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74자) · 12월 3일 새벽

그래서 쓴다

십이 년 전 내가 보낸 고백이 반송돼 돌아왔다 · 유하람

십이월 이일 수요일 밤에는 눈이 왔다. 분류실에는 창이 없어서 아무도 몰랐다. 밤 열 시에 들어올 때 은비 어깨에 하얀 것이 얹혀 있었고, 그것이 형광등 밑에서 녹아 젖은 자국이 되는 것으로 눈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밤 선우는 바구니를 이천사백 개 옮겼다. 손이 평소보다 빨랐다. 빨라야 했다. 느려지면 조끼 안주머니가 생각났다.

봉투는 거기 그대로 있었다. 어제 아침 집에 가서도 꺼내지 않았다. 옷걸이에 조끼를 걸고 그 앞에서 잤다. 자는 동안 조끼는 걸려 있었고 봉투는 그 안에 있었고 마지막 줄은 읽히지 않은 채였다. 일어나서 조끼를 입었다. 그렇게 열두 시간을 다시 왔다.

새벽 두 시 반송함에는 스물두 통이 있었다. 전부 새것이었다. 선우는 스물두 통을 스물두 번 들어 보고 나서야 자기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알았다. 낡은 것.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반송함에 십이 년 된 편지가 들어오는 일은 평생 한 번이면 많은 것이다.

스물두 통 가운데 한 통이 죽은 사람 앞으로 온 것이었다. 받는 사람 이름 옆에 배달원이 연필로 작게 적어 놓았다. 사망. 십일월. 봉투는 은행 것이었다. 창이 난 봉투, 기계가 접은 종이. 그런 것도 손이 느려진다. 은행은 그 사람이 죽은 것을 모르고, 모르는 채로 다음 달에도 보낼 것이다. 선우는 그것을 반송 상자 맨 위에 놓았다. 무거운 것을 위에 두면 아래 것이 눌리지 않는다. 십이 년 동안 만든 자기 규칙이었다.

세 시에 오병철 주임이 삶은 달걀을 까면서 왔다. 껍데기를 손바닥에 모으면서. 이번 달 목표가 팔 킬로인데 이틀 동안 일 킬로가 늘었다고 했다. 달걀을 하루 여섯 개 먹어서 그런 거라고 은비가 옆에서 말했고, 오 주임은 달걀은 살이 안 찐다고 했고, 은비는 여섯 개면 찐다고 했다. 그 대화는 삼 분 동안 컨베이어 소리 위를 오갔다. 선우는 듣지 않았다. 듣지 않는데도 들렸다. 이 방에서 웃을 일은 대개 그 두 사람 사이에서 났다.

“선우 씨.”

은비가 바구니를 밀고 왔다.

“저 선반, 저 한 번 열어 봤어요. 작년에. 선배 없을 때.”

“…뭐가 있던가요?”

“편지요. 다 편지. 근데 이상한 게, 부전지가 전부 같은 글씨예요. 맨 아래 단 제일 안쪽에 있는 게 1994년 소인이더라고요. 제가 태어나기 전이에요.”

“그래서요.”

“그래서 닫았어요. 무서워서요. 삼십 년 동안 같은 사람이 같은 글씨로 붙인 거잖아요. 그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잖아요.”

은비는 그 말을 하고 갔다. 입이 빠른 사람이 가끔 정확하다. 선우는 그 말을 반송 상자 위에 잠깐 얹어 두었다. 그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소각 자루에 넣을 것이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여섯 시 반. 그는 휴게실로 갔다.

강 선배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자판기 앞. 종이컵 두 개. 자판기는 이 건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물건이다. 첫 번째는 선반이다. 밀크커피 버튼만 글자가 닳아 없어졌다. 삼십 년 동안 한 사람이 그 버튼만 눌렀기 때문이다.

선우는 앉았다.

철제 탁자 위에 컵이 하나 놓였다. 선우는 그것을 받았다. 두 손으로. 종이컵은 얇아서 뜨거운 것이 바로 왔다. 어제 안 받은 커피가 어디로 갔는지 그는 묻지 않았다. 강 선배도 말하지 않았다. 아마 그 사람이 두 잔 다 마셨을 것이다. 삼십 년 동안 남긴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

“읽었냐.”

어제와 같은 말이었다.

“아직요.”

