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십이 년 전 그 편지

반송된 편지 · 유하람

집에 와서 나는 두 장을 책상에 나란히 놓았다. 왼쪽이 내 것, 오른쪽이 도경의 것. 십이 년 동안 한 번도 켜지 않던 책상 스탠드를 켰더니 전구가 한 번 깜박이고 들어왔다.

내 것부터 읽었다.

도경에게. 이 편지를 쓰는 데 열이틀이 걸렸어. 열이틀 동안 열두 번 썼고 열한 번은 버렸어.

여기까지는 기억한다. 그다음 문단은 기억보다 부끄러웠다.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이미 안다고 생각했어. 네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편했어. 묻지 않아도 되니까. 스물세 살의 내가 이런 문장을 썼다는 것이 부끄러웠는데, 부끄러운 만큼 정확했다. 서른다섯의 나도 여전히 그렇게 산다. 사람의 얼굴을 읽었다고 믿고, 믿었으니 묻지 않고, 묻지 않았으니 틀린 줄도 모른 채로 십 년쯤 지나간다.

근데 그게 편한 거지 맞는 건 아니더라. 그래서 물어보려고 해. 나는 너를 좋아해. 너는 어때?

여기서 편지가 끝나야 했다.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열두 번째 원고를 봉투에 넣기 전에 마지막 줄을 세 번 읽었고, "너는 어때?"로 끝냈다. 그 물음표를 찍을 때 손에 힘이 들어갔던 것까지 기억한다.

그런데 한 줄이 더 있었다.

답장 안 해도 돼.

나는 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내 글씨였다. 틀림없이 내 글씨였는데, 쓴 기억이 없었다. 열 번쯤 읽었고 읽을수록 이상해졌다. 물어보려고 열이틀을 썼는데 마지막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적었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무서워서. 답장이 오지 않았을 때 견딜 수 있으려면 미리 그렇게 적어 두어야 했던 것이다. 묻기는 하되 대답을 듣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만들어 두는 것. 그러면 대답이 오지 않아도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내가 허락한 침묵이 된다. 스물세 살의 나는 그것을 배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른다섯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도망갈 문을 하나 열어 둔 것이고, 열어 둔 문은 결국 내가 통과했다.

도경의 편지를 폈다.

선우에게. 네 편지를 여섯 번 읽었어. 처음 세 번은 좋아서 읽었고, 네 번째는 마지막 줄 때문에 읽었어.

나는 종이를 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답장 안 해도 된다고 썼더라. 그 줄 보고 한참 앉아 있었어. 네가 나한테 도망갈 자리를 준 건지, 너 자신한테 준 건지 모르겠더라고. 다섯 번째, 여섯 번째는 그래도 답장을 쓰려고 읽었어. 그래서 쓴다.

거기서 첫 장이 끝났다. 나는 뒷장을 넘겼다. 없었다. 두 장이 아니라 한 장 반이었다. 도경의 편지는 앞면만 있었고 뒷면은 비어 있었다. 나는 그 빈 면을 오래 봤다. 스탠드 불빛에 비춰서 눌린 자국이 있는지도 봤다. 없었다. 쓰다가 만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쓰고 접은 것이다.

그래서 쓴다. 그다음에 무엇을 썼는지는 이 종이에 없다.

새벽 네 시였고 나는 근무를 하러 나가야 했다. 나가기 전에 두 장을 봉투에 도로 넣었는데, 넣으면서 봉투 안쪽을 들여다봤다. 거기 뭐가 하나 더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작은 종이. 우리 우체국에서 쓰는 부전지였다. 이런 것이 십이 년 전 봉투 안에 들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거기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보관. 폐기하지 말 것.

글씨가 낯익었다. 십이 년 동안 매일 옆자리에서 본 글씨였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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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밤에책2026.06.07· 2

    같은 출발점에서 나온 다른 작품도 읽고 왔는데 완전히 달라서 신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