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47자)

동면실

내 복제인간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 류세온

목요일 밤 열두 시 십오 분⁠, 오늘도 타워 지하 이 층 하역장 셔터가 허리 높이까지 올라갔다⁠. 차담이 셔터 옆 수동 버튼을 누른 채 시계를 보고 있었다⁠. 셔터 밑으로 슬리퍼 두 켤레가 먼저 나왔다⁠. 류강비가 엎드려 기어 나왔고⁠, 재오 3이 뒤따라 나왔다⁠. 둘 다 점호를 받고 십 분 만에 이불 속에 베개를 넣어 두고 나온 참이었다⁠.

“⁠베개 두 개 넣었어요⁠. 사람 모양으로요⁠.⁠”

류강비가 속삭였다⁠.

“⁠점호는 끝났는데 그걸 왜 넣어⁠.⁠”

차담이 버튼에서 손을 뗐다⁠. 셔터가 내려왔다⁠.

“⁠영화에서 다들 그러잖아요⁠.⁠”

차담의 차는 칠 인승이었다⁠. 운전석에 차담⁠, 조수석에 재오⁠, 가운데 줄에 영미와 재오 3⁠, 맨 뒤에 류강비가 탔다⁠. 영미는 무릎 위에 담요 두 장과 진료 가방을 올려 두고 있었다⁠. 자유로에 올라서자 재오 3이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웠다⁠. 손이 떨려서 무릎이 같이 흔들렸다⁠. 영미가 가방에서 핫팩 하나를 꺼내 흔들어 재오 3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재오 3이 영미를 보았다⁠.

“⁠고마워요⁠.⁠”

“⁠손 떨리는 사람한테 주려고 가져온 거예요⁠. 당신 주려고 가져온 거 아니고⁠.⁠”

“⁠그게 저잖아요⁠.⁠”

영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핫팩 하나를 더 꺼내 재오 3의 다른 손에도 쥐여 주었다⁠.

맨 뒷줄에서 류강비가 쉬지 않고 말했다⁠. 형이 깨면 뭐라고 해야 하느냐고⁠. 자기가 형의 동생인지 형인지 모르겠다고⁠. 같은 날 스캔한 몸인데 형이 일 년 먼저 깼고⁠, 자기는 일 년 반을 더 살았으니까⁠, 셈으로 치면 자기가 형이라고⁠. 그러다 형이라고 부르면 형이 기분 나빠할 것 같다고⁠. 차담이 백미러로 류강비를 보았다⁠.

“⁠그냥 이름 불러요⁠.⁠”

“⁠이름이요⁠? 이름은 제가 받은 거예요⁠. 사내 공모로⁠. 형은 이름이 없어요⁠. 그때 저는 류강비가 아니라 「⁠오늘이⁠」가 될 뻔했어요⁠. 이 표 차이로⁠.⁠”

차 안이 조용해졌다가 차담이 먼저 웃었다⁠. 영미가 따라 웃었고⁠, 재오 3이 핫팩을 쥔 채 웃었다⁠. 재오는 조수석 창에 비친 차 안을 보았다⁠. 웃는 얼굴 다섯 가운데 둘이 자기 얼굴이었다⁠.

*

한 시 십 분⁠, 파주 센터 뒤편 하역장에 냉동 트럭 세 대가 꼬리를 대고 서 있었다⁠. 지게차가 탱크를 한 대씩 들어 트럭 안으로 밀어 넣었다⁠. 탱크 유리에 성에가 끼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트럭 옆면에는 아무 글씨도 없었다⁠.

뒷문 앞에 보배가 서 있었다⁠. 이번에는 전자 담배를 물지 않았다⁠. 류강비를 보자마자 손바닥을 들어 막았다⁠.

“⁠오늘은 안 돼⁠. 회장님 오셔⁠. 저번 일로 나 경위서 썼어⁠. 한 번만 더 걸리면 끝이래⁠.⁠”

“⁠기사님⁠, 형 오늘 실려 가요⁠.⁠”

류강비가 말했다⁠. 웃지 않았다⁠.

