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29자)

유리문 안쪽

중고 명품 감정사 · 채이안

5월 20일 목요일 오후 세 시 사십 분⁠, 수련은 장갑을 낀 손으로 감정실 유리문을 밀었다⁠. 문 너머에 엄마가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었다⁠. 3월 15일과 같은 자리였다⁠. 다른 것은 문을 미는 손이었다⁠.

“⁠들어와⁠, 엄마⁠.⁠”

“⁠여기 들어가도 되냐⁠. 경찰 양반들도 있는디⁠.⁠”

“⁠엄마 가방이잖아⁠.⁠”

엄마가 한 발을 들여놓았다⁠. 왁스 냄새 나는 타일 위에서 엄마의 운동화가 끽 소리를 냈다⁠. 감정실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엄마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맨 먼저 벽의 액자를 보았다⁠.

“⁠7년 이하의 징역⁠. 7년이믄 우리 가게 계약을 두 번 하네⁠.⁠”

벽 앞의 소람이 웃음을 터뜨렸다가 얼른 입을 막았다⁠. 엄마가 소람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가씨⁠, 갓김치 맛있었어⁠?⁠”

“⁠어머님⁠, 저 칠 분의 일밖에 못 먹었어요⁠.⁠”

“⁠다음에 한 통 따로 해 주께⁠. 이름 써서⁠.⁠”

경춘이 헛기침을 했다⁠. 엄마가 입을 다물고 1번 감정대 옆으로 왔다⁠. 감정대 위에 갈색 루나가 놓여 있었다⁠. 엄마는 제 가방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오래 내려다보았다⁠.

*

수련이 실뜯개를 집으려 할 때 엄도식이 다가왔다⁠. 창가 쪽으로 오라는 눈짓이었다⁠. 수련은 장갑을 벗지 않고 따라갔다⁠. 창밖으로 압구정 거리의 가로수가 초록이었다⁠.

“⁠한 가지만 제안할게요⁠. 마지막으로요⁠.⁠”

도식은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 목소리도 빨랐다⁠.

“⁠어머님 단골 스물다섯 명⁠, 그 가방을 회사가 전부 사들일게요⁠. 구매가의 두 배로⁠. 어머님이 물어 줘야 할 돈이 없어져요⁠. 칠천 빚은 제가 따로 도와드릴 방법을 찾고요⁠. 대신 오늘 밤 이사회에서 수련 씨가 한마디만 해 주세요⁠. 리셀원도 아르벨 폐기품에 속은 피해자라고⁠. 카드 계약은 실수였다고⁠.⁠”

“⁠그 말이 사실이에요⁠?⁠”

“⁠반은 사실이죠⁠. 수련 씨 입으로 반만 말해 주면⁠, 백이십 명 가운데 오십 명이 덜 나가요⁠. 감사위원은 수련 씨 말을 들어요⁠. 오늘 그걸 다 봤어요⁠.⁠”

도식이 감정대를 돌아보았다⁠. 엄마가 루나 손잡이를 손끝으로 쓸고 있었다⁠.

“⁠어머님 가방은 가품이에요⁠. 수련 씨도 알고 저도 알아요⁠. 도장 찍으면 어머님은 가짜를 사고판 가게 주인으로 확정돼요⁠. 스물다섯 명한테 다 물어 줘야 하고요⁠. 저는 그 돈을 대신 내겠다는 거예요⁠. 이게 나쁜 거래예요⁠?⁠”

수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감정대로 돌아가 엄마 옆으로 갔다⁠. 도식이 뒤따라왔다⁠. 감정실 사람들이 다 듣는 자리에서⁠, 수련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대표님이 엄마 손님들 가방을 두 배로 사 준대⁠. 그 대신 내가 오늘 밤 회사도 피해자라고 말하면⁠.⁠”

엄마가 도식을 올려다보았다⁠. 도식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한참 도식의 얼굴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고맙소⁠. 근디 내 손님 돈은 내가 갚아요⁠.⁠”

“⁠어머님⁠, 금액이 꽤 됩니다⁠.⁠”

“⁠알아요⁠. 이십 년 장사했어요⁠. 내가 판 거는 내가 물어요⁠. 그래야 장사여⁠.⁠”

엄마가 수련에게 고개를 돌렸다⁠.

