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68자)

같은 문장

내 복제인간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 류세온

수요일 아침 류강비는 노란 접착 메모지 두 장을 들고 왔다⁠. 한 장에는 「⁠원⁠」⁠, 한 장에는 「⁠복⁠」이라고 굵게 적혀 있었다⁠.

“⁠팀원분들이 헷갈려하십니다⁠. 이마에 붙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오는 메모지를 구겨 휴지통에 던졌다⁠. 재오 2는 메모지를 받아 이마에 붙였다⁠. 그러고는 재오의 휴지통에서 구겨진 「⁠원⁠」을 꺼내 펴서 재오의 이마에 꾹 눌러 붙였다⁠. 재오가 떼려 하자 팀원 셋이 동시에 안 된다고 외쳤다⁠. 본부장까지 회의실 블라인드 틈으로 고개를 내밀어 그냥 두라고 했다⁠.

점심에 두 재오는 각자 짬뽕 곱빼기에 단무지를 따로 한 접시 더 시켰다⁠. 배달 기사가 봉지 두 개를 들고 와 이름을 부르자 둘이 같이 손을 들었고⁠, 같이 이렇게 말했다⁠.

“⁠단무지 많이 주셨죠⁠? 안 주셨으면 별점 하나 깎습니다⁠.⁠”

기사는 메모지 붙은 두 이마를 번갈아 보다가 봉지를 책상에 내려놓고 뒷걸음으로 나갔다⁠. 차담이 모니터 뒤에서 소리 없이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재오는 짬뽕 국물을 들이켜며 옆을 보았다⁠. 재오 2도 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둘은 동시에 그릇을 내려놓았고⁠, 동시에 입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재오는 이때 처음으로 자기가 국물을 먹고 나서 손등으로 입을 닦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후 두 시에 인사본부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뒤로 세 사람이 따라 나왔다⁠. 셋 다 귀 뒤에 푸른 점이 있었고⁠, 셋 다 팀에 이미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디자인팀 막내⁠, 영업 지원 과장⁠, 그리고 차담⁠.

“⁠두 번째 무리입니다⁠. 이번 주에 여덟이 더 들어와서 본사 복제가 열여섯이 됩니다⁠. 차담 대리님은 오늘부로 대기입니다⁠. 규정상⁠.⁠”

차담은 노트북을 닫지도 않고 일어났다⁠. 차담의 얼굴을 한 여자가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었다⁠. 이 여자의 손톱에는 이월에 차담이 바르고 다니던 체리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차담은 지금 손톱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

*

십사 층 여자 화장실 세면대 거울은 벽 하나를 다 차지했다⁠. 차담은 손을 씻는 척하며 거울 속을 보았다⁠. 차담 뒤에 차담이 서 있었다⁠.

“⁠나 바르던 색 아직 팔아⁠?⁠”

차담 2가 물었다⁠. 차담은 수도꼭지를 잠갔다⁠.

“⁠단종됐어⁠. 칠월에⁠.⁠”

“⁠아⁠.⁠”

차담 2가 거울 속 제 손톱을 보았다⁠. 둘은 거울 안에서 서로를 보았고⁠, 거울 밖에서는 서로를 보지 않았다⁠.

“⁠오빠한테 연락 왔어⁠? 이월에 싸웠잖아⁠. 주말에 화해하기로 했는데⁠.⁠”

“⁠사월에 헤어졌어⁠.⁠”

차담 2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눈이 붉어지는 것을 차담은 거울로 보았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양으로 붉어졌다⁠. 차담은 휴지를 뽑아 건넸다⁠. 차담 2가 휴지로 눈가를 누르며 다시 물었다⁠.

“⁠원서는⁠? 대학원⁠. 마감이 삼월 둘째 주였잖아⁠. 다 써 놨었는데⁠.⁠”

“⁠안 냈어⁠.⁠”

“⁠왜 안 냈는데⁠?⁠”

“⁠무서워서⁠.⁠”

차담 2는 휴지를 구겨 쥐었다⁠. 그러고는 거울 속 차담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럼 내가 일하면서 낼게⁠. 이번 가을 모집에⁠. 너는 집에서 놀아⁠.⁠”

“⁠그게 내 원서야⁠.⁠”

“⁠내 원서이기도 해⁠. 내가 썼어⁠. 이월에⁠.⁠”

차담은 화장실을 나와 곧장 재오의 책상으로 갔다⁠. 「⁠원⁠」 메모지가 붙은 이마를 내려다보았다⁠.

