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53자) · 두 해째 영

초하루 징수

벨라른 · 문가온

벨라른 학교는 초하루에 거둔다.

거두는 것을 징수라고 부른다.

아침에 종이 울리면 학년마다 줄을 선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다.

한 사람씩 들어가서 손을 내민다.

선생이 손목을 잡는다. 잡고 있으면 뭔가가 빠져나간다.

아프지는 않다. 손목이 차가워진다.

차가워졌다가 따뜻해지면 끝난 것이다. 한 사람에 스무 셈쯤 걸린다.

무엇을 거두는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1학년 때 물어봤다.

“선생님, 뭘 거두는 거예요?”

선생이 말했다.

“너한테 있는 것.”

“…얼마나 있는데요?”

선생이 말했다.

“여섯 해 치.”

그러니까 여섯 해 동안 거두면 없어진다는 뜻이다.

없어지면 졸업이다.

졸업장은 다 빼냈다는 증서다. 그것을 가지고 나가면 도시에서 일을 얻는다.

빼낸 사람은 안 위험하니까 어디서든 쓴다.

나는 루아고 열둘이다. 지금 5학년이다.

5학년이면 다섯 해를 거뒀다.

그런데 나는 두 해째 영이다.

영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안 나온다는 뜻이다.

선생이 손목을 잡고 스무 셈을 세도 차가워지지 않는다.

작년 초하루에 선생이 처음 그랬다.

“…영이네.”

“영이 뭐예요?”

“아무것도 안 나온다는 뜻이다.”

“…다 빼신 거예요?”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4학년에 다 빠지는 아이는 없다.”

그해에 열두 번 다 영이었다.

올해도 아홉 번째 영이다.

나는 그 뒤로 초하루마다 그 자리에 섰다.

줄 맨 뒤다.

맨 뒤에 서면 앞이 다 보인다. 앞에 선 아이들 손목이 하나씩 잡히고 하나씩 놓이는 것이 다 보인다.

놓인 손목은 다들 한 번씩 제 손목을 문지른다.

차가워졌다가 따뜻해진 자리라 그렇다.

나는 두 해 동안 그것을 봤고 한 번도 내 손목을 안 문질렀다.

문지를 일이 없다.

영이 되고 나서 달라진 것이 셋이다.

하나는 줄을 맨 뒤에 선다.

영이면 스무 셈을 세도 안 끝나니까 뒤로 뺀다. 앞에 세우면 줄이 밀린다.

둘은 아이들이 안 묻는다.

초하루 저녁에 아이들은 서로 묻는다. 오늘 얼마 나갔냐고. 많이 나간 아이가 으스댄다. 많이 나간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데 으스댄다.

나한테는 안 묻는다.

한 번 물은 아이가 있었다. 3학년 때다.

“루아 너는 얼마 나갔어?”

“…영이야.”

그 아이가 웃었다.

웃고 나서 제가 왜 웃었는지 모르는 얼굴을 했다.

그 뒤로 아무도 안 물었다.

셋은 이름으로 안 부른다.

“그 영 나오는 애.”

그렇게 부른다.

나쁜 뜻은 아니다. 부를 말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렇다.

나는 그것이 제일 싫었다.

싫은 까닭을 말로 하면 이렇다.

나는 내가 무엇을 안 내놓고 있는지를 모른다.

다른 아이들은 여섯 해 치를 내놓는다고 배웠다. 내놓을 것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내놓을 것이 없다.

없는 것인지 안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생들이 셋으로 나뉜 것 가운데 「숨기고 있다」는 쪽이 제일 싫었다.

숨기려면 무엇을 숨기는지는 알아야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른다.

선생들이 그것을 두고 셋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병이라고 한다.

하나는 숨기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아무 말도 안 한다.

아무 말도 안 하는 쪽이 세리안 선생이다.

세리안 선생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나는 더 무서웠다.

병이라고 하면 고치면 된다. 숨긴다고 하면 아니라고 하면 된다.

아무 말도 안 하면 할 것이 없다.

