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11자)

데인 손가락

내 복제인간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 류세온

지하 삼 층 숙소 관리실은 창이 없었다⁠. 환풍기가 미지근한 바람을 내뱉을 때마다 오이 냄새가 엷게 실려 왔다⁠. 서른두 명이 자고 일어나는 복도의 냄새였다⁠. 재오는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고⁠, 경비 둘이 문 양옆에 서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아침마다 로비에서 재오에게 인사하던 젊은 경비였다⁠. 재오와 눈이 마주치자 천장을 보았다⁠.

숙소 관리인은 예순 가까운 남자였다⁠. 서랍에서 비닐 포장된 칫솔 하나를 꺼내 재오 앞에 놓았다⁠. 파란색이었다⁠.

“⁠파주까지 가면 저녁이에요⁠. 양치는 하고 가세요⁠. 미등록이시면 점호는 안 받으셔도 되고요⁠.⁠”

“⁠저 원본이에요⁠.⁠”

“⁠네⁠. 다들 처음엔 그러세요⁠.⁠”

관리인은 진심으로 친절했다⁠. 이 친절 앞에서 재오의 손바닥에 땀이 뱄다⁠. 재오는 칫솔을 손에 쥐었다가 내려놓았다⁠. 회수 차가 파주에서 오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고 경비가 무전으로 말했다⁠. 재오는 벽시계를 보았다⁠. 열 시 오십 분이었다⁠.

“⁠지문 찍어 보시면 돼요⁠. 주민등록에 있는 거랑⁠.⁠”

“⁠저희는 그런 거 못 꺼내요⁠. 경찰이 하는 거라⁠.⁠”

“⁠그럼 경찰 불러 주세요⁠.⁠”

관리인이 경비들을 보았다⁠. 경비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위에서 경찰은 부르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관리인이 점호를 돌러 복도로 나가자 젊은 경비가 문 쪽을 한 번 보고 재오에게 몸을 숙였다⁠.

“⁠과장님⁠, 저도 십이월 무리에 들어 있대요⁠. 경비팀 넷이요⁠. 제 복제가 저 대신 과장님 팔 잡고 있으면 어떡해요⁠?⁠”

“⁠그럼 너는 집에서 삼십 받고 놀이터 가⁠.⁠”

“⁠놀이터요⁠?⁠”

“⁠평일 열한 시에 가 봐⁠. 다 원본이야⁠.⁠”

젊은 경비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도로 문 옆에 섰다⁠. 그러나 경비는 이후로 재오의 팔을 잡을 때마다 손에 힘을 덜 주었다⁠.

*

십사 층으로 돌아온 재오 2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책상 옆에 재오 3이 서 있었다⁠. 대표실에서 내려 보낸 원본이 원본 자리에 짐을 놓으러 온 것이었다⁠. 재오 3은 책상 위의 「⁠원⁠」 머그를 집어 제 상자에 넣고 있었다⁠. 손이 떨려서 머그가 상자 모서리에 부딪쳐 계속 덜그럭거렸다⁠.

“⁠그거 알고 했어⁠?⁠”

재오 2가 물었다⁠. 팀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재오 3은 상자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뭘⁠.⁠”

“⁠그 사람 탱크 가⁠. 미등록으로⁠. 이월 다음에 여덟 달 산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데로⁠.⁠”

“⁠미등록이 그 사람이면 나는 사람이야⁠.⁠”

재오 3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깬 지 열나흘 된 목이 갈라졌다⁠.

“⁠너는 점 있잖아⁠. 너는 숙소 있잖아⁠. 나는 그 사람 이름 없으면 아무것도 없어⁠.⁠”

재오 2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 등받이에 걸린 재킷을 집어 들었다⁠. 자리를 비우면 반납 사유였다⁠. 류강비가 모니터 너머로 재오 2를 보았다⁠. 류강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오 2는 비상계단 쪽으로 걸으면서 전화를 걸었다⁠. 영미는 진료 중이었고⁠, 접수대 원장이 받았다⁠.

