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47자)

파주

내 복제인간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 류세온

월요일 오전 열한 시⁠, 재오는 세탁기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세탁이 끝났다는 노래가 세 번째로 울리는 중이었다⁠. 재오는 세탁기를 십일 년 동안 돌려 본 적이 없었다⁠. 영미가 아침에 포스트잇에 적어 두고 간 순서대로 했는데도 수건이 전부 분홍색이 되어 있었다⁠. 영미의 빨간 니트 하나가 수건 사이에 섞여 있었다⁠.

재오는 분홍 수건을 베란다 건조대에 하나씩 널었다⁠. 십일 층 아래 놀이터에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벤치 세 개에 일곱 명이었다⁠. 다들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이었고⁠, 운동복을 입었고⁠, 손에 편의점 커피를 들고 있었다⁠. 평일 오전 열한 시였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재오의 얼굴을 보더니 손뼉을 쳤다⁠.

“⁠어머⁠, 원본이시구나⁠. 이 시간에 집에 계신 거 보니까⁠.⁠”

“⁠티 나요⁠?⁠”

“⁠우리 아들도 집에 있어요⁠. 은행 다니는데 작년부터 그 회사도 둘 만들었대요⁠. 원본은 집에서 삼십 받고 놀고⁠, 복제는 일하고⁠. 저기 놀이터 가 봐요⁠. 다들 원본이야⁠. 대기 원본 모임이라던데⁠.⁠”

놀이터 벤치의 남자들은 재오를 반겼다⁠. 한 사람이 자리를 비켜 주며 어느 회사냐고 물었다⁠. 오늘도라고 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는 이번 달에만 열여섯이라던데⁠, 하고 누가 말했다⁠. 이들은 자기 복제 이야기를 했다⁠. 내 복제는 영업 실적이 나보다 두 배다⁠, 내 복제는 부장한테 대들어서 오히려 칭찬받았다⁠, 내 복제는 회사 숙소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다들 웃었는데⁠, 웃음 끝에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한 남자가 그네 쇠줄을 손가락으로 감으며 말했다⁠.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 복제가 숫자 못 내면 반납되잖아요⁠. 그럼 우리 자리는 돌아와요⁠?⁠”

“⁠안 돌아와요⁠.⁠”

재오가 말했다⁠. 남자들이 재오를 보았다⁠.

“⁠자리도 같이 없어진대요⁠. 조직 개편으로⁠.⁠”

벤치가 조용해졌다⁠. 그넷줄이 삐걱 소리를 내다가 멈췄다⁠.

*

화요일 오후⁠, 삼십이 층 대표실에서 재오 2는 한미주 맞은편에 서 있었다⁠. 한미주는 이번에도 앉지 않았고⁠, 그에게도 앉으라고 하지 않았다⁠. 벽 화면에 「⁠제사 끝난 맛⁠」 예약 첫 주 숫자가 떠 있었다⁠. 만 이천 상자⁠.

“⁠나쁘지 않아요⁠. 원본이 했으면 육천이었겠죠⁠.⁠”

“⁠감사합니다⁠.⁠”

“⁠다음 주는 이만 사천⁠, 그다음 주는 사만 팔천⁠. 주마다 두 배⁠. 십이월 행사 전에 십만이에요⁠.⁠”

재오 2는 계산을 했다⁠. 이월의 심재오도 계산이 빨랐다⁠.

“⁠못 맞추면요⁠?⁠”

“⁠다음 걸로 바꾸죠⁠.⁠”

한미주는 창가에 놓인 누룽지 봉지에서 한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늘 그렇게 먹었다⁠. 쟁반이나 접시 없이⁠, 맨손바닥에⁠.

“⁠다음 거요⁠? 법에 한 사람에 하나라고⁠…⁠…⁠.⁠”

“⁠하나죠⁠. 그 하나가 숫자를 못 내면 하나가 바뀌는 거예요⁠. 하나는 언제나 하나예요⁠.⁠”

한미주는 누룽지를 이로 끊었다⁠.

