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71자)

진술인 심재오

내 복제인간이 나보다 일을 잘한다 · 류세온

십이월 중순부터 신문은 개정안을 ‘⁠오늘도 법⁠’이라고 불렀다⁠. 간편식 업계 협의회 열한 곳에 은행 넷⁠, 보험사 셋⁠, 통신사 둘이 지지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한 달 만에 서른두 곳이었다⁠. 원본 동의는 없앤다⁠. 귀 뒤의 점도 없앤다⁠, 차별이니까⁠. 한 사람에 복제는 몇이든 된다⁠. 대신 한 번 깬 복제는 반납할 수 없다⁠. 성명서 맨 위에는 이 마지막 줄이 굵게 적혀 있었다⁠. 「⁠복제도 사람입니다⁠. 탱크로 돌려보내지 않겠습니다⁠.⁠」

일산 백석동 치과 원장은 이 성명서를 대기실 벽에 붙였다⁠. 원장은 영미를 원장실로 불러 신문을 펼쳐 보였다⁠.

“⁠이거 통과되면 동의 없어도 된대⁠. 내년 봄 협회 검진 때 선생님도 그냥 하나 생기는 거야⁠. 그럼 오후는 걔가 하고⁠. 걔는 반납도 안 돼⁠. 평생 고용이야⁠. 좋잖아⁠.⁠”

“⁠저는 안 가요⁠. 검진⁠.⁠”

“⁠검진은 의무야⁠, 선생님⁠. 위생사 면허 갱신할 때⁠.⁠”

영미는 원장실을 나와 소독실 유리문 앞에 섰다⁠. 거기 비친 얼굴 하나를 한참 보았다⁠. 내년 봄이면 이 유리에 얼굴이 둘 비칠 수도 있었다⁠. 영미는 소독기 문을 열어 이 얼굴을 지웠다⁠.

*

일월 첫 주 금요일 밤⁠, 일산 아파트 식탁에 넷이 앉았다⁠. 재오⁠, 재오 2⁠, 영미⁠, 그리고 숙소에서 외박계를 내고 온 류강비⁠. 첫 번째 강비는 소파에서 분홍 수건을 개고 있었다⁠. 회사 숙소에 방을 얻었지만 주말마다 이 집에 와서 빨래를 갰다⁠. 월급 대신 귤을 받았다⁠.

식탁 위에 차담이 보낸 문자가 떠 있었다⁠. 야당 간사 의원실 보좌관이 보낸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일월 십오일 수요일 오후 두 시⁠, 국회 노동 담당 상임위원회 공청회⁠. 원본 쪽 진술인 한 명⁠, 심재오⁠.

“⁠내가 갈게⁠.⁠”

재오와 재오 2가 동시에 말했다⁠. 류강비가 손뼉을 쳤다가 영미의 눈빛에 손을 내렸다⁠.

“⁠원본을 부르는 거야⁠. 원본이 가야지⁠.⁠”

재오가 말했다⁠.

“⁠원본은 여덟 달 동안 아무 말도 안 했잖아⁠. 말한 건 나야⁠. 무대에서도⁠.⁠”

“⁠무대에선 둘이 같이 했어⁠.⁠”

“⁠그럼 국회에서도 같이 해⁠.⁠”

재오 2가 말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재오도 입을 다물었다⁠. 영미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펜라이트를 꺼내지 않았다⁠.

“⁠전에는 손으로 동그라미 그리는 쪽이 2였어⁠. 이제 둘 다 그려⁠. 설거지하면서 노래하는 쪽도 2였는데 이제 둘 다 해⁠. 당신들 이제 나도 못 가려⁠.⁠”

영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셌다⁠. 때운 이는 재오 2가 지난달 사탕을 깨물다 금이 가서 치과에서 하나 때웠다⁠. 오이 냄새는 두 달 만에 빠졌다⁠. 턱의 흉터와 데인 손가락은 아직 남았지만⁠, 그건 불을 켜고 들여다봐야 보였다⁠. 설거지⁠, 노래⁠. 한 손의 손가락 다섯이 다 접혔다⁠. 다른 손의 검지 하나를 들어 보였다⁠.

