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44자) · 지호 · 6월 26일
의자 열하나
자정의 빨래방 · 도경
6월 26일 금요일 낮에 카메라가 떨어졌다. 기사가 천장 네 모서리에서 검은 반구를 떼 냈다. 나사 구멍 넷과 하얀 자국 넷이 남았다. 카운터 위 스피커 상자도 떨어졌다. 벽지가 상자 모양으로 덜 바랬다. 유리문 옆 QR 상자는 뜯어낸 자리에 양면테이프 자국. 문정수가 그 자국을 손톱으로 긁다가 말았다. 간판은 그대로였다. 워시앤고 신림4호점. 새 간판은 다음 주였다. 문정수는 이름을 아직 안 정했다.
새벽 열두 시 오십 분. 지호가 문을 밀었다. 열렸다. 센서가 딩, 하고 울었다. 그 뒤에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어서 오세요가 없었다. 지호는 그 없는 소리를 잠깐 들었다. 그러고는 점퍼를 의자에 걸고 세제 통을 열었다. 1번부터 6번까지. 3번이 반이었다. 채웠다. 라벤더 가루 냄새. 넉 달하고 스물아흐레.
지호는 오늘부터 문정수의 직원이었다. 서류가 있었다. 근로계약서 한 장. 새벽 열두 시 반부터 두 시 반까지. 두 시간. 시급은 전과 같았다. 봉투는 아니었다. 문정수가 계좌번호를 물었다. 십일 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사람을 쓰는 것이었다.
유리창 밖 골목은 6월 말 밤 냄새였다. 편의점 튀김기, 하수구, 어느 집 창문에서 나오는 모기향. 라일락은 없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그것이 들어왔다가 세제 냄새에 밀려 나갔다.
창가에 의자가 여섯이었다. 원래 다섯에 하은이 앉았던 하나. 지호는 그것을 세지 않았다. 세지 않아도 여섯이었다.
열두 시 오십오 분에 오정탁이 왔다. 고시원 총무. 접이식 의자 다섯 개를 양손에 들고. 고시원 공용 휴게실 것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의자를 창가 옆 벽에 세워 놓았다. 다섯. 그러고는 공용 수건 여섯 장을 3번에 넣었다. 동전은 안 넣었다.
“한 시에 넣어야 되잖아요.”
“네.”
“그럼 기다려야지.”
오정탁은 접이식 의자 하나를 펴고 앉았다. 열한 개가 됐다. 지호는 그것도 세지 않았다.
열두 시 오십팔 분에 정우석이 왔다. 검은 코트. 6월 말인데 코트. 남색 천 가방. 가방 안에 이불 커버. 그는 3번 앞에 섰다. 유리문에 자기 손자국이 아직 있었다. 한 달 동안 아무도 안 닦았다. 정우석은 그 위에 손을 대지 않았다.
“오정탁 씨 수건 들어 있는데요.”
“같이 넣어요. 자리 남아요.”
정우석이 이불 커버를 넣었다. 흰 바탕에 모서리마다 회색 선. 수건 여섯 장 위에. 드럼이 찼다. 한 달 전 집에서 새 세탁기로 돌린 것이었다. 조용하게. 오늘은 그것을 다시 넣었다. 마른 이불 커버를 물에 넣는 이유를 아무도 묻지 않았다. 정우석은 동전을 손에 쥐고 서 있었다. 오백 원 여덟 개.
한 시 정각에 넣었다.
3번이 돌기 시작했다. 물 들어가는 소리. 이 방에서 한 달 만에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3번은 그동안도 돌았다. 다만 한 시에 돌기 시작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 시부터 두 시. 이 방에 남은 한 시간.
한 시 이 분에 이수정이 왔다. 병원 유니폼 위에 카디건. 한 시 오 분에 조은지. 편의점 앞치마를 입은 채로. 휴게 시간을 네 시에서 한 시로 바꿨다고 했다. 점장한테 뭐라고 했느냐고 오정탁이 물었다. 조은지는 세탁이라고 했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한 시 십 분에 김만수. 작업복. 교대를 한 시로 바꿨다. 이번에는 회사가 아니라 자기가 바꿨다. 동료하고 맞바꿨다고 했다. 작업복을 4번에 넣지 않았다. 3번은 찼고 4번은 조용했다. 그는 작업복을 가방에 그대로 두고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세탁물 없이 왔어.”
