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41자) · 첫째 등

사백열두 개

벨라른 · 문가온

그해 겨울에 나는 지하에서 살다시피 했다.

세리안 선생이 열쇠를 하나 줬다.

“밤에 내려와도 된다.”

“…선생님은요?”

선생이 말했다.

“나는 안 들린다. 내려가도 소용이 없다.”

나는 물었다.

“왜 저만 들려요?”

선생이 말했다.

“모른다.”

“…”

“다만 하나는 알겠다.”

선생이 내 손목을 봤다.

“너는 두 해째 영이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선생이 말했다.

“빠져나가는 것이 없는 아이한테는 들어오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선생이 그러고 나서 장부를 꺼냈다.

가죽 표지다. 교장실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인데 선생 것은 지하 것이다.

“…볼 테냐?”

나는 봤다.

칸이 둘이었다.

왼쪽 칸에 숫자가 있고 오른쪽 칸에도 숫자가 있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선생이 말했다.

“왼쪽이 거둔 것이고 오른쪽이 담은 것이다.”

나는 한 줄을 봤다.

왼쪽이 이백사십이고 오른쪽이 백열아홉이다.

다음 줄을 봤다.

왼쪽이 이백삼십둘이고 오른쪽이 백열여섯이다.

그다음 줄도 봤다.

오른쪽이 왼쪽의 절반쯤이다.

나는 스무 줄을 봤다.

스무 줄이 다 그랬다.

“…선생님.”

“왜?”

“오른쪽이 왼쪽 반이에요.”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

나는 물었다.

“왜요?”

선생이 말했다.

“모른다.”

“…”

“이십팔 년 동안 그랬다.”

나는 장부를 앞으로 넘겼다.

오십 년 전 줄도 그랬다.

백 년 전 줄도 그랬다.

첫 줄부터 그랬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 그럼 나머지 반은 어디 가요?”

선생이 말했다.

“그것도 모른다.”

나는 물었다.

“…물어본 적 없으세요?”

선생이 말했다.

“있다.”

“…뭐라고 하셨어요?”

선생이 말했다.

“교장이 그러시더라. 원래 그렇다고.”

나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까닭이 없다는 말이다.

까닭이 없는 것은 없다.

나는 그날 장부를 베꼈다.

베낀다기보다 셈을 했다.

백 년 치 왼쪽을 다 더하면 이만 하고 몇천이다.

오른쪽을 다 더하면 그 절반이다.

등이 사백열둘이다.

사백열둘에 이만이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갔다면 등 하나에 오십 사람 몫이다.

그런데 등마다 목소리가 하나다.

나는 그 셈을 하고 무서워졌다.

절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절반의 절반의 절반이 사라지고 있다.

나는 그 겨울에 등을 닦았다.

하루에 하나씩 닦았다.

하나에 두 시간이 든다. 그을음이 이십 년 치 삼십 년 치다.

사백열둘이면 팔백스무 시간이다.

날마다 하면 이 년이 걸린다.

나는 그 셈을 하고 그만두려다 말았다.

그만두지 않은 까닭은 하나다.

닦으면 한 줄이 는다.

첫 등에서 세 줄째가 났다.

둘째 등에서는 한 줄밖에 안 났다.

셋째 등에서는 네 줄이 났다.

등마다 다르다.

넷째 등을 닦다가 나는 그것을 알았다.

그을음이 두꺼운 등일수록 소리가 짧다.

그을음이 얇은 등은 소리가 길다.

나는 그것을 선생한테 말했다.

선생이 물었다.

“그을음이 무엇이겠느냐?”

나는 말했다.

“…모르겠어요.”

선생이 말했다.

“오래 걸려 있으면 두꺼워진다.”

나는 물었다.

“그럼 오래된 등이 소리가 짧아요?”

선생이 말했다.

“그런 것 같구나.”

나는 물었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져요?”

선생이 대답을 안 했다.

나는 그날 제일 두꺼운 등을 찾았다.

복도 끝에 있었다.

유리가 까맣다. 안이 안 보인다.

귀를 대도 소리가 안 났다.

나는 그것을 닦았다.

여섯 시간 닦았다.

닦으니 소리가 났다.

