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04자)

원본 복귀

내 복제인간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 류세온

여의도 사우나의 수면실은 새벽 네 시에도 코 고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재오는 얇은 매트에서 일어나 땀에 눅눅한 반팔 위에 셔츠를 입었다⁠. 사우나에서 오늘도 타워까지 걸어서 칠 분이었다⁠. 재오는 네 시 오십팔 분에 출입문 앞에 섰다⁠.

얼굴을 대자 초록불이 켜졌다⁠.

「⁠심재오 님⁠, 출근 처리되었습니다⁠.⁠」

재오는 문을 지나 로비 한가운데까지 걸어갔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다섯 시 정각⁠, 지하 삼 층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재오 3이 출입문 앞에 섰다⁠. 귀 뒤의 점은 붓기가 빠져 푸르게 가라앉아 있었다⁠. 재오가 얼굴을 대자 화면이 노래졌다⁠.

「⁠심재오 님은 이미 출근하셨습니다⁠.⁠」

재오 3이 유리문 너머로 재오를 보았다⁠. 한 달 전 재오가 서 있던 자리였다⁠. 재오는 이겼다⁠. 시월 첫 월요일부터 처음이었다⁠. 이 기분을 한 숨 동안 가만히 맛보았다⁠.

경비 반장이 데스크에서 고개를 들었다⁠. 노란 화면과 재오 3과 재오를 차례로 보고 나서 출입 기록 화면을 두드렸다⁠.

“⁠복제분은 출근 처리 안 되시면 결근이에요⁠. 결근 이틀이면 숙소에서 보고 올라가요⁠. 반납 사유라고⁠.⁠”

재오는 유리문 너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재오 3은 문밖에서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숨기는 법을 그새 배운 것이었다⁠.

재오는 휴대폰을 꺼냈다⁠. 하역장 셔터는 납품 차가 들어올 때만 열렸다⁠. 지하 이 층으로 내려가 물류 엘리베이터 앞에서 하역 담당에게 누룽지 상자 검수를 직접 하겠다고 말했다⁠. 셔터가 올라갔다⁠. 재오 3이 셔터 밑으로 몸을 숙여 들어왔다⁠. 재오는 재오 3을 상자 사이에 세우고 엘리베이터 문을 손으로 잡았다⁠. 볶은 쌀 냄새 속에서 재오 3이 물었다⁠.

“⁠왜 들여보내⁠?⁠”

“⁠한 달 전에 누가 나를 이렇게 들여보냈어⁠.⁠”

“⁠너 이제 대표 편이잖아⁠.⁠”

“⁠너는⁠?⁠”

재오 3은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덜컹하며 올라갔다⁠.

*

십사 층은 재오가 자리에 앉아도 고개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차담의 자리에는 차담 2가 앉아 있었는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재오의 책상 쪽으로 의자를 반 바퀴 돌려 등을 보였다⁠. 디자인팀 막내 2가 커피 머신 앞에서 재오와 마주치자 말없이 컵을 두 개 뽑아 하나만 들고 갔다⁠.

류강비가 서류철을 들고 지나가다가 멈췄다⁠. 늘 그렇듯 허리를 접었는데⁠, 이번에는 반만 접었다⁠.

“⁠행복한 원본님⁠, 안녕하십니까⁠. 커피는 직접 타 드시면 됩니다⁠.⁠”

책상에 재오 3이 의자를 붙여 앉았다⁠. 「⁠원⁠」 머그는 재오 3의 앞에 있었고⁠, 「⁠복⁠」 머그는 아무도 쓰지 않은 채 모니터 옆에 엎어져 있었다⁠. 재오는 이 머그를 바로 세웠다⁠. 바닥에 커피 자국이 동그랗게 말라붙어 있었다⁠. 재오 2가 마지막으로 마신 자국이었다⁠.

재오는 차담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두 번 가고 끊겼다⁠. 문자가 왔다⁠.

