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411자)

단상 앞의 망치

무림 고수들에게 수리비 받기 · 권무한

차일 안은 바깥보다 서늘했다⁠. 의자 하나⁠, 낮은 탁자 하나⁠, 탁자 위에 찻잔 둘⁠. 가주는 앉으라고 하지 않았다⁠. 바우는 볼기 맞은 엉덩이 때문에 앉을 수도 없었다⁠. 설백천은 가주 의자 뒤에 서서 두 손을 소매 속에 넣고 있었다⁠. 한나절 전까지 심판 줄에 섰던 사람이 이제 이 자리에 있었다⁠.

가주가 먼저 찻잔을 들었다⁠. 손등에 검버섯이 피어 있었지만 찻잔은 떨리지 않았다⁠.

“⁠목수⁠, 볼기는 아프오⁠?⁠”

“⁠예⁠.⁠”

“⁠거짓 한 가지에 열 대⁠. 그 법도는 내 할아버지가 정했소⁠. 강남 무림이 서로의 돈을 떼먹다 칼부림이 나서⁠, 단상을 빚 없는 사람만 밟게 하자고⁠.⁠”

가주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그 단상을 이 교장에 영영 세우려 하오⁠. 십 년마다가 아니라 해마다⁠. 강남 고수들이 해마다 소요진에 모이고⁠, 합비 사람들이 해마다 구경하러 올라오고⁠, 나루에는 세가의 배가 닿는 대회장⁠. 그러려면 교장 아래 거리가 필요하오⁠. 관람석과 고수들 숙소와 세가 별원을 지을 땅이⁠.⁠”

“⁠거리 사람들이 살아요⁠.⁠”

“⁠그래서 설 방주에게 맡겼소⁠. 무너진 집만 사라고 했지⁠, 무너뜨리라고는 하지 않았소⁠.⁠”

설백천은 얼굴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설백천의 눈이 가주의 뒤통수에 한 번 머물렀다가 내려갔다⁠. 가주가 말을 이었다⁠.

“⁠설 방주는 졌소⁠. 그러니 이제 내가 하겠소⁠. 목수⁠, 대회장 목수가 되시오⁠. 관람석 열두 줄과 숙소 다섯 동을 짓는 일이오⁠. 은자 천 냥이오⁠. 거리 집주인들에게는 세가가 집마다 쉰 냥씩 치르겠소⁠. 철혈방이 처음에 부른 값보다 많소⁠.⁠”

바우는 천 냥이 얼마인지 손바닥으로 재 보려고 했다⁠. 잴 수가 없었다⁠. 대신 첫날 밤 버들객잔 마당에서 느티나무 대패질을 할 때 손바닥에 걸리던 높낮이가 떠올랐다⁠. 손바닥에 걸리는 데가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대패를 밀던 밤이었다⁠.

“⁠안 할게요⁠.⁠”

“⁠왜⁠?⁠”

“⁠거리 사람들이 안 판다잖아요⁠.⁠”

“⁠팔지 않아도 되오⁠.⁠”

가주가 말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내일 아침 개막 때 단상 아래에서 내가 말하겠소⁠. 그때 거리 사람들이 듣고 정하면 되오⁠.⁠”

가주는 손을 저었다⁠. 집사가 차일 자락을 걷었다⁠. 바우가 나가려다 돌아보았다⁠.

“⁠가주님⁠, 방주님이 저한테 갚은 삼백 냥이요⁠.⁠”

“⁠내 돈이오⁠. 거리 사람들은 내 돈으로 제 집을 되샀소⁠.⁠”

“⁠방주님이 갚은 거예요⁠. 누구 돈을 빌려서 갚았는지는 방주님 사정이고요⁠.⁠”

가주가 처음으로 바우를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조금 웃었다⁠.

“⁠목수는 셈이 정직하구려⁠. 정직한 셈은 늘 작소⁠.⁠”

*

바우는 이 밤 소호 어귀로 내려갔다⁠. 개막 날 해 질 때까지 갚기로 한 외상 열 냥을 허리에 찬 채였다⁠. 짐배 사공은 이번에도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바우가 억지로 동전 서른 닢을 쥐여 주었다⁠. 쇠도끼가 준 불값이었다⁠.

