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48자)

하나, 둘, 김밥 — 이혼 부부가 문 두 개를 같이 쳤다

레벨 반씩 나눈 S급 이혼 부부헌터 · 남이랑

5월 7일 오후 다섯 시⁠, 마포 균열 안은 늘 보던 모습과 달랐다⁠. 보랏빛 하늘이 맥박마다 출렁였고⁠, 머리 위로 거꾸로 흐르던 한강이 소용돌이치며 물방울을 비처럼 떨어뜨렸다⁠. 메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오늘 서울에 쏟아진 새끼들이 전부 여기서 나간 것이었다⁠.

현주는 칼을 뽑고 앞으로 걸었다⁠. 레벨 80의 몸은 아침의 79보다 아주 조금 가벼웠다⁠. 칼끝이 떨렸다⁠. 떨림이 레벨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현주는 따지지 않았다⁠.

물안개 너머로 문 두 개가 보였다⁠. 왼쪽 저 멀리 금빛 문⁠, 오른쪽 저 멀리 보랏빛 문⁠. 둘 다 사람 키의 세 배쯤 되는 둥근 빛이었고⁠, 둑길에서 보던 금처럼 천천히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다⁠. 두 문 사이는 한강 폭만큼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두 문 사이의 허공을 메기 한 마리가 맴돌고 있었다⁠. 지하철 네 칸만 한 몸에 비늘마다 마석이 박힌 메기였다⁠. 새끼를 낳은 어미였다⁠.

“⁠문 하나에 한 사람씩⁠.⁠” 태호가 말했다⁠. “⁠같은 숨에⁠.⁠”

“⁠공동 결계 안에서⁠.⁠” 현주가 이었다⁠. “⁠두 문을 한꺼번에 덮어야 돼⁠. 강 하나만큼⁠.⁠”

태호는 대답 대신 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하늘색 막이 퍼져 나갔다⁠. 사람 셋을 덮던 막이 골목을 덮었고⁠, 골목을 덮던 막이 운동장을 덮었고⁠, 운동장을 덮던 막이 한강 폭만큼 늘어나 두 문을 한꺼번에 감쌌다⁠. 막이 얇아질 때마다 태호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레벨 81의 태호였다면 반도 못 늘였을 막이었다⁠. 현주는 막 끝에 닿은 금빛 문을 보며 지난 금요일 유리 받침 위에서 갈라진 구슬을 생각했다⁠. 반은 이 막이 되었다⁠.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기지 중계 천막의 봉재만이었다⁠.

「⁠연결됐습니다⁠! 헌터님들⁠, 여기 누가 할 말이 있대요⁠!⁠」

「⁠엄마⁠, 아빠⁠.⁠」 시우였다⁠. 핫도그 이모가 대피소에서 중계 천막까지 데려다 놓은 것이었다⁠. 「⁠문 칠 때 내쉬는 끝에 쳐야 돼⁠. 이백 장 봤어⁠. 내쉴 때 문이 제일 얇아⁠.⁠」

“⁠알았어⁠.⁠” 현주가 말했다⁠.

「⁠엄마 진짜 알았어⁠? 엄마 알았다 하고 맨날 혼자 가잖아⁠.⁠」

태호가 지팡이를 짚은 채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끝에 코에서 피가 다시 흘렀다⁠.

*

현주는 금빛 문을 향해⁠, 태호는 보랏빛 문을 향해 걸었다⁠. 열두 해 만에 처음으로 둘이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걸을수록 등 뒤의 지팡이 소리가 멀어졌다⁠. 공동 결계는 칼등이 지팡이 끝에 닿아야 올라갔다⁠. 지금은 닿지 않았다⁠. 하늘색 막만 강 하나만큼 늘어나 두 사람을 겨우 함께 덮고 있었다⁠.

어미 메기가 금빛 문 앞으로 내려왔다⁠. 현주를 보고 입을 벌렸다⁠.

현주는 메기 아래로 파고들어 지느러미를 베었다⁠. 레벨 80으로는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두 번 베고⁠, 세 번 베고⁠, 비늘에 칼날이 튕겨 손목이 저렸다⁠. 메기가 꼬리를 휘둘렀다⁠. 하늘색 막 한 겹이 현주 앞에 쑥 솟아 꼬리를 받았다⁠. 강 저편의 태호가 막을 끌어당긴 것이었다⁠. 막이 받는 순간 저편에서 태호가 무릎을 꿇는 소리가 무전으로 들렸다⁠.

