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10자)
어금니
내 복제인간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 류세온
칼국수 세 그릇이 식탁에 놓였다. 영미가 놓은 것이 아니었다. 재오 2가 국자로 푸고, 들깨 가루를 한 숟갈씩 더 얹고, 김 가루를 손끝으로 비벼 뿌렸다. 재오도 늘 그렇게 했다. 여덟 달 동안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영미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의자를 뒤로 빼서 두 남자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누가 내 남편이야?”
“나.”
둘이 동시에 말했다. 영미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한 사람씩. 우리 처음 만난 데.”
“신촌 치과 대기실. 사랑니 뽑으러 갔다가.”
이번에도 둘이 같이 말했다. 토씨까지 같았다. 영미가 손바닥으로 식탁을 쳤다.
“내 혈액형.”
“비형. 근데 본인은 에이형이라고 우겨.”
“안 우겨.”
영미가 말했고, 두 남자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재오는 옆을 보았다. 재오 2도 재오를 보고 있었다. 저쪽 입꼬리가 웃음을 참느라 비틀려 있었는데, 그건 재오의 입꼬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좋아. 그럼 유월에 우리 어디 갔어?”
재오 2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주. 십 주년. 내가 이월에 펜션까지 봐 뒀는데…….”
재오 2는 말을 멈췄다. 영미는 재오 2가 아니라 재오를 보고 있었다. 재오는 칼국수 그릇에 시선을 박았다. 국물 위에 뜬 들깨 기름이 형광등 불빛을 둥글게 받아 냈다.
“안 갔구나.”
재오 2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영미는 일어나 현관 옆 가방을 뒤졌다. 진료 가방이었다. 펜라이트와 손거울만 한 치경을 꺼내 와 식탁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둘 다 아.”
“여보, 밥 먹다가…….”
“아, 하라고.”
재오가 먼저 입을 벌렸다. 영미는 의자를 끌어 바짝 붙어 앉아 펜라이트를 재오의 입 안에 비추고 치경 끝으로 어금니를 하나씩 건드렸다. 차가운 쇠가 혀끝에 닿았다. 진료실에서처럼 영미의 숨이 일정해졌다.
“왼쪽 아래 여섯 번, 일곱 번. 오른쪽 위 여섯 번. 때운 거 셋. 삼십사 년에 내가 잡아서 우리 원장님이 한 거.”
영미는 몸을 돌려 재오 2에게 펜라이트를 들이댔다. 재오 2가 입을 벌렸다. 영미의 손이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하나도 없어.”
“새 몸이래.”
재오 2가 입을 벌린 채 웅얼거렸고, 영미가 치경을 빼 주자 다시 말했다.
“흉터도 없고 굳은살도 없어. 눈은 일 점 오야. 지문도 달라. 처음 깼을 때 거울바이오 사람이 그러더라. 그리고 한 달쯤은 냄새가 난대.”
영미가 고개를 숙여 재오 2의 목덜미에 코를 댔다. 얼굴을 찡그렸다.
“오이.”
“배양액 냄새래.”
재오는 제 턱 아래를 만졌다. 아홉 살 때 자전거에서 떨어져 꿰맨 자리가 손끝에 오돌토돌 걸렸다. 재오 2의 턱은 매끈했다.
“그럼 기억은.”
영미가 물었다. 재오 2는 숟가락을 들어 칼국수 국물을 한 번 떠먹고 내려놓았다.
“이월 십사일 아침 열 시 이십 분. 회사 검진 버스 안에 큰 흰 통이 있었어. 머리 움직이지 말라길래 가만히 누워서, 퇴근하면 영미 초콜릿 사야지, 그 생각 했어. 그다음에 눈 뜨니까 파주였어. 물 빠지는 탱크 안. 구월 마지막 날이었대.”
“그 사이는.”
“몰라. 그래서 묻는 거야.”
재오 2가 재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부산 시식 어떻게 됐어? 차장은?”
*
재오는 숫자부터 꺼냈다. 삼월 부산 시식에 이백 명이 왔고 이 대부분이 누룽지를 한 입 먹고는 고개를 저었다는 것. 이 결과가 나온 다음 주에 차장 자리가 전략팀 서른넷짜리에게 갔다는 것. 사월부터 재오는 퇴근하면 아파트 앞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 맥주 두 캔을 마시고 열두 시에 들어왔다는 것. 유월 제주는 일 때문이라며 취소했다는 것. 일 때문이 아니었다.