“⁠기사님이 키운 거 다 실려 가요⁠. 저 처음 깼을 때 기사님이 제일 먼저 한 말 기억나요⁠. 춥지⁠, 이제 안 추워⁠. 그거였어요⁠. 형한테도 그렇게 말하셨대요⁠. 그 사람 지금 트럭 타요⁠. 거기 가면 아무도 그 말 안 해 줘요⁠.⁠”

보배는 하역장 쪽을 돌아보았다⁠. 지게차가 또 한 대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보배는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한 번 문질렀다⁠. 장갑의 소독약 냄새가 볼에 묻어났다⁠. 작업복 주머니에서 출입 카드를 꺼내 류강비 손에 쥐였다⁠.

“⁠나는 담배 피우러 나온 거야⁠. 십오 분⁠. 형은 맨 끝 줄 열두 번⁠. 지난달 반납분은 셋째 줄⁠.⁠”

*

동면실은 반이 비어 있었다⁠. 탱크가 섰던 자리마다 바닥에 동그란 성에 자국이 남아 있었다⁠. 푸른 불빛 아래 남은 탱크들 사이로 냉기가 발목을 감았다⁠. 영미가 숨을 들이쉬다가 기침을 했다⁠. 재오는 걸으면서 바닥의 성에 자국을 셌다⁠. 버릇이었다⁠. 숫자를 세면 숨이 골라졌다⁠. 마흔하나에서 재오는 세기를 그만두었다⁠. 자국 하나가 사람 하나였다⁠.

탱크 옆면마다 손목 팔찌가 하나씩 걸려 있었다⁠. 탱크 속 사람이 차고 있다가 들어갈 때 벗어 둔 것이었다⁠. 재오는 팔찌 하나를 들어 보았다⁠. 오늘도가 아니었다⁠. 시중은행 이름이 찍혀 있었다⁠. 옆 탱크에는 보험사⁠, 이 옆에는 통신사였다⁠. 아래층 아주머니의 아들도 은행에 다닌다고 했다⁠. 작년부터 이 회사도 둘을 만들었다고⁠.

“⁠다른 회사들도 다 여기 넣었네⁠.⁠”

차담이 중얼거렸다⁠. 팔찌 하나를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세 번째 줄 탱크들 앞에서 영미가 걸음을 멈췄다⁠. 성에 낀 유리 안의 얼굴들이 흐리게 보였다⁠. 같은 얼굴은 없었다⁠. 그러나 영미는 얼굴을 보지 않았다⁠. 손을 보았다⁠. 다섯 번째 탱크 안⁠, 몸 옆에 늘어진 왼손 검지에 작은 반달 모양의 분홍 자국이 있었다⁠. 영미가 유리에 손바닥을 댔다⁠.

“⁠여기⁠.⁠”

재오 3이 탱크 옆 손잡이 앞에 섰다⁠. 자기가 깨던 밤 센터장이 이 손잡이를 내리는 것을 유리 안에서 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지만 내리지 못했다⁠. 재오가 이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둘이 함께 내렸다⁠.

바닥에서 펌프가 돌았다⁠. 액체가 빠지며 물 높이가 내려갔다⁠. 재오 2의 머리가 드러나고⁠, 어깨가 드러났다⁠. 영미가 탱크 문이 열리자마자 담요를 펼쳐 재오 2를 받았다⁠. 몸은 차갑고 미끄러웠고 오이 냄새가 진동했다⁠. 영미는 재오 2의 왼손을 잡았다⁠.

재오 2가 눈을 떴다⁠. 영미를 보았고⁠, 영미 어깨 너머의 재오와 재오 3을 보았다⁠.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몇 상자야⁠?⁠”

영미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칠만 이천⁠.⁠”

“⁠모자라네⁠.⁠”

재오 2가 말했다⁠. 그러고는 잡힌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안 놓았네⁠.⁠”

“⁠놓았어⁠. 그 사이에는⁠. 지금 다시 잡은 거야⁠.⁠”

영미가 말했다⁠. 영미가 정한 규칙은 영미 자신에게도 걸려 있었다⁠. 재오 2가 영미의 손을 꽉 쥐었다⁠.