한 줄이었다.

말이 안 됐다. 소리만 났다.

나는 여덟 시간을 더 닦았다.

말이 됐다.

「나는」

한 마디였다.

나는 그것을 선생한테 가져갔다.

선생이 그 등을 봤다.

“…이건 백 년쯤 됐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아세요?”

선생이 놋쇠 받침을 가리켰다.

받침에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일이라고 적혀 있어요.”

선생이 말했다.

“첫째다.”

나는 물었다.

“사백열둘 중에 첫째요?”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선생이 말했다.

“학교가 백 년 됐다.”

“…”

“백 년에 사백열둘이면 한 해에 넷이다.”

나는 셈을 했다.

학년이 여섯이고 한 학년이 마흔쯤이다. 이백사십이다.

한 해에 이백사십을 거두는데 등은 한 해에 넷이 는다.

“…선생님, 안 맞아요.”

선생이 말했다.

“안 맞는다.”

“…거둔 게 이백사십인데 등이 넷이에요.”

선생이 말했다.

“나머지는 어디 갔겠느냐?”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선생이 말했다.

“나도 모른다.”

“…”

“이십팔 년 동안 몰랐다.”

나는 첫째 등을 무릎에 놨다.

그 안에서 「나는」이 되풀이됐다.

나는 그것을 백 번쯤 들었다.

백 번 듣고 나서 알았다.

「나는」이 아니었다.

「나 는」이었다.

두 마디다.

나는 선생한테 말했다.

“선생님, 두 마디예요.”

선생이 물었다.

“무엇이냐?”

나는 말했다.

“나, 는.”

선생이 그 자리에 앉았다.

“…이름이구나.”

나는 물었다.

“이름이요?”

선생이 말했다.

“나는이 아니라 나 하고 는이다.”

“…”

“앞이 성이고 뒤가 이름이겠지.”

나는 물었다.

“성이 나예요?”

선생이 말했다.

“벨라른에 나씨가 있다.”

“…”

“지금은 없다. 백 년 전에 있었다.”

나는 그 겨울에 등을 여든셋 닦았다.

닦은 것을 세지 않으려고 했는데 세어졌다.

세어진 까닭이 있다.

세리안 선생이 날마다 물었기 때문이다.

“오늘 몇이냐?”

“…셋이요.”

“며칠째냐?”

“…열이레요.”

선생은 그것을 적었다.

적는 것을 보고 나는 물었다.

“선생님, 왜 적으세요?”

선생이 말했다.

“적어야 셈이 된다.”

“…무슨 셈이요?”

선생이 말했다.

“네가 이 년 걸린다고 했지.”

“…예.”

“이 년이 맞는지 봐야 할 것 아니냐.”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이 학교에서 나한테 셈을 시키는 사람이 처음이었다.

다른 선생들은 나한테 아무것도 안 시킨다. 영이니까 시킬 것이 없다.

나는 그날부터 스스로 세기 시작했다.

세는 것이 재미있었다.

닦은 수를 세고, 소리가 난 수를 세고, 줄 수를 셌다.

줄 수가 제일 재미있었다.

한 등에서 두 줄이 나면 그 아이는 두 줄만 기억한 것이다.

다섯 줄이 나면 다섯 줄을 기억한 것이다.

여든셋 가운데 제일 긴 것이 아홉 줄이었다.

제일 짧은 것이 반 줄이다.

반 줄은 말이 안 된다. 말이 끊긴 것이다.

나는 그 반 줄짜리 등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앉아 있으면서 생각했다.

이 아이는 노래를 반만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반만 빼앗긴 것일까.

여든셋 가운데 소리가 난 것이 예순하나다.

스물둘은 닦아도 안 났다.

안 나는 것을 나는 따로 놓았다.

따로 놓고 보니 스물둘이 다 받침 숫자가 삼백 넘는 것이었다.

삼백 넘는 것은 새것이다. 최근 삼십 년 안에 걸린 것이다.

새것이 소리가 안 난다.

나는 그것이 이상해서 선생한테 물었다.

“선생님, 새 등이 소리가 안 납니다.”

선생이 물었다.

“그을음이 얇을 텐데.”

“얇습니다. 그런데 안 납니다.”