영미는 끝까지 듣고 나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는 당신이 바람피우는 줄 알았어.”
“그런 거 아니야.”
“알아. 지금 알았어. 여덟 달 만에.”
재오 2가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재오보다 반 박자 빨랐다.
“너 영미한테 왜 말 안 했어?”
“너였어도 안 했어.”
“나는 너잖아. 나는 말했을 거야.”
“넌 안 떨어져 봤잖아.”
재오의 목소리가 커졌다. 영미가 재오를 보았다. 눈이 재오의 입을 보고 있었다. 화가 나면 상대 입을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재오는 입을 다물었다.
재오 2의 전화기가 울렸다. 재오 2는 스피커를 켜지 않았지만 식탁이 조용해서 다 들렸다. 지하 삼 층 숙소 관리인이었다. 자정 점호에 없으면 무단 이탈이고, 무단 이탈은 반납 사유라고 했다. 재오 2는 알겠다고 세 번 말하고 끊었다. 엄지로 검지 옆을 문질렀다.
열한 시 십 분에 재오 2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영미가 남은 칼국수를 밀폐 용기에 담아 재오 2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재오는 이것을 보았다.
“당신은 왜 여기 왔어요?”
영미가 물었다. 존댓말이었다. 재오 2는 신발 끈을 다 묶고 나서 대답했다.
“집이니까요. 이월까지는 여기 살았으니까.”
문이 닫혔다. 영미는 거실에서 담요 하나를 꺼내 소파에 던졌다.
“당신 소파.”
새벽 한 시에 안방 문이 열렸다. 재오는 담요를 턱까지 끌어올린 채 눈을 떴다. 영미가 거실 불을 켜지 않고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베란다 창으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이 영미의 얼굴 반쪽에만 닿았다.
“그 사람, 칼국수 끓이면서 당신 얘기 했어.”
“무슨 얘기.”
“당신이 요즘 힘들 거라고. 이월에 차장 발표 앞두고 잠을 못 잤으니까, 떨어졌으면 더 못 잤을 거라고. 나는 그 사람한테서 처음 들었어. 당신 얘기를. 당신 얼굴로.”
재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영미가 담요 끝을 손가락으로 말았다가 폈다.
“나 하나만 정할게. 둘 중에 나한테 거짓말 안 하는 쪽이 이 집 사람이야. 얼굴은 상관없어.”
“나는 원본이야.”
“그거 이 집에서는 아무 소용 없어.”
영미가 일어섰다. 안방 문이 닫히고, 잠기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재오는 이 문을 한참 보다가 휴대폰 알람을 네 시로 맞췄다.
*
같은 새벽 다섯 시, 지하 삼 층 복제인 숙소의 형광등이 한꺼번에 켜졌다. 재오 2는 이층 침대 아래 칸에서 눈을 떴다. 천장이 낮았고, 환풍기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나왔다. 복도를 따라 문 여덟 개가 있었고, 문마다 귀 뒤에 점이 있는 사람이 자고 있었다. 위 칸에서 류강비가 머리를 내밀었다.
“선배님, 오늘 원본님이 첫차 타고 오십니다. 백 퍼센트입니다. 저희 원본도 처음 한 달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제가 먼저 올라갔습니다. 매일요.”
재오 2는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 남자는 맨눈이었고, 턱이 매끈했고, 파란 칫솔을 물고 있었다. 재오 2는 초록색이 좋았다. 이월까지 늘 초록색을 샀다. 그러나 이 칫솔은 류강비가 사 준 것이었고, 여기서 가진 물건은 이것 하나였다.
엘리베이터는 사십 초 만에 로비에 닿았다. 출입문 앞에서 재오 2는 잠깐 멈췄다. 일산에서 첫차를 타면 지금쯤 자유로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이 버스 맨 뒷자리의 냄새까지 알았다. 졸다가 창에 머리를 찧는 것도 알았다. 얼굴을 화면에 댔다. 초록불이 켜졌다. 다섯 시 이 분이었다.
*
이 새벽 다섯 시 삼십팔 분, 재오는 첫차를 타고 오늘도 타워 앞에 섰다. 세 시간을 잤다. 사원증 대신 얼굴을 출입문에 댔다.
「심재오 님은 이미 출근하셨습니다.」
한 얼굴은 하루에 한 번 출근 처리된다. 재오는 일산에서 한 시간을 왔고, 저쪽은 엘리베이터로 사십 초를 왔다.
