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58자) · 두 해째 영

초하루 징수

마법을 다 빼앗겨야 졸업하는 학교 · 반서후

벨라른 학교는 초하루에 거둔다⁠.

거두는 것을 징수라고 부른다⁠.

아침에 종이 울리면 학년마다 줄을 선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다⁠.

한 사람씩 들어가서 손을 내민다⁠.

선생이 손목을 잡는다⁠. 잡고 있으면 뭔가가 빠져나간다⁠.

아프지는 않다⁠. 손목이 차가워진다⁠.

차가워졌다가 따뜻해지면 끝난 것이다⁠. 한 사람에 스무 셈쯤 걸린다⁠.

무엇을 거두는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1학년 때 물어봤다⁠.

“⁠선생님⁠, 뭘 거두는 거예요⁠?⁠”

선생이 말했다⁠.

“⁠너한테 있는 것⁠.⁠”

“⁠…얼마나 있는데요⁠?⁠”

선생이 말했다⁠.

“⁠여섯 해 치⁠.⁠”

그러니까 여섯 해 동안 거두면 없어진다는 뜻이다⁠.

없어지면 졸업이다⁠.

졸업장은 다 빼냈다는 증서다⁠. 이것을 가지고 나가면 도시에서 일을 얻는다⁠.

빼낸 사람은 안 위험하니까 어디서든 쓴다⁠.

나는 루아고 열둘이다⁠. 지금 5학년이다⁠.

5학년이면 다섯 해를 거뒀다⁠.

그런데 나는 두 해째 영이다⁠.

영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안 나온다는 뜻이다⁠.

선생이 손목을 잡고 스무 셈을 세도 차가워지지 않는다⁠.

작년 초하루에 선생이 처음 그랬다⁠.

“⁠…영이네⁠.⁠”

“⁠영이 뭐예요⁠?⁠”

“⁠아무것도 안 나온다는 뜻이다⁠.⁠”

“⁠…다 빼신 거예요⁠?⁠”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4학년에 다 빠지는 아이는 없다⁠.⁠”

같은 해에 열두 번 다 영이었다⁠.

올해도 아홉 번째 영이다⁠.

나는 이후로 초하루마다 이 자리에 섰다⁠.

줄 맨 뒤다⁠.

맨 뒤에 서면 앞이 다 보인다⁠. 앞에 선 아이들 손목이 하나씩 잡히고 하나씩 놓이는 것이 다 보인다⁠.

놓인 손목은 다들 한 번씩 제 손목을 문지른다⁠.

차가워졌다가 따뜻해진 자리라 그렇다⁠.

나는 두 해 동안 이것을 봤고 한 번도 내 손목을 안 문질렀다⁠.

문지를 일이 없다⁠.

영이 되고 나서 달라진 것이 셋이다⁠.

하나는 줄을 맨 뒤에 선다⁠.

영이면 스무 셈을 세도 안 끝나니까 뒤로 뺀다⁠. 앞에 세우면 줄이 밀린다⁠.

둘은 아이들이 안 묻는다⁠.

초하루 저녁에 아이들은 서로 묻는다⁠. 오늘 얼마 나갔냐고⁠. 많이 나간 아이가 으스댄다⁠. 많이 나간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데 으스댄다⁠.

나한테는 안 묻는다⁠.

한 번 물은 아이가 있었다⁠. 3학년 때다⁠.

“⁠루아 너는 얼마 나갔어⁠?⁠”

“⁠…영이야⁠.⁠”

이 아이가 웃었다⁠.

웃고 나서 제가 왜 웃었는지 모르는 얼굴을 했다⁠.

이후로 아무도 안 물었다⁠.

셋은 이름으로 안 부른다⁠.

“⁠그 영 나오는 애⁠.⁠”

그렇게 부른다⁠.

나쁜 뜻은 아니다⁠. 부를 말이 이것밖에 없어서 그렇다⁠.

