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84자)
한 쌍씩
내 복제인간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 류세온
한강공원 무대에서 재오가 한미주의 옷깃 마이크에 대고 한 말은 두 마디였다. 걸어가겠습니다, 본사까지. 반납하실 거면 거기서 하세요. 한미주는 마이크를 끄지 않았다. 이 두 마디가 잔디밭 스피커로 다 나갔고, 기자들이 받아 적었다. 철판 둘레의 예순넷이 앞치마를 두른 채 여의도 대로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타다 만 누룽지가 철판 위에 남았다.
*
십이월 십일일 새벽 열두 시 사십 분, 오늘도 타워 앞 도로에 흰 승합차 여섯 대가 줄지어 섰다. 비상등이 엇박자로 깜박여 회전문 유리에 주황빛이 번졌다. 로비 안쪽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본부장이 태블릿을 들고 서 있었다. 규정상 반납 대상 복제는 지하 삼 층 숙소에 모여 있다가 순서대로 차에 오른다.
아무도 지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한강공원에서 이 킬로미터를 걸어온 복제 예순넷이 앞치마를 두른 채 로비 대리석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몇은 뒤집개를 아직 쥐고 있었다. 탄내가 이들의 머리카락과 앞치마에서 풍겨 로비에 가득 찼다. 재오 2와 재오 3과 두 강비가 이들 맨 앞에 앉았다. 재오는 이 옆에 서 있었다. 영미가 재오 3의 데워진 손에 새 핫팩을 쥐여 주고 있었다.
로비 한가운데에는 바퀴 달린 운반대가 서 있었다. 이 위에 창업주의 무쇠 판이 놓여 있었다. 행사장에서 실어 온 그대로였고, 유리장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 판 가장자리에 탄 쌀 부스러기가 검게 붙어 있었다.
회수 기사 둘이 회전문으로 들어왔다. 키 큰 기사와 안경 쓴 기사였다. 키 큰 기사가 로비 바닥의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재오를 알아보았다. 재오의 턱 아래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흉터를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예순 명이 넘네요. 차가 모자라는데요.”
“두 번 왕복하시면 됩니다. 규정상.”
인사본부장이 말했다. 십일 년 동안 이 말을 수천 번 했지만, 오늘 처음으로 「규정상」 끝이 흔들렸다. 인사본부장의 얼굴도 일월 무리에 들어 있었다. 탱크 속에서 석 달째 자라고 있는 얼굴이었다. 안경 쓴 기사가 로비 바닥의 사람들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혔다.
“지하로 내려가 주세요. 여기서 모시면 저희가 혼납니다.”
앉은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디자인팀 막내 2가 뒤집개를 무릎 위에 가로로 올려놓았다.
*
새벽 한 시 오 분, 회전문이 돌았다. 잠옷 바지에 패딩 점퍼를 걸친 남자가 들어왔다. 디자인팀 막내였다. 로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닥의 제 얼굴을 찾아 이 옆에 섰다. 막내 2가 고개를 들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전문이 또 돌았다. 영업 지원 과장이 실내화를 신은 채 들어와 과장 2 옆에 섰다. 다음은 경비팀 넷이었다. 젊은 경비가 맨 앞이었고, 바닥에 앉은 제 얼굴을 보자 잠시 망설이다가 이 옆에 섰다. 젊은 경비 2가 원본을 올려다보며 놀이터에 가 봤느냐고 물었다. 젊은 경비는 가 봤다고, 진짜 다 원본이더라고 대답했다.
차담이 회전문 옆에서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차담이 열한 시 반에 대기 원본들의 단체 대화방에 한 줄을 올렸다. 지금 로비로 오세요, 복제가 반납됩니다. 열두 시부터 택시들이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한 시 사십 분에는 로비가 찼다. 바닥에 앉은 사람마다 이 옆에 같은 얼굴이 하나씩 서 있었다. 잠옷 차림, 등산복 차림, 아이를 업고 온 사람도 있었다. 회계팀 대리였다. 바닥에 앉은 제 복제 옆에 서자, 등에 업힌 아이가 두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업은 쪽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복제가 손을 내밀자 아이는 고개를 돌려 엄마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오이 냄새가 싫다는 얼굴이었다. 복제가 웃었고, 대리도 웃었다. 대리석 바닥과 유리벽과 엘리베이터 문에 같은 얼굴 두 개씩이 줄줄이 비쳤다. 차담은 차담 2 옆에 섰다. 차담 2가 차담의 손목에 걸린 은행 팔찌를 보았다. 아직 돌려주지 못한 팔찌였다.