그해 구월에 내가 세리안 선생을 찾아갔다.

찾아가서 물었다.

“선생님.”

“…왜?”

“저는 뭐예요?”

선생이 손을 멈췄다. 장부를 넘기던 손이다.

“…무슨 말이냐?”

“다른 애들은 여섯 해 치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랬지.”

“저는 뭐가 있어요?”

선생이 장부를 덮었다.

“모른다.”

“…”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선생은 그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짐작한 것을 말하면 내가 그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안 말한 것이다.

나는 그날 밤에 잠이 안 왔다.

잠이 안 와서 셈을 했다.

내가 다섯 해를 거뒀다고 치자. 그 가운데 두 해가 영이다.

그러면 세 해 치가 어디론가 갔다.

간 데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고 싶었다.

세리안 선생은 지하를 맡는다.

벨라른 학교 지하에는 등이 사백열둘 걸려 있다.

돌계단을 마흔두 단 내려가면 복도가 나오고, 복도 양쪽 벽에 놋쇠 받침이 박혀 있다.

받침마다 유리를 씌운 기름등이 하나씩 있다.

사백열둘이다.

지하가 따뜻하다. 놋쇠는 차가운데 방이 따뜻하다.

기름을 안 붓는데 꺼지지 않는다.

유리 안쪽이 그을려서 노랗다.

지하 이야기를 하는 아이는 없다.

내려가 본 아이가 없어서다. 문이 하나 있고 그 문에 자물쇠가 있다. 열쇠를 가진 사람이 셋이다. 교장, 세리안 선생, 그리고 문지기다.

문지기는 말을 안 한다. 말을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이 지하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뿐이다.

거둔 것이 거기로 간다.

어떻게 가는지, 가서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학년 때 아이 하나가 그런 말을 했다.

“거기 우리 게 다 있대.”

“…있으면 뭐 해. 못 가져오는데.”

“가져올 수 있으면 가져올 거야?”

넷이 앉아 있었다. 넷이 다 대답을 안 했다.

가져와서 뭘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내놓았는지 모른다.

모르는 것을 되찾고 싶어 하기는 어렵다.

내가 처음 내려간 것은 그해 시월이다.

내려간 까닭은 하나다. 세리안 선생이 나를 불렀다.

“루아.”

“예.”

“내려와 봐라.”

나는 따라 내려갔다.

복도에 서니 소리가 났다.

내가 처음 그 노래를 들은 자리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돌계단 마흔두 단을 다 내려가서 왼쪽으로 세 걸음이다.

세 걸음에서 소리가 났고 네 걸음에서 더 났다.

나는 그 자리를 발로 재 보았다. 소리가 제일 잘 들리는 데가 복도 한가운데다.

양쪽 벽에서 같은 거리다.

나는 그것이 이상했다.

소리가 등에서 나면 등에 가까울수록 잘 들려야 한다.

가운데가 제일 잘 들린다는 것은 양쪽에서 온 소리가 가운데서 만난다는 뜻이다.

만나면 겹친다.

겹치면 더 커진다.

나는 그날 복도 가운데 서서 눈을 감았다.

사백열둘이 한꺼번에 났다.

시끄러워야 하는데 안 시끄러웠다.

그것이 그날 제일 이상했다.

작은 소리다. 귀를 기울여야 들린다.

여럿이 한꺼번에 내는 소리인데 노래 같았다.

“…선생님, 소리가 납니다.”

세리안 선생이 걸음을 멈췄다.

“…들리느냐?”

“들려요.”

선생이 나를 오래 봤다.

“…무슨 소리냐.”

나는 말했다.

“노래예요.”

선생이 등 하나 앞에 섰다.

“이거 앞에 서 봐라.”

나는 섰다.

그 등에서 나는 소리가 또렷해졌다.

여자아이 목소리였다.

노래를 부르는데 두 줄만 부르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앞 두 줄만 안다.

“…선생님, 이 아이는 앞만 알아요.”

세리안 선생이 그 자리에 앉았다.