“⁠나한테 거짓말 안 하는 쪽⁠. 이건 둘 다 맞아⁠. 그러니까 둘 다 가⁠.⁠”

재오 2의 휴대폰이 울렸다⁠. 인사팀 알림이었다⁠. 화면을 식탁 가운데로 밀었다⁠. 일월 십오일 수요일⁠, 부산 유통 거점 출장⁠. 오전 아홉 시 고속열차⁠. 대표 지시⁠.

“⁠공청회 날이네⁠.⁠”

류강비가 말했다⁠.

“⁠출장 빼먹으면 근무지 무단 이탈이고⁠, 무단 이탈은 반납 사유예요⁠. 지금 법으로는요⁠.⁠”

재오 2가 휴대폰 화면을 엎었다⁠.

“⁠지금 법으로는⁠.⁠”

*

일월 십오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서울역 고속열차 승강장에 재오 2가 서 있었다⁠. 부산행 열차가 문을 열어 두고 있었다⁠. 손에 승차권이 있었다⁠. 열차 유리창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귀 뒤의 점은 코트 깃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승강장 계단에서 인사본부장이 내려왔다⁠. 태블릿을 가슴에 안고⁠, 숨이 조금 차 있었다⁠. 재오 2 앞에 서서 열차와 승차권과 재오 2의 얼굴을 차례로 보았다⁠.

“⁠대표님이 타시는 것까지 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규정상⁠.⁠”

“⁠안 탈 건데요⁠.⁠”

“⁠압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인사본부장은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에 일월 무리 얼굴들이 작게 떠 있었다⁠. 깨우지 않기로 한 예순넷이었다⁠. 이 가운데 하나를 손가락으로 눌러 크게 띄웠다⁠. 쉰여섯 살 남자의 얼굴이었다⁠. 자기 얼굴이었다⁠.

“⁠제 얼굴이 파주 탱크에서 넉 달을 다 채웠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대표님은 일월 무리를 깨우실 겁니다⁠. 깨우면 반납이 안 되니까 그 사람은 평생 제 자리에 앉고⁠, 저는 평생 집에 있겠죠⁠. 저는 십일 년 동안 남한테 「⁠규정상⁠」이라고 했는데⁠, 이제 그 말을 들을 차례입니다⁠.⁠”

열차 출발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인사본부장이 재오 2의 손에서 승차권을 받아 갔다⁠.

“⁠부산 출장 보고서는 제가 쓰겠습니다⁠. 거점 상황 이상 없음⁠. 규정상⁠.⁠”

재오 2는 인사본부장을 보았다⁠. 시월 첫 월요일 회의실에서 대기 발령을 읽던 남자였다⁠. 이 남자가 지금 승차권을 쥔 채 열차 문 앞에 서 있었다⁠.

“⁠같이 가실래요⁠? 국회⁠.⁠”

“⁠저는 방청석 뒤에 서 있겠습니다⁠. 앉으면 규정 위반 같아서요⁠.⁠”

열차 문이 닫혔다⁠. 인사본부장은 떠나는 열차 창에 비친 제 얼굴을 끝까지 보고 나서 계단을 올라갔다⁠.

*

일월 십오일 오후 한 시 이십 분⁠, 국회 본관 앞 계단에 눈발이 날렸다⁠. 출입문 앞에 방문객 줄이 길었다⁠. 공청회 방청객과 기자⁠, 진술인과 이 수행원들이었다⁠. 귀 뒤에 점이 있는 사람이 절반쯤 되었다⁠. 서른두 곳 회사들이 보낸 복제들이었다⁠. 손에 「⁠반납 금지⁠」라고 적힌 작은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출입문은 얼굴로 열렸다⁠. 진술인으로 등록된 얼굴은 하나⁠, 심재오였다⁠.