선우는 봉투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형광등 밑에서 보니 어제 새벽 계단에서보다 더 낡아 보였다. 봉투 옆면의 뜯긴 자리가 탁자 쪽을 보고 있었다. 결을 따라 천천히 뜯은 자국. 강 선배가 그것을 봤다. 오래 봤다.

“그 자리를 봤어. 십이 년 전에.”

강 선배가 말했다.

“반송함에서 이게 나왔는데 옆이 이렇게 뜯겨 있더라고. 뜯어서 다시 부친 거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안 봤어. 남의 편지를 열어 볼 사람은 아니야, 나는. 근데 봉투 무게가 두 장이더라.”

“그런데 왜.”

선우는 거기서 멈췄다.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강 선배가 대신 이었다.

“왜 안 줬느냐.”

“네.”

“내가 안 줬으니까.”

그 사람은 커피를 반쯤 마셨다. 뜨거운 것을 한 번에. 삼십 년 동안 그렇게 마셨다. 목이 데지 않느냐고 은비가 물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목이 뭘 느끼는지 잊은 지 오래라고 했다.

“그때 네 얼굴이. 막 들어와서 웃고 다녔거든.”

선우는 자기가 웃고 다녔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스물셋이었다. 입사 두 달째였다. 편지를 부치고 엿새째, 이레째, 여드레째를 세던 때였다. 그 얼굴이 웃는 얼굴이었다는 것을 삼십 년 분류한 사람의 눈은 봤고 본인은 몰랐다.

“반송 도장 찍힌 걸 주면 그 얼굴이 끝나. 수취인 불명. 그 네 글자를 주는 거야. 안에 뭐가 들었든 봉투가 먼저 말하잖아. 그래서 한 달만 두자고 생각했어. 한 달 지나면 네가 잊든지, 아니면 그쪽에서 새로 오든지. 둘 중 하나는 될 줄 알았어.”

“안 됐네요.”

“안 됐지. 십이 년이 됐지.”

휴게실 형광등 하나가 깜박였다. 이 방 형광등은 이 건물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물건이다. 은비가 갈아 달라고 세 번 말했고 세 번 다 이전을 앞두고 있으니 참으라는 답을 들었다.

선우는 강 선배 얼굴을 봤다. 화가 나는지 자기도 몰랐다. 나야 하는 자리였다. 십이 년이었다. 그런데 앞에 앉은 사람이 삼십 년 동안 종이컵 두 개를 뽑은 사람이라는 것을 손이 먼저 알았다. 손은 컵을 놓지 않았다.

“선배님은 그 편지 안 읽으셨죠.”

“안 읽었어.”

“그럼 안에 뭐라고 쓰였는지 모르고 십이 년을 두신 거네요.”

“몰랐지.”

“거절이면요. 안에 든 게 그냥 거절이면요. 그럼 선배님이 십이 년 동안 지켜 준 게 거절인데요.”

강 선배가 컵을 내려놓았다. 종이컵 바닥이 철제 탁자에 닿는 소리. 어제와 같은 소리였는데 어제보다 가벼웠다. 안에 든 것이 줄어서.

“그러면 네가 십이 년 동안 안 받은 게 거절이지. 받았으면 그때 아팠고 안 받았으니 지금 아프고. 어느 쪽이든 아픈 건 같아. 나는 늦게 아픈 쪽을 골랐다. 그게 내 잘못이면 잘못이야.”

그 말을 하고 그 사람은 일어나서 자판기 버튼을 눌렀다. 글자 없는 버튼. 세 번째 잔. 삼십 년 만에 처음 보는 세 번째 잔이었다. 그 사람은 그것을 마시지 않고 탁자 가운데 놓았다. 누구 것도 아닌 잔.

“읽어. 여기서. 나 있는 데서. 그게 내 벌이야.”

선우는 봉투에서 두 번째 장을 꺼냈다. 첫 장은 꺼내지 않았다. 자기 글씨는 볼 필요가 없었다.

종이는 한 장이었다. 편지지가 아니었다. 공책 종이. 왼쪽에 구멍이 세 개 뚫려 있고 위쪽이 뜯긴 자국이 있었다. 급하게 뜯은 자국. 봉투 옆면을 뜯은 손과 같은 손인데 자국이 달랐다. 봉투는 아껴서 뜯었고 공책은 서둘러 뜯었다.

십이 년 전 십이월 구일.

선우에게.

네 편지를 여섯 번 읽었어.

거기까지가 어제 읽은 것이었다. 그다음 줄부터 선우는 처음이었다.