“⁠심재오 씨 세포는 아직 많이 남았어요⁠. 벌써 석 달째 자라고 있고요⁠.⁠”

재오 2는 대표실을 나와 비상계단으로 지하 삼 층까지 걸어 내려갔다⁠. 서른네 층을 내려가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았고⁠, 계단참 창문마다 제 얼굴이 비칠 때 고개를 돌렸다⁠. 숙소 복도 끝 방에서 류강비가 양말을 개고 있었다⁠. 재오 2는 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너 몇 번째야⁠?⁠”

류강비의 손이 양말 한 짝을 든 채 멈췄다⁠. 대답 대신 양말을 내려놓고 일어나 방 안의 작은 거울을 벽 쪽으로 돌려놓았다⁠.

“⁠원본님이 말씀하셨어요⁠?⁠”

“⁠아니⁠. 대표가⁠.⁠”

“⁠그럼 저도 말씀드릴게요⁠. 두 번째예요⁠.⁠”

*

수요일 밤 열두 시 사십 분⁠, 일산 아파트 초인종이 울렸다⁠. 재오가 문을 열자 재오 2와 류강비가 서 있었다⁠. 둘 다 숨이 차 있었고⁠, 둘 다 슬리퍼였다⁠. 점호를 받자마자 물류 하역장 셔터 밑으로 빠져나와 택시를 탔다고 했다⁠. 차담에게 하역장 셔터 버튼 위치를 배웠다고 했다⁠.

영미가 잠옷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나왔다⁠. 현관의 세 남자를 보았다⁠. 그중 둘이 같은 얼굴이었고⁠, 둘 다 영미의 남편이었고⁠, 하나는 귀 뒤에 점이 있었고⁠, 하나는 이마에 아직 「⁠원⁠」 메모지 자국이 흐리게 남아 있었다⁠. 영미는 아무 말 없이 주방 불을 켰다⁠.

식탁에 넷이 앉았다⁠. 재오 2가 화요일 대표실 이야기를 했다⁠. 류강비가 첫 번째 몸 이야기를 했다⁠. 영미는 둘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류강비에게 물었다⁠.

“⁠첫 번째 사람은 지금 몇 살이에요⁠?⁠”

“⁠저랑 같은 날 스캔한 몸이라 저랑 같아요⁠. 거기서는 시간이 안 가니까요⁠. 저만 일 년 반 더 살았어요⁠.⁠”

재오는 재오 2를 보았다⁠. 재오 2는 식탁 모서리를 엄지로 문지르고 있었다⁠. 재오는 이 손을 잡았다⁠. 같은 온도의 손이었다⁠. 재오 2가 고개를 들었다⁠.

“⁠파주 가자⁠. 보고 나서 정해⁠.⁠”

“⁠언제⁠?⁠”

“⁠보배 기사님이 목요일하고 금요일 밤 근무예요⁠. 저 키워 주신 분이에요⁠. 두 번 다요⁠.⁠”

류강비가 말했다⁠. 재오는 잡은 손을 위아래로 한 번 흔들었다⁠. 재오 2도 흔들었다⁠. 둘은 동시에 “⁠잘 부탁해⁠.⁠”라고 말했고⁠, 동시에 손을 뺐다⁠. 영미가 컵에 보리차를 따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봄 이후로 처음 들은 웃음이 이번에는 재오의 앞에서 나왔다⁠. 재오는 이 소리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둘이 악수하는 거 처음 봐⁠.⁠”

*

금요일 밤 열한 시 반⁠, 영미의 경차가 자유로를 달렸다⁠. 재오가 운전했고⁠, 재오 2가 조수석에⁠, 류강비가 뒷자리에 앉았다⁠. 재오가 라디오를 켰다⁠. 재오 2가 채널을 돌렸다⁠. 재오가 다시 돌렸다⁠. 세 번째에 둘은 같은 채널에서 손을 멈췄다⁠. 이천십 년대 아이돌 노래가 나왔다⁠. 둘 다 고등학교 때 노래방에서 이 노래만 불렀다⁠. 둘은 후렴에서 동시에 따라 부르다가 동시에 멈췄다⁠. 뒷자리에서 류강비가 박수를 쳤다⁠.