재오 2가 먼저 화면에 얼굴을 댔다⁠. 초록불이 켜졌다⁠. 문을 지나 안쪽에서 돌아섰다⁠. 재오가 얼굴을 댔다⁠. 화면이 노래졌다⁠.

「⁠심재오 님은 이미 입장하셨습니다⁠.⁠」

재오는 노란 글씨를 보며 웃었다⁠. 시월 첫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사십일 분에 처음 본 글씨였다⁠. 당시에는 숨이 막혔는데⁠, 지금은 웃음이 났다⁠. 뒤에 줄 선 사람들이 재오를 이상하게 보았다⁠.

국회 경비가 다가왔다⁠. 재오의 신분증을 받아 들고 휴대 단말기를 내밀었다⁠.

“⁠지문 대 주세요⁠.⁠”

재오가 오른손 검지를 댔다⁠. 단말기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경비가 신분증 사진과 재오의 얼굴을 맞춰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 맞으시네요⁠. 그럼 아까 들어가신 분은요⁠?⁠”

경비가 문 안쪽의 재오 2를 손짓으로 불러냈다⁠. 재오 2가 돌아 나와 단말기에 검지를 댔다⁠. 왼손 검지였다⁠. 반달 모양의 분홍 자국이 단말기 유리에 눌렸다⁠.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문이 다르네요⁠. 이분은 진술인이 아니세요⁠. 못 들어가세요⁠.⁠”

“⁠이 사람이 진술할 사람이에요⁠.⁠”

재오가 말했다⁠.

“⁠등록은 한 분이세요⁠.⁠”

“⁠그럼 저도 안 들어갑니다⁠.⁠”

경비가 재오를 보았다⁠. 줄 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기자 하나가 카메라를 들었다⁠. 재오는 신분증을 돌려받아 주머니에 넣고 출입문 밖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재오 2 옆이었다⁠. 둘은 눈발 속에 나란히 섰다⁠. 재오 2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바보야⁠. 너만 들어가면 되잖아⁠.⁠”

“⁠시월에 문이 나를 안 들였을 때 너는 엘리베이터로 사십 초 만에 들어갔어⁠. 나는 하역장으로 기어 들어갔고⁠. 이번엔 같이 들어가⁠.⁠”

“⁠그때도 같이 들어가면 됐잖아⁠.⁠”

“⁠그때는 몰랐지⁠.⁠”

계단 위에서 차담이 뛰어 내려왔다⁠. 뒤에 의원실 보좌관이 서류철을 안고 따라왔다⁠. 보좌관이 경비에게 방청권 한 장을 내밀었다⁠. 경비는 방청권과 재오 2의 얼굴과 재오의 얼굴을 차례로 보았다⁠.

“⁠방청인은 들어가시는데⁠, 진술석엔 못 앉으세요⁠.⁠”

“⁠앉는 건 들어가서 정할게요⁠.⁠”

재오가 말했다⁠. 경비는 한숨을 쉬고 출입 차단봉을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이 함께 문을 지났다⁠. 차담이 뒤에서 중얼거렸다⁠. 하나가 둘인 척하는 건 봤어도 둘이 하나인 척하는 건 처음 보네⁠.

*

공청회장 앞 복도는 사람이 가득했다⁠. 서른두 곳 회사의 임원들과 이 옆에 선 복제들⁠, 원본 단체에서 나온 사람 몇⁠, 기자들⁠. 복도 끝 공청회장 문 앞에 한미주가 서 있었다⁠. 회색 정장에 코트를 팔에 걸쳤고⁠, 맨손바닥에 누룽지 한 조각이 있었다⁠. 재오 3이 한미주의 반걸음 뒤에 서 있었다⁠.

한미주가 두 사람을 보았다⁠. 눈이 재오 2에게서 멈췄다⁠.

“⁠재오 2 씨는 오늘 부산 출장인데요⁠.⁠”

“⁠압니다⁠.⁠”

“⁠근무지 무단 이탈이에요⁠. 반납 사유고요⁠.⁠”

재오 2가 공청회장 문 옆 벽에 붙은 개정안 요약문을 턱으로 가리켰다⁠. 맨 아랫줄이 굵게 적혀 있었다⁠. 복제 반납 금지⁠.