“⁠찍어라⁠. 엄마 가방이여⁠.⁠”

*

수련은 장갑을 고쳐 끼고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장갑 끝이 손톱에 닿았다⁠.

냄새부터 맡았다⁠. 안감 입구에 코를 대자 매니큐어 냄새가 손톱만큼 올라왔다⁠. 엄마가 옆에서 따라 코를 댔다⁠.

“⁠나는 그냥 가방 냄새여⁠.⁠”

“⁠조금 더 아래⁠.⁠”

“⁠조금 더 아래도 가방 냄새여⁠.⁠”

감정실 어딘가에서 지난 3월 실사단의 심사역이 했던 말과 똑같다며 소람이 어깨를 떨었다⁠. 수련은 확대경으로 옆선을 따라갔다⁠. 한 인치에 열한 땀⁠,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 공방 장인의 땀이었다⁠. 각인을 보았다⁠. 「⁠ARVEL · PARIS⁠」⁠, R의 다리 끝이 살짝 굽어 있었다⁠. 휴대전화를 안감에 댔다⁠. 「⁠LN30-2503-58823⁠」⁠. 우경이 보낸 표의 마흔 번째 줄에 같은 번호가 있었다⁠.

“⁠엄마⁠, 이 번호는 파리에서 갈아 버렸어야 할 가방이야⁠.⁠”

“⁠갈아⁠?⁠”

“⁠갈아서 태워⁠. 다시 못 나오게⁠.⁠”

“⁠아이고⁠, 아까워라⁠.⁠”

엄마의 말에 명진이 고개를 숙였다⁠. 수련은 실뜯개로 바닥 모서리의 손바느질 땀 세 개를 뜯었다⁠. 안감을 들어 올리자 순간접착제의 막이 찢어졌다⁠. 몸통 가죽 안쪽에 지름 3밀리미터의 동그란 구멍이 있었다⁠. 엄마가 몸을 숙여 들여다보았다⁠.

“⁠구멍이 있네⁠.⁠”

“⁠폐기 표시야⁠. 공방에서 버릴 때 뚫는 거⁠.⁠”

“⁠버린 걸 나가 천백 주고 샀구먼⁠.⁠”

엄마가 허리를 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이었다⁠. 엄마는 영수증을 손에 들고 접수증 옆에 나란히 놓았다⁠. 「⁠일금 일천일백만 원정⁠」과 「⁠우리 딸 바쁘니까 천천히 봐 주세요⁠」⁠.

“⁠비싼 사진이 하나 더 생겼네⁠. 이번 건 내 딸이 직접 찍어 주는 거고⁠.⁠”

수련은 「⁠가품⁠」 도장을 집었다⁠. 빨간 나무 손잡이가 손바닥에 익었다⁠. 인주를 묻혀 감정표에 눌렀다⁠. 엄마 이름 대신 엄마가 쓴 이름⁠, 「⁠감정사 지수련 모친⁠」 옆에 빨간 자국이 찍혔다⁠. 3월 15일에 찍었어야 할 도장이었다⁠. 66일 만이었다⁠.

엄마가 수련의 손에서 도장을 빼 갔다⁠. 도장을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물었다⁠.

“⁠나도 한 번 찍어 봐도 되냐⁠.⁠”

“⁠어디다⁠?⁠”

엄마는 대답 대신 감정대 위의 백화점 쇼핑백을 끌어당겼다⁠. 3월 15일부터 두 달 넘게 보관함에서 가방을 품고 있던 쇼핑백이었다⁠. 엄마가 인주를 꾹 묻혀 쇼핑백 옆면에 「⁠가품⁠」을 찍었다⁠. 너무 세게 눌러서 글자 둘레로 인주가 번졌다⁠.