「⁠행복하세요⁠.⁠」

*

이튿날 점심⁠, 재오는 김밥 여덟 줄을 사 들고 여의도 공원 끝 화장실 옆 벤치로 갔다⁠. 벤치에는 지난번의 여덟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재오가 다가가자 디자인팀 막내가 일어나 자리를 피했고⁠, 막내 2도 따라 일어났다⁠. 같은 속도⁠, 같은 방향이었다⁠. 영업 지원 과장 2가 손을 반만 들다가 원본 과장에게 손목을 잡혀 내렸다⁠.

차담은 김밥 봉지를 받아 그대로 재오의 가슴팍에 도로 안겼다⁠.

“⁠행복한 원본님이 여기 왜 오세요⁠?⁠”

“⁠재오 2 꺼내려고 받았어요⁠. 안에 있어야 파주 길이 열려요⁠.⁠”

“⁠증거 대 보세요⁠.⁠”

재오는 증거가 없었다⁠. 아침마다 하역장 셔터를 열어 재오 3을 들여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결근이 이틀이면 반납 사유라서⁠. 차담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 옆에 앉은 차담 2를 보았다⁠. 차담 2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학원 합격 문자였다⁠.

“⁠합격했대요⁠. 면접 날 휴가 쓴 거⁠, 회사가 반납 사유로 올렸고요⁠. 다음 달 반납 차례래요⁠. 이월에 내가 쓴 원서로 붙었는데⁠, 붙어서 탱크에 들어가게 생겼어요⁠.⁠”

차담 2가 휴대폰을 끄고 웃었다⁠. 차담이 웃을 때 입꼬리 한쪽만 올라가는 것과 똑같은 웃음이었다⁠.

“⁠파주 갈 때 부르세요⁠. 운전은 해 드릴게요⁠. 과장님을 믿어서가 아니에요⁠.⁠”

차담이 김밥 봉지를 도로 빼앗아 갔다⁠. 김밥 한 줄을 차담 2에게 건네고⁠, 한 줄을 제 입에 물었다⁠.

*

이날 밤⁠, 나흘 동안 재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던 영미가 식탁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릇도⁠, 펜라이트도⁠.

“⁠나 그 로비에서 다 봤어⁠. 당신이 받는 거⁠.⁠”

“⁠재오 2 꺼내려고⁠. 안에 있어야 파주에 들어갈 길이 생겨⁠. 재오 3도 내 옆에 있어야 하고⁠. 대표가 날 협의회에 세운대⁠. 거기서 거울바이오 얘기가 나와⁠.⁠”

영미는 말을 끝까지 들었다⁠. 재오의 입을 보고 있었다⁠.

“⁠그 자리가 갖고 싶었던 거 아니고⁠?⁠”

재오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이 집의 규칙은 하나였다⁠. 거짓말하지 않는 쪽이 이 집 사람이다⁠.

“⁠갖고 싶었어⁠.⁠”

재오가 말했다⁠.

“⁠받는 순간에 좋았어⁠. 불이 초록으로 켜지는 거 보고⁠. 재오 2가 차에 탄 지 일 분도 안 됐는데⁠. 어제 새벽에 문이 나를 먼저 들였을 때도 좋았어⁠. 그게 제일 더러워⁠.⁠”

영미는 한참 재오를 보았다⁠. 그러고는 식탁 너머로 손을 뻗어 턱을 들어 올렸다⁠. 엄지가 아홉 살 때의 흉터를 따라 움직였다⁠. 일곱 바늘의 오돌토돌한 자리가 영미의 손끝에 하나씩 걸렸다⁠.

“⁠이월의 당신은 이런 말 못 했어⁠. 그때는 질 줄을 몰랐으니까⁠.⁠”

영미가 일어나 재오의 손을 잡았다⁠. 안방 문은 이날 밤 닫히지 않았다⁠.