나는 이것이 제일 싫었다⁠.

싫은 까닭을 말로 하면 이렇다⁠.

나는 내가 무엇을 안 내놓고 있는지를 모른다⁠.

다른 아이들은 여섯 해 치를 내놓는다고 배웠다⁠. 내놓을 것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내놓을 것이 없다⁠.

없는 것인지 안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생들이 셋으로 나뉜 것 가운데 「⁠숨기고 있다⁠」는 편이 제일 싫었다⁠.

숨기려면 무엇을 숨기는지는 알아야 한다⁠.

나는 이것도 모른다⁠.

선생들이 이것을 두고 셋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병이라고 한다⁠.

하나는 숨기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아무 말도 안 한다⁠.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이 세리안 선생이다⁠.

세리안 선생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나는 더 무서웠다⁠.

병이라고 하면 고치면 된다⁠. 숨긴다고 하면 아니라고 하면 된다⁠.

아무 말도 안 하면 할 것이 없다⁠.

같은 해 구월에 내가 세리안 선생을 찾아갔다⁠.

찾아가서 물었다⁠.

“⁠선생님⁠.⁠”

“⁠…왜⁠?⁠”

“⁠저는 뭐예요⁠?⁠”

선생이 손을 멈췄다⁠. 장부를 넘기던 손이다⁠.

“⁠…무슨 말이냐⁠?⁠”

“⁠다른 애들은 여섯 해 치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랬지⁠.⁠”

“⁠저는 뭐가 있어요⁠?⁠”

선생이 장부를 덮었다⁠.

“⁠모른다⁠.⁠”

“⁠…⁠”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선생은 이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짐작한 것을 말하면 내가 이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안 말한 것이다⁠.

나는 이날 밤에 잠이 안 왔다⁠.

잠이 안 와서 셈을 했다⁠.

내가 다섯 해를 거뒀다고 치자⁠. 이 가운데 두 해가 영이다⁠.

그러면 세 해 치가 어디론가 갔다⁠.

간 데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보고 싶었다⁠.

세리안 선생은 지하를 맡는다⁠.

벨라른 학교 지하에는 등이 사백열둘 걸려 있다⁠.

돌계단을 마흔두 단 내려가면 복도가 나오고⁠, 복도 양쪽 벽에 놋쇠 받침이 박혀 있다⁠.

받침마다 유리를 씌운 기름등이 하나씩 있다⁠.

사백열둘이다⁠.

지하가 따뜻하다⁠. 놋쇠는 차가운데 방이 따뜻하다⁠.

기름을 안 붓는데 꺼지지 않는다⁠.

유리 안쪽이 그을려서 노랗다⁠.

지하 이야기를 하는 아이는 없다⁠.

내려가 본 아이가 없어서다⁠. 문이 하나 있고 이 문에 자물쇠가 있다⁠. 열쇠를 가진 사람이 셋이다⁠. 교장⁠, 세리안 선생⁠, 그리고 문지기다⁠.

문지기는 말을 안 한다⁠. 말을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이 지하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뿐이다⁠.

거둔 것이 거기로 간다⁠.

어떻게 가는지⁠, 가서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학년 때 아이 하나가 그런 말을 했다⁠.

“⁠거기 우리 게 다 있대⁠.⁠”

“⁠…있으면 뭐 해⁠. 못 가져오는데⁠.⁠”

“⁠가져올 수 있으면 가져올 거야⁠?⁠”

넷이 앉아 있었다⁠. 넷이 다 대답을 안 했다⁠.

가져와서 뭘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내놓았는지 모른다⁠.

모르는 것을 되찾고 싶어 하기는 어렵다⁠.

내가 처음 내려간 것은 같은 해 시월이다⁠.

내려간 까닭은 하나다⁠. 세리안 선생이 나를 불렀다⁠.

“⁠루아⁠.⁠”

“⁠예⁠.⁠”

“⁠내려와 봐라⁠.⁠”

나는 따라 내려갔다⁠.