「⁠아빠 무릎 꿇었어⁠!⁠」 시우가 소리쳤다⁠. 「⁠엄마⁠, 지금⁠!⁠」

현주는 메기 턱 밑으로 뛰어올라 아가미에 칼을 박았다⁠. 마포의 어미가 몸을 비틀며 물안개 속으로 떨어졌다⁠. 금빛 가루가 쏟아졌다⁠. 현주는 손등을 볼 틈도 없이 금빛 문 앞에 다다랐다⁠. 문이 숨을 쉬었다⁠. 들이쉬고⁠, 멈추고⁠, 내쉬었다⁠.

「⁠하나⁠.⁠」 시우의 목소리였다⁠.

현주는 칼을 들었다⁠. 내쉬는 끝에 쳐야 했다⁠. 같은 숨에⁠. 강 저편의 태호가 언제 숨을 내쉬는지 현주는 알 수 없었다⁠. 열두 해 동안 태호의 숨은 늘 등 뒤에 있었다⁠. 보지 않아도 칼등이 지팡이 끝을 찾았다⁠. 강 하나만큼 떨어지니 숨이 보이지 않았다⁠.

보려면 돌아봐야 했다⁠.

왼쪽 눈썹 위 흉터가 당겼다⁠. 여덟 해 동안 돌아보고 싶을 때마다 당기던 자리였다⁠. 현주는 칼을 든 채 고개를 돌렸다⁠.

물안개 저편⁠, 보랏빛 문 앞에 태호가 서 있었다⁠. 한쪽 무릎을 막 펴고 일어난 자세였다⁠. 코밑이 붉었고 안경 한쪽 알이 또 금이 가 있었다⁠. 남색 로브 위 등산 조끼의 주머니 열두 개가 다 열려 있었다⁠. 반창고⁠, 고무줄⁠, 박하사탕이 막 안의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태호는 지팡이를 칼처럼 두 손으로 쥐고 머리 위로 들고 있었다⁠. 열두 해 동안 한 번도 막타를 쳐 본 적 없는 사람의 자세라 팔꿈치가 어색하게 벌어져 있었다⁠.

태호도 고개를 돌려 현주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강 하나를 건너 마주쳤다⁠. 태호가 숨을 들이쉬는 것이 보였다⁠. 어깨가 올라갔다⁠. 현주도 같이 들이쉬었다⁠.

「⁠둘⁠.⁠」 무전 너머에서 시우가 말했다⁠.

“⁠김밥⁠.⁠”

두 사람이 같은 숨에 내쉬었다⁠. 내쉬는 끝에서 현주의 칼이 금빛 문을⁠, 태호의 지팡이가 보랏빛 문을 내리쳤다⁠.

칼등도 지팡이 끝도 닿지 않았는데⁠, 하늘색 막 위로 금빛이 한 겹 씌워졌다⁠. 강 하나만큼 넓은 금빛 막이었다⁠.

*

두 문이 한꺼번에 깨졌다⁠. 깨지는 소리는 유리 받침 위의 구슬이 갈라지던 소리와 같았고⁠, 열 배쯤 컸다⁠. 금빛 가루가 하늘 전체에서 쏟아져 내렸다⁠. 막타를 같은 숨에 쳤으니 가루는 두 갈래로 똑같이 나뉘어 흘렀다⁠. 현주 손등으로 반⁠, 태호 손등으로 반⁠. 손등의 숫자가 하나씩 올라갔다⁠.

머리 위의 거꾸로 흐르던 한강이 멈추더니 천천히 위로 빨려 올라갔다⁠. 보랏빛 하늘이 가운데부터 지퍼를 올리듯 닫혔다⁠. 바닥이 꺼지는 느낌이 들었고⁠, 현주는 잔디밭에 등부터 떨어졌다⁠. 망원 한강공원의 잔디였다⁠. 풀 냄새가 났다⁠. 옆에 태호가 대자로 뻗어 있었다⁠. 지팡이 끝의 하늘색이 깜박이다가 꺼졌다⁠.

