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51자) · 첫째 등

사백열두 개

마법을 다 빼앗겨야 졸업하는 학교 · 반서후

같은 해 겨울에 나는 지하에서 살다시피 했다⁠.

세리안 선생이 열쇠를 하나 줬다⁠.

“⁠밤에 내려와도 된다⁠.⁠”

“⁠…선생님은요⁠?⁠”

선생이 말했다⁠.

“⁠나는 안 들린다⁠. 내려가도 소용이 없다⁠.⁠”

나는 물었다⁠.

“⁠왜 저만 들려요⁠?⁠”

선생이 말했다⁠.

“⁠모른다⁠.⁠”

“⁠…⁠”

“⁠다만 하나는 알겠다⁠.⁠”

선생이 내 손목을 봤다⁠.

“⁠너는 두 해째 영이다⁠.⁠”

나는 이 자리에 섰다⁠.

선생이 말했다⁠.

“⁠빠져나가는 것이 없는 아이한테는 들어오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선생이 그러고 나서 장부를 꺼냈다⁠.

가죽 표지다⁠. 교장실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인데 선생 것은 지하 것이다⁠.

“⁠…볼 테냐⁠?⁠”

나는 봤다⁠.

칸이 둘이었다⁠.

왼쪽 칸에 숫자가 있고 오른쪽 칸에도 숫자가 있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선생이 말했다⁠.

“⁠왼쪽이 거둔 것이고 오른쪽이 담은 것이다⁠.⁠”

나는 한 줄을 봤다⁠.

왼쪽이 이백사십이고 오른쪽이 백열아홉이다⁠.

다음 줄을 봤다⁠.

왼쪽이 이백삼십둘이고 오른쪽이 백열여섯이다⁠.

다음 줄도 봤다⁠.

오른쪽이 왼쪽의 절반쯤이다⁠.

나는 스무 줄을 봤다⁠.

스무 줄이 다 그랬다⁠.

“⁠…선생님⁠.⁠”

“⁠왜⁠?⁠”

“⁠오른쪽이 왼쪽 반이에요⁠.⁠”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

나는 물었다⁠.

“⁠왜요⁠?⁠”

선생이 말했다⁠.

“⁠모른다⁠.⁠”

“⁠…⁠”

“⁠이십팔 년 동안 그랬다⁠.⁠”

나는 장부를 앞으로 넘겼다⁠.

오십 년 전 줄도 그랬다⁠.

백 년 전 줄도 그랬다⁠.

첫 줄부터 그랬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 그럼 나머지 반은 어디 가요⁠?⁠”

선생이 말했다⁠.

“⁠그것도 모른다⁠.⁠”

나는 물었다⁠.

“⁠…물어본 적 없으세요⁠?⁠”

선생이 말했다⁠.

“⁠있다⁠.⁠”

“⁠…뭐라고 하셨어요⁠?⁠”

선생이 말했다⁠.

“⁠교장이 그러시더라⁠. 원래 그렇다고⁠.⁠”

나는 이 말을 오래 들었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까닭이 없다는 말이다⁠.

까닭이 없는 것은 없다⁠.

나는 이날 장부를 베꼈다⁠.

베낀다기보다 셈을 했다⁠.

백 년 치 왼쪽을 다 더하면 이만 하고 몇천이다⁠.

오른쪽을 다 더하면 이 절반이다⁠.

등이 사백열둘이다⁠.

사백열둘에 이만이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갔다면 등 하나에 오십 사람 몫이다⁠.

그런데 등마다 목소리가 하나다⁠.

나는 이 셈을 하고 무서워졌다⁠.

절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절반의 절반의 절반이 사라지고 있다⁠.

나는 이 겨울에 등을 닦았다⁠.

하루에 하나씩 닦았다⁠.

하나에 두 시간이 든다⁠. 그을음이 이십 년 치 삼십 년 치다⁠.

사백열둘이면 팔백스무 시간이다⁠.

날마다 하면 이 년이 걸린다⁠.

나는 이 셈을 하고 그만두려다 말았다⁠.

그만두지 않은 까닭은 하나다⁠.

닦으면 한 줄이 는다⁠.

첫 등에서 세 줄째가 났다⁠.