“⁠됐다⁠. 이제 이 봉지 보믄 생각나겄다⁠. 다시는 반듯한 물건 안 믿을라고⁠.⁠”

“⁠반듯한 건 믿어도 돼⁠. 너무 반듯한 것만 봐⁠.⁠”

“⁠그게 그거 아니여⁠?⁠”

“⁠아니야⁠. 다음에 가르쳐 줄게⁠.⁠”

엄마가 도장을 내려놓으며 수련을 흘겨보았다⁠. 다음에⁠, 라는 말에 엄마의 눈썹이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이번에는 엄마도 따지지 않았다⁠.

경춘이 감정표와 접수증과 영수증을 차례로 사진에 담았다⁠. 다 찍고 나서 저울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엄마에게 말했다⁠.

“⁠사장님⁠, 이거 중요해유⁠. 의심이 들어서 제 돈 내고 하나 사서⁠, 감정사한테 맡겨 확인하려고 하신 거유⁠. 알고 판 사람은 이렇게 안 하쥬⁠. 미용실 원장님한테 판 거 하나는 따로 따져야 하지만⁠, 나머지 스물네 개는 속으신 걸로 보고 올리겄슈⁠.⁠”

“⁠형사 양반⁠, 그럼 나 감옥 안 가⁠?⁠”

“⁠그건 검사가 정해유⁠. 근디 저울로 치면 많이 가벼워졌슈⁠.⁠”

엄마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었다⁠. 명진이 앞으로 나와 엄마에게 명함을 건넸다⁠.

“⁠곽미순 사장님⁠. 아르벨 본사가 다음 달부터 폐기품으로 피해를 본 구매자들에게 정품 교환을 합니다⁠. 사장님 단골분들도 들어가요⁠. 명단은 경찰 압수 목록으로 하겠습니다⁠.⁠”

“⁠우리 떡집 언니도⁠?⁠”

“⁠떡집 언니도요⁠.⁠”

엄마가 명함을 두 손으로 받아 블라우스 주머니에 넣었다⁠. 명진은 수련을 한 번 보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오늘 명진의 목소리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반 칸 낮았다⁠. 파리에 제 회사의 구멍을 먼저 인정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

여섯 시⁠, 사람들이 빠져나간 감정실에 도식이 혼자 남아 있었다⁠. 수련이 장갑을 벗어 서랍에 넣을 때 도식이 1번 감정대 앞으로 왔다⁠. 감정대 위에 엄마의 루나와 빨간 도장 자국이 남은 감정표가 있었다⁠.

“⁠어머님이 거절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왜 물으셨어요⁠?⁠”

“⁠수련 씨가 거절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어머님을 앞세울 줄도 몰랐고⁠.⁠”

도식이 감정표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밤 이사회에서 저는 물러날 거예요⁠. 감사위원 표가 넘어갔어요⁠. 리셀원은 다른 대표를 세우고⁠, 상장은 접고⁠, 사람을 줄일 거예요⁠. 백이십 명 가운데 몇 명이 나갈지는 저도 몰라요⁠. 그 숫자는 제 말이 맞을 거예요⁠.⁠”

“⁠알아요⁠.⁠”

“⁠알면서 찍었어요⁠?⁠”

“⁠가방은 숫자를 몰라요⁠. 대표님⁠. 가방은 진짜거나 가짜예요⁠.⁠”

도식이 처음으로 웃었다⁠. 사람 좋은 웃음도⁠, 숫자가 맞았을 때의 웃음도 아니었다⁠.

“⁠감정사는 그래서 대표가 못 해요⁠.⁠”

도식이 사원증을 목에서 벗어 감정대 위⁠, 「⁠진품⁠」 도장 옆에 내려놓았다⁠. 재킷 단추를 풀고 유리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서 잠깐 멈춰 벽의 액자를 보았고⁠, 손바닥으로 문을 밀고 나갔다⁠.