“⁠원장님⁠, 심재오입니다⁠. 영미한테 지금 여의도로 오라고 해 주세요⁠. 펜라이트 가지고요⁠. 거울하고요⁠.⁠”

“⁠심 서방 라식한 거 무르러 가⁠?⁠”

“⁠비슷해요⁠.⁠”

*

열한 시 오십 분⁠, 로비는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거울바이오 회수 차가 회전문 앞에 서 있었다⁠. 흰 승합차였고⁠, 옆면에 작은 글씨로 회사 이름이 찍혀 있었다⁠. 회수 기사 둘이 재오를 양옆에서 끼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하나는 키가 컸고⁠, 하나는 안경을 썼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같은 얼굴의 남자가 오늘 아침 강당 무대에서 행복하다고 말했던 것을 다 본 사람들이었다⁠.

재오 2가 회전문 앞에 서 있었다⁠. 기사들 앞을 막았다⁠.

“⁠비켜 주세요⁠. 등록된 분은 건드리면 안 돼요⁠.⁠”

안경 쓴 기사가 말했다⁠.

“⁠그 사람도 건드리면 안 돼요⁠. 원본이에요⁠.⁠”

“⁠출입 기록엔 미등록인데요⁠.⁠”

회전문이 돌았다⁠. 영미가 들어왔다⁠. 진료복 위에 코트를 걸쳤고⁠, 한 손에 진료 가방을 들었고⁠, 숨이 턱에 차 있었다⁠. 일산에서 택시로 오십 분을 왔다고 했다⁠. 영미는 기사들 사이의 재오를 보고⁠, 회전문 앞의 재오 2를 보았다⁠. 그러고는 가방을 열어 펜라이트와 치경을 꺼냈다⁠.

“⁠이 사람 입 좀 보세요⁠.⁠”

키 큰 기사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영미를 보았다⁠.

“⁠아주머니⁠, 저희는 귀 뒤만 봐요⁠.⁠”

“⁠나는 이 사람 입을 십 년 봤어요⁠. 아 해⁠.⁠”

재오가 입을 벌렸다⁠. 영미는 펜라이트를 비추고 치경 끝으로 어금니를 하나씩 건드리며 기사들에게 보여 주었다⁠. 왼쪽 아래 여섯 번⁠, 일곱 번⁠, 오른쪽 위 여섯 번⁠. 은빛이 아니라 이 색깔로 때운 자리였는데⁠, 불빛을 비스듬히 대자 가장자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안경 쓴 기사가 제 펜라이트를 꺼내 들여다보았다⁠. 눈썹이 올라갔다⁠.

“⁠어⁠, 때운 거네⁠.⁠”

“⁠우리 물건은 이 안 때워요⁠. 새 몸인데⁠.⁠”

키 큰 기사가 중얼거렸다⁠. 영미가 재오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흰 흉터가 형광등 아래 드러났다⁠.

“⁠아홉 살 때 자전거⁠. 일곱 바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한미주가 인사본부장과 함께 나왔고⁠, 뒤이어 재오 3이 따라 나왔다⁠. 한미주는 로비에 모인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서른 명은 넘었다⁠. 휴대폰을 든 사람도 있었다⁠.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영미가 재오 3 앞으로 갔다⁠.

“⁠아 해요⁠.⁠”

재오 3은 한미주를 보았다⁠. 한미주는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안경 쓴 기사가 펜라이트를 든 채 재오 3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재오 3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영미의 펜라이트가 입 안을 비추었다⁠. 어금니가 하나도 닳지 않아 갓 깎은 것처럼 하얗게 빛났다⁠. 영미가 재오 3의 목덜미에 코를 댔다가 뗐다⁠.