“⁠과장님⁠, 금요일에 꼭 이기세요⁠. 원본이 한 번이라도 이겨야 저도 돌아갈 길이 생겨요⁠.⁠”

*

목요일 점심⁠, 재오 2는 외근을 달아 놓고 일산 백석동의 치과 문을 밀었다⁠. 손에는 참치 김밥 두 줄이 든 봉지가 들려 있었다⁠. 이월까지 영미가 점심을 거르는 목요일마다 이것을 사 들고 왔다⁠. 접수대 뒤의 원장이 안경을 내리고 재오 2를 보았다⁠.

“⁠심 서방 라식했어⁠? 얼굴이 훤하네⁠.⁠”

“⁠네⁠, 좀 했습니다⁠.⁠”

영미가 진료실에서 나오다가 재오 2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아무 말 없이 재오 2의 팔을 잡아 소독실로 끌고 들어갔다⁠. 소독기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거렸고⁠, 소독약 냄새 사이로 목덜미에서 오이 냄새가 났다⁠.

“⁠회사는⁠.⁠”

“⁠외근⁠. 영미⁠, 그 사람 요즘 어떻게 지냈어⁠? 여덟 달 동안⁠. 나한테는 말을 안 해⁠.⁠”

“⁠그건 그 사람한테 들어⁠.⁠”

영미는 재오 2의 왼손을 잡아 뒤집었다⁠. 검지의 밴드가 물에 젖어 들떠 있었다⁠. 밴드를 떼고⁠, 빨갛게 아문 자리를 소독 솜으로 눌렀다⁠. 재오 2는 따가워서 손을 움찔했고⁠, 영미는 놓아 주지 않았다⁠.

“⁠금요일에 지면 어떻게 돼⁠?⁠”

“⁠반납⁠.⁠”

“⁠그게 뭔데⁠.⁠”

“⁠파주⁠. 탱크⁠. 들어가면 시간이 안 간대⁠. 깨면 들어가던 순간에서 그대로 이어진대⁠.⁠”

영미는 새 밴드를 감았다⁠. 매듭 대신 끝을 두 번 눌러 붙였다⁠. 다 감고 나서야 영미가 재오 2의 얼굴을 보았다⁠.

“⁠여기 오지 마⁠. 당신이 오면 나 헷갈려⁠.⁠”

“⁠나도 헷갈려⁠.⁠”

“⁠그러니까 오지 마⁠.⁠”

영미는 김밥 봉지를 받아 들고 소독실을 나갔다⁠. 재오 2는 소독기 유리문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다⁠. 이월의 심재오는 목요일마다 이 김밥을 사 왔고⁠, 영미는 늘 받으며 웃었다⁠. 오늘은 받기만 했다⁠.

*

목요일 밤 일산 아파트 거실에서 재오는 텔레비전 화면에 노트북을 연결해 놓고 연습했다⁠. 영미는 소파 끝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아직 재오와 말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연습을 보겠다고 한 것은 영미였다⁠.

재오가 첫 장을 넘기며 말했다⁠. 시장 규모⁠, 경쟁사 세 곳의 매대 점유⁠, 겨울 간식 구매 시간대⁠. 재오는 숫자를 정확히 읽었다⁠. 영미가 손을 들었다⁠.

“⁠그 사람은 손으로 동그라미 그리면서 해⁠.⁠”

“⁠그게 뭐가 중요해⁠.⁠”

“⁠당신도 이월에는 그랬어⁠. 그때는 집에서 연습하면 내가 웃었어⁠. 지금은 안 웃겨⁠.⁠”

재오는 노트북을 덮었다⁠. 거실 창에 자기 모습이 비쳤다⁠. 손이 허리 옆에 붙어 있었다⁠. 이 손을 들어 보려다가 말았다⁠.

“⁠부산에서 한 아주머니가 그랬어⁠.⁠”

말이 저절로 나왔다⁠. 영미가 고개를 들었다⁠.