*

맨 끝 줄 열두 번 탱크 앞에서 류강비가 손잡이를 혼자 내렸다⁠. 물이 빠지는 동안 류강비는 유리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탱크 안의 얼굴이 젖은 채 드러났다⁠. 류강비와 같은 얼굴이었다⁠. 문이 열리자 이 사람이 앞으로 고꾸라졌고⁠, 류강비가 받아 안았다⁠. 차담이 담요를 덮었다⁠.

첫 번째 몸이 눈을 떴다⁠. 자기를 안고 있는 얼굴을 보지 않았다⁠. 허공의 누군가를 보며 소리쳤다⁠.

“⁠월급은요⁠? 월급 주신다면서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 년 전 반납되던 날 마지막으로 한 말을 그대로 잇는 목소리였다⁠. 첫 번째 몸은 숨을 몰아쉬다가 그제야 자기를 안은 얼굴을 보았다⁠. 눈이 커졌다⁠.

“⁠…⁠…내가 왜 저기 있어⁠?⁠”

“⁠형⁠.⁠”

류강비가 말했다⁠. 셈으로 치면 자기가 형이라고 차에서 그렇게 떠들던 사람이 이 말부터 했다⁠.

“⁠나 류강비야⁠. 형 다음에 만든 거⁠. 이름은 공모로 받았어⁠.⁠”

첫 번째 몸은 한참 류강비를 보다가 담요 밖으로 손을 내밀어 류강비의 얼굴을 만졌다⁠. 볼⁠, 코⁠, 귀 뒤의 점⁠. 그러고는 갈라진 목으로 물었다⁠.

“⁠월급은 받아⁠?⁠”

“⁠아니⁠.⁠”

“⁠그럼 아직 안 끝났네⁠.⁠”

*

같은 시각 뒷문 밖에서 보배는 전자 담배를 두 모금째 빨고 있었다⁠. 갈대밭 쪽에서 헤드라이트 두 개가 다가왔다⁠. 검은 세단이었다⁠. 보배는 전자 담배를 주머니에 넣었다⁠. 차에서 내린 한미주가 하얀 가운을 받아 걸치며 보배 앞에 섰다⁠.

“⁠보배 씨⁠, 카드는요⁠?⁠”

보배는 목에 건 줄을 내려다보았다⁠. 출입 카드가 걸려 있어야 할 자리에 빈 클립만 달랑거렸다⁠.

“⁠담배 피우다 떨어뜨렸나 봐요⁠. 찾아볼게요⁠.⁠”

“⁠안에 누구 있어요⁠?⁠”

“⁠탱크요⁠. 많이요⁠.⁠”

한미주가 보배를 보았다⁠. 보배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 일을 여덟 해 했고⁠, 그동안 탱크 속 얼굴을 만 번은 들여다보았다⁠. 사람 얼굴 하나 더 보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그 사람들 반납된 거예요⁠, 보배 씨⁠. 사람 아니에요⁠.⁠”

“⁠알아요⁠. 근데 회장님⁠, 탱크 안에서 눈썹이 자라요⁠. 반납된 물건이 눈썹이 자라요⁠?⁠”

한미주는 대답하지 않고 센터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비를 동면실로 보내라고 했다⁠. 문 앞을 지나며 보배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고⁠. 보배는 이 말을 등 뒤로 들으며 다시 전자 담배를 꺼냈다⁠. 손이 떨려서 버튼을 두 번 헛눌렀다⁠. 세 번째에 겨우 연기가 나왔고⁠, 보배는 이 연기를 동면실 환풍구 쪽으로 길게 내뿜으며 철문 너머에서 들려올 소리를 기다렸다⁠.

*

동면실 천장 불이 한꺼번에 하얗게 켜졌다⁠. 푸른 불빛이 사라지자 탱크 유리마다 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쳤다⁠. 철문이 열리고 경비 넷이 들어왔다⁠. 뒤이어 센터장⁠, 그리고 한미주가 들어왔다⁠. 회색 정장 위에 하얀 가운이었고⁠, 맨손이었다⁠.

