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32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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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 민원실 · 하로운

6월 15일 진시⁠, 원로당 북이 선거를 알리는 대신 원로회를 알렸다⁠. 소림의 노승은 상석에서 두 장의 접수증을 펼쳐 놓고 오래 보았다⁠. 남궁세가 가주와 무당파 장문⁠, 맹주 후보 둘이 모두 처분 전인 민원을 안고 있었다⁠. 서쪽 담 밖 야간 창구의 도장이었다⁠.

“⁠맹규대로 하겠소⁠.⁠” 노승이 말했다⁠. “⁠처분이 나기 전에는 두 분 다 투표에 오르지 못하오⁠. 처분은 이레 안에 나오⁠. 선거는 이레 뒤로 미루겠소⁠.⁠”

원로 하나가 맹주 없이 이레를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노승은 염주를 한 바퀴 돌렸다⁠.

“⁠조정은 세자 없이 10년을 지냈소⁠. 맹은 맹주 없이 이레쯤 지내도 되오⁠.⁠”

민원실에서 원로회 소식을 들은 왕춘삼이 번호패 통을 흔들며 말했다⁠.

“⁠맹주 자리도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구먼⁠.⁠”

*

같은 시각 정문 돌계단 아래에 떡 시루 둘이 내려앉았다⁠. 개봉에서 밤길을 걸어온 다름의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였다⁠. 어머니는 정문 앞 줄을 보고 놀랐다⁠. 선거 구경을 온 사람보다 번호패를 쥐고 줄 선 사람이 많았다⁠. 어머니는 줄 선 사람에게 우리 아들 남다름 주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물은 사람마다 안다고 했다⁠. 번호표 주사⁠, 탁자 수리비 받는 주사⁠, 지붕 유세 때 나무패를 그대로 둔 주사⁠, 둑 앞에서 맨발로 무릎 꿇은 주사⁠. 어머니는 대답 하나를 들을 때마다 얼굴이 조금씩 달라졌다⁠.

다름은 서쪽 담을 돌아 정문 앞으로 나왔다⁠. 밤을 새운 얼굴이었고⁠, 사모 아래 갈색 머리가 다 삐져나와 있었다⁠. 눈 밑은 숯을 바른 것처럼 검었다⁠. 관복 소매 한쪽에 매향의 피가 말라 학 한 마리가 붉었다⁠. 어머니가 떡 시루를 내려놓고 아들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너 밤새 어디 있었니⁠?⁠”

“⁠서쪽 담 밖 야간 창구에 있었습니다⁠.⁠”

“⁠야간 창구⁠? 향시 붙은 사람이 밤에 창구를 봐⁠?⁠”

다름은 어머니의 손을 잡아 내렸다⁠. 줄 선 사람들이 다 듣고 있었다⁠. 할멈도⁠, 우돌도⁠, 돼지 치는 사내도⁠.

“⁠어머니⁠, 향시에 세 번 떨어졌습니다⁠. 맹에는 구품 주사로 들어왔습니다⁠. 학은 관복이 싸서 단 겁니다⁠. 나흘 전에 파면됐습니다⁠. 지금은 실장님이 앉혀 주신 야간 창구 담당입니다⁠. 월급은 반입니다⁠.⁠”

어머니는 한참 말이 없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떡 시루를 슬그머니 뒤로 물렸다⁠. 어머니가 아들의 붉은 학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이건 뭐니⁠?⁠”

“⁠흑석곡 사람 피입니다⁠. 어젯밤 칼 앞에 섰다가 다쳤습니다⁠. 저는 엎드렸습니다⁠.⁠”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줄을 보았다⁠. 줄은 정문에서 버드나무까지 이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떡 시루 뚜껑을 열었다⁠.

“⁠향시 떨어진 건 알았다⁠.⁠”

다름이 고개를 들었다⁠.