뗏목 영감은 모닥불 옆에 앉아 있었다⁠. 바우가 은자 열 냥을 내밀자 영감이 눈을 껌벅였다⁠.

“⁠하루 일찍 왔네⁠. 자네 기둥 뽑을 연장 다 챙겨 놨는데⁠.⁠”

“⁠뽑을 기둥이 남의 집에 있다니까요⁠.⁠”

영감은 은자를 세어 품에 넣었다⁠. 그리고 모닥불을 쑤셨다⁠.

“⁠자네한테 팔 나무는 이제 없어⁠.⁠”

“⁠다음 뗏목은요⁠?⁠”

“⁠올가을 소호로 내려올 뗏목 다섯이 다 팔렸어⁠. 오늘 낮에 금릉에서 사람이 왔어⁠. 호연세가라던데⁠. 한 그루에 세 냥을 쳐 줬어⁠. 대회장에 뭘 크게 짓는다더군⁠.⁠”

바우는 모닥불을 보았다⁠. 불티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꺼졌다⁠. 목재 시장이 비던 날 아침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철혈방이었다⁠. 이번에는 금릉이었다⁠.

“⁠영감님⁠, 그 다섯 뗏목에 몇 그루예요⁠?⁠”

“⁠이백⁠.⁠”

이백 그루면 관람석 열두 줄이 섰다⁠. 객잔 거리 마흔 채를 다시 지을 나무이기도 했다⁠.

*

버들객잔 대청에 거리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오길까지 와 있었다⁠. 오길은 다리에 부목을 대고 대청 구석에 앉았다⁠. 아무도 오길을 쫓아내지 않았다⁠.

바우가 차일 안에서 들은 말을 전했다⁠. 해마다 여는 대회장⁠, 관람석과 숙소와 별원⁠, 집마다 쉰 냥⁠. 쉰 냥이라는 말에 대청이 술렁였다⁠.

“⁠쉰 냥이면 철혈방이 부른 값보다 많은데⁠.⁠”

옹기전 주인이 중얼거렸다⁠. 떡집 주인이 바우를 보았다⁠.

“⁠옹기전⁠, 그 쉰 냥으로 어디 가서 가마를 다시 앉혀⁠?⁠”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쉰 냥 받고 성 안에 들어가서⁠—⁠”

“⁠성 안에 가마 앉힐 데가 어디 있어⁠.⁠”

찻집 주인이 손을 들었다⁠.

“⁠나는 안 팔아⁠. 지붕 네 번 고친 집을 왜 팔아⁠. 다섯 번째는 내가 안 놀랄 거야⁠.⁠”

대청에 웃음이 났다⁠. 소란이 탁자를 짚고 일어섰다⁠.

“⁠가주는 방주랑 달라요⁠. 방주는 집을 무너뜨려서 샀어요⁠. 가주는 안 무너뜨려도 사요⁠. 그게 더 무서워요⁠.⁠”

오길이 구석에서 입을 열었다⁠.

“⁠하 사장 말이 맞소⁠. 방주는 땅을 샀지만 가주는 법도를 정하오⁠. 대회장 둘레 질서를 세가가 맡는 동안은⁠, 세가가 비무라고 하면 비무요⁠. 날마다 비무가 나면 다들 쉰 냥에 팔게 될 거요⁠.⁠”

대청이 조용해졌다⁠. 바우는 대들보를 올려다보았다⁠. 첫날 밤 올린 느티나무가 등잔 불빛 속에서 노랗게 떠 있었다⁠. 손을 들었다⁠.

“⁠저는 안 팔아요⁠. 팔 집도 없지만요⁠.⁠”

마석공이 따라 손을 들었다⁠.

“⁠저도요⁠. 저는 집이 없어서 더 안 팔아요⁠.⁠”

찻집 주인이 다시 손을 들었다⁠. 기름집 영감이 할멈 손까지 붙잡아 들었다⁠. 떡집이 들었다⁠. 옹기전 주인은 한참 망설이다 반쯤 들었다⁠. 오길에게 집을 되산 신발 가게 주인과 민가의 젊은 부부가 서로를 보다가 함께 들었다⁠. 염색집 주인은 들지 않았다⁠. 바우는 세지 않았다⁠.