두 번째 등에서는 한 줄밖에 안 났다⁠.

세 번째 등에서는 네 줄이 났다⁠.

등마다 다르다⁠.

네 번째 등을 닦다가 나는 이것을 알았다⁠.

그을음이 두꺼운 등일수록 소리가 짧다⁠.

그을음이 얇은 등은 소리가 길다⁠.

나는 이것을 선생한테 말했다⁠.

선생이 물었다⁠.

“⁠그을음이 무엇이겠느냐⁠?⁠”

나는 말했다⁠.

“⁠…모르겠어요⁠.⁠”

선생이 말했다⁠.

“⁠오래 걸려 있으면 두꺼워진다⁠.⁠”

나는 물었다⁠.

“⁠그럼 오래된 등이 소리가 짧아요⁠?⁠”

선생이 말했다⁠.

“⁠그런 것 같구나⁠.⁠”

나는 물었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져요⁠?⁠”

선생이 대답을 안 했다⁠.

나는 이날 제일 두꺼운 등을 찾았다⁠.

복도 끝에 있었다⁠.

유리가 까맣다⁠. 안이 안 보인다⁠.

귀를 대도 소리가 안 났다⁠.

나는 이것을 닦았다⁠.

여섯 시간 닦았다⁠.

닦으니 소리가 났다⁠.

한 줄이었다⁠.

말이 안 됐다⁠. 소리만 났다⁠.

나는 여덟 시간을 더 닦았다⁠.

말이 됐다⁠.

「⁠나는⁠」

한 마디였다⁠.

나는 이것을 선생한테 가져갔다⁠.

선생이 이 등을 봤다⁠.

“⁠…이건 백 년쯤 됐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아세요⁠?⁠”

선생이 놋쇠 받침을 가리켰다⁠.

받침에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일이라고 적혀 있어요⁠.⁠”

선생이 말했다⁠.

“⁠첫째다⁠.⁠”

나는 물었다⁠.

“⁠사백열둘 중에 첫째요⁠?⁠”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

나는 이 자리에 섰다⁠.

선생이 말했다⁠.

“⁠학교가 백 년 됐다⁠.⁠”

“⁠…⁠”

“⁠백 년에 사백열둘이면 한 해에 넷이다⁠.⁠”

나는 셈을 했다⁠.

학년이 여섯이고 한 학년이 마흔쯤이다⁠. 이백사십이다⁠.

한 해에 이백사십을 거두는데 등은 한 해에 넷이 는다⁠.

“⁠…선생님⁠, 안 맞아요⁠.⁠”

선생이 말했다⁠.

“⁠안 맞는다⁠.⁠”

“⁠…거둔 게 이백사십인데 등이 넷이에요⁠.⁠”

선생이 말했다⁠.

“⁠나머지는 어디 갔겠느냐⁠?⁠”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선생이 말했다⁠.

“⁠나도 모른다⁠.⁠”

“⁠…⁠”

“⁠이십팔 년 동안 몰랐다⁠.⁠”

나는 첫째 등을 무릎에 놨다⁠.

이 안에서 「⁠나는⁠」이 되풀이됐다⁠.

나는 이것을 백 번쯤 들었다⁠.

백 번 듣고 나서 알았다⁠.

「⁠나는⁠」이 아니었다⁠.

「⁠나 는⁠」이었다⁠.

두 마디다⁠.

나는 선생한테 말했다⁠.

“⁠선생님⁠, 두 마디예요⁠.⁠”

선생이 물었다⁠.

“⁠무엇이냐⁠?⁠”

나는 말했다⁠.

“⁠나⁠, 는⁠.⁠”

선생이 이 자리에 앉았다⁠.

“⁠…이름이구나⁠.⁠”

나는 물었다⁠.

“⁠이름이요⁠?⁠”

선생이 말했다⁠.

“⁠나는이 아니라 나 하고 는이다⁠.⁠”

“⁠…⁠”

“⁠앞이 성이고 뒤가 이름이겠지⁠.⁠”

나는 물었다⁠.

“⁠성이 나예요⁠?⁠”

선생이 말했다⁠.