선생이 그 자리에 섰다.

“…들고 와 봐라.”

나는 하나를 들고 갔다.

받침 숫자가 삼백구십이다.

선생이 그것을 받아서 흔들었다.

“…가볍다.”

나는 물었다.

“가벼우면요?”

선생이 말했다.

“비었다.”

나는 그 등을 받아 들었다.

무겁지 않았다.

첫째 등은 무거웠다. 두 손으로 들었다.

나는 세리안 선생 등을 들어 봤다. 받침 숫자가 이백사십일이다.

가운데쯤이다.

무게도 가운데쯤이었다.

나는 무게를 재는 법을 만들었다.

손으로 들면 헷갈린다. 열 개쯤 들면 손이 무뎌진다.

그래서 저울을 만들었다.

나무 막대 가운데에 실을 매고 양쪽에 등을 하나씩 걸었다.

기우는 쪽이 무겁다.

이렇게 하니 둘씩 견줄 수 있다.

사백열둘을 둘씩 다 견주려면 몇 번인가.

나는 그 셈을 하다가 그만뒀다. 너무 많다.

대신 줄을 세웠다.

첫째 등을 한쪽에 걸어 놓고 나머지를 하나씩 반대쪽에 걸었다.

첫째보다 가벼우면 아래로 놓고 무거우면 위로 놓는다.

첫째보다 무거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첫째가 제일 무겁다.

그다음에 둘째를 걸어 놓고 했다.

이렇게 하는 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다 하고 나서 줄이 하나 섰다.

무거운 것부터 가벼운 것까지 사백열둘이 줄을 섰다.

그 줄이 받침 숫자 순서와 거의 같았다.

거의 같다는 것은 몇 개가 어긋난다는 뜻이다.

어긋난 것이 열하나였다.

열하나는 숫자가 뒤인데 앞엣것보다 무거웠다.

나는 그 열하나를 따로 놓았다.

따로 놓고 들어 봤다.

열하나가 다 소리가 길었다.

여섯 줄이 넘었다.

나는 그것을 선생한테 말했다.

선생이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겠느냐?”

나는 말했다.

“모르겠어요.”

선생이 말했다.

“나도 모르겠다.”

“…”

“그런데 열하나가 뭔가 다르다는 건 알겠다.”

나는 그 열하나를 따로 적어 두었다.

받침 숫자를 적고 그 옆에 줄 수를 적었다.

적어 놓고 보니 열하나가 다 가까이 있었다.

받침 숫자가 백열둘에서 백서른넷 사이다.

스물두 자리 안에 열하나다.

나는 그 자리에 가서 섰다.

복도 가운데쯤이다.

거기가 제일 소리가 잘 들리는 데다.

나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소리가 잘 들리는 데 걸린 등이 소리가 길다.

그러면 등이 긴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듣는 것이다.

나는 그 열하나를 다른 자리로 옮겨 봤다.

옮겨 놓고 들었다.

소리가 짧아졌다.

원래 자리로 도로 옮겼다.

길어졌다.

나는 그날 밤에 그 자리에 앉아서 한참 있었다.

등은 그대로다. 자리가 다르다.

그러면 백 년 동안 이 복도에서 잘 들리는 자리에 걸린 아이와 안 들리는 자리에 걸린 아이가 갈렸다는 뜻이다.

누가 어디에 걸릴지는 아무도 안 정했다.

들어온 차례대로 걸었을 뿐이다.

나는 그날 밤에 사백열둘을 다 들어 봤다.

들어 보는 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숫자 순서대로 무게가 줄었다.

첫째가 제일 무겁고 사백열두째가 제일 가볍다.

나는 그것을 선생한테 말했다.

선생이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물었다.

“…루아야.”

“예.”

“거둔 것이 등으로 간다고 치자.”

“예.”

“한 해에 이백사십을 거두는데 등은 넷이 는다.”

“예.”

“그러면 이백서른여섯은 어디 가겠느냐?”

나는 말했다.

“…등에 나눠 들어가요?”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등이 무거워져야지.”

“…”

“새 등이 제일 가볍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선생이 말했다.

“거꾸로다.”

“…”

“등이 가벼워지고 있다.”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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