복도에 서니 소리가 났다⁠.

내가 처음 이 노래를 들은 자리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돌계단 마흔두 단을 다 내려가서 왼쪽으로 세 걸음이다⁠.

세 걸음에서 소리가 났고 네 걸음에서 더 났다⁠.

나는 이 자리를 발로 재 보았다⁠. 소리가 제일 잘 들리는 데가 복도 한가운데다⁠.

양쪽 벽에서 같은 거리다⁠.

나는 이것이 이상했다⁠.

소리가 등에서 나면 등에 가까울수록 잘 들려야 한다⁠.

가운데가 제일 잘 들린다는 것은 양쪽에서 온 소리가 가운데서 만난다는 뜻이다⁠.

만나면 겹친다⁠.

겹치면 더 커진다⁠.

나는 이날 복도 가운데 서서 눈을 감았다⁠.

사백열둘이 한꺼번에 났다⁠.

시끄러워야 하는데 안 시끄러웠다⁠.

이것이 이날 제일 이상했다⁠.

작은 소리다⁠. 귀를 기울여야 들린다⁠.

여럿이 한꺼번에 내는 소리인데 노래 같았다⁠.

“⁠…선생님⁠, 소리가 납니다⁠.⁠”

세리안 선생이 걸음을 멈췄다⁠.

“⁠…들리느냐⁠?⁠”

“⁠들려요⁠.⁠”

선생이 나를 오래 봤다⁠.

“⁠…무슨 소리냐⁠?⁠”

나는 말했다⁠.

“⁠노래예요⁠.⁠”

선생이 등 하나 앞에 섰다⁠.

“⁠이거 앞에 서 봐라⁠.⁠”

나는 섰다⁠.

이 등에서 나는 소리가 또렷해졌다⁠.

여자아이 목소리였다⁠.

노래를 부르는데 두 줄만 부르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앞 두 줄만 안다⁠.

“⁠…선생님⁠, 이 아이는 앞만 알아요⁠.⁠”

세리안 선생이 이 자리에 앉았다⁠.

앉는 데 시간이 걸렸다⁠. 선생은 마흔이 넘었다⁠.

“⁠…뭐라고 했느냐⁠?⁠”

나는 말했다⁠.

“⁠이 노래요⁠. 앞 두 줄만 부르고 다시 처음부터 해요⁠.⁠”

선생이 물었다⁠.

“⁠…그 노래를 아느냐⁠?⁠”

나는 말했다⁠.

“⁠몰라요⁠.⁠”

선생이 말했다⁠.

“⁠나는 안다⁠.⁠”

“⁠…⁠”

“⁠나도 앞 두 줄만 안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도 여기서 들으셨어요⁠?⁠”

세리안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안 들린다⁠.⁠”

“⁠…그럼 어떻게 아세요⁠?⁠”

선생이 말했다⁠.

“⁠내가 부르던 노래다⁠.⁠”

나는 이 자리에 섰다⁠.

선생이 말했다⁠.

“⁠내가 여기 학생이었다⁠.⁠”

“⁠…⁠”

“⁠졸업했다⁠.⁠”

선생이 이 등을 봤다⁠.

“⁠이게 내 것이다⁠.⁠”

세리안 선생이 이 등을 놋쇠 받침에서 내렸다⁠.

내려서 나한테 줬다⁠.

“⁠들어 봐라⁠.⁠”

나는 받았다⁠.

받으니 소리가 커졌다⁠.

앞 두 줄이다⁠.

「⁠해가 지면 문을 닫고⁠」

「⁠불을 하나 켜 두고⁠」

거기서 끊겼다⁠.

끊기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 뒤가 뭐예요⁠?⁠”

세리안 선생이 말했다⁠.

“⁠모른다⁠.⁠”

“⁠…선생님 노래잖아요⁠.⁠”

선생이 말했다⁠.

