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436자)

석 달 완성 검법

무공 일타 강사 · 여무겸

구월 아흐레⁠, 중양절이었다⁠. 높은 데 올라 국화주를 마시고 한 해 액을 털어 내는 날이다⁠. 항주 사람들은 이날 아침 오산에 오르고⁠, 수험생들은 무림문 밖 시험장에 선다⁠. 올라가는 곳이 다를 뿐 다들 높은 데를 바란다⁠.

해가 뜨기 전부터 무림문 성벽 그늘에 줄이 이어졌다⁠. 문파마다 시연장이 따로 쳐졌다⁠. 화산은 매화 깃발⁠, 무당은 태극 깃발⁠, 아미는 회색 깃발⁠. 깃발마다 원서를 쥔 수험생들이 줄을 섰다⁠. 자리 장사꾼은 오늘도 줄 끝에 있었다⁠. 오늘은 자리를 팔지 않고 국화주를 팔았다⁠. 시험 보기 전에 마시면 떨어지고⁠, 보고 나서 마시면 붙든 떨어지든 기분이 좋다고 외치며 팔았다⁠.

학관 거리 입구에는 갈필수가 새 현수막을 내달았다⁠. 은빛 천에 붉은 글씨였다⁠.

「⁠석 달 완성 검법 — 갈필수 필수검법⁠. 문파 어르신 모심⁠. 노래 포함⁠」

현수막 아래에 무당 도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갈필수가 무당에서 장로 자리를 내놓은 노인을 밥 한 끼에 모셔 온 것이었다⁠. 맹이 결정을 낸 지 사흘 만이었다⁠. 육화탑 아래에서 무량이 정한 조건을 학관 거리에서 제일 먼저 판 사람은 이번에도 갈필수였다⁠. 학관 거리는 팔월 그믐에 지부 갱신을 받았다⁠. 마흔 곳 가운데 서른 곳이 노래를 넣었고⁠, 노래를 넣은 학관마다 뒤에 노인이 하나씩 앉았다⁠. 강호에는 정말로 장로 자리를 내놓은 노인이 학관보다 많았다⁠.

나는 화산 시연장 새끼줄 밖에 서 있었다⁠. 볼기는 다 나아 앉을 수 있었지만 서 있었다⁠. 열네 해 전 이 자리에서 나는 새끼줄 안에 있었다⁠. 오늘은 밖에 있었다⁠. 일곱 명이 새끼줄 안 줄에 서 있었다⁠. 원서를 받은 일곱이었다⁠. 관아가 「⁠봉천우 무공반⁠」의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일곱의 원서에는 학관 이름 대신 「⁠소금 창고⁠」라고 적혀 있었다⁠.

“⁠쌤⁠, 원서에 소금 창고라고 써도 돼요⁠?⁠” 원서를 낼 때 국숫집 둘째가 물었었다⁠.

“⁠출처는 끝까지 대는 거야⁠.⁠”

*

화산 시연장 시험관 자리에는 새 장로가 앉아 있었다⁠. 육화탑 회의에서 무량이 앉던 자리를 자꾸 고쳐 앉던 사람이었다⁠. 오늘은 고쳐 앉지 않았다⁠. 붓을 쥐고 수험생들을 하나씩 불렀다⁠.

“⁠노상목⁠.⁠”

상목이 새끼줄 안 시연장 가운데로 나갔다⁠. 스물넷⁠, 네 번째 시험이었다⁠. 가게를 판 돈으로 보는 마지막 시험이었다⁠. 굳은살 박인 손에 나무칼을 쥐었다⁠. 허리띠에 마른 조기가 꽂혀 있었다⁠. 조수에 한 마리를 바치고 새로 꽂은 부적이었다⁠.

시험관이 원서를 보았다⁠. 「⁠소금 창고⁠」에서 눈이 멈췄다⁠.

“⁠어디서 배웠나⁠?⁠”

맹이 정한 물음이었다⁠. 시험장 줄의 수험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맹이 결정을 낸 뒤 화산 시연장에서 처음 나오는 물음이었다⁠. 하나라도 감추면 시연장에서 바로 떨어진다⁠.