한 번은 학교에서, 한 번은 버스에서, 세 번은 집에서, 한 번은 지금 이 상자 위에서. 이사 상자야. 오늘 이사 가. 그래서 봉투가 없어. 봉투가 든 상자가 어느 건지 몰라서 네 봉투를 뜯었어. 미안. 옆으로 뜯었으니까 다시 붙일 수 있을 거야. 네가 봉투를 아끼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 편지지가 한 장인 것도 알아. 두 장이면 무거울까 봐 그런 거지. 너는 그런 걸 걱정하는 사람이니까.

선우는 종이를 잡은 손을 탁자에 내렸다. 종이가 흔들려서였다. 탁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새 주소는 여기 못 써. 아직 나도 몰라. 군산 쪽이라는 것만 알아. 정해지면 다시 쓸게. 이 편지는 옛날 주소로 부칠 거야. 그러면 반송되겠지. 반송되면 보낸 사람한테 가겠지. 보낸 사람 칸에 네 이름이 있으니까. 너는 우체국 사람이니까 이 방법을 알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이 방법밖에 몰라.

네 편지 마지막 줄에 답장 안 해도 된다고 썼지.

그래서 쓴다.

그것이 끝이었다. 서명이 없었다. 이름 대신 마지막 줄이 있었다. 선우는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공책 종이의 파란 줄만 있었다.

그는 그 종이를 탁자에 놓고 손을 뗐다. 그러고는 자기 손을 봤다. 하루에 이천 통을 만지는 손. 봉투 무게로 장수를 아는 손. 그 손이 십이 년 동안 무게를 잰 것은 종이였다. 한 번도 이 종이가 아니었다.

“읽었냐.”

“…읽었습니다.”

“거절이냐.”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대답하면 그 대답이 진짜가 되니까였다. 십이 년 동안 그는 대답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대답을 미뤄 왔다. 편지 마지막 줄부터 그랬다. 답장 안 해도 돼. 스물셋은 그 한 줄로 자기가 상대를 배려한다고 믿었다. 서른다섯은 이제 그것이 배려가 아니라 도망이었다는 것을 안다. 대답을 상대에게 맡기면 나는 아플 일이 없다. 상대는 그 한 줄을 여섯 번 읽었다.

강 선배가 세 번째 컵을 들어 마셨다. 식은 것을 천천히.

“여덟 시 반에 센터장 내려온다더라.”

“왜요.”

“선반 목록 만들라고. 몇 통인지 세라고. 소각 업체에 무게를 알려 줘야 한대.”

“몇 통인데요.”

“사백열두 통.”

“세셨어요?”

“삼십 년 동안 하나씩 넣었는데 못 셀 리가 없지.”

강 선배는 빈 컵 세 개를 포개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하나씩 넣지 않고 한 번에. 그러고는 문 앞에서 돌아섰다.

“그거 다시 봉투에 넣어라. 옆으로 뜯었으니까 다시 붙일 수 있어. 걔가 그랬잖아.”

선우는 종이를 봉투에 넣었다. 두 장이 아니라 한 장만. 자기 것은 따로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십이 년 만에 두 장이 갈라졌다. 봉투는 가벼워졌다. 한 장 무게. 그런데 손바닥은 그것을 두 장으로 쟀다.

분류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은비를 만났다. 눈이 녹은 자국이 어깨에서 마르고 있었다.

“선우 씨, 휴게실에서 강 선배랑 뭐 했어요? 오 주임님이 달걀 까면서 계속 그쪽 보던데.”

“커피 마셨어요.”

“십이 년 동안 마신 걸 오늘 처음 마신 사람 얼굴인데요.”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은비는 대답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가는 사람이라 갔다. 선우는 복도 끝 창에서 밖을 봤다. 이 건물에서 유일한 창. 눈이 오고 있었다. 밤새 온 것이 아니라 지금 오고 있었다. 뒷계단이 하얗게 덮였을 것이다. 첫차는 이미 지나갔다. 여섯 시 사십 분. 십이 년 만에 처음으로 그 차를 놓쳤다.

여덟 시 반에 센터장이 내려왔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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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밤에책2026.06.07· 2화

    같은 출발점에서 나온 다른 작품도 읽고 왔는데 완전히 달라서 신기했어요.

    • 유하람작가2026.06.08

      같은 출발점이라도 붙잡는 자리가 다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두 작품을 같이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서 쓴다 · 십이 년 전 내가 보낸 고백이 반송돼 돌아왔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