“대표님 오셨습니다.”
경비 반장이 말했다. 반장도 다음 무리에 들어 있었다.
한미주가 회전문으로 들어왔다. 앞치마는 벗었고 회색 정장만 입었다. 로비 한가운데까지 걸어와 사람들을 보았다. 한 쌍, 또 한 쌍. 한미주가 이름까지 다 아는 직원들이 둘씩 있었다.
차담이 먼저 나섰다. 한미주 앞에 서서 말했다.
“마케팅팀 차담입니다. 이월 십사일 검진 때 한 복제 동의를 거둡니다. 지금, 대표님 앞에서요.”
한미주가 고개를 기울였다.
“거두시면 차담 2 씨는 반납이에요. 어차피 오늘 밤 반납이지만.”
“알아요. 그래도 거둬요. 그럼 회사가 저를 하나 더 만들 수는 없잖아요. 차담 3은 없어요. 차담 2가 탱크에 들어가도 그 자리에 다음 차담이 안 앉아요.”
차담이 한 걸음 물러섰다. 디자인팀 막내가 앞으로 나왔다. 같은 말을 했다. 동의를 거둡니다. 영업 지원 과장이 같은 말을 했다. 젊은 경비가 같은 말을 했다. 한 쌍씩, 원본이 앞으로 나와 한미주 앞에서 이 말을 하고 제 복제 옆으로 돌아갔다. 인사본부장이 태블릿을 두드리다가 손을 멈췄다. 이름을 받아 적을 틈이 없었다. 결국 태블릿을 내려놓고 사람들의 얼굴을 셌다.
재오가 마지막으로 나섰다.
“심재오입니다. 원본이고요. 거둡니다. 재오 4는 없어요.”
한미주는 재오를 보았다. 눈이 재오 2와 재오 3을 지나 다시 재오에게 왔다.
“그래도 오늘 밤 반납은 해요. 동의를 거두면 있던 복제는 반납이니까. 법대로요.”
“그럼 저희 자리도 반납하세요. 지금 이 로비에 서 있는 원본이 예순이 넘어요. 내일 아침 그 자리를 다 없애 보세요. 조직 개편으로.”
*
안경 쓴 기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받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몇 번 대답하다가 휴대폰을 키 큰 기사에게 넘겼다. 키 큰 기사가 스피커를 켰다. 보배의 목소리가 로비에 울렸다.
“파주예요. 나 낮 근무인데 지금 여기 와 있어. 야간 기사 다섯 다 같이 있고. 회장님 들으세요? 오늘 밤 동면실 문 안 열어요. 들어오는 차 받으면 우리가 다 그만둘 거예요. 탱크 눈썹 자라는 거 보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어요. 우리 없으면 그 탱크들 그냥 얼어 죽어요.”
로비가 조용했다. 키 큰 기사가 휴대폰을 안경 쓴 기사에게 돌려주고, 고무장갑을 벗어 운반대 옆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도 오늘은 안 싣습니다. 때운 이 있는 분이든 없는 분이든요.”
회전문 밖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한강공원에서 따라온 기자 둘이 유리벽에 붙어 서 있었다.
한미주는 장갑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맨 앞줄의 재오 2 앞에 섰다. 한미주가 재오 2의 팔을 잡았다. 맨손이었다.
“일어나요. 내가 태울게요.”
재오 2가 한미주를 올려다보았다. 일어서지 않았다. 한미주가 팔을 당겼다. 쉰 살 대표의 힘으로는 서른여덟 살 남자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미주는 한 번 더 당겼다. 회색 정장 어깨의 솔기가 당겨지며 쌀가루가 떨어졌다.
재오가 운반대로 갔다. 무쇠 판 가장자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차가웠고,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혼자서는 들리지 않았다. 재오 2가 한미주의 손을 놓게 하고 일어나 판의 맞은편 가장자리를 잡았다. 둘은 같은 숨에 들어 올렸다. 무쇠 판이 운반대에서 떨어져 나왔다. 두 사람은 이것을 한미주와 바닥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 세로로 세워 놓았다. 둥근 검은 쇠가 이 사이에 섰다. 쇠에 한미주의 얼굴이 동그랗게 비쳤다.
“대표님 아버지 판이에요.”
재오가 말했다. 숨이 찼다.
“열다섯 살 때 정문 옆에 서 계셨다면서요. 그날 얘기 끝까지 해 주세요. 행사장에선 정문까지만 하셨잖아요.”
한미주는 무쇠 판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다. 오래 말하지 않았다. 회전문 밖의 비상등이 판 위에 주황빛을 번갈아 떨어뜨렸다.