상목이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세 수는 소금 창고 봉천우 쌤한테 배웠습니다⁠. 봉천우 쌤은 전당강 하구 봉씨 집안 연병보로 익혔고⁠, 연병보는 백 년 전 화산 진대윤 어른이 강남 마을을 위해 엮은 책입니다⁠. 숨은 봉천우 쌤 어머님이 가르쳐 주신 뱃노래로 내보냅니다⁠. 셋에 밀고 둘에 쉬고⁠. 노래 없이 하루 여섯 시간 하다가 칠월 초이레 새벽에 쓰러졌고⁠, 화산 진무량 어른이 하방가 약방에서 침을 놔 주셨습니다⁠. 수강료는 어머니가 생선 가게를 팔아서 냈습니다⁠. 생선 궤짝까지요⁠.⁠”

시험관이 붓을 든 채 상목을 보았다⁠. 시험장 줄이 조용했다⁠. 새끼줄 밖 구경꾼 자리에서 상목 어머니가 조기 두름을 꽉 쥐었다⁠.

“⁠생선 궤짝까지 대라고는 안 했네⁠.⁠”

“⁠끝까지 대라고 하셔서요⁠.⁠”

시험관 옆에서 기록하던 화산 제자가 웃음을 참으려고 붓을 내려놓았다⁠. 시험관은 웃지 않았다⁠. 원서 위에 무언가를 적었다⁠.

“⁠시연하게⁠.⁠”

상목이 기초 자세를 잡았다⁠. 입을 다물었다⁠. 하나에 두 걸음⁠, 둘에 한 걸음⁠. 마지막 걸음 직전⁠, 코에서 소리가 났다⁠. 으음⁠. 쉬고오 자리였다⁠. 나무칼이 내려오며 공기를 짧게 찢었다⁠. 시연장 바닥의 먼지가 둥글게 밀려났다⁠.

시험관의 눈썹이 올라갔다⁠.

“⁠방금 코에서 난 소리는 뭔가⁠?⁠”

“⁠숨입니다⁠.⁠”

“⁠시험장에서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걸 모르나⁠?⁠”

나는 새끼줄을 넘을 뻔했다⁠. 대석이 내 장포 자락을 잡았다⁠.

“⁠시험관님⁠.⁠” 내가 새끼줄 밖에서 말했다⁠. “⁠맹이 정했습니다⁠. 노래로 익힌 사람은 원서를 받는다고요⁠. 상목이는 끝까지 댔습니다⁠. 콧소리 때문에 떨어뜨리시면 이유를 대 주셔야 합니다⁠. 그것도 맹이 정했습니다⁠.⁠”

시험관이 새끼줄 밖의 나를 보았다⁠. 열네 해 전 이 자리의 시험관은 이유를 쓰지 않았다⁠. 오늘 시험관은 붓을 쥔 채 한참 있었다⁠.

“⁠이유를 대라고⁠?⁠”

“⁠네⁠.⁠”

“⁠봉 강사⁠.⁠” 시험관이 붓을 내려놓았다⁠. “⁠나는 화산 시험관이네⁠. 화산은 이유를 대고 떨어뜨리기로 했네⁠. 이유가 없으면 떨어뜨리지 않기로 했네⁠. 콧소리는 이유가 안 되네⁠.⁠”

시험관이 상목의 원서 위에 붉은 점 하나를 찍었다⁠. 연병보 그림의 붉은 점과 같은 붉은 먹이었다⁠. 숨을 멈추라는 점이 아니었다⁠. 다음 시연으로 넘어가라는 점이었다⁠.

*

아람은 화산 시연장 줄 맨 끝에 서 있었다⁠. 원서에는 「⁠진아람⁠」⁠. 학관 이름 칸에는 「⁠화산 진무량 열다섯 해⁠, 소금 창고 석 달⁠」이라고 두 줄로 적혀 있었다⁠. 시험관이 원서를 읽고 아람을 보았다⁠. 시험관은 아람이 누구의 손자인지 알았다⁠. 시험장 줄의 수험생들도 알았다⁠.