불을 끄지 않았다⁠. 베란다 창으로 들어온 가로등 빛이 침대 모서리까지 닿았고⁠, 이 빛 속에서 영미는 재오의 안경을 벗겨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재오의 눈에 영미의 얼굴이 흐려졌다⁠. 영미가 웃었다⁠. 이렇게 흐리게 보는 게 당신이라고⁠, 맨눈으로 또렷이 보는 사람은 이 집에 안 산다고 했다⁠. 숨이 재오의 목덜미에 닿았다⁠. 오이 냄새가 아니라 남편의 냄새를 확인하는 숨이었다⁠. 재오는 아내의 등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 밑에서 등뼈가 하나씩 올라왔다 내려갔다⁠. 여덟 달 동안 이 등을 보고 잤다⁠. 등 쪽으로 돌아누운 아내의 숨이 일정해질 때까지 눈을 감지 못하고 천장만 보던 밤들이 있었다⁠. 지금 영미는 돌아눕지 않았다⁠. 침대가 오래된 소리를 냈다⁠. 둘 다 웃음이 터졌고⁠, 웃다가 다시 서로의 입을 찾았다⁠.

새벽에 영미가 재오의 가슴에 귀를 대고 말했다⁠.

“⁠당신 심장 소리⁠, 그 사람이랑 똑같을까⁠?⁠”

“⁠몰라⁠. 들어 본 적 없어⁠.⁠”

“⁠나도 안 들어 볼 거야⁠.⁠”

*

십일월 십사일 목요일 저녁⁠, 여의도 호텔 이 층 연회장에 간편식 업계 협의회 회원사 열한 곳의 대표와 임원들이 모였다⁠. 원탁마다 「⁠제사 끝난 맛⁠」 시제품이 접시에 올라 있었다⁠. 한미주는 무대에 서서 맨손바닥에 누룽지 한 조각을 올려 보였다⁠. 연회장 사람들이 웃었다⁠.

“⁠오늘도는 석 달 동안 한 사람도 자르지 않았습니다⁠. 인건비는 삼분의 일로 줄었고요⁠. 거울바이오가 여러분 회사 직원들도 똑같이 만들어 드립니다⁠. 이월에 오늘도가 한 것처럼 검진 날 한 번이면 됩니다⁠.⁠”

한미주가 무대 옆을 가리켰다⁠. 재오와 재오 3이 같은 남색 정장을 입고 나란히 걸어 나왔다⁠. 정장은 대표실에서 맞춰 준 것이었다⁠. 연회장 사람들이 두 얼굴을 보고 술렁였다⁠. 한 회사 대표는 안경을 고쳐 썼다⁠.

재오는 원고를 읽었다⁠. 재오 3이 전체 회의 무대에서 읽던 것과 거의 같은 원고였다⁠. 복제가 원본보다 일을 잘한다는 문장⁠, 원본이 비로소 쉬게 되었다는 문장⁠, 끝에 둘이 한 팀이라는 문장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재오가 원고를 읽는 동안 옆의 재오 3은 두 손을 등 뒤로 맞잡고 있었다⁠. 박수가 나왔다⁠. 이 박수는 재오가 회사에서 받은 박수 중에 가장 컸다⁠.

질문 시간에 앞줄의 한 회사 대표가 손을 들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였다⁠.

“⁠실례지만⁠, 어느 쪽이 원본이세요⁠?⁠”

재오와 재오 3이 동시에 서로를 가리켰다⁠. 연회장이 웃음으로 뒤집혔다⁠. 두 사람은 손가락을 내리지 못한 채 서로를 보았다⁠. 재오 3이 먼저 손가락을 거두며 귀 뒤의 점을 보여 주었다⁠. 한미주가 무대 끝에서 웃었다⁠. 한미주가 웃는 것을 재오는 이날 처음 보았다⁠.

연회장 밖 화장실 세면대 거울 앞에서 재오는 손을 씻었다⁠. 거울 속에 한미주가 들어왔다⁠. 남자 화장실 입구에 서서 들어오지 않았다⁠.