앉는 데 시간이 걸렸다. 선생은 마흔이 넘었다.

“…뭐라고 했느냐?”

나는 말했다.

“이 노래요. 앞 두 줄만 부르고 다시 처음부터 해요.”

선생이 물었다.

“…그 노래를 아느냐?”

나는 말했다.

“몰라요.”

선생이 말했다.

“나는 안다.”

“…”

“나도 앞 두 줄만 안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도 여기서 들으셨어요?”

세리안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안 들린다.”

“…그럼 어떻게 아세요?”

선생이 말했다.

“내가 부르던 노래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선생이 말했다.

“내가 여기 학생이었다.”

“…”

“졸업했다.”

선생이 그 등을 봤다.

“이게 내 것이다.”

세리안 선생이 그 등을 놋쇠 받침에서 내렸다.

내려서 나한테 줬다.

“들어 봐라.”

나는 받았다.

받으니 소리가 커졌다.

앞 두 줄이다.

「해가 지면 문을 닫고」

「불을 하나 켜 두고」

거기서 끊겼다.

끊기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 뒤가 뭐예요?”

세리안 선생이 말했다.

“모른다.”

“…선생님 노래잖아요.”

선생이 말했다.

“앞 두 줄만 기억난다.”

나는 물었다.

“나머지는요?”

선생이 말했다.

“여기 있겠지.”

선생이 등을 가리켰다.

“그런데 여기서도 앞 두 줄만 나온다면서.”

나는 말했다.

“예.”

선생이 말했다.

“그러면 뒤는 어디 있느냐?”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선생이 등을 도로 걸었다.

걸면서 소매로 유리를 닦았다.

닦으니 그을음이 조금 벗겨졌다.

소리가 또렷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선생님.”

“왜?”

“닦으니까 잘 들려요.”

선생이 손을 멈췄다.

“…뭐라고 했느냐?”

“닦으니까 소리가 커졌어요.”

선생이 소매로 한 번 더 닦았다.

나는 들었다.

「해가 지면 문을 닫고」

「불을 하나 켜 두고」

「…」

세 줄째가 났다.

말이 안 됐다. 소리만 났다.

나는 말했다.

“세 줄째가 났어요.”

선생이 그 자리에 앉았다.

“…무엇이라 하더냐?”

나는 말했다.

“말이 안 됩니다. 소리만 납니다.”

선생이 말했다.

“더 닦아라.”

나는 그날 밤에 그 등을 닦았다.

유리를 다 닦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그을음이 두꺼웠다.

닦는 법을 선생이 안 가르쳐 줬다.

소매로 닦으면 된다고만 했다.

나는 소매로 닦다가 팔이 아파서 방법을 바꿨다. 물을 묻히면 잘 닦일 줄 알았는데 더 안 닦였다. 그을음이 기름 그을음이라 물이 안 먹는다.

재를 묻혀서 닦으니 됐다.

재로 그을음을 닦는 것이 이상했다. 더러운 것으로 더러운 것을 닦는다.

닦는 동안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한 번 문지르면 아주 조금 커진다. 백 번을 문질러야 알아챌 만큼 커진다.

나는 그것을 세면서 닦았다.

세면서 닦으니 두 시간이 짧았다.

그리고 알았다.

유리 안쪽은 못 닦는다. 등을 열 수가 없다.

바깥만 닦아서 여기까지다.

안쪽까지 닦을 수 있으면 얼마나 들릴지 나는 그날 밤에 생각했다.

생각만 하고 안 했다.

등을 열면 안에 든 것이 흩어진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그때 안 열기를 잘했다.

다 닦고 들었다.

세 줄째가 말이 됐다.

「먼 데서 오는 사람을」

나는 그것을 선생한테 말했다.

선생이 그 자리에서 울었다.

나는 왜 우는지 몰랐다.

한참 있다가 선생이 말했다.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다.”

“…”

“어머니가 그 세 줄째에서 늘 나를 안았다.”

선생이 유리를 만졌다.

“이십팔 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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