둘은 누운 채 하늘을 보았다⁠. 북서쪽 하늘이 파랬다⁠. 세 해 동안 그어져 있던 보랏빛 금이 없었다⁠.

“⁠닫혔다⁠.⁠” 태호가 말했다⁠.

“⁠닫혔네⁠.⁠”

“⁠나 막타 쳤다⁠.⁠”

“⁠팔꿈치가 다 벌어졌던데⁠.⁠”

“⁠처음이잖아⁠.⁠”

둑길 위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관광객들이 휴대전화를 하늘로 들어 빈 하늘을 찍고 있었다⁠. 찍을 것이 없는 하늘을 다들 찍었다⁠. 기지 중계 천막에서 시우가 뛰어나왔다⁠. 핫도그 이모가 뒤따라 뛰다가 반반 응원봉을 떨어뜨렸다⁠.

“⁠이제 뭐 팔아요⁠?⁠” 이모가 칼국수집 사장을 붙잡고 물었다⁠.

“⁠핫도그 팔아요⁠. 원래 핫도그 집이잖아⁠.⁠”

“⁠아⁠, 맞다⁠.⁠”

시우가 잔디밭으로 뛰어들어 누워 있는 엄마 아빠 사이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이 차서 한참 말을 못 하다가 엄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엄마 뒤 돌아봤지⁠? 드론 화면에 나왔어⁠.⁠”

“⁠봤어⁠.⁠”

“⁠어땠어⁠?⁠”

현주는 누운 채 고개만 돌려 태호를 보았다⁠. 태호는 깨진 안경알 너머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빠 팔꿈치가 다 벌어졌더라⁠.⁠”

시우가 웃음을 터뜨리며 아빠 배 위로 엎어졌다⁠. 태호가 끙 소리를 냈다⁠. 국내 1위의 배가 조금 나와 있어서 시우가 엎어지기 좋았다⁠.

재만의 드론 하나가 세 사람 머리 위로 내려왔다⁠. 스피커에서 재만의 목소리가 터졌다⁠.

“⁠헌터님들⁠!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늘 기여도⁠, 몇 대 몇입니까⁠?⁠”

현주와 태호가 동시에 대답했다⁠.

“⁠반반이요⁠.⁠”

*

둑길 계단에 기태가 앉아 있었다⁠. 낡은 지팡이를 무릎에 가로로 얹고 있었다⁠. 대피소를 덮던 결계는 이미 걷혀 있었다⁠. 진성이 옆에 서서 생수병 뚜껑을 따 주었다⁠. 재만의 드론 넷이 기태 앞으로 내려와 떴다⁠. 기자들이 둑길을 따라 몰려왔다⁠.

기태는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일어났다⁠. 드론 렌즈를 똑바로 보았다⁠.

“⁠레벨 이전기의 소수점은 제가 내렸습니다⁠. 기현주 헌터 몫만요⁠. 마포를 닫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습니다⁠. 세 해 전 두 분의 동반 배정을 막은 것도 저입니다⁠. 서울 불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태는 지팡이를 짚었다⁠. “⁠오늘 저녁부터 지하철 두 노선이 대체 전력으로 달립니다⁠. 그 책임도 제가 지겠습니다⁠. 회장직은 오늘 내려놓겠습니다⁠.⁠”

기자들이 한꺼번에 질문을 쏟아냈다⁠. 기태는 하나도 받지 않았다⁠. 진성에게 고개를 돌려 한 마디만 했다⁠.

“⁠곽 실장⁠, 설정 창 그 줄 지워요⁠. 다음 사람부터는 당사자가 정하게⁠.⁠”

진성이 고개를 숙였다⁠. 오래 숙이고 있었다⁠.

재만의 휴대전화 화면 위로 자막과 댓글이 뒤섞여 흘렀다⁠.

「⁠도명란 의원 — 레벨 분할법⁠, 소수점은 당사자가 정하도록 고쳐 다시 내겠다⁠」

「⁠외신 — 네바다 이후 세계 두 번째 쌍문 균열 폐쇄⁠」

「⁠회장님 마지막에 결계 친 거 봤음⁠?⁠」

「⁠이혼한 거 맞냐고 이제 그만 물어도 됨⁠?⁠」

*

잔디밭 한가운데 하정임이 접이식 탁자를 펴고 있었다⁠. 기지 출입석 옆에 있던 「⁠가사조정 현장 확인⁠」 탁자였다⁠. 하정임은 안전모를 벗어 탁자 귀퉁이에 놓고 서류 봉투에서 조정 합의서 두 장을 꺼냈다⁠.