5월 20일 밤 이사회는 도식의 사임을 받았다⁠. 이튿날 경찰은 도진구를 상표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구속했고⁠, 도식을 상표법 위반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감사위원은 수련에게 감정실 실장 자리를 맡겼다⁠. 수련은 하나만 조건으로 걸었다⁠. 계약이 끝난 감정사 하나를 정규직으로 다시 불러 달라고⁠.

*

6월 5일 토요일 오전 열 시⁠, 모란 상가 2층의 진열장 셋은 비어 있었다⁠. 유리에 먼지 없는 네모들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넘겼다⁠. 권리금으로 단골들에게 줄 돈을 먼저 치렀다⁠. 칠천은 수련이 다달이 갚기로 했다⁠. 차용증은 진구의 다른 재산과 함께 법원에 묶였다⁠. 갚을 곳은 바뀌어도 갚을 돈은 그대로였고⁠, 이자도 그대로 연 20퍼센트였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진구 사장이 법 하나는 잘 지켰다고 말했다⁠.

소람이 상자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정규직 출근이었다⁠. 리셀원은 새 대표를 세웠고⁠, 직원 백이십 명 가운데 마흔 명이 회사를 떠났다⁠. 도식이 말한 숫자에 가까웠다⁠. 수련은 떠나는 사람들의 송별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실장이믄 월급 올랐냐⁠.⁠”

엄마가 테이프 끝을 잡아 주며 물었다⁠.

“⁠조금⁠.⁠”

“⁠얼마나 조금⁠.⁠”

“⁠엄마 이자만큼⁠.⁠”

“⁠그라믄 안 오른 거네⁠.⁠”

엄마가 테이프를 이로 끊었다⁠. 소람이 따라 해 보다가 앞니가 아프다며 주저앉았고⁠, 엄마는 시장에서 삼십 년을 끊어야 이가 테이프를 이긴다고 일러 주었다⁠.

“⁠어머님⁠, 이 상자 뭐라고 써요⁠?⁠”

“⁠반찬통⁠. 열한 개⁠.⁠”

“⁠가방 가게에서 반찬통이 열한 개나 나와요⁠?⁠”

“⁠이십 년이믄 그려⁠.⁠”

떡집 아주머니가 계단을 올라와 계산대 위에 시루떡 한 판을 내려놓고 갔다⁠. 엄마는 떡을 썰다가 칼을 내려놓고⁠, 계산대 유리 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피렌체 공방에서 흰 머리 장인 옆에 앉아 가죽을 꿰매는 스물네 살의 수련이었다⁠. 엄마는 사진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진열장 맨 아래 칸 구석에 갈색 서류 가방 하나가 남아 있었다⁠. 가게를 연 2007년 봄에 엄마가 처음 들여놓은 가방이었다⁠. 팔리지 않아서 스무 해를 진열장에 있었다⁠. 손잡이가 엄마 손 모양으로 닳아 있었다⁠.

수련이 확대경을 꺼내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가 봐⁠. 이건⁠.⁠”

엄마가 확대경을 받아 들었다⁠. 거꾸로 들었다⁠. 손잡이를 위로 하고 렌즈를 아래로 한 채⁠, 렌즈 구멍에 코를 박고 서류 가방 안쪽 냄새를 길게 맡았다⁠. 소람이 테이프를 든 채로 굳었다⁠. 수련은 엄마의 손을 바로잡아 주려다 그만두었다⁠.

엄마가 얼굴을 들었다⁠. 렌즈에 콧김이 하얗게 서려 있었다⁠.

“⁠얘는 진짜 냄새가 나네⁠. 오래된 나무 서랍 냄새⁠.⁠”

엄마가 서류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거꾸로 든 확대경으로 손잡이의 닳은 자리를 한 땀씩 따라가기 시작했다⁠. 창으로 들어온 토요일 햇빛이 빈 진열장 유리를 지나 엄마의 뽀글 파마 위에 얹혔다⁠. 엄마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땀을 세는 입 모양이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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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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