재오는 차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담은 차가 막히는 게 싫어서 늘 여섯 시 전에 나오는 사람이었다. 세 번 울리고 받았다.
“과장님 중에 어느 과장님이세요?”
“안경 쓴 쪽.”
“지하 이 층 물류 하역장으로 오세요. 걸리면 저도 같이 대기예요.”
하역장 셔터 아래로 몸을 숙여 들어가자 차담이 물류 엘리베이터 문을 손으로 잡고 있었다. 안에는 「달빛 누룽지」 시제품 상자가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재오는 상자 사이에 몸을 끼웠다. 볶은 쌀 냄새가 콧속을 꽉 채웠다. 엘리베이터가 덜컹하며 올라가는 동안 차담은 상자에 기대 팔짱을 꼈다.
“왜 도와줘요?”
“다음 달 열여섯이면 저도 들어갈지 몰라요. 이월에 다 스캔했다면서요. 미리 보는 거예요. 내가 나랑 싸우면 어떻게 되나.”
엘리베이터가 섰다. 오 층에서 배송 기사 하나가 수레를 밀고 타려다가 상자 틈의 재오와 눈이 마주쳤다. 기사는 수레를 도로 뺐다.
*
십사 층 재오의 책상에는 재오 2가 앉아 있었다. 의자는 하나였다. 재오는 옆 책상의 빈 의자를 끌고 와 이 옆에 붙였다. 재오 2가 키보드를 제 쪽으로 당겼다. 재오가 모니터를 제 쪽으로 돌렸다. 재오 2가 모니터를 다시 돌렸다. 팀원들은 각자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 눈만 굴렸다. 본부장은 회의실로 들어가 블라인드를 내렸다.
“비켜. 내 자리야.”
“문이 나를 들여보냈어.”
“문이 뭘 알아.”
“너보다는 일찍 와.”
류강비가 두 사람 사이에 머그잔 두 개를 내려놓았다. 하나에는 원, 하나에는 복이라고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둘은 동시에 원 잔으로 손을 뻗었다. 손등이 부딪쳤다. 커피가 키보드 위로 출렁였다.
재오 2가 휴지로 키보드를 닦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편의점 본부 상품 담당 부장에게 거는 전화였다. 이월에 재오가 겨울 매대 이야기를 꺼내 놓았던 사람이었다. 재오 2는 신호가 가는 동안 인사말을 입속으로 연습했다. 이 인사말도 재오의 것이었다.
“그 사람 없어.”
재오가 말했다. 재오 2가 재오를 보았다.
“오월에 그만뒀어. 지금은 그 밑에 있던 과장이 올라갔고, 그 사람은 누룽지를 싫어해. 할머니 생각난다고. 내가 유월에 그 앞에서 한 시간 동안 깨졌어.”
재오 2는 전화를 끊었다. 한참 재오를 보다가 메모지를 한 장 뜯어 이 앞으로 밀었다.
“또 뭐 바뀌었어. 이월 다음에.”
“안 가르쳐 줘.”
“그럼 금요일에 네가 그걸로 이기겠네.”
재오 2가 피식 웃었다. 재오도 웃을 뻔했다. 이 웃음이 어떤 모양으로 터질지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미주가 인사본부장을 데리고 걸어 나왔다. 사무실 한가운데까지 와서 두 재오를 내려다보았다. 한미주의 회색 정장 어깨에 또 쌀가루가 묻어 있었다.
“두 분 다 계시네요. 문은 한 분만 들였는데.”
차담이 모니터 뒤로 고개를 숙였다. 한미주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세 시, 삼십이 층. 「달빛 누룽지」 겨울 캠페인 시안을 둘이 따로 가져오세요. 이기는 쪽이 이 책상이에요. 원본이 지면 무기한 대기, 복제가 지면 반납. 규정상 한 자리에 한 사람이니까요.”
인사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미주는 재오가 끌어온 의자를 재오 2의 의자 옆에 가지런히 붙여 놓았다. 팔걸이와 팔걸이가 맞닿았다.
“금요일까지는 같이 쓰세요.”
“하겠습니다.”
재오 2가 곧바로 말했다. 너무 빨랐다. 재오는 옆을 보았다. 재오 2의 오른손 엄지가 책상 아래에서 검지 옆을 쉬지 않고 문지르고 있었다. 반납이라는 말이 나온 뒤부터였다.
한미주가 재오에게 고개를 돌렸다.
“원본은요?”
재오는 이 엄지를 한 번 더 보았다. 그러고 나서 의자 등받이를 붙잡았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