“⁠법원 밖에서도 조정은 할 수 있어요⁠. 판사님 허락은 차 안에서 받았습니다⁠.⁠” 하정임이 인주 뚜껑을 열었다⁠. 태호의 인주였다⁠. “⁠도장 찍으실 거예요⁠?⁠”

현주와 태호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시우가 탁자 옆에 쪼그려 앉아 턱을 괴었다⁠.

“⁠찍자⁠.⁠” 태호가 먼저 말했다⁠. “⁠한 집에서 우리는 서로 등만 봤어⁠. 등은 균열 안에서 보면 돼⁠.⁠”

“⁠그리고 작은방 레고 너무 아파⁠.⁠” 현주가 말했다⁠.

시우가 킥킥 웃었다⁠. 하정임이 합의서를 한 장씩 앞으로 밀었다⁠. 양육 항목에 하정임의 손글씨가 있었다⁠. 평일은 아빠⁠, 주말은 엄마⁠. 시우가 고른 대로였다⁠.

“⁠레벨은 어떻게 해⁠?⁠” 태호가 물었다⁠. “⁠장치 다시 쓰면 돌려줄 수 있어⁠.⁠”

“⁠갖고 있어⁠. 1위잖아⁠.⁠” 현주가 말했다⁠. “⁠그 막⁠, 강 하나만큼 늘이는 거 당신밖에 못 해⁠.⁠”

현주가 도장을 인주에 눌렀다⁠. 오전에 한 번 묻혔던 인주가 마르지 않고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의 도장이 차례로 종이에 내려갔다⁠. 붉은 「⁠기현주⁠」 옆에 붉은 「⁠변태호⁠」⁠.

“⁠조정 성립입니다⁠.⁠” 하정임이 돋보기를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이건 조정위원 말고 동네 할머니로서 하는 말인데요⁠. 다음에 균열 들어가실 때 보조 인원 필요하면 부르세요⁠. 안전모 아직 안 돌려줬어요⁠.⁠”

“⁠이혼해도 김밥은 같이 먹어⁠.⁠” 시우가 말했다⁠. 묻는 말이 아니었다⁠.

*

5월 8일 토요일 아침⁠, 망원 한강공원 잔디밭은 이슬에 젖어 있었다⁠. 협회 직원들이 컨테이너를 하나씩 트럭에 싣고 있었고⁠, 검은 출입석은 불이 꺼진 채 잔디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핫도그 노점 앞에는 「⁠오늘부터 그냥 핫도그⁠」 종이가 붙어 있었다⁠.

시우가 둑길을 뛰어 내려왔다⁠. 양손에 카네이션을 한 송이씩 들고 있었다⁠. 어버이날이었다⁠. 시우는 왼손의 카네이션을 엄마에게⁠, 오른손의 카네이션을 아빠에게 내밀었다⁠. 한 송이는 빨갛고 한 송이는 분홍이었다⁠.

“⁠문구점에 빨간 게 하나밖에 없었어⁠. 누가 빨간 거 할지 둘이 정해⁠.⁠”

현주와 태호는 서로를 보았다⁠. 태호가 분홍을 받았다⁠. 현주가 빨강을 받았다⁠. 시우는 그거면 됐다는 얼굴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태호가 조끼 주머니에서 은박지에 싼 김밥 세 줄을 꺼냈다⁠. 현주 몫은 단무지가 빠져 있었다⁠.

셋은 둑길을 따라 걸었다⁠. 시우가 아빠 지팡이 끝을 잡고 앞서 걸었고⁠, 현주는 반 걸음 뒤에서 따라 걸었다⁠. 걷다가 시우가 엄마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현주도 손을 흔들었다⁠. 앞에서 태호의 등이 걸어갔다⁠. 남색 로브 위의 등산 조끼⁠, 열두 개 주머니 가운데 하나에서 검은 고무줄 끝이 비죽 나와 있었다⁠. 태호 옆에서 시우의 작은 등이 걸어갔다⁠. 현주는 두 등을 보며 걸었다⁠. 북서쪽 하늘에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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