“⁠네 하숙집 주인이 석 달 전에 편지를 보냈어⁠. 방값이 밀릴까 봐 걱정된다고⁠, 아드님이 향시에 세 번 떨어진 걸 아시느냐고⁠. 낙 자 찍힌 종이가 방에 굴러다닌다고⁠.⁠” 어머니가 콧등을 찡그렸다⁠. “⁠떡은 그 전에 돌렸으니 무를 수도 없고⁠. 동네엔 아직 말 안 했다⁠.⁠”

옆집 아주머니가 뒤에서 작게 말했다⁠. 자기는 들은 적 없는 이야기라고⁠. 어머니가 아주머니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그럼 이 떡은 누구 주니⁠? 동네 돌릴 떡이었는데⁠.⁠”

“⁠줄에 계신 분들 드리시면 됩니다⁠.⁠”

“⁠뇌물 아니니⁠?⁠”

“⁠민원 낸 분한테만 안 드리면 됩니다⁠. 줄만 선 분들은 괜찮습니다⁠.⁠”

어머니는 떡을 들고 줄을 따라 내려갔다⁠. 줄만 서러 왔다는 사람이 이상하게 많았다⁠. 할멈은 떡을 받아 들고 어머니 손을 잡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 다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할멈을 안았다⁠.

어머니는 6월 15일 밤 개봉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해가 지자 서쪽 담 밖 야간 창구 줄 끝에 옆집 아주머니와 나란히 앉았다⁠. 번호패를 뽑아 들고⁠, 아들이 번호를 부를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차례가 오자 창구 앞에 앉아 민원은 없고 줄만 서러 왔다며 웃었다⁠. 다름은 어머니의 번호패를 받아 통에 넣고⁠, 다음 번호를 불렀다⁠. 목소리가 한 번 갈라졌다⁠.

*

이레 동안 천무량은 안쪽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처분서 두 장을 쓰는 데 엿새를 썼다⁠. 양쪽 말을 다 들었다⁠. 남궁태열은 편지를 제 손으로 썼다고 원로회 앞에서 다시 말했다⁠. 청송 진인은 흑풍채를 칼로 쓰려 했다고 말했다⁠. 둘 다 사실을 말했다⁠.

위소강의 이백십오 번 민원도 같은 이레 안에 처분이 났다⁠. 위소강이 야간 창구에서 낸 민원은 자기 자신을 건 것이었다⁠. 「⁠감찰관 위소강이 투함에서 민원 마흔 건을 빼내 감찰원 뒷방에 넣었다⁠. 맹규를 어겼다⁠」⁠. 위소강은 처분서를 받고 감찰원 열쇠 꾸러미를 원로당에 놓고 나갔다⁠. 정문을 나서기 전에 민원실 창구 앞에 멈춰 다름의 빈 의자를 한 번 보았다고 왕춘삼이 전했다⁠.

“⁠맹규에 있는 일만 하는 사람이라 맹규대로 나간 거야⁠.⁠” 왕춘삼이 말했다⁠. “⁠그런 사람이 감찰원에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6월 16일 아침⁠, 남궁세가가 맹을 나갔다⁠. 가마 한 채가 정문을 지나갈 때 검은 휘장 너머에서 남궁태열이 야간 창구 현판을 한 번 보았다⁠. 남궁을 따라 나간 문파는 둘이었다⁠. 30년 전에는 일곱이었다⁠. 열을 걱정했던 원로들은 둘이라는 말에 숨을 내쉬었다⁠. 둘이라도 분담금은 3할이 줄었다⁠.

처분서는 6월 20일 낮에 대청에서 찍혔다⁠. 천무량은 안쪽 방이 아니라 대청 한가운데 탁자에 처분서를 펴 놓고 찍었다⁠. 줄 선 사람들이 다 보았다⁠. 남궁세가 처분서에 도장이 내려가는 소리가 대청 천장까지 올라갔다⁠. 남궁 집사가 금칠 패 없이 번호패를 쥐고 줄에 앉아 도장 소리를 들었다⁠. 처분서를 받아 들고 나가면서 집사는 돼지 치는 사내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고구마를 먼저 달라고 했다⁠.