“⁠대표님 법 통과되면 반납 못 하시잖아요⁠. 저 그 법 덕분에 오늘 여기 온 거예요⁠.⁠”

복도에 있던 기자 몇이 웃음을 참았다⁠. 한미주는 웃지 않았다⁠. 누룽지를 이로 끊고 천천히 씹었다⁠. 볶은 쌀 냄새가 복도에 퍼졌다⁠.

“⁠아직 통과 안 됐어요⁠.⁠”

“⁠그러니까 오늘 왔죠⁠. 통과되기 전에⁠.⁠”

재오 3이 두 사람을 보았다⁠. 귀 뒤의 점은 이제 오래된 점처럼 푸르스름했다⁠. 손은 아직 조금 떨렸지만⁠, 손을 감추지 않았다⁠. 재오 3이 재오에게 말했다⁠.

“⁠나는 이 법이 통과되면 다시는 안 들어가⁠. 너희가 막으면 나는 들어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너희 반대편이야⁠.⁠”

“⁠알아⁠.⁠”

재오가 말했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 너 다시 안 넣어⁠. 법이 있든 없든⁠.⁠”

재오 3이 재오를 한참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공청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미주가 뒤따랐다⁠. 문이 닫히기 전에 한미주가 돌아보았다⁠.

“⁠그쪽 진술석은 하나예요⁠.⁠”

*

공청회장은 계단식이었다⁠. 앞쪽 단상에 위원장과 위원들이 앉았고⁠, 이 아래 진술석 넷이 반원으로 놓였다⁠. 업계 쪽 진술석에 한미주가 앉았고 이 옆 보조석에 재오 3이 앉았다⁠. 반대편 진술석 하나는 비어 있었다⁠. 방청석은 꽉 찼다⁠. 귀 뒤에 점이 있는 사람들이 손팻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카메라 넷이 진술석을 겨누고 있었다⁠.

재오와 재오 2는 방청석 맨 앞줄 끝에 나란히 앉았다⁠. 차담이 두 사람 뒤에 앉았다⁠. 방청석 뒤쪽에 영미가 있었다⁠. 오후 진료를 빼고 왔다⁠. 영미 옆에 류강비와 첫 번째 강비가 있었다⁠. 첫 번째 강비는 무릎 위에 귤 하나를 올려놓고 있었다⁠. 방청석 맨 뒤 벽에는 인사본부장이 태블릿을 가슴에 안고 서 있었다⁠. 끝내 앉지 않았다⁠.

위원장이 마이크를 두드렸다⁠. 안경을 내려 쓰고 진술석 쪽을 내려다보았다⁠.

“⁠지금부터 복제 직원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한 공청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업계 쪽 진술인으로 간편식 업계 협의회 한미주 회장님⁠, 그리고 보조 진술인으로 복제인 당사자 한 분이 나오셨습니다⁠.⁠”

한미주가 고개를 숙였다⁠. 재오 3도 따라 숙였다⁠. 방청석의 복제들이 박수를 쳤다⁠. 위원장이 손을 들어 박수를 멈추게 했다⁠. 반대편 빈 진술석을 보았다⁠.

“⁠다음은 원본 쪽 진술인입니다⁠. 심재오 진술인⁠,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재오가 일어섰다⁠. 이 옆에서 재오 2가 일어섰다⁠. 같은 높이⁠, 같은 각도⁠, 같은 남색 정장이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위원장이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업계 쪽 진술석 보조석에서 재오 3이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섰다⁠. 한미주가 재오 3을 올려다보았다⁠. 재오 3은 한미주를 보지 않았다⁠. 방청석 맨 앞줄의 두 얼굴을 보고 있었다⁠.

카메라 넷이 한꺼번에 돌아갔다⁠. 공청회장 안에 심재오가 셋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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