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15자)
귀 뒤의 점
내 복제인간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 류세온
월요일 아침 일곱 시 사십 분, 차담이 전화를 걸어 왔다. 재오는 분홍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받았다.
“과장님, 출근하셨던데요.”
“나 집인데.”
“알아요. 안경 안 쓰고, 귀 뒤에 점 없는 과장님이요. 아까 인사본부장이 팀에 와서 그랬어요. 원본 심재오 과장님 대기 해제, 대표 직속 전략 지원으로 복귀. 다들 박수 쳤어요. 저도 쳤어요. 안 치면 이상하니까.”
재오는 수건을 내려놓았다. 화장실 거울 속 얼굴의 턱 아래에 아홉 살 때의 흉터가 하얗게 떠 있었다.
“재오 2는.”
“복 메모지 붙이고 앉아 있어요. 원 메모지는 류강비 씨가 그분 이마에 붙였고요. 아, 그분 손이 좀 떨리던데요. 커피를 반쯤 흘렸어요.”
재오는 버스를 탔다. 한 시간 십 분 뒤 오늘도 타워 일 층에서 얼굴을 출입문에 댔다. 화면이 노랗지 않고 빨갰다.
「미등록 복제 의심 — 출입 제한」
경비 반장이 데스크에서 일어나 재오의 앞으로 왔다. 반장은 출입 화면과 재오의 얼굴을 한참 번갈아 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과장님, 오늘은 세 번째 과장님이세요. 위에서 그렇게 걸어 놨어요. 점 없는 심재오는 한 분만 원본이고, 그분은 아침 일곱 시에 들어가셨다고요.”
“그 사람이 세 번째예요. 제가 첫 번째고요.”
“저도 알아요. 근데 문은 몰라요.”
반장은 방문증을 뽑지 않았다. 재오는 로비 유리장 앞에 섰다. 무쇠 누룽지 판에 자기 얼굴이 동그랗게 일그러져 비쳤다. 재오는 휴대폰을 꺼내 재오 2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이 바로 왔다. 대표실 옆방. 걔는 하루 종일 대표 옆에 있어. 대표가 화장실 갈 때만 혼자야.
*
목요일 밤 아홉 시, 일산 아파트 초인종이 울렸다. 영미가 문을 열었고, 재오는 거실에서 영미의 등이 굳는 것을 보았다.
문밖에 심재오가 서 있었다. 새 코트를 입었고, 안경을 쓰지 않았고, 두 손으로 리본 묶인 상자를 들고 있었다. 상자가 떨렸다. 손이 떨려서였다.
“이번엔 몇 번이에요?”
영미가 물었다. 남자가 상자를 내밀었다.
“세 번째래요. 초콜릿이에요.”
영미는 상자를 받지 않았다. 남자의 왼쪽 귀를 손가락으로 젖혔다. 아무것도 없었다. 영미가 펜라이트를 가지러 들어가는 동안 남자는 현관에 서서 기다렸다. 신발장 위의 사진 액자를 보고 있었다. 제주 바다 앞의 두 사람. 재오가 가방에서 꺼내 다시 올려놓은 액자였다.
어금니는 하나도 때우지 않았다. 목덜미에서 오이 냄새가 났다. 재오 2보다 진했다.
식탁에 두 남자가 마주 앉았다. 재오 3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는데도 잔이 받침에 닿을 때마다 달그락거렸다. 재오는 이 손을 보았다. 석 달 열흘에 꺼낸 손이었다.
“대표가 뭐래.”
“원본 노릇을 하면 반납 없이 사람으로 살게 해 준대. 일 년 지나면 이름도 신청해 준대. 오피스텔도 줬어. 회사 앞에.”
“그게 내 이름이야.”
“우리 이름이지.”
재오 3이 말했다. 목소리가 재오보다 조금 높았다. 깬 지 엿새 된 목이었다.
“나 깬 지 엿새야. 탱크 안이 어땠는지 알아? 아무것도 아니야. 춥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아.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이월 십사일 열 시 이십 분에 흰 통 안에 누웠는데, 눈 뜨니까 시월 십팔일 밤이고 내 얼굴 둘이 유리 밖에 서 있었어. 그 아무것도 아닌 데로 다시 가기 싫어.”
재오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숫자도 찾지 못했다.
영미가 식탁 끝에 서서 물었다.
“그런데 여긴 왜 왔어요?”
재오 3이 초콜릿 상자를 영미 쪽으로 밀었다.
“이거 줘야 해서요. 이월 십사일에 퇴근하면 사야지 하고 누웠는데, 못 줬잖아요.”
영미는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사람이 그날 사 왔어요. 이 사람이요.”
영미가 재오를 턱으로 가리켰다.
