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34자)
반납된 사람
내 복제인간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 류세온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한미주의 하얀 가운이 바람에 부풀었다. 재오는 한미주와 열린 차 문 사이에 서 있었다. 등 뒤에서 담요에 싸인 재오 2의 숨소리가 들렸다. 이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반납된 물건이라고 하셨죠.”
재오가 말했다. 차 안으로 몸을 돌렸다.
“강비 씨. 두 분 다 내려 주세요.”
류강비가 맨 뒷줄에서 내렸다. 첫 번째 몸이 담요를 두른 채 류강비를 따라 내렸다. 맨발이 자갈에 닿자 움찔했다. 류강비가 제 슬리퍼를 벗어 형의 발 앞에 놓았다. 두 사람은 헤드라이트 앞에 나란히 섰다. 같은 키, 같은 얼굴, 같은 쪽으로 조금 기운 어깨. 류강비가 먼저 왼쪽 귀를 젖혔다. 첫 번째 몸도 따라 젖혔다. 푸른 점이 둘이었다.
“법은 한 사람에 하나예요. 여기 한 사람에 둘이 서 있어요. 둘 다 점이 있고요. 이 두 사람이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오늘도 로비 무쇠 판 앞에 나란히 서면 어떻게 되죠? 출근하는 사람이 사백 명이에요.”
차담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손에 쥐고 있던 은행 팔찌를 헤드라이트 쪽으로 들어 보였다.
“이건 다른 회사 거고요.”
한미주는 두 강비를 오래 보았다. 눈이 첫 번째 몸의 맨 무릎에서 멈췄다. 담요 밑으로 드러난 무릎이 추위에 새빨갰다.
“로비에 세우세요. 그럼 저는 경찰을 부르죠. 경찰이 오면 그 두 사람은 거울바이오 재고를 훔쳐 간 걸로 회수고, 차담 씨는 절도, 심재오 씨는 주거 침입이에요. 그리고 기자들은 사흘 쓰고 말아요. 오늘도는 그동안 한 사람도 안 잘랐으니까.”
“그럼 지금 부르세요.”
한미주는 휴대폰을 꺼내지 않았다. 동면실 쪽 건물을 한 번 돌아보았다. 철문 너머는 조용했다.
“셋째는 내가 데리고 있어요. 등록된 직원이니까 내일 아침에 출근하겠죠. 결근하면 반납 사유고요. 손이 떨려도 반납 사유예요.”
한미주가 차 문에서 손을 뗐다.
“가요. 오늘은. 대신 재오 2 씨는 이제 등록이 없어요. 집 밖에 나오면 미등록 복제고, 아무나 신고하면 회수예요. 류강비 씨 형도요. 둘 다 그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마세요.”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재오는 백미러를 보았다. 한미주는 자갈 위에 혼자 서 있었다. 한미주 뒤로 냉동 트럭 한 대가 하역장에 남아 있었다. 두 대는 이미 떠난 뒤였다.
*
이날 아침 아홉 시, 재오는 십사 층 책상에 앉아 있었다. 사우나에서 두 시간을 자고 네 시 오십팔 분에 출입문을 지났다. 다섯 시 정각에 재오 3은 오지 않았다. 여섯 시에도, 일곱 시에도 오지 않았다.
아홉 시 십 분,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인사본부장이 내렸다. 이 옆에 재오 3이 있었다. 경비 둘이 뒤따랐다. 재오 3의 왼쪽 광대뼈가 푸르게 부어 있었고, 셔츠 단추 하나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동면실 철문에 부딪친 자리였다.
“재오 3 씨는 대표 지시로 출시 전까지 숙소와 사무실만 오갑니다. 출퇴근은 숙소 쪽 문으로 하시고요. 경비가 같이 다닙니다. 규정상.”
인사본부장이 재오 3을 재오 옆 의자에 앉혔다. 경비 둘은 책상 뒤에 섰다. 팀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재오 3은 「원」 머그를 두 손으로 잡았다가 손이 떨려 내려놓았다. 머그가 책상에 부딪치는 소리가 사무실에 크게 울렸다.
“약속 지켰어?”
재오 3이 앞을 본 채로 물었다.
“아직 안 넣었잖아.”
“네가 안 넣은 거 아니야. 서류가 없어서 못 넣은 거지.”
재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재오 3이 고개를 조금 돌렸다.
“그 사람 깼어? 첫마디 뭐였어?”
“몇 상자냐고.”