“⁠벨라른에 나씨가 있다⁠.⁠”

“⁠…⁠”

“⁠지금은 없다⁠. 백 년 전에 있었다⁠.⁠”

나는 이 겨울에 등을 여든셋 닦았다⁠.

닦은 것을 세지 않으려고 했는데 세어졌다⁠.

세어진 까닭이 있다⁠.

세리안 선생이 날마다 물었기 때문이다⁠.

“⁠오늘 몇이냐⁠?⁠”

“⁠…셋이요⁠.⁠”

“⁠며칠째냐⁠?⁠”

“⁠…열이레요⁠.⁠”

선생은 이것을 적었다⁠.

적는 것을 보고 나는 물었다⁠.

“⁠선생님⁠, 왜 적으세요⁠?⁠”

선생이 말했다⁠.

“⁠적어야 셈이 된다⁠.⁠”

“⁠…무슨 셈이요⁠?⁠”

선생이 말했다⁠.

“⁠네가 이 년 걸린다고 했지⁠.⁠”

“⁠…예⁠.⁠”

“⁠이 년이 맞는지 봐야 할 것 아니냐⁠?⁠”

나는 이 말이 좋았다⁠.

이 학교에서 나한테 셈을 시키는 사람이 처음이었다⁠.

다른 선생들은 나한테 아무것도 안 시킨다⁠. 영이니까 시킬 것이 없다⁠.

나는 이날부터 스스로 세기 시작했다⁠.

세는 것이 재미있었다⁠.

닦은 수를 세고⁠, 소리가 난 수를 세고⁠, 줄 수를 셌다⁠.

줄 수가 제일 재미있었다⁠.

한 등에서 두 줄이 나면 이 아이는 두 줄만 기억한 것이다⁠.

다섯 줄이 나면 다섯 줄을 기억한 것이다⁠.

여든셋 가운데 제일 긴 것이 아홉 줄이었다⁠.

제일 짧은 것이 반 줄이다⁠.

반 줄은 말이 안 된다⁠. 말이 끊긴 것이다⁠.

나는 이 반 줄짜리 등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앉아 있으면서 생각했다⁠.

이 아이는 노래를 반만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반만 빼앗긴 것일까⁠.

여든셋 가운데 소리가 난 것이 예순하나다⁠.

스물둘은 닦아도 안 났다⁠.

안 나는 것을 나는 따로 놓았다⁠.

따로 놓고 보니 스물둘이 다 받침 숫자가 삼백 넘는 것이었다⁠.

삼백 넘는 것은 새것이다⁠. 최근 삼십 년 안에 걸린 것이다⁠.

새것이 소리가 안 난다⁠.

나는 이것이 이상해서 선생한테 물었다⁠.

“⁠선생님⁠, 새 등이 소리가 안 납니다⁠.⁠”

선생이 물었다⁠.

“⁠그을음이 얇을 텐데⁠.⁠”

“⁠얇습니다⁠. 그런데 안 납니다⁠.⁠”

선생이 이 자리에 섰다⁠.

“⁠…들고 와 봐라⁠.⁠”

나는 하나를 들고 갔다⁠.

받침 숫자가 삼백구십이다⁠.

선생이 이것을 받아서 흔들었다⁠.

“⁠…가볍다⁠.⁠”

나는 물었다⁠.

“⁠가벼우면요⁠?⁠”

선생이 말했다⁠.

“⁠비었다⁠.⁠”

나는 이 등을 받아 들었다⁠.

무겁지 않았다⁠.

첫째 등은 무거웠다⁠. 두 손으로 들었다⁠.

나는 세리안 선생 등을 들어 봤다⁠. 받침 숫자가 이백사십일이다⁠.

가운데쯤이다⁠.

무게도 가운데쯤이었다⁠.

나는 무게를 재는 법을 만들었다⁠.

손으로 들면 헷갈린다⁠. 열 개쯤 들면 손이 무뎌진다⁠.

그래서 저울을 만들었다⁠.

나무 막대 가운데에 실을 매고 양쪽에 등을 하나씩 걸었다⁠.

기우는 쪽이 무겁다⁠.

이렇게 하니 둘씩 견줄 수 있다⁠.

사백열둘을 둘씩 다 견주려면 몇 번인가⁠.