구담은 대청 문간에 서서 이 손들을 보고 있었다⁠. 내일 개막 뒤 첫 판에 오를 사람이었다⁠. 손을 들지 않았다⁠. 대신 칼집을 허리에 고쳐 찼다⁠.

*

동이 트기 전에 거리 들머리에서 줄을 당기는 소리가 났다⁠. 바우가 목공방 재 더미에서 일어나 나가 보니⁠, 세가 무사 둘이 긴 삼끈을 거리 위쪽 교장 비탈에서부터 끌어 내리고 있었다⁠. 끈 끝을 쥔 사람이 설백천이었다⁠. 설백천은 흰 장포 위에 호연세가의 검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땅을 재는 거요⁠, 목수 양반⁠. 관람석 열두 줄이 어디까지 내려오는지⁠.⁠”

삼끈은 버들객잔 대문 앞을 지나 기름집 지붕 끝에서 멈췄다⁠. 무사 하나가 이 자리에 흰 돌을 놓았다⁠. 바우는 허리에서 먹통을 꺼냈다⁠. 먹줄 끝을 흰 돌 옆 땅에 꽂고⁠, 먹통을 쥔 채 거리 위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검은 먹줄이 삼끈 옆에 나란히 풀려 나왔다⁠.

“⁠목수 양반은 무엇을 재오⁠?⁠”

“⁠방주님 끈이 몇 채를 지나가는지요⁠?⁠”

바우는 버들객잔 대문 앞에서 먹줄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흙길 위에 검은 줄이 곧게 박혔다⁠. 끈이 지나간 집은 열넷이었다⁠. 이 열넷 가운데 아홉이 바우가 고쳤거나 고치려던 집이었다⁠.

설백천이 먹줄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제 철혈방 방주이기 전에⁠, 가주의 돈을 빌려 쓰고 못 갚은 사람이오⁠. 가주는 그 빚을 이 거리로 받으려 하오⁠.⁠”

“⁠그럼 방주님 빚이네요⁠.⁠”

“⁠그래서 내가 끈을 쥐고 있소⁠.⁠”

설백천은 끈을 무사에게 넘기고 교장 쪽으로 올라갔다⁠. 바우는 먹통 줄을 감았다⁠. 손가락에 먹물이 검게 묻었다⁠.

*

구담은 버들객잔 대문 앞에서 칼을 갈고 있었다⁠. 어깨의 무명은 새것으로 갈았다⁠. 바우가 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첫 판이 언제예요⁠?⁠”

“⁠가주가 단상에 올라 개막을 알리면 바로 첫 판이오⁠.⁠”

바우는 숫돌 위를 오가는 칼날을 보았다⁠. 숫돌에 물이 고였다가 칼날에 밀려 흘렀다⁠.

“⁠제가 가주를 단상 앞에서 막으면⁠, 개막이 안 열려요⁠. 구 대협 첫 판도 안 열리고요⁠.⁠”

구담의 손이 멈췄다⁠. 구담은 칼날을 들어 햇빛에 비춰 보았다⁠. 그리고 다시 숫돌에 댔다⁠.

“⁠십 년 기다렸소⁠.⁠”

“⁠알아요⁠.⁠”

“⁠하루 더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오⁠.⁠”

구담은 칼을 칼집에 넣고 일어섰다⁠. 빈 소매가 아침 바람에 흔들렸다⁠.

“⁠막으시오⁠. 막을 거면 끝까지 막으시오⁠. 버들객잔 대들보를 올리던 밤⁠, 목수 양반은 해 뜰 때까지 대패를 안 놓았소⁠.⁠”

*

개막 날 아침 교장 터는 사람으로 덮였다⁠. 강남 각지에서 올라온 고수들이 단상 둘레에 줄지어 섰고⁠, 이 바깥으로 합비 사람들이 비탈을 따라 빼곡히 앉았다⁠. 북과 징이 울렸다⁠. 단상의 소나무 계단 열두 칸이 아침 해를 받아 노랗게 빛났다⁠.