“⁠앞 두 줄만 기억난다⁠.⁠”

나는 물었다⁠.

“⁠나머지는요⁠?⁠”

선생이 말했다⁠.

“⁠여기 있겠지⁠.⁠”

선생이 등을 가리켰다⁠.

“⁠그런데 여기서도 앞 두 줄만 나온다면서⁠.⁠”

나는 말했다⁠.

“⁠예⁠.⁠”

선생이 말했다⁠.

“⁠그러면 뒤는 어디 있느냐⁠?⁠”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선생이 등을 도로 걸었다⁠.

걸면서 소매로 유리를 닦았다⁠.

닦으니 그을음이 조금 벗겨졌다⁠.

소리가 또렷해졌다⁠.

나는 이 자리에 섰다⁠.

“⁠…선생님⁠.⁠”

“⁠왜⁠?⁠”

“⁠닦으니까 잘 들려요⁠.⁠”

선생이 손을 멈췄다⁠.

“⁠…뭐라고 했느냐⁠?⁠”

“⁠닦으니까 소리가 커졌어요⁠.⁠”

선생이 소매로 한 번 더 닦았다⁠.

나는 들었다⁠.

「⁠해가 지면 문을 닫고⁠」

「⁠불을 하나 켜 두고⁠」

「⁠…⁠」

세 줄째가 났다⁠.

말이 안 됐다⁠. 소리만 났다⁠.

나는 말했다⁠.

“⁠세 줄째가 났어요⁠.⁠”

선생이 이 자리에 앉았다⁠.

“⁠…무엇이라 하더냐⁠?⁠”

나는 말했다⁠.

“⁠말이 안 됩니다⁠. 소리만 납니다⁠.⁠”

선생이 말했다⁠.

“⁠더 닦아라⁠.⁠”

나는 이날 밤에 이 등을 닦았다⁠.

유리를 다 닦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그을음이 두꺼웠다⁠.

닦는 법을 선생이 안 가르쳐 줬다⁠.

소매로 닦으면 된다고만 했다⁠.

나는 소매로 닦다가 팔이 아파서 방법을 바꿨다⁠. 물을 묻히면 잘 닦일 줄 알았는데 더 안 닦였다⁠. 그을음이 기름 그을음이라 물이 안 먹는다⁠.

재를 묻혀서 닦으니 됐다⁠.

재로 그을음을 닦는 것이 이상했다⁠. 더러운 것으로 더러운 것을 닦는다⁠.

닦는 동안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한 번 문지르면 아주 조금 커진다⁠. 백 번을 문질러야 알아챌 만큼 커진다⁠.

나는 이것을 세면서 닦았다⁠.

세면서 닦으니 두 시간이 짧았다⁠.

그리고 알았다⁠.

유리 안쪽은 못 닦는다⁠. 등을 열 수가 없다⁠.

바깥만 닦아서 여기까지다⁠.

안쪽까지 닦을 수 있으면 얼마나 들릴지 나는 이날 밤에 생각했다⁠.

생각만 하고 안 했다⁠.

등을 열면 안에 든 것이 흩어진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이때 안 열기를 잘했다⁠.

다 닦고 들었다⁠.

세 줄째가 말이 됐다⁠.

「⁠먼 데서 오는 사람을⁠」

나는 이것을 선생한테 말했다⁠.

선생이 이 자리에서 울었다⁠.

나는 왜 우는지 몰랐다⁠.

한참 있다가 선생이 말했다⁠.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다⁠.⁠”

“⁠…⁠”

“⁠어머니가 그 세 줄째에서 늘 나를 안았다⁠.⁠”

선생이 유리를 만졌다⁠.

“⁠이십팔 년 만이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1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문가온2026.10.09· 1화

    작가 문가온입니다. 초하루마다 아이에게서 무언가를 거두는 학교, 두 해째 아무것도 안 나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1화의 초하루 징수를 읽고, 루아에게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