나는 이 셈을 하다가 그만뒀다⁠. 너무 많다⁠.

대신 줄을 세웠다⁠.

첫째 등을 한쪽에 걸어 놓고 나머지를 하나씩 반대쪽에 걸었다⁠.

첫째보다 가벼우면 아래로 놓고 무거우면 위로 놓는다⁠.

첫째보다 무거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첫째가 제일 무겁다⁠.

다음에 두 번째를 걸어 놓고 했다⁠.

이렇게 하는 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다 하고 나서 줄이 하나 섰다⁠.

무거운 것부터 가벼운 것까지 사백열둘이 줄을 섰다⁠.

이 줄이 받침 숫자 순서와 거의 같았다⁠.

거의 같다는 것은 몇 개가 어긋난다는 뜻이다⁠.

어긋난 것이 열하나였다⁠.

열하나는 숫자가 뒤인데 앞엣것보다 무거웠다⁠.

나는 이 열하나를 따로 놓았다⁠.

따로 놓고 들어 봤다⁠.

열하나가 다 소리가 길었다⁠.

여섯 줄이 넘었다⁠.

나는 이것을 선생한테 말했다⁠.

선생이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겠느냐⁠?⁠”

나는 말했다⁠.

“⁠모르겠어요⁠.⁠”

선생이 말했다⁠.

“⁠나도 모르겠다⁠.⁠”

“⁠…⁠”

“⁠그런데 열하나가 뭔가 다르다는 건 알겠다⁠.⁠”

나는 이 열하나를 따로 적어 두었다⁠.

받침 숫자를 적고 이 옆에 줄 수를 적었다⁠.

적어 놓고 보니 열하나가 다 가까이 있었다⁠.

받침 숫자가 백열둘에서 백서른넷 사이다⁠.

스물두 자리 안에 열하나다⁠.

나는 이 자리에 가서 섰다⁠.

복도 가운데쯤이다⁠.

거기가 제일 소리가 잘 들리는 데다⁠.

나는 이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소리가 잘 들리는 데 걸린 등이 소리가 길다⁠.

그러면 등이 긴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듣는 것이다⁠.

나는 이 열하나를 다른 자리로 옮겨 봤다⁠.

옮겨 놓고 들었다⁠.

소리가 짧아졌다⁠.

원래 자리로 도로 옮겼다⁠.

길어졌다⁠.

나는 이날 밤에 이 자리에 앉아서 한참 있었다⁠.

등은 그대로다⁠. 자리가 다르다⁠.

그러면 백 년 동안 이 복도에서 잘 들리는 자리에 걸린 아이와 안 들리는 자리에 걸린 아이가 갈렸다는 뜻이다⁠.

누가 어디에 걸릴지는 아무도 안 정했다⁠.

들어온 차례대로 걸었을 뿐이다⁠.

나는 이날 밤에 사백열둘을 다 들어 봤다⁠.

들어 보는 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숫자 순서대로 무게가 줄었다⁠.

첫째가 제일 무겁고 사백열두 번째가 제일 가볍다⁠.

나는 이것을 선생한테 말했다⁠.

선생이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물었다⁠.

“⁠…루아야⁠.⁠”

“⁠예⁠.⁠”

“⁠거둔 것이 등으로 간다고 치자⁠.⁠”

“⁠예⁠.⁠”

“⁠한 해에 이백사십을 거두는데 등은 넷이 는다⁠.⁠”

“⁠예⁠.⁠”

“⁠그러면 이백서른여섯은 어디 가겠느냐⁠?⁠”

나는 말했다⁠.

“⁠…등에 나눠 들어가요⁠?⁠”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등이 무거워져야지⁠.⁠”

“⁠…⁠”

“⁠새 등이 제일 가볍다⁠.⁠”

나는 이 자리에 섰다⁠.

선생이 말했다⁠.

“⁠거꾸로다⁠.⁠”

“⁠…⁠”

“⁠등이 가벼워지고 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단풍국2026.10.09· 2화

    지하에 걸린 등 사백열두 개가 졸업생 수인가요, 아직 다니는 학생 수인가요?

    • 반서후작가2026.10.09

      한 등이 한 아이라는 것까지만 말했어요. 그 아이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가 이 작품의 물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