6월 22일에 선거가 다시 열렸다⁠. 남궁은 없었고⁠, 청송 진인은 처분에서 경고를 받고 스스로 물러났다⁠. 원로들은 남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에게도 반을 넘겨 주지 않았다⁠. 맹주 자리는 1년 비워 두고 원로회가 맡기로 했다⁠. 노승이 결과를 알리며 덧붙였다⁠. 맹주 자리도 줄을 서서 기다리라고⁠.

*

6월 22일 밤⁠, 민원실 창고에서 천무량과 다름은 기름 통 앞에 쪼그려 앉았다⁠. 등잔 기름 통이 반만 차 있었다⁠. 분담금이 3할 줄자 총관이 제일 먼저 깎은 것이 민원실 기름이었다⁠.

“⁠봐라⁠.⁠” 천무량이 통을 발끝으로 툭 찼다⁠. 기름이 출렁이는 소리가 얕았다⁠. “⁠반이다⁠. 큰 문파 하나가 나가면 이렇게 된다⁠. 내가 30년 동안 말한 게 이거다⁠.⁠”

“⁠압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대란이 오면 이 기름으로는 아무것도 못 막는다⁠.⁠”

“⁠번호표는 기름이 안 듭니다⁠.⁠” 다름이 말했다⁠. “⁠밤에 걸어오는 사람들은 제 등불을 들고 옵니다⁠. 어젯밤에도 흑석곡 사람들이 등불 넷을 두고 갔습니다⁠.⁠”

천무량이 다름을 보았다⁠. 오래 보다가 식은 찻잔을 들어 마셨다⁠. 이번에는 잔이 비어 있지 않았다⁠.

“⁠금칠 패는 어쩔 테냐⁠?⁠” 천무량이 소매에서 금칠 패 한 움큼을 꺼냈다⁠. 3월 9일 다름의 창구에서 거둬 간 것들이었다⁠.

“⁠실장님 것입니다⁠.⁠”

천무량은 금칠 패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창고에서 나가 대청 번호패 통에 한꺼번에 쏟아 넣었다⁠. 금빛 패가 나무 패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천무량은 통을 두 번 흔들었다⁠.

“⁠이제 금칠 패는 아무나 뽑는다⁠. 뽑는 사람은 운이 좋은 날이고⁠, 순서는 그대로 패에 새긴 번호대로다⁠.⁠” 천무량이 통 뚜껑을 덮었다⁠. “⁠남궁세가 집사가 다시 와서 금칠 패를 뽑으면 볼만하겠구나⁠.⁠”

다름은 웃었다⁠. 천무량도 수염 속으로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낮 창구로 돌아오겠느냐⁠? 총관이 파면을 무르겠다고 하더라⁠. 원로회 눈치를 보고⁠.⁠”

다름은 고개를 저었다⁠.

“⁠밤에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낮에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야간 창구는 실장님이 30년 동안 닫아 두신 겁니다⁠. 제가 열어 두겠습니다⁠.⁠”

*

6월 23일 새벽 묘시⁠, 다름은 야간 창구 등불을 끄고 서쪽 담을 돌아 정문으로 나왔다⁠. 밤새 찍은 접수증 사본을 왕춘삼에게 넘길 참이었다⁠. 정문은 아직 닫혀 있었고⁠, 돌계단 아래 버드나무까지 벌써 줄이 이어져 있었다⁠. 하촌에서 온 사람들이 맨 앞쪽에 있었다⁠. 철우방과 청하검문이 다시 쌓은 둑 위로 버들객잔이 다시 문을 열었다며⁠, 할멈이 개업 떡을 돌리러 온 것이었다⁠. 둑을 다시 쌓는 동안 철우방 방주가 날마다 돌을 져 날랐다고 했다⁠. 쇠뿔 투구는 벗어 객잔 문간에 걸어 두었는데⁠, 손님들이 투구에 모자를 걸고 들어간다고 했다⁠. 할멈은 떡 바구니를 들고 줄 맨 앞에서 뒤까지 오르내렸다⁠. 떡을 받는 사람마다 번호패를 쥐고 있었다⁠.