동면실 한가운데에 서서 이들을 보았다⁠. 담요를 두른 재오 2⁠, 재오 2를 붙든 영미⁠, 핫팩을 쥔 재오 3⁠, 그리고 재오⁠. 탱크 유리에 세 얼굴이 비쳤고⁠, 이 유리 옆 유리에 또 셋이 비쳤다⁠. 동면실 안에 심재오가 끝없이 줄지어 섰다⁠.

“⁠셋 다 왔네요⁠.⁠”

한미주가 말했다⁠.

“⁠셋 중 누가 심재오인지는 내가 정해요⁠. 출입문도⁠, 무대도⁠, 월급도 내가 정하니까⁠.⁠”

“⁠이 사람들 사람이에요⁠.⁠”

재오가 말했다⁠. 팔찌들을 가리켰다⁠.

“⁠깨면 말해요⁠. 월급 달라고 하고⁠, 숫자 물어보고⁠, 왜 내가 저기 있느냐고 해요⁠.⁠”

“⁠그러니까 재워 두는 거예요⁠.⁠”

한미주는 탱크 하나에 손등을 대고 한동안 떼지 않았다⁠. 유리의 냉기가 한미주의 손등을 하얗게 만들었다⁠.

“⁠반납된 물건이에요⁠. 거울바이오 재고고요⁠. 해외 연구소가 값을 쳐 주면 재고는 정리하는 거예요⁠. 아무도 안 잘렸어요⁠. 다들 반납됐을 뿐이에요⁠.⁠”

경비들이 다가왔다⁠. 차담이 첫 번째 몸을 일으켜 세웠고⁠, 류강비가 다른 쪽 팔을 걸었다⁠. 영미가 재오 2를 부축했다⁠. 재오는 이들 앞에 섰다⁠. 경비 하나가 재오의 어깨를 잡았다⁠.

재오 3이 철문 쪽으로 걸어갔다⁠. 핫팩 두 개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떨리는 두 손으로 두꺼운 철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몸으로 문을 반쯤 막아섰다⁠.

“⁠가⁠.⁠”

“⁠너는⁠.⁠”

재오가 말했다⁠.

“⁠나 점 있어⁠. 나는 등록돼 있어⁠. 날 넣으려면 서류가 있어야 돼⁠. 오늘 밤엔 못 넣어⁠. 저 사람은 등록이 지워졌고⁠, 저 사람은 이름도 없어⁠. 그러니까 가⁠.⁠”

재오 3은 재오를 보았다⁠.

“⁠약속은 지켜⁠. 나 다시 넣지 마⁠. 나중에⁠. 지금은 가⁠.⁠”

재오는 이 얼굴을 보았다⁠. 깬 지 한 달 된 얼굴이었다⁠. 손이 떨렸지만 문손잡이를 쥔 손가락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경비가 재오 3에게 달려들었고⁠, 이 틈에 재오는 어깨를 비틀어 빠져나왔다⁠. 영미와 차담과 류강비가 담요 두른 두 사람을 끌고 복도로 뛰었다⁠. 뒤에서 철문에 사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재오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멈출 것을 알았다⁠.

*

차담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헤드라이트 앞에 사람이 섰다⁠. 차담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바퀴가 자갈 위에서 미끄러졌다⁠.

한미주였다⁠. 하얀 가운 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차 앞을 막고 서 있었다⁠. 경비는 데려오지 않았다⁠. 혼자였다⁠. 한미주는 헤드라이트 불빛 속을 걸어 차 옆으로 돌아왔고⁠, 가운데 줄 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차 안으로 들이쳤다⁠. 담요 속 재오 2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오이 냄새가 한미주 쪽으로 흘러나갔다⁠.

“⁠반납된 물건 들고 어디 가요⁠?⁠”

재오는 조수석 문을 열고 내렸다⁠. 자갈이 구두 밑에서 버석거렸다⁠. 한미주와 열린 문 사이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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