“⁠오이⁠.⁠”

키 큰 기사도 코를 대 보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은 우리 거네요⁠. 이 주 안 됐어요⁠. 냄새가 아직 진해⁠.⁠”

로비가 웅성거렸다⁠. 누군가 휴대폰 카메라를 들었다가 옆 사람이 손으로 내렸다⁠. 재오 3의 손이 떨렸다⁠. 두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

한미주는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등록 착오네요⁠. 거울바이오에서 표식을 빠뜨렸나 봐요⁠. 지금 찍어 주세요⁠.⁠”

안경 쓴 기사가 망설이다가 차에서 손바닥만 한 기계를 가져왔다⁠. 재오 3의 왼쪽 귀를 젖히고 기계를 대자 짧은 소리가 났다⁠. 재오 3이 움찔했다⁠. 기계를 떼자 귀 뒤에 푸른 점이 생겼고⁠, 이 둘레가 금세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런데 그럼 또 문제가 생기죠⁠.⁠”

한미주가 재오 2와 재오 3을 번갈아 보았다⁠.

“⁠심재오 씨 복제가 둘이에요⁠. 법은 한 사람에 하나고요⁠. 하나는 돌려보내야겠죠⁠.⁠”

한미주는 재오에게 몸을 돌렸다⁠.

“⁠원본이 고르세요⁠. 원본 동의로 만든 복제니까⁠.⁠”

로비가 조용해졌다⁠. 회전문이 반 바퀴를 돌다가 섰다⁠. 재오는 두 얼굴을 보았다⁠. 하나는 귀 뒤의 점이 빨갛게 부었고 두 손을 등 뒤에 감추었다⁠. 하나는 점이 오래되어 푸르스름하게 가라앉았고 손을 주먹으로 쥐고 있었다⁠. 재오는 입을 열었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숫자를 찾았다⁠. 열나흘과 한 달 이틀⁠. 이 숫자로는 아무것도 고를 수 없었다⁠.

“⁠저요⁠.⁠”

재오 2가 먼저 말했다⁠. 회전문 앞에서 걸어 나와 기사들 쪽으로 갔다⁠.

“⁠얘는 깬 지 열나흘이야⁠. 손도 아직 떨려⁠. 나는 한 달 넘게 살았어⁠. 칼국수도 끓였고⁠, 대결도 이겼고⁠, 숙소 셔터도 네 번 빠져나갔어⁠. 오늘 자리도 비웠고⁠. 반납 사유는 나한테 다 있어요⁠.⁠”

“⁠재오 2⁠.⁠”

재오가 불렀다⁠. 이 이름을 자기 입으로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재오 2가 돌아보았다⁠.

“⁠네가 고르면 너 평생 그거 기억해⁠. 그러니까 네가 고르지 마⁠.⁠”

영미가 기사들 앞을 지나 재오 2에게 갔다⁠. 재오 2의 왼손을 잡아 뒤집었다⁠. 검지의 밴드는 영미가 목요일에 감아 준 그대로였다⁠. 밴드를 떼었다⁠. 데었던 자리가 분홍빛으로 아물어 작은 반달 모양으로 살갗이 당겨져 있었다⁠. 원본의 손에는 없는 자국이었다⁠.

“⁠이 손가락 데던 날 기억해⁠?⁠”

“⁠칼국수⁠. 냄비 손잡이⁠.⁠”

“⁠그거는 당신 거야⁠. 이월 거 아니고⁠.⁠”

영미가 이 손가락을 꼭 쥐었다⁠. 재오 2는 영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엄지로 손등을 한 번 문질렀다⁠. 겁날 때 하는 짓이었는데⁠, 영미의 손 위에서였다⁠. 그러고는 손을 뺐다⁠.