가주가 차일에서 나와 단상 아래에 섰다⁠. 검은 띠를 두른 설백천이 뒤를 따랐다⁠. 집사가 징을 쳐서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다⁠.

가주는 단상에 오르기 전에 말했다⁠. 가주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교장 바닥이 이 목소리를 비탈 끝까지 실어 날랐다⁠.

“⁠강남 무림 대회는 오늘부터 해마다 이 소요진에서 열리오⁠. 대회장을 넓혀 강남 고수들이 해마다 머물 자리를 짓겠소⁠. 이 대회가 끝나는 날부터 교장 아래 객잔 거리 마흔 채를 헐고 그 자리에 관람석과 숙소를 세우겠소⁠. 집주인들에게는 세가가 집마다 쉰 냥을 치르겠소⁠.⁠”

비탈의 합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강남 고수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가주는 손을 들어 이 소리를 눌렀다⁠.

“⁠팔지 않는 집도 있을 것이오⁠. 그 집들은 대회장 둘레에 남게 되오⁠. 대회장 둘레의 질서는 세가가 맡소⁠. 세가는 비무를 막지 않소⁠.⁠”

거리 어귀 쪽에서 쿵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세가 무사 넷이 객잔 거리 들머리에 굵은 말뚝을 박고 있었다⁠. 망치 소리가 교장까지 올라왔다⁠. 말뚝 머리마다 호연세가의 표식이 불로 지져져 있었다⁠. 망치 소리를 금지했던 이 세가였다⁠.

소란이 비탈 아래에서 바우를 보았다⁠. 마석공이 바우의 소매를 잡았다⁠. 바우는 소매를 빼냈다⁠.

바우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 나갔다⁠. 강남 고수들의 어깨 사이를⁠, 합비 사람들의 무릎 사이를 지났다⁠. 엉덩이가 걸음마다 쑤셨다⁠. 바우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허리에서 아버지의 쇠망치를 뽑아 들었다⁠. 아버지 손때가 밴 자루가 손바닥에 감겼다⁠.

가주가 단상 계단 첫 칸에 발을 올리려 할 때였다⁠. 바우가 계단 앞에 섰다⁠.

비탈 전체가 숨을 멈췄다⁠.

집사가 앞으로 나왔다⁠.

“⁠목수⁠, 무엇을 하는 거요⁠?⁠”

“⁠계단 값 받으러 왔어요⁠.⁠”

바우가 망치 자루 끝으로 계단 일곱 번째 칸을 가리켰다⁠.

“⁠등록 마감 날 집사 어른이 저 일곱째 칸을 고치라고 하셨어요⁠. 개막 날 가주님이 단상에 오르실 때 가주님이 직접 값을 치르실 거라고요⁠. 저는 쐐기를 다시 박았고⁠, 그 칸은 그 뒤로 한 번도 안 흔들렸어요⁠. 그 값을 아직 못 받았습니다⁠.⁠”

집사의 얼굴이 굳었다⁠. 집사는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집사가 가주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가주⁠.⁠”

가주가 바우를 내려다보았다⁠. 강남 고수들이 이 둘을 보았다⁠. 구담이 고수들 줄에서 한 걸음 나왔다⁠. 연옥이 비탈 위에서 말 고삐를 당겼다⁠. 쌍칼 형제가 이 곁에 붙어 섰다⁠. 설백천이 가주 뒤에서 처음으로 소매에서 손을 뺐다⁠.

“⁠빚진 사람은 단상에 오르지 못한다⁠.⁠”

바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가주님 할아버지가 정하셨다면서요⁠.⁠”

가주가 소매에 손을 넣었다⁠. 은자 한 닢을 꺼냈다⁠. 계단 쐐기 하나 값으로는 넘치는 돈이었다⁠. 이 은자를 바우 앞에 내밀었다⁠.

“⁠받으시오⁠. 그리고 비키시오⁠.⁠”

바우는 은자를 보았다⁠. 바우의 두 손은 쇠망치 자루를 쥐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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