재오 3이 웃었다. 부은 광대뼈 때문에 웃음이 한쪽으로 비틀렸다.
“나도 깨면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탱크 들어가기 전에.”
“너 안 들어가.”
“그럼 들어가기 전에 물어볼 일은 없겠네.”
재오 3은 머그를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내려놓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끝까지 들고 있었다. 커피가 손등으로 흘러내렸고, 닦지 않았다. 책상 뒤의 경비가 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떨리면 반납 사유라고 대표가 말했다. 재오는 휴지를 뽑아 재오 3의 손등을 닦았다. 경비가 보는 앞에서, 천천히, 다 닦일 때까지.
*
십이월 첫날 아침, 오늘도 타워 로비 출입문 앞에 귀 뒤에 점 찍힌 사람 서른두 명이 새로 줄을 섰다. 본사 복제가 예순넷이 되는 날이었다. 이 줄에 경비팀 넷이 있었다. 지하 삼 층 관리실에서 재오에게 놀이터 이야기를 들었던 젊은 경비의 얼굴도 거기 있었다. 진짜 젊은 경비는 이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같은 주에 간편식 업계 협의회 회원사 열한 곳이 모두 거울바이오와 계약했다. 신문은 「오늘도 모델」이라는 말을 제목에 달았다. 여의도와 판교와 마곡의 회사들이 검진 날짜를 잡았다.
일산 백석동 치과에도 위생사 둘이 새로 왔다. 귀 뒤에 푸른 점이 있었다. 여름에 치과 협회 단체 검진을 받은 다른 위생사 둘의 얼굴이었다. 원장은 이 둘을 보며 손뼉을 쳤다.
“이빨이 아주 예술이야. 하나도 안 때웠어. 위생사가 이빨이 이래야 환자가 믿지.”
영미는 이 여름 검진에 가지 않았다. 환자 의자에 눕는 것이 싫어서였다. 원장이 영미를 원장실로 불렀다.
“선생님도 하나 만들자. 일은 걔가 하고 선생님은 집에서 삼십 받고. 좋잖아.”
“싫어요.”
“그럼 다음 달부터 오전만 나와. 오후는 걔들이 해.”
영미는 원장실 문을 닫고 나와 소독실에 들어갔다. 소독기 유리문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영미는 이 얼굴이 하나뿐이라는 것을 확인하듯 한참 보았다.
*
일산 아파트 십일 층에는 이제 남자가 셋이었다. 재오, 재오 2, 그리고 이름 없는 첫 번째 강비. 류강비가 숙소로 돌아가며 형을 부탁한다고 열 번 넘게 허리를 접었다. 첫 번째 강비는 영미가 내준 재오의 낡은 운동복을 입고 소파 한쪽 끝에서 잤다. 재오 2는 다른 끝에서 잤다. 재오는 안방에서 잤다. 영미가 정한 순서였다.
“둘이 똑같이 생겨서 헷갈려요?”
첫 번째 강비가 아침에 물었다. 영미가 커피를 내리며 대답했다.
“설거지하는 쪽이 이 사람이에요.”
영미가 재오 2를 가리켰다. 재오 2는 고무장갑을 낀 채 웃었고, 재오는 식탁에서 신문을 접었다. 이날 저녁부터 재오도 설거지를 했다. 그러자 영미는 새 기준을 냈다. 설거지하면서 노래 부르는 쪽이 2였다. 재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으려고 입을 꽉 다물고 그릇을 닦았다. 다 닦고 나서야 자기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재오 2가 옆에서 같은 노래를 같은 박자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첫 번째 강비는 빨래를 갰다. 분홍 수건을 각 잡아 개어 쌓아 놓고 영미 앞에 섰다.
“월급은요?”
“우리 집은 월급 안 줘요.”
“그럼 저 아직 안 끝났네요.”
첫 번째 강비는 이 년 전 반납되던 날의 말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영미는 첫 번째 강비에게 귤 세 개를 월급이라며 쥐여 주었다. 귤을 까지 않고 하나씩 손바닥에 올려 무게를 쟀다. 그러고는 가장 무거운 하나를 류강비 몫이라며 냉장고 맨 위 칸에 넣어 두었다. 동생인지 형인지 아직 정하지 못한 사람의 몫이었다.
목요일 저녁, 재오 2가 재활용 봉투를 들고 현관을 나서려다 멈췄다. 재오가 대신 들고 나갔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재오의 얼굴을 보고, 재오가 든 봉투 속 빈 우유갑 두 개를 보았다.