“편의점에서 산 거라 맛없었어요. 그래도 사 왔어요.”
재오 3은 상자를 도로 당겼다. 이것을 무릎에 올려놓고 리본 끝을 손가락으로 말았다. 손이 떨려서 리본이 자꾸 풀렸다. 재오 3은 열 시 반에 일어났다. 대표가 열한 시에 전화를 한다고 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돌아보았다.
“나 다음 주 금요일 전체 회의에서 말해. 행복한 원본으로. 대표가 원고 줬어.”
“하지 마.”
“하면 살아.”
문이 닫혔다. 영미는 식탁 위 커피잔을 치우다가 받침에 남은 갈색 동그라미 자국들을 보았다. 잔이 받침에 열한 번 부딪친 자리였다.
*
이튿날은 시월 이십오일, 월급날이었다. 아침에 영미가 휴대폰을 들고 안방에서 나왔다. 화면을 재오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원본 사용료가 들어와야 할 자리에 영 원이 찍혀 있었다.
“이게 뭐야.”
“원본이 대기 해제됐으니까. 사용료는 대기 중인 원본한테 나가는 거고.”
재오는 이 말을 하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이제 재오는 원본도 대기도 아니었다. 이 집 대출 이자가 이십칠일에 나갔다.
밤 열 시, 재오는 오늘도 타워 지하 이 층 주차장 기둥 뒤에 서 있었다. 하역장 셔터로 내려온 경사로 끝이었다. 검은 세단 한 대가 엘리베이터 앞에 와서 섰다. 뒷문이 열리기 전에 차 앞을 막았다. 운전기사가 경적을 누르려다 멈췄다. 뒷좌석 창이 반쯤 내려갔다. 한미주가 맨손바닥에 누룽지 한 조각을 올린 채 앉아 있었다.
“원본이세요, 미등록이세요?”
“사용료 끊으셨더라고요.”
“원본 사용료는 원본한테 나가요. 이번 달부터 원본은 회사에 나오고 있고요.”
“파주 탱크 얘기를 기자한테 하겠습니다.”
“그 탱크 지금 비어 있어요. 안에 있던 사람은 지금 오피스텔에서 자고 있고, 회사에서는 원본으로 일하고 있어요. 원본이 둘이면 누가 원본인지 증명하실 수 있어요?”
“지문이요. 제 지문은 주민등록에 있어요.”
한미주가 누룽지를 이로 끊었다. 볶은 쌀 부스러기가 무릎에 떨어졌다.
“그걸 꺼내려면 경찰이 와야죠. 경찰이 오면 재오 2 씨가 숙소를 몇 번 빠져나갔는지, 파주에 누구를 데리고 갔는지 다 나와요. 그 사람은 그날로 반납이고, 류강비 씨도요. 해 보세요. 심재오 씨가 정하세요.”
창이 올라갔다. 세단은 재오를 비켜 경사로를 올라갔다. 배기가스 냄새가 기둥 사이에 오래 남았다. 재오는 휴대폰을 꺼내 재오 2에게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 무엇을 정해도 반납되는 쪽은 재오가 아니었다.
*
화요일 점심 여의도 공원 끝, 화장실 옆 벤치 두 개에 사람 여덟이 모였다. 차담이 모은 사람들이었다. 차담은 대기 원본 셋에게 전화를 돌렸고, 원본들은 각자 제 복제에게 점심시간 사십 분을 빼 오라고 했다. 디자인팀 막내와 막내 2, 영업 지원 과장과 과장 2, 차담과 차담 2, 그리고 재오와 재오 2. 지나가던 사람들이 같은 얼굴 넷을 보고 걸음을 늦췄다. 한 커플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다 차담 2의 눈빛에 휴대폰을 도로 넣었다.
“한 쌍씩 앉으세요. 헷갈리니까.”
차담이 말했다. 영업 지원 과장 둘은 같은 김밥을 같은 쪽부터 먹고 있었다. 디자인팀 막내는 제 복제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복제가 출근 첫 주에 팀장에게 막내의 진짜 의견을 그대로 말해 버렸다고 했다. 이월에 술 마시고 그렇게 말하겠다고 다짐했던 걸 기억해서. 막내 2는 고개를 숙였지만 웃고 있었다.
“금요일 전체 회의에 대표가 원본 대표로 걔를 세운대요.”
재오 2가 말했다. 차담 2가 김밥을 내려놓았다.
“나 그날 휴가 썼다. 대학원 면접이 그날이야.”
“원서 냈어?”
차담이 물었다. 차담 2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담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차담 2의 김밥 하나를 집어 먹었다.