“⁠어디서 배웠나⁠?⁠”

“⁠기초는 할아버지한테 열다섯 해 배웠습니다⁠. 세 수는 봉천우 쌤한테 석 달 배웠습니다⁠. 숨은 쌤 어머님 뱃노래로 쉽니다⁠. 조수 날 강둑에서 숨이 멈췄을 때 둑에 있던 사람들이 노래로 살려 줬습니다⁠. 할아버지는 끼어들지 않으셨습니다⁠.⁠”

“⁠끼어들지 않았다고⁠?⁠”

“⁠제가 부탁했습니다⁠.⁠”

시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람이 시연했다⁠. 화산 기초 열두 수 가운데 셋과⁠, 학관 세 수 셋⁠. 여섯 수가 콧소리 하나에 이어졌다⁠. 시연장 밖 버드나무 아래에서 검은 장포의 노인이 팔짱을 끼고 보고 있었다⁠. 매화 수가 다시 꿰매져 있었다⁠. 무량은 새끼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손자의 시험에서 할아버지가 설 자리는 버드나무 아래였다⁠.

*

오후에 학관 거리 입구를 지나는데 갈필수가 현수막 아래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놋관 대신 새 은관을 쓰고 있었다⁠. 빚을 또 낸 모양이었다⁠. 갈필수 조교 둘이 커다란 판자를 들고 서 있었다⁠. 먹칠한 판자에 「⁠한 달 완성 검법⁠」⁠, 아래로 ① ② ③과 막대 그림⁠. 대석이 칠월 초하루 밤새 그린 칠판이었다⁠. 이백 냥에 판 건물에 두고 온 칠판이었다⁠.

“⁠가져가시오⁠.⁠”

“⁠조합장님 건물에 딸린 건데요⁠.⁠”

“⁠우리 애들이 이 칠판 앞에서 자꾸 봉 강사 박자로 걷소⁠. 내 박자는 안 듣고⁠.⁠” 갈필수가 은관 끈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현수막 제목은 베낀 거 아니오⁠. 맹이 정한 거요⁠.⁠”

“⁠맹이 정한 게 아니고 탑 꼭대기에서 제가 흥정한 거예요⁠.⁠”

“⁠그러니까 먼저 판 게 내 잘못이오⁠?⁠”

“⁠아니요⁠. 먼저 파셔서 거리가 산 거죠⁠.⁠”

갈필수가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칭찬인지 아닌지 가려 듣는 얼굴이었다⁠. 대석이 칠판을 받아 등에 졌다가 내려놓았다⁠.

“⁠쌤⁠, 이건 「⁠한 달⁠」이라 못 써요⁠.⁠”

“⁠그럼 뒤집어서 국수 상으로 써⁠.⁠”

구월 아흐레부터 「⁠한 달 완성 검법⁠」은 소금 창고 구석에서 뒤집힌 채 국수 그릇을 받쳤다⁠. 국숫집 둘째 어머니가 국수를 내려놓을 때마다 판자 밑에서 막대 그림이 숨을 쉬었다⁠.

*

해 질 녘⁠, 무림문 성벽에 합격 방이 붙었다⁠. 열네 해 전 내가 한참 서 있던 자리였다⁠. 방 앞에 사람들이 몰렸다⁠. 우는 사람⁠, 웃는 사람⁠, 국화주를 사러 가는 사람⁠.

나는 사람들 뒤에서 방을 올려다보았다⁠. 화산 줄에 「⁠진아람⁠」⁠. 아람 이름 아래 줄에 「⁠노상목⁠」⁠. 무당 줄에 국숫집 둘째 이름⁠. 아미 줄에 소금 창고 하나가 더⁠. 일곱 가운데 넷이었다⁠. 셋은 이름이 없었다⁠.

상목이 방 앞에 서서 자기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짚은 채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상목 어머니가 상목 등 뒤에서 조기 두름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조기 비늘이 노을에 반짝였다⁠. 내 어머니가 옆에서 오리알 소쿠리를 들고 서 있다가 상목 어머니에게 알 하나를 쥐여 주었다⁠. 생선 장수와 뱃사공이 방 앞에서 오리알을 까 먹었다⁠.

이름이 없는 셋은 방 앞에 오지 않고 소금 창고로 갔다고 대석이 말했다⁠. 내년에 다시 보겠다고 했다고⁠. 나는 셋의 이름을 입속으로 한 번씩 불렀다⁠. 열네 해 전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은 없었다⁠.