번호패 통은 정문 옆 작은 탁자 위에 나와 있었다⁠. 통 앞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연보라 옷에 매화 부채⁠, 왼팔에 흰 붕대를 감은 여자와⁠, 머리를 짧게 다듬은 검은 도포의 사내였다⁠. 주태곤은 분타에서 나와 흑석곡 아래 하촌 나루에서 뱃일을 배우고 있었다⁠. 수길의 배를 할멈이 내주었다고 했다⁠.

“⁠내가 먼저 왔어⁠.⁠” 매향이 말했다⁠.

“⁠같이 왔소⁠. 고갯마루에서부터 같이 뛰었잖소⁠.⁠”

“⁠내가 반 걸음 앞이었어⁠.⁠”

“⁠반 걸음이면 같이 온 거요⁠.⁠”

두 사람이 동시에 통으로 손을 넣었다⁠. 손이 통 안에서 부딪쳤다⁠. 나무패가 덜컥였다⁠. 둘은 동시에 패를 꺼냈다⁠. 매향의 패에는 「⁠001⁠」이⁠, 주태곤의 패에는 「⁠002⁠」가 새겨져 있었다⁠. 둘 다 나무 패였다⁠.

주태곤이 자기 패를 뒤집어 보았다⁠. 뒤에도 이 번이었다⁠.

“⁠하나 차이구려⁠.⁠”

“⁠하나면 충분해⁠.⁠” 매향이 웃었다⁠.

다름은 두 사람 옆을 지나 정문으로 갔다⁠. 매향이 다름을 불러 세웠다⁠.

“⁠오늘 민원은 흑석곡 감자 장터 일이야⁠. 사파 감자라고 아직도 못 팔게 하는 데가 있어⁠. 이 번이 증인 설 거야⁠.⁠”

“⁠낮 창구는 왕 주사님이 받으십니다⁠. 진시에 엽니다⁠.⁠”

“⁠알아⁠. 너 밤새웠잖아⁠.⁠” 매향이 다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 밑이 더 까매졌어⁠. 학 말고 너구리 달아야겠다⁠.⁠”

“⁠왕 주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다들 보는 눈이 같은 거지⁠.⁠” 매향이 부채로 다름의 사모를 바로 세웠다⁠. “⁠민원 끝나면 만두 먹으러 가자⁠. 내가 사⁠. 뇌물 아니야⁠. 너 이제 낮에는 주사 아니잖아⁠.⁠”

“⁠밤에는 주사입니다⁠.⁠”

“⁠그러니까 낮에 먹자고⁠.⁠” 매향이 품에서 콩 한 알을 꺼냈다⁠. 할멈이 다름에게 쥐여 주었다가⁠, 다름이 관복 앞섶에서 떨어뜨린 것을 매향이 주워 둔 콩이었다⁠. “⁠이거 넣고 가⁠.⁠”

정문 옆 담 밑에 콩 통 셋이 나와 있었다⁠. 만족⁠, 보통⁠, 불만⁠. 다름은 콩을 받아 들고 잠깐 망설였다⁠.

“⁠민원을 받은 사람이 넣으면 안 됩니다⁠. 민원을 낸 사람이 넣는 겁니다⁠.⁠”

“⁠그럼 내가 넣을게⁠.⁠” 매향이 다름 손바닥에서 콩을 집었다⁠. “⁠석 달 전에 낸 민원⁠. 흑석곡 서른 가구⁠, 우물 물길⁠.⁠”

매향은 콩을 만족 통 위로 들어 올렸다⁠. 줄 선 사람들이 다 같이 보고 있었다⁠. 할멈이⁠, 주태곤이⁠, 문틈으로 왕춘삼이⁠. 매향의 손가락이 벌어졌다⁠. 콩 한 알이 통 속으로 떨어지며 바닥의 다른 콩들에 부딪혀 짧게 딸깍 울렸다⁠. 정문 안에서 진시를 알리는 북이 첫 소리를 냈고⁠,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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