그는 그 말을 하고 웃었다. 정우석이 옆에서 웃었다. 소리 없이. 김만수는 정우석이 웃는 것을 처음 봤다.
한 시 십오 분에 박준. 문제집. 양말 없이. 그는 들어오자마자 접이식 의자를 보고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카메라 뗀 날이요.”
“아. 그럼 저 소리 내서 읽어도 돼요?”
“안 됩니다.”
“한 달 동안 읽었는데.”
“방송이 없어졌으니까요.”
박준은 그 말을 듣고 문제집을 덮었다. 읽을 상대가 없어진 사람의 얼굴로. 한 시 이십 분에 송미래. 파란 이케아 가방. 이불이 아니었다. 오늘은 목요일이 아니고 화요일도 아니었다. 가방에 든 것은 접은 이불 커버 한 장이었다. 어머님 것. 3번이 차서 넣을 데가 없었다. 송미래는 그것을 안 꺼내고 의자에 앉았다.
“다음 주 화요일에 한 시 반에 올게요. 어머님 한 시에 재워 봤어요. 재워지더라고요.”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송미래는 가방 위에 손을 얹었다. 이불 커버가 든 가방을 그냥 들고 온 것이었다. 넣을 데가 없는 줄 알면서.
한 시 이십오 분에 하은이 왔다. 부산에서. 배낭. 아버지 옆 의자. 아버지를 안 안았다. 대신 3번을 봤다.
“엄마 거 돌아가네.”
“어.”
“이번엔 접을 수 있어?”
“둘이 잡으면.”
한 시 삼십 분에 문정수가 왔다. 트레이닝복도 양복도 아니었다. 셔츠. 십일 년 전에 다림질하던 셔츠였는지도 모른다. 다린 지 오래된 주름이 네모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카운터 앞에 서지 않고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손님처럼. 자기 가게에서.
“오늘 몇 명이야.”
“안 셌습니다.”
“세 봐.”
지호는 안 셌다. 문정수가 셌다. 손가락으로. 정우석, 하은, 송미래, 박준, 김만수, 조은지, 오정탁, 이수정. 여덟. 그리고 자기. 아홉. 지호. 열.
“하나 남네. 의자.”
한 시 삼십오 분에 천장에서 발소리가 났다. 침실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현관으로. 현관문. 바깥 계단. 슬리퍼가 아니었다. 구두도 아니었다. 실내화. 열여섯 번.
센서가 울었다.
한정옥은 잠옷 위에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머리를 빗고 왔다. 그는 문 안에 서서 방을 봤다. 세탁기 여섯, 도는 3번 하나, 의자 열하나, 사람 열. 카메라가 떨어진 천장 모서리의 하얀 자국 넷.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카운터로 갔다. 다림질대. 지호가 카운터 뒤에서 비켜섰다. 한정옥은 뒤로 들어가지 않았다. 앞에 섰다. 손님이 서는 자리에. 나무 상판에 손을 댔다. 다리미 자국 세 개 옆, 젖은 수건이 남긴 네모난 자국 위에.
“이건 뭐야.”
“수건 자국입니다. 스피커 덮었던.”
“스피커를 수건으로 덮었어?”
“네.”
한정옥은 그 자국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나무에 밴 것이었다.
“십일 년 동안 내 다림질대에 동전 소리만 났는데 수건 자국이 생겼네.”
그는 상판에서 손을 뗐다. 손등의 다리미 자국이 형광등 아래 하얗게 보였다. 그러고는 마지막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열한 번째. 아무도 그 의자를 권하지 않았고 그는 아무한테도 묻지 않았다.
3번이 탈수로 넘어갔다.
한 시 사십 분. 쇠가 쇠를 갈면서 우는 소리. 이불 커버와 수건 여섯 장의 무게가 실려 바닥까지 울렸다. 동전 교환기 뚜껑이 떨렸다. 의자 열하나의 다리가 타일 위에서 조금씩 밀렸다. 배수 호스가 빠졌다. 지호가 걸레를 들고 나갔다.