아람이 방 앞에서 돌아서다가 버드나무 아래를 보았다⁠. 할아버지가 거기 있었다⁠. 아람은 걸어가지 않았다⁠. 선 자리에서 소매를 한 번 접어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무량이 팔짱을 풀고 고개를 숙였다⁠. 버드나무 아래와 성벽 아래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

시월 초하루⁠, 운하 나루 소금 창고 기둥에 새 칠판을 달았다⁠. 대석이 사흘 밤을 새워 소나무 판자를 다듬고 먹칠을 했다⁠. 맨 위에 큼직하게 「⁠석 달 완성 검법⁠」⁠. 아래로 ① 기초 자세 ② 전진 베기 ③ 횡베기⁠. 사람 모양 막대 그림이 칼을 쥐고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다⁠. 막대 그림 마지막 걸음 위에 붉은 점 대신 작은 글씨가 있었다⁠. 「⁠쉬고오⁠」⁠. 칠판 맨 아래 한 줄⁠. 「⁠셋에 밀고 둘에 쉬고⁠」⁠.

소금 자루 사이에 책상 서른 개가 놓였다⁠. 서른 자리가 다 찼다⁠. 뱃사공 딸⁠, 하숙집 막내⁠, 생선 장수 조카⁠, 갈필수 학관에서 넘어온 밀짚모자 둘⁠. 맨 앞 줄에 이름이 없던 셋이 앉아 있었다⁠. 한 해를 더 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대기실 대신 소금 자루 뒤에서 거울을 보았다⁠. 긴 검은 머리를 정수리로 끌어 올려 상투를 틀고 금관을 꽂았다⁠. 학관 거리 밖에서 금관을 쓸 까닭은 없었다⁠. 어머니회가 금관을 안 쓰면 일타 같지 않다고 해서 썼다⁠. 금빛 수를 놓은 흰 장포에 금빛 띠를 매고⁠, 접이 부채를 오른손에 쥐었다⁠.

창고 문을 열었다⁠. 서른 명이 일어났다⁠. 창으로 들어온 아침 볕이 소금 자루 위에 하얗게 떨어졌다⁠. 소금 냄새와 먹 냄새⁠, 누가 몰래 먹다 만 찐빵 냄새가 섞였다⁠.

“⁠자⁠, 『⁠석 달 완성 검법⁠』⁠. 제목 보고 석 달이 길다고 생각한 사람 손⁠.⁠”

뒷줄에서 서너 명이 손을 들었다⁠.

“⁠정직하네⁠. 석 달 뒤에도 정직해⁠. 내려⁠.⁠”

웃음이 터졌다⁠. 창고 맨 뒤⁠, 소금 자루 더미 앞에 검은 장포의 노인이 의자 없이 서 있었다⁠. 흰 상투에 긴 흰 수염⁠. 품삯 대신 아침 국수 한 그릇을 받기로 한 노인이었다⁠. 국숫집 둘째 어머니가 날마다 국수를 날라 오기로 했다⁠.

나는 부채를 펴지 않은 채 칠판을 탁 짚었다⁠.

“⁠기초 자세⁠. 별표 세 개⁠. 발은 어깨너비⁠, 무릎은 살짝⁠, 칼끝은 상대 목⁠. 입은 다물고⁠.⁠”

서른 명이 입을 다물었다⁠. 창고 안에 콧소리가 차올랐다⁠. 음⁠, 음음⁠, 으음⁠. 맨 뒤의 노인이 서른 개의 가슴을 하나씩 보고 있었다⁠. 칠월 초하루에 칠판 아래 한 줄만 노려보던 눈이었다⁠. 오늘은 한 줄이 아니라 서른 사람을 보았다⁠.

부채 끝으로 ②를 짚었다⁠. 하나에 두 걸음⁠, 둘에 한 걸음⁠. 서른 명의 발이 소금기 밴 흙바닥을 쳤고⁠, 쉬고오 자리에서 서른 개의 숨이 한꺼번에 코로 빠져나갔다⁠. 창고 문틈으로 운하 바람이 들어와 숨을 받아 갔다⁠. 나는 부채를 든 채 맨 뒤를 보았다⁠. 노인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팔짱 끼는 박자가 셋에 밀고 둘에 쉬는 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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