“⁠시식대 앞에서 누룽지를 하나 먹더니 웃는 거야⁠. 다들 고개 젓는데 그분만⁠. 제사 다 끝나고 새벽에 동서들이랑 부엌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솥 긁어 먹던 맛이라고⁠. 그건 제사 음식이 아니고 제사 끝난 맛이라고⁠. 손님 다 가고⁠, 설거지 다 하고⁠, 이제 내 입에 넣는 거⁠.⁠”

“⁠그 얘기 왜 이제 해⁠?⁠”

“⁠아무한테도 안 했어⁠. 그다음 주에 차장 떨어졌거든⁠.⁠”

영미는 소파에서 내려와 노트북을 도로 열었다⁠. 첫 장 앞에 빈 장을 하나 끼워 넣고 키보드를 재오에게 밀었다⁠.

“⁠그 아주머니부터 해⁠.⁠”

*

금요일 오후 세 시 삼십이 층 회의실에는 한미주⁠, 본부장⁠, 임원 넷⁠, 인사본부장이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한강이 회색으로 누워 있었다⁠. 두 재오는 이마의 메모지를 떼고 들어왔다⁠.

재오 2가 먼저 했다⁠. 띄운 첫 장의 제목은 「⁠밤 열한 시⁠, 달빛 누룽지⁠」였다⁠. 재오 2는 왼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말했다⁠. 십이월 두 번째 주⁠, 여의도 한강공원에 지름 십 미터짜리 철판을 깔고 본사 직원 예순네 명이 밤 열한 시에 누룽지를 구워 야간 러너와 퇴근길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행사⁠. 영상은 위에서 찍는다⁠. 달처럼 둥근 철판 위에 사람들이 둘러선 모양으로⁠. 사흘 동안 편의점 본부와 대형 마트 두 곳의 담당자를 만나 행사 날 맞춰 매대를 잡아 왔다고 했다⁠. 임원 하나가 박수를 쳤다⁠.

재오가 노트북을 연결했다⁠. 화면에 첫 장이 떴다⁠.

「⁠밤 열한 시⁠, 달빛 누룽지⁠」

회의실이 터졌다⁠. 본부장이 웃다가 의자를 뒤로 밀었고⁠, 임원 둘이 마주 보며 고개를 저었고⁠, 인사본부장마저 태블릿으로 입을 가렸다⁠. 재오 2는 화면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가 재오를 보았다⁠. 재오도 재오 2를 보았다⁠. 이월 열사흘 밤 침대에 누워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둔 문장이었다⁠. 둘 다 이 메모를 기억했다⁠.

한미주만 웃지 않았다⁠.

“⁠다음 장⁠.⁠”

재오는 영미가 끼워 넣은 장으로 넘겼다⁠. 거기에는 사진 대신 한 줄만 있었다⁠. 「⁠제사 끝난 맛⁠」 재오는 부산의 아주머니 이야기를 했다⁠. 손님이 다 가고 설거지를 다 하고 부엌 바닥에 앉아 솥을 긁던 새벽⁠, 남의 상을 다 차리고 나서야 처음 제 입에 넣는 것⁠. 왼손을 들어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솥 바닥의 모양이었다⁠. 겨울 캠페인은 밤 열한 시의 젊은 사람이 아니라⁠, 하루 일을 다 끝낸 사십 대와 오십 대에게 간다⁠. 명절 끝난 밤⁠, 야간 근무 끝난 새벽⁠, 아이 재우고 난 열한 시⁠. 재오는 이것이 삼월 부산에서 이미 나온 답이었다고 말했다⁠.

말이 끝나자 회의실이 조용했다⁠. 재오 2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월 십사일 뒤에 생긴 이야기였고⁠, 재오 2는 처음 듣는 얼굴이었다⁠.

한미주가 볼펜을 내려놓았다⁠.

“⁠원본 안이 맞아요⁠.⁠”

재오는 숨을 들이켰다⁠.