“⁠잘하셨어요⁠. 세 곳이 바로 계약했어요⁠.⁠”

“⁠재오 2 언제 깨워요⁠?⁠”

“⁠출시 끝나면요⁠. 십만 넘으면⁠.⁠”

“⁠그 사람이 만든 행사예요⁠. 그 철판⁠.⁠”

“⁠그래서 행사 날까지는 탱크에 있어요⁠. 깨어 있으면 또 숫자 대신 사람 얘기를 할 테니까⁠.⁠”

한미주는 연회장 쪽을 돌아보았다⁠. 원탁에서 대표들이 누룽지를 씹으며 거울바이오 상무와 명함을 주고받고 있었다⁠.

“⁠내년엔 업계 전체가 오늘도처럼 일해요⁠. 아무도 안 잘리고요⁠. 심재오 씨는 그 첫 얼굴이에요⁠. 웃는 연습 좀 하세요⁠. 아까는 원고 읽는 얼굴이었어요⁠.⁠”

한미주가 떠났다⁠. 재오는 거울을 보았다⁠. 남색 정장의 남자가 재오를 보았다⁠. 이 남자가 누구인지 한동안 알아보지 못했다⁠.

*

십일월 이십일 수요일 밤 열한 시⁠, 십사 층에는 재오 혼자였다⁠. 출시까지 이십 일이 남았고⁠, 예약은 칠만 이천 상자였다⁠. 탕비실 쪽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류강비가 머그 하나를 들고 왔다⁠. 「⁠복⁠」 머그였다⁠. 안에 커피가 김을 올리고 있었다⁠.

“⁠원본님⁠, 아침마다 하역장 셔터 여시는 거 봤습니다⁠. 경비 반장님이 말해 주셨어요⁠. 반장님은 모르는 척하신대요⁠.⁠”

류강비는 머그를 재오 앞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허리를 끝까지 접었다⁠.

“⁠커피는 제가 타 드리겠습니다⁠. 설탕 둘⁠, 맞으시죠⁠? 재오 2 선배님이 둘이셨으니까⁠.⁠”

“⁠하나야⁠. 삼월부터 하나로 줄였어⁠.⁠”

류강비가 눈을 크게 떴다⁠. 탕비실로 뛰어가 설탕을 하나 덜어 낸 새 커피를 들고 돌아왔다⁠. 들고 오는 동안 반을 흘렸다⁠. 반 남은 머그를 내려놓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복사했습니다⁠. 원본님은 하나⁠.⁠”

재오는 커피를 마셨다⁠. 미지근했고⁠, 달았다⁠. 류강비는 설탕을 덜어 내지 않았다⁠. 재오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재오 3이 들어왔다⁠. 점호 삼십 분 전이었다⁠. 맨발에 슬리퍼였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손이 심하게 떨렸다⁠.

“⁠류강비가 첫 번째 몸 얘기 해 줬어⁠.⁠”

재오 3이 책상 앞에 섰다⁠.

“⁠오늘 저녁에 대표실 옆방에 있었어⁠. 센터장이 대표한테 전화했어⁠. 스피커였어⁠. 내일 목요일 밤에 파주 동면실 정리한대⁠. 이 년 넘은 것부터⁠, 그리고 반납 사유 많은 순서로⁠. 해외 연구소에 보낸대⁠. 트럭 세 대⁠.⁠”

재오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반납 사유 많은 순서면⁠.⁠”

“⁠그 사람 들어가⁠.⁠”

재오 3이 말했다⁠. 「⁠복⁠」 머그를 집어 들었다가 손이 떨려 도로 내려놓았다⁠. 머그가 책상에 부딪쳐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도 알아⁠. 출시 끝나면 나도 거기 가⁠. 개정안이 나오면 원본 동의 없이 몇 개든 만들 수 있대⁠. 그럼 손 떨리는 나는 필요 없잖아⁠.⁠”

재오 3은 떨리는 손을 재오 앞으로 내밀었다⁠.

“⁠내일 밤 파주⁠. 나 거기서 깼으니까 길은 내가 알아⁠. 대신 하나만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나 다시 넣지 마⁠.⁠”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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