한정옥은 그 소리 속에서 눈을 감았다. 소리가 다림질대 상판을 타고 올라와서 의자 다리로 내려가고 타일을 지나 발바닥으로 왔다. 위층에서는 천장으로 왔던 것이 여기서는 바닥으로 왔다. 화를 내지 않았다. 잠든 것도 아니었다. 십일 년 동안 위층에서 듣던 소리를 처음으로 아래층에서 들었다. 같은 소리였다. 같은 소리가 방 안에서는 달랐다. 열 사람이 같이 듣고 있어서.
박준은 문제집을 안 폈다. 이수정은 손이 안 떨렸다. 조은지는 안 잤다. 김만수는 코를 안 골았다. 오정탁은 수건이 끝났는지 안 끝났는지 소리로 알았고 아직이라고 했다. 송미래는 가방을 무릎에 놓고 있었다. 정우석은 3번을 봤다. 하은은 아버지를 봤다. 문정수는 안경을 올리지 않았다.
탈수가 끝났다. 한 시 오십이 분. 두 시 전이었다.
방이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 속에서 냄새가 남았다. 세제, 고무, 물, 젖은 천. 열한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 편의점 튀김 기름, 병원 소독약, 택시 박하사탕, 고시원 수건, 부산에서 온 배낭, 위층 이불, 나프탈렌. 그것들이 형광등 여섯 개 아래 한 방에 있었다.
정우석이 일어나 3번 유리문을 열었다. 이불 커버를 꺼냈다. 젖어서 무거웠다. 오정탁의 수건이 딸려 나왔다. 오정탁이 받았다.
정우석이 이불 커버 한 끝을 잡았다. 반대쪽 끝을 지호가 잡았다. 하은이 일어나서 지호 옆에 섰다. 지호가 자기 쪽 끝을 하은한테 넘겼다. 정우석과 하은이 이불 커버를 폈다. 두 사람 크기. 반으로. 다시 반으로. 세 번째는 하은이 정우석 쪽으로 걸어가서 아버지 손에 자기 쪽을 포갰다. 정우석이 그것을 가슴에 안았다.
“이제 냄새는 없어.”
하은이 말했다.
“어.”
“근데 소리는 났어.”
“어.”
두 시였다.
한정옥이 일어섰다. 실내화. 열한 번째 의자가 비었다. 그는 문 앞에서 돌아봤다. 문정수한테.
“문 서방. 간판 이름 정했어?”
“아니요.”
“한정옥 세탁소 하지 마. 그건 죽은 이름이야.”
“네.”
“3번 빨래방이라고 해.”
문정수가 안경을 올렸다. 한 번. 두 번.
“그거 사람들이 뭔지 몰라요.”
“아는 사람만 오면 돼.”
문정수는 대답을 못 했다. 십일 년 만에 사장님한테 가게 이름을 받았다.
그는 나갔다. 센서가 울었다. 바깥 계단. 실내화 열여섯 번. 현관문. 천장에서 발소리가 거실에서 침실로 갔다. 그리고 멈췄다. 두 시 삼 분. 위층에서 자는 사람의 조용함이었다.
지호는 3번 밑에 걸레를 대고 물을 훔쳤다. 쇳내. 세제 냄새. 이불 커버 냄새는 없었다. 물자국을 다 훔치고 일어나서 그는 방을 봤다. 카운터 뒤가 아니라 3번 옆에서. 창가 의자 여섯과 접이식 의자 다섯. 3번은 멈춰 있었고 유리문이 열려 있었고 안이 비어 있었다. 사람 열이 앉아 있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시가 넘었고 3번은 이제 네 시까지 안 돈다. 그래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호가 걸레를 놓고 열한 번째 의자에 앉았다. 한정옥이 앉았던 접이식 의자. 아직 온기가 있었다. 정우석이 옆에서 이불 커버를 안은 채로 그를 봤다.
“3번 앞에 의자가 열하나네요.”
“네.”
“내일도요?”
“한 시에요.”
3번 유리문에 손자국이 있었다. 한 달 전 것. 지호는 그것을 내일도 안 닦을 것이다. 형광등 여섯 개 아래, 골목에서 유일하게 환한 방에, 세탁기 여섯 대와 의자 열하나가 있었다. 3번은 멈춰 있었다. 그 앞에 의자가 열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