“마지막으로 나간 아저씨가 있었어요.”
한미주가 말했다. 행사장 무대에서보다 목소리가 한참 낮았다.
“포장 반장님이었어요. 정문을 나가다가 나를 보고 돌아왔어요. 작업복 주머니에서 누룽지 한 조각을 꺼내서 내 손바닥에 올려놨어요. 접시도 없이. 너네 아빠 판에서 구운 거다, 그러고 나갔어요. 그다음부터 나는 이걸 손바닥에 놓고 먹어요. 그 사람이 내 손바닥에 놓고 갔으니까.”
한미주는 빈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다시는 그 정문을 안 보려고 했어요. 아무도 안 나가게. 원본은 집에 있고 복제는 숙소에 있으면 아무도 정문으로 안 나가요. 그런데…….”
한미주가 고개를 들어 회전문 쪽을 보았다. 회전문 밖에 흰 승합차 여섯 대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었다. 로비 바닥의 사람들이 이 차를 향해 줄을 서야 하는 자리였다. 회전문은 정문이었다.
“본사 복제 중단합니다.”
한미주가 말했다. 인사본부장이 고개를 들었다.
“일월 무리는 깨우지 않아요. 오늘 반납도 안 해요. 회수 차 돌려보내요. 지금 있는 복제는 숙소로 돌아가고, 원본은 집으로 가세요. 자리는 내일부터 다시 정해요.”
로비가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웃었다. 젊은 경비 2였다. 이 웃음에 젊은 경비가 따라 웃었고, 한 쌍씩 같은 웃음이 터졌다. 로비 유리벽에 웃는 얼굴이 둘씩 짝지어 비쳤다. 첫 번째 강비가 손을 들었다.
“그럼 월급은요?”
“내일 정해요.”
한미주가 말했다. 무쇠 판을 다시 보았다. 그러고는 재오에게 몸을 돌렸다. 로비 사람들은 듣지 못하게, 무쇠 판 가까이에서.
“회사 안에서는 졌어요. 그럼 법을 바꾸죠.”
*
아침 아홉 시, 무쇠 판은 다시 로비 유리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 밤새 판 가장자리의 탄 쌀을 닦아 냈다. 재오와 재오 2는 유리장 앞에 서 있었다. 둘 다 사우나에서 한 시간을 잤다. 같은 사우나, 같은 매트였다. 재오는 오늘 새벽 출입문에서 재오 2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재오 2는 다시 등록이 되어 있었다. 새벽 세 시에 한미주가 인사본부장을 시켜 해 둔 일이었다. 예약이 십만을 넘었으니까. 한미주는 숫자는 지키는 사람이었다. 출입문이 재오 2를 들였다.
로비 대형 화면에 아침 뉴스가 떴다. 「복제 직원법 개정안 발의 — 원본 동의·귀 뒤 표식 폐지, 한 사람에 복제 여럿 허용, 복제 반납 금지」 이 아래 자막에 간편식 업계 협의회가 개정안을 지지한다는 문장이 지나갔다. 협의회 회장 이름은 한미주였다.
“반납 금지?”
재오 2가 화면을 읽으며 중얼거렸다. 재오가 이 줄을 다시 읽었다. 원본의 동의 없이 몇이든 만들 수 있고, 한 번 만든 복제는 탱크에 넣을 수 없다. 원본은 막을 길이 없어지고, 복제는 끝날 길이 없어진다.
한미주가 회전문으로 들어왔다. 회색 정장, 맨손바닥에 누룽지 한 조각. 뒤이어 재오 3이 따라 들어왔다. 새 남색 정장이었고, 손에 핫팩이 없었다. 손은 아직 떨렸지만 두 손을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너 왜 거기 있어?”
재오가 물었다. 재오 3이 대형 화면을 턱으로 가리켰다.
“반납 금지. 그거 하나 보고. 이 법 통과되면 나는 다시는 탱크에 안 들어가. 너희가 약속 안 지켜도.”
“대신 재오 4, 재오 5가 생겨.”
“생기면 걔들도 안 들어가.”
재오 3이 말했다. 깬 지 쉰나흘 된 목소리가 이제 갈라지지 않았다. 한미주는 유리장 앞의 두 사람 앞에 멈췄다. 누룽지를 이로 끊고 나서 말했다.
“다음 달 국회 공청회에 원본 진술인이 한 명 필요해요. 저쪽에서 부르는 거예요. 우리 쪽은 재오 3 씨가 나가요. 행복한 복제로요. 그쪽은 누가 나오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