“⁠복사했습니다⁠!⁠”

“⁠그 말 좀 그만해⁠.⁠”

둘이 같이 말했다⁠.

통일전망대 이정표가 지나갈 때 재오가 라디오를 껐다⁠. 앞 유리를 보며 말했다⁠.

“⁠편의점 본부 새 담당⁠, 누룽지 싫어하는 거 할머니 때문이라고 했잖아⁠. 그 할머니가 작년 겨울에 돌아가셨어⁠. 장례식 때 우리 팀이 화환 보냈고⁠. 그 사람 앞에서는 「⁠제사 끝난 맛⁠」 꺼내지 마⁠. 「⁠할머니 부엌⁠」으로 가⁠. 그 사람 휴대폰 배경이 할머니 손이야⁠.⁠”

재오 2가 고개를 돌렸다⁠.

“⁠왜 가르쳐 줘⁠?⁠”

“⁠너 다음 주 이만 사천 못 하면 저 탱크 속 놈이 나와⁠. 그놈은 아무것도 몰라⁠. 이월에서 하루도 안 지났으니까⁠. 그럼 나는 같은 얘기를 처음부터 또 해야 돼⁠.⁠”

“⁠그럼 나는 뭐 줘⁠?⁠”

“⁠숙소⁠. 몇 시에 불 끄는지⁠, 점호 누가 도는지⁠, 하역장 셔터 몇 분 열려 있는지⁠. 다⁠.⁠”

재오 2는 한참 창밖을 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을 열었다⁠. 숙소 복도 문 여덟 개의 순서와 점호 도는 관리인의 발소리가 언제 끊기는지를 적기 시작했다⁠. 재오는 운전대를 쥔 채 이 메모를 곁눈으로 읽었다⁠. 이월 열사흘 밤 「⁠밤 열한 시⁠, 달빛 누룽지⁠」를 적은 이 메모장이었다⁠.

파주 출판단지 끝⁠, 갈대밭 옆에 창고처럼 생긴 삼 층 건물이 서 있었다⁠. 간판은 작았다⁠. 「⁠거울바이오 파주 센터⁠」 뒷문 앞에 마흔 중반의 여자가 담배 대신 전자 담배를 물고 서 있었다⁠. 작업복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었고⁠, 팔뚝에 고무장갑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류강비를 보더니 전자 담배를 주머니에 넣었다⁠.

“⁠너 또 왔냐⁠?⁠”

“⁠보배 기사님⁠, 저 왔어요⁠. 이번엔 손님도 있어요⁠.⁠”

보배는 두 재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놀라지 않았다⁠. 넉 달 동안 탱크 속에서 자라는 얼굴들을 밤마다 보는 사람이었다⁠.

“⁠십 분⁠. 동면실만⁠. 배양실은 안 돼⁠.⁠”

지하 동면실은 냉장 창고 같은 냄새가 났다⁠. 숨을 들이쉬면 콧속이 따가웠다⁠. 천장의 푸른 불빛 아래 사람 키만 한 원통형 탱크가 끝이 안 보이게 줄지어 서 있었고⁠, 유리마다 성에가 얇게 끼어 있었다⁠. 보배가 맨 끝 줄의 탱크 앞에서 장갑 낀 손으로 성에를 문질렀다⁠.

유리 안에 류강비가 있었다⁠. 눈을 감았고⁠, 입이 조금 벌어져 있었고⁠, 머리카락이 액체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바깥의 류강비가 유리에 손바닥을 댔다⁠.

“⁠형⁠.⁠”

류강비가 말했다⁠. 유리에 숨이 하얗게 번졌다가 사라졌다⁠. 보배가 탱크 옆 온도계를 손톱으로 두드렸다⁠.

“⁠잘 있어⁠. 지난주보다 0⁠.1도 낮아⁠. 내가 올려놨어⁠.⁠”

보배는 탱크에 대고 말했다⁠. 재오는 보배가 밤마다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배양실은 일 층이었다⁠. 보배가 안 된다고 했지만 재오 2가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배양실 탱크들은 동면실 것보다 컸고⁠, 안의 액체가 연한 초록빛이었다⁠. 오이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세 번째 탱크 앞에서 재오 2가 섰다⁠. 재오가 이 옆에 섰다⁠.