“금요일엔 원본만 가요. 복제는 자리 비우면 반납 사유니까. 하역장 셔터는 아침 아홉 시 사십 분에 납품 차가 들어올 때 칠 분 열려 있어요.”
재오가 말했다. 재오 2가 적어 준 숫자였다. 원본 넷이 고개를 끄덕였고, 복제 넷은 서로를 보았다.
“나는 앞줄에 앉아 있을게. 복제석이 앞쪽 다섯 줄이래.”
재오 2가 말했다. 영업 지원 과장 2가 손을 들었다. 이월까지 영업 지원 과장이 회의 때마다 그랬듯 손을 반만 들었다.
“저희 다 앞줄이에요. 원본님들 들어오시면 저희가 박수를 크게 칠게요. 그래야 경비가 앞을 봐요.”
여덟 명이 동시에 웃었다. 같은 얼굴들이 같은 자리에서 주름이 잡혔다.
*
십일월 첫날 오전 열 시, 지하 일 층 강당은 사백 개 좌석이 다 찼다. 귀 뒤에 점이 있는 사람들이 앞쪽 다섯 줄을 채웠다. 서른둘이었다. 무대 뒤 화면에 큰 숫자가 떠 있었다.
「32 → 64 → 128」
한미주는 무대 한가운데 맨손으로 서 있었다. 원고를 보지 않았다.
“지난 석 달 동안 오늘도는 한 사람도 자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안 자릅니다. 십이월에 예순넷, 일월에 백스물여덟. 내년 유월이면 본사 모든 자리에 복제가 앉고, 원본은 모두 집에서 사용료를 받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받는 돈입니다. 그 돈으로 대학원을 가셔도 되고, 제주에 가셔도 됩니다.”
객석 앞쪽의 복제들이 박수를 쳤다. 뒤쪽은 조용했다.
“오늘은 원본 한 분이 직접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마케팅팀 심재오 과장님.”
재오 3이 무대 옆에서 걸어 나왔다. 회색 정장이었고, 안경을 쓰지 않았고,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았다. 마이크가 떨려서 숨소리가 스피커로 거칠게 새어 나왔다.
“저는 제 복제를 만나고 행복해졌습니다.”
재오 3이 말했다. 원고를 외운 목소리였다.
“제 복제는 저보다 일을 잘합니다. 저는 처음으로 쉬는 법을 배웠고,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앞줄에서 영업 지원 과장 2가 갑자기 손뼉을 크게 쳤다. 복제 넷이 따라 쳤고, 영문을 모르는 앞쪽 다섯 줄이 다 따라 쳤다. 경비들이 무대 쪽을 돌아보는 사이 강당 뒷문이 열렸다. 하역장 셔터 칠 분 안에 상자 사이로 올라온 원본 넷이 들어왔다. 차담과 디자인팀 막내와 영업 지원 과장이 뒷벽에 붙어 섰고, 재오가 맨 뒷줄 통로로 나섰다. 숨이 찼고, 셔츠 등판에 누룽지 상자 먼지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
“저 사람 원본 아닙니다.”
사백 개의 고개가 뒤를 돌았다. 앞줄의 재오 2가 일어서려다 옆자리 류강비가 재오 2의 소매를 잡아 도로 앉혔다. 무대 위 재오 3의 마이크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한미주는 놀라지 않았다. 무대 끝까지 걸어 나와 객석 뒤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귀 뒤를 볼까요. 두 분 다.”
재오는 통로를 걸어 내려갔다. 사백 개의 눈이 재오를 따라왔다. 무대 앞에 이르자 경비 둘이 양옆에 섰다. 재오 3이 무대에서 몸을 숙여 왼쪽 귀를 젖혔다. 아무것도 없었다. 재오도 귀를 젖혔다. 아무것도 없었다. 강당 앞쪽 화면에 두 귀가 크게 떠올랐다. 같은 모양의 귓바퀴, 같은 자리의 작은 점 하나 없는 살갗.
객석이 웅성거렸다. 한미주가 마이크를 들었다.
“점 없는 심재오가 둘이네요. 법은 한 사람에 하나니까, 하나는 미등록 복제고요. 오늘 아침 출입 기록에 있는 쪽이 원본이겠죠.”
인사본부장이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무대 위 과장님, 일곱 시 이 분 정상 출근입니다. 저분은 기록이 없습니다. 규정상.”
경비 둘이 재오의 팔을 하나씩 잡았다. 재오는 몸을 비틀었지만 팔이 빠지지 않았다. 무대 위를 보았다. 재오 3이 마이크를 내린 채 재오를 보고 있었다. 떨리는 손이 마이크를 놓칠 것처럼 흔들렸다.
한미주가 마이크를 입 가까이 댔다.
“거울바이오에 연락하세요. 미등록 한 명 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