.
그 아이는 이름을 안 지었다.
지을 줄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있어서다.
세비라고 했다.
세비는 마당에 온 지 두 해 됐다. 두 해 전에는 남쪽 마을에 살았다.
마을이 없어져서 도성에 왔다.
세비한테는 누나가 있었다.
누나 이름이 세하다.
세비가 그 이름을 날마다 한 번씩 소리 내어 부른다.
부르는 자리가 마당 구석이다. 담 밑이다.
아무도 안 보는 자리다.
아셀이 그것을 봤다.
“…뭐 해?”
세비가 말했다.
“…부르는데.”
“누구?”
세비가 말했다.
“우리 누나.”
아셀이 물었다.
“누나가 어디 있는데?”
세비가 말했다.
“몰라.”
“…”
“없어졌어.”
아셀이 물었다.
“언제?”
세비가 말했다.
“두 해 전에.”
아셀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왜 불러?”
세비가 말했다.
“안 부르면 잊어버려.”
아셀이 물었다.
“…뭘 잊어?”
세비가 말했다.
“이름.”
세비가 담에 등을 기댔다.
“얼굴은 벌써 잊었어.”
“…”
“이름도 잊으면 아무것도 없어.”
아셀이 물었다.
“하루에 몇 번 불러?”
세비가 말했다.
“한 번.”
“…왜 한 번만?”
세비가 말했다.
“많이 부르면 닳을 것 같아서.”
아셀이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이름이 닳는지 안 닳는지 아셀은 모른다.
그때는 몰랐다.
먹혔기 때문이다.
아셀은 그 밤에 문 앞에서 잤다.
아침에 지하 관리인이 내려와서 아이를 깨웠다.
관리인은 예순쯤 된 사내였다. 이름이 보른이다. 지하 열두 문을 삼십 년 지켰다.
“여기서 자면 안 된다.”
“…아저씨.”
“왜?”
“문 안에서 말소리가 납니다.”
보른이 손을 멈췄다.
“…들었냐.”
“들었습니다.”
“…뭐라고 하더냐?”
아셀이 말했다.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보른이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물었다.
“누가 불렀냐.”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보른이 벽에 기댔다.
“…들어 있구나.”
아셀이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보른이 말했다.
“먹힌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
“배 속에 있다.”
아셀이 물었다.
“그럼 나옵니까?”
보른이 말했다.
“부르면 나온다.”
아셀이 일어섰다.
“…부르면 나옵니까?”
보른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부르는 게 아니다.”
“…”
“미르가 뱉어야 나온다.”
“어떻게 뱉게 합니까?”
보른이 말했다.
“먹여야 뱉는다.”
아셀이 그 말을 들었다.
“…하나 먹이면 하나 뱉습니까?”
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럼 한 해에 하나씩 먹였으니 한 해에 하나씩 뱉었겠습니다.”
보른이 말했다.
“안 뱉었다.”
아셀이 물었다.
“왜 안 뱉었습니까?”
보른이 그 물음에 오래 있다가 대답했다.
“아무도 안 불렀다.”
“…”
“뱉으려면 부를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보른이 문을 봤다.
“먹히면 아무도 그 이름을 모르게 된다.”
“…”
“그러니 부를 사람이 없다.”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저는 압니다.”
보른이 고개를 돌렸다.
“…무엇을.”
아셀이 말했다.
“어머니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목소리는 이름이 아니다.”
“…”
“이름을 대야 나온다.”
아셀이 그날 밤에 마당으로 돌아갔다.
세비가 담 밑에 있었다.
“…안 자?”
세비가 말했다.
“불렀어.”
아셀이 물었다.
“오늘도?”
세비가 말했다.
“오늘은 두 번 불렀어.”
아셀이 그 자리에 섰다.
“…닳는다며.”
세비가 말했다.
“오늘은 누나 생일이야.”
아셀이 아무 말도 못 했다.
세비가 말했다.
“생일에는 두 번 불러도 돼.”
“…”
“내가 정했어.”
아셀이 담 밑에 같이 앉았다.
앉아서 물었다.
“…누나 몇 살이야?”
세비가 셈을 했다.
“…열여섯.”
“…”
“없어질 때 열넷이었으니까 지금 열여섯.”
아셀이 물었다.
“없어진 사람도 나이를 먹어?”
세비가 말했다.
“몰라.”
“…”
“그런데 안 먹으면 너무 불쌍하잖아.”
아셀이 물었다.
“어머니 이름을 어디서 알아냅니까?”
보른이 말했다.
“없다.”
“…”
“호적에서 지워졌고 적은 것도 같이 지워졌다.”
아셀이 말했다.
“그럼 물어보면 됩니다.”
보른이 웃었다.
“누구한테.”
아셀이 문을 가리켰다.
“미르한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