탱크 안에 심재오가 떠 있었다⁠. 무릎을 반쯤 접었고⁠, 팔이 몸 옆에 늘어졌고⁠, 턱이 매끈했다⁠. 왼쪽 귀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탱크 유리에 바깥 두 사람의 얼굴이 비쳐 안의 얼굴과 겹쳤다⁠. 안경 쓴 얼굴⁠, 안 쓴 얼굴⁠, 눈 감은 얼굴⁠. 재오는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가 기침을 했다⁠. 재오 2는 엄지를 문지르지 않았다⁠. 손을 주먹으로 쥐고 있었다⁠.

배양실 문이 열렸다⁠. 하얀 가운 차림의 센터장이 먼저 들어왔고⁠, 문을 잡고 비켜섰다⁠. 복도의 기사 둘이 허리를 숙였다⁠.

“⁠회장님 오셨습니다⁠.⁠”

한미주가 들어왔다⁠. 회색 정장 위에 하얀 가운을 걸쳤고⁠, 손에 누룽지 봉지가 없었다⁠. 한미주는 탱크 앞의 두 재오와 류강비⁠, 문가의 보배를 차례로 보았다⁠. 그러고는 탱크 쪽으로 걸어와 유리에 손등을 댔다⁠. 안의 온도를 재는 손이었다⁠.

“⁠회장님이요⁠?⁠”

재오가 말했다⁠. 한미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센터장이 대신⁠, 회장님은 사 년 전부터 거울바이오의 최대 주주시라고 말했다⁠.

“⁠이 사람⁠, 귀 뒤에 점이 없네요⁠.⁠”

재오가 말했다⁠. 한미주는 유리에서 손을 뗐다⁠.

“⁠등록 안 한 몸은 사람이 아니에요⁠. 재고예요⁠.⁠”

“⁠신고하겠습니다⁠.⁠”

“⁠뭐로요⁠? 저 탱크엔 이름도 없어요⁠. 그리고 신고하면 저쪽은 회사 숙소를 무단으로 빠져나와 불법 시설에 들어온 걸로 반납이에요⁠. 류강비 씨도요⁠. 보배 씨는 오늘로 끝이고요⁠.⁠”

보배가 장갑을 벗어 쥐었다⁠.

“⁠끝이면 끝이죠⁠. 근데 회장님⁠, 저 몸 아직 넉 달 안 찼어요⁠. 석 달 열흘이에요⁠. 지금 꺼내면 한동안 손이 떨려요⁠.⁠”

“⁠떨리면 커피 안 시키면 돼요⁠.⁠”

류강비가 보배 앞으로 반걸음 나섰다⁠. 재오 2는 탱크 속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럼 왜 아직 안 깨웠어요⁠?⁠”

재오 2가 물었다⁠. 한미주가 처음으로 재오 2를 똑바로 보았다⁠.

“⁠재고는 쌓아 두면 들켜요⁠. 꺼내서 쓰면 직원이고⁠.⁠”

한미주는 센터장을 돌아보았다⁠.

“⁠깨워요⁠. 오늘 밤⁠.⁠”

센터장이 탱크 옆 손잡이를 내렸다⁠. 바닥 어딘가에서 펌프가 돌기 시작했다⁠. 연한 초록빛 액체가 탱크 아래로 빨려 나가며 물 높이가 머리에서 어깨로⁠, 가슴으로 내려갔다⁠. 유리에 비친 두 얼굴 위로 안의 얼굴이 젖은 채 드러났다⁠. 탱크 속 남자의 속눈썹이 떨렸다⁠. 눈을 떴다⁠. 맨눈이었다⁠. 이 눈이 유리 너머 두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남자의 입이 움직였다⁠. 유리 너머로 소리는 작게 들렸다⁠.

“⁠초콜릿⁠…⁠…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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