“⁠탱크에서는 시간이 안 간대⁠. 그러니까 영미⁠, 이 손 놓지 마⁠. 나 깰 때까지⁠.⁠”

재오 2는 승합차 뒷좌석에 제 발로 올랐다⁠. 키 큰 기사가 문을 닫으려다 잠깐 멈췄다⁠. 재오 3이 차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가 멈췄다⁠. 귀 뒤 빨간 점이 형광등에 번들거렸다⁠. 문이 닫혔다⁠. 차 유리에 로비의 얼굴들이 비쳐 안이 보이지 않았다⁠.

*

승합차 뒷좌석은 소독약 냄새가 났다⁠. 재오 2는 창에 이마를 댔다⁠. 여의도의 유리 빌딩들이 뒤로 물러났고⁠, 빌딩마다 승합차가 비쳤다가 지나갔다⁠. 이 안의 자기 얼굴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다⁠.

안경 쓴 기사가 조수석에서 돌아보았다⁠.

“⁠가는 길에 뭐 드실래요⁠? 다들 하나씩 먹고 들어가요⁠. 파주 들어가기 전에 칼국숫집이 하나 있어요⁠.⁠”

“⁠들깨 칼국수 있어요⁠?⁠”

“⁠바지락밖에 없어요⁠.⁠”

“⁠그럼 됐어요⁠.⁠”

키 큰 기사가 운전대를 돌리며 말했다⁠. 탱크 들어가기 전에 할 말 있으면 지금 정해 두라고⁠. 깨면 이 말 다음부터니까⁠, 다들 마지막 말을 하나씩 골라 놓는다고⁠. 어떤 사람은 욕을 하고⁠, 어떤 사람은 엄마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한다고⁠. 기사가 너무 담담하게 말해서 재오 2는 웃었다⁠.

“⁠숫자 물어볼게요⁠.⁠”

“⁠숫자요⁠?⁠”

“⁠예약 몇 상자인지⁠. 깨자마자 물어볼 거예요⁠. 이번 주까지 사만 팔천이 목표였거든요⁠. 맞췄는지 궁금해서 죽겠어요⁠.⁠”

안경 쓴 기사가 재오 2를 한참 보다가 앞으로 돌아앉았다⁠. 재오 2는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쌌다⁠. 분홍빛 반달 자국이 손바닥 안에서 따뜻했다⁠. 영미가 쥐었던 온기가 아직 거기 남아 있었다⁠. 이 온기가 식기 전에 탱크에 들어가고 싶었다⁠. 깨면 이 순간에서 이어진다고 했으니까⁠.

차가 자유로에 올랐다⁠. 재오 2는 눈을 감고⁠, 숫자를 외웠다⁠. 이만 사천⁠, 사만 팔천⁠, 십만⁠.

*

승합차가 회전문 앞을 떠났다⁠. 로비 사람들은 하나씩 점심을 먹으러 흩어졌다⁠. 영미는 빈손을 주먹 쥔 채 회전문 밖을 보고 있었다⁠.

한미주가 재오 앞에 섰다⁠. 인사본부장에게서 무언가를 받아 재오에게 내밀었다⁠. 재오의 사원증이었다⁠. 끝의 작은 불이 초록으로 켜져 있었다⁠.

“⁠원본 자리로 돌아오세요⁠. 사용료 말고 월급 전액으로요⁠. 회사엔 행복한 원본이 필요해요⁠. 오늘 그 사람은 무대를 망쳤으니까⁠, 심재오 씨가 대신 해 줘야죠⁠.⁠”

영미가 돌아섰다⁠. 사원증과 재오의 얼굴을 보았다⁠.

“⁠받지 마⁠.⁠”

재오는 사원증을 보았다⁠. 시월 첫 월요일에 빨갛게 꺼졌던 불이었다⁠. 재오는 이 불을 다시 켜려고 한 달 동안 첫차를 탔고⁠, 상자 사이에 몸을 끼웠고⁠,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승합차는 이제 여의도 대로에 올라 자유로 쪽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이 차가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이 로비에 재오와 한미주뿐이었다⁠.

재오는 손을 뻗어 사원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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