“⁠그런데 원본은 그 아주머니를 삼월에 만나고 여덟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복제 안은 틀렸는데⁠, 사흘 만에 매대 세 곳을 잡아 왔고요⁠.⁠”

한미주는 재오 2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강 철판 행사는 그대로 해요⁠. 대신 제목을 바꿔요⁠. 「⁠제사 끝난 맛⁠」 밤 열한 시에 오는 건 퇴근한 사람들이니까⁠. 원본이 가져온 아주머니를 복제가 철판 위에 올리는 거예요⁠.⁠”

“⁠그건 제 겁니다⁠.⁠”

재오가 말했다⁠. 한미주는 재오를 보지 않았다⁠.

“⁠심재오 씨 거죠⁠. 저쪽도 심재오 씨고요⁠. 원본은 오늘부로 무기한 대기예요⁠. 복제는 출시 첫 달 예약 십만 상자⁠. 못 맞추면 반납⁠. 이긴 사람도 숫자는 내야죠⁠.⁠”

재오 2의 엄지가 다시 움직였다⁠. 재오는 이것을 보았고⁠, 이번에는 고개를 돌렸다⁠.

*

삼십이 층에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사방이 거울이었다⁠. 재오가 타자 재오 2가 뒤따라 탔다⁠. 문이 닫히자 둘의 얼굴이 앞뒤 거울에 줄지어 비쳐 끝없이 이어졌다⁠. 안경 쓴 얼굴과 안 쓴 얼굴이 번갈아 가며 작아졌다⁠.

“⁠미안해⁠.⁠”

재오 2가 말했다⁠.

“⁠네가 이겼잖아⁠.⁠”

“⁠네 아주머니로 이겼지⁠.⁠”

“⁠그 아주머니 이제 대표 거야⁠.⁠”

엘리베이터가 이십 층을 지났다⁠. 재오 2가 층 버튼 옆 거울에 이마를 댔다⁠.

“⁠월요일에 대표한테 말해 볼게⁠. 둘이 같이 하자고⁠. 원본이 기획하고 복제가 뛰고⁠. 한 자리에 둘⁠.⁠”

“⁠규정상 한 자리에 한 사람이래⁠.⁠”

재오는 인사본부장의 말투를 흉내 냈다⁠. 재오 2가 웃었다⁠. 이 웃음이 거울마다 따라 웃어서⁠, 엘리베이터 안에 웃는 심재오가 수십 명이 되었다⁠. 재오는 웃지 않았다⁠.

“⁠넌 십만 상자나 걱정해⁠. 지난겨울 우리 팀 최고가 사만이었어⁠. 그것도 내가 했어⁠.⁠”

“⁠알아⁠. 그것도 이월 전 일이니까⁠.⁠”

문이 열렸다⁠. 재오 2는 십사 층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서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재오는 닫힘 버튼을 먼저 눌렀다⁠.

*

일 층 로비를 지나는 재오의 손에는 종이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원⁠」이라고 적힌 머그잔은 책상에 두고 왔다⁠. 상자 안에는 충전기와 버리지 못한 시식 샘플 두 봉지뿐이었다⁠. 출입문까지 스무 걸음이 남았을 때 뒤에서 빠른 발소리가 났다⁠. 류강비였다⁠. 숨을 몰아쉬며 재오의 소매를 잡아 유리장 앞으로 끌었다⁠. 무쇠 누룽지 판이 둘 사이에서 검게 빛났다⁠.

“⁠원본님⁠.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복사하지 마십시오⁠.⁠”

류강비는 처음으로 웃지 않았다⁠. 목소리를 낮추자 무쇠 판에 비친 입술만 움직였다⁠.

“⁠저 사실 두 번째예요⁠. 사내 1호라고들 하시는데⁠, 1호는 제가 아니고 저보다 일 년 먼저 깬 저예요⁠. 월급 달라고 했다가 반납됐어요⁠. 이 몸은 그다음에 만든 거고요⁠.⁠”

재오는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법에 한 사람에 하나라며⁠.⁠”

“⁠네⁠. 그래서 아무도 몰라요⁠. 첫 번째 저는 지금 파주에 있어요⁠. 탱크 안에⁠. 제가 깨어난 날 유리 너머로 봤어요⁠. 눈 감고 있었어요⁠.⁠”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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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빵2026.10.25· 3화

    둘이 같은 문장을 쓰면 회사는 누구 걸로 쳐요?

    • 류세온작가2026.10.26

      먼저 낸 쪽이요. 그런데 늘 복제인간이 먼저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