“원본 양반, 어제 저녁에 복도에서 똑같은 얼굴 봤는데. 그분 등록증 있어요?”
재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즘 거울바이오에서 미등록 신고하면 포상금 준대요. 오십만 원. 우리 아들이 단지 대화방에 올렸어요. 나는 안 해요. 근데 우리 단지 원본들이 요즘 다 집에 있잖아요. 심심하잖아요.”
엘리베이터 거울에 아주머니의 얼굴과 재오의 얼굴이 나란히 비쳤다. 아주머니가 먼저 내렸다. 재오는 십일 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이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십이월 두 번째 날 월요일 저녁 여덟 시, 초인종이 울렸다. 재오 2와 첫 번째 강비가 동시에 안방으로 뛰었다. 영미가 화면을 보았다. 문을 열기 전에 한 번 숨을 골랐다.
한미주가 혼자 서 있었다. 회색 정장에 코트를 걸쳤고, 한 손에 「제사 끝난 맛」 한 상자를 들고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오래 안 있어요.”
한미주는 신발을 벗고 들어와 부엌 식탁에 앉았다. 재오와 재오 2가 칼국수를 먹던 이 식탁이었다. 영미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재오가 맞은편에 앉았다. 안방 문이 열리고 재오 2가 나와 재오 옆에 앉았다. 첫 번째 강비는 안방 문틈으로 눈만 내밀었다.
한미주가 상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예약이 구만 칠천이에요. 십만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십이월 십일 한강공원 행사가 마지막이에요.”
한미주는 재오 2를 보았다.
“재오 2 씨가 만든 행사예요. 지름 십 미터 철판. 그 위에 원본과 복제가 나란히 서 줬으면 해요. 둘이 한 무대에서 같이 누룽지를 구우면, 업계 열한 곳이 그 영상을 봐요. 「오늘도 모델」은 원본을 버리는 게 아니라는 그림이 필요해요.”
“그다음엔요?”
재오가 물었다.
“재오 2 씨를 다시 등록해 드려요. 신고는 다 거둬들이고요. 류강비 씨 형은 숙소에 방을 하나 주죠. 재오 3 씨는 계속 출근하고요.”
“싫다고 하면요?”
한미주는 영미를 보았다. 영미는 싱크대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영미 씨 치과 원장님이 저희 고객이시던데요. 오후 근무를 맡을 분이 둘 더 필요하시대요.”
영미가 팔짱을 풀었다. 싱크대에서 걸어 나와 식탁 옆에 섰다. 한미주를 내려다보는 자리였다.
“제 원장님 얘기는 왜 하세요?”
“나영미 씨도 정하실 게 있으니까요.”
“저는 정했어요. 이 집에서는 거짓말 안 하는 쪽이 사람이에요. 대표님은 이 식탁에 앉은 다음부터 아직 거짓말을 안 하셨어요. 그건 인정해요.”
영미는 한미주 앞에 놓인 「제사 끝난 맛」 상자를 집어 들어 뒤집었다. 상자 옆면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기획 담당자 이름이 찍혀 있었다. 심재오.
“이거 누가 기획했다고 찍혀 있는지 아세요?”
“심재오 씨요.”
“어느 쪽이요?”
한미주는 이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영미는 상자를 도로 식탁에 내려놓았다.
한미주가 다시 재오에게 고개를 돌렸다.
“싫다고 하시면 오늘 밤 이 아파트에 회수 차가 와요. 아래층에서 신고가 이미 들어왔어요. 오십만 원짜리로요. 재오 3 씨는 행사 끝나고 반납이고요. 손이 아직 떨리거든요. 철판 앞에서 뒤집개를 못 쥐어요.”
식탁이 조용했다. 냉장고가 웅 소리를 내다가 멈췄다. 재오는 숫자를 찾았다. 구만 칠천, 오십만 원, 십 미터. 아무 숫자도 맞지 않았다.
재오 2가 식탁 위 상자에 손을 얹었다. 오이 냄새는 한 달이 넘어 거의 빠져 있었다. 왼손 검지에 반달 자국이 분홍빛으로 남아 있었다.
“갈게요. 무대에.”
재오 2가 말했다. 재오가 재오 2를 보았다. 재오 2는 재오를 보지 않고 한미주를 똑바로 보았다.
“대신 재오 3도 무대에 세워요. 철판 한가운데. 셋이 나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