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218자) · 12월 1일

열아홉 번째

십이 년 전 내가 보낸 고백이 반송돼 돌아왔다 · 유하람

한강우편집중국 야간 분류실은 밤 열 시에 켜진다. 형광등 서른여섯 개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창 없는 방이 대낮이 된다. 컨베이어가 돌기 시작하고, 우편물이 지역별 홈으로 떨어지고, 그것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옮기는 것이 선우의 일이다. 열두 시간 동안 손이 하는 일이고 머리는 하지 않는 일이다. 선우는 그래서 이 일을 골랐다. 십이 년 전에.

십이월 일일 화요일. 그날 밤 분류실 안쪽 벽에는 전에 없던 것이 하나 서 있었다. 노란 마대 자루 세 개. 자루마다 굵은 매직으로 「소각」이라고 적혀 있었다. 자루는 미배달 선반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선반은 분류실에서 제일 오래된 물건이다. 철제 다섯 단. 반송도 배달도 되지 않은 것들이 거기로 간다. 규정상 삼 년이면 폐기하는데 그 선반만 삼십 년째 남아 있었다. 선우가 들어온 뒤로도 십이 년 동안 아무도 비운 적이 없었다.

자루 옆에 센터장이 서 있었다. 한성국. 쉰둘. 야간에 내려오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회색 정장에 목도리를 풀지 않은 채였다.

“여러분, 잠깐만.”

컨베이어는 멈추지 않았다. 야간조 여덟 사람이 손은 움직이면서 고개만 돌렸다.

“일월 사일부로 광역센터 통합입니다. 다 아시죠. 이 방은 십이월 삼십일일이 마지막 근무예요. 그날까지 이 선반 비웁니다. 규정상 삼 년 넘은 미배달물은 폐기 대상이고, 감사실에서 이미 지적 두 번 나왔어요. 삼십일일 오전에 소각 업체 옵니다.”

선반 맨 아래 단 앞에서 강석만이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예순. 흰머리. 검은 점퍼. 분류 삼십 년. 이 사람 손은 컨베이어가 도는 동안 멈춘 적이 없다. 그날 밤 그 손이 처음 멈췄다. 선우는 그것을 봤다.

“센터장님.”

강 선배 목소리는 낮았다.

“그거 다 사람이 손으로 쓴 겁니다.”

“압니다. 그래서 더 안 됩니다. 개인정보예요. 삼십 년 된 남의 편지를 국이 쌓아 두고 있는 게 지적 사항입니다.”

“주인이 있는데요.”

“주인을 못 찾아서 여기 있는 거잖아요.”

센터장은 그 말을 하고 목도리를 고쳐 맸다. 나쁜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다. 정해진 것을 정해진 대로 말하는 사람의 말투였다. 그 사람은 자루 하나를 발끝으로 선반 쪽에 조금 더 밀어 놓고 올라갔다. 계단 문이 닫히는 소리가 컨베이어 소리 위에 잠깐 떴다가 가라앉았다.

야간 막내 고은비가 선우 옆으로 바구니를 밀고 왔다. 스물일곱. 이 방에서 제일 입이 빠르다.

“선우 씨, 저 선반에 뭐 있는지 알아요?”

“몰라요.”

“십이 년 다녔는데요?”

“열어 본 적 없어요.”

은비는 그 말을 믿지 않는 얼굴로 갔다. 선우는 정말로 열어 본 적이 없었다. 저 선반은 강 선배 것이었고, 강 선배 것은 강 선배가 한다. 이 방에서 십이 년을 버티는 법 가운데 하나였다. 남의 것을 안 본다. 자기 손만 본다.

새벽 두 시에는 반송함을 정리한다. 반송은 하루에 스무 통쯤 나온다. 주소가 틀렸거나, 사람이 이사했거나, 받는 이가 죽었거나. 죽은 사람 앞으로 온 편지는 손이 저절로 느려진다. 십이 년째인데도 그렇다. 봉투 무게는 다 같은데 그것만 무겁다.

그날은 열아홉 통이었다. 열여덟 통을 처리하고 열아홉 번째를 집었을 때 손이 멈췄다.

선우의 글씨였다.

봉투는 낡아 있었다. 모서리가 닳아 부드러워졌고 앞면이 누렇게 떴다. 우표는 지금은 발행하지 않는 액면이었다. 받는 사람 칸에 이름이 있었다. 서윤혁. 보내는 사람 칸에 선우의 이름이 있었다. 십이 년 전에 살던 주소가 그 밑에 있었다. 획이 지금보다 길었다. 스물셋의 글씨였다.

선우는 봉투를 든 채 컨베이어 소리를 들었다. 기계는 계속 돌았다. 다음 우편물이 홈으로 떨어졌고 그다음 것도 떨어졌다. 바구니 하나가 넘칠 때까지 아무도 옮기지 않았다. 십이 년 동안 그 방에서 일어난 적 없는 일이었다. 반대편 홈에서 강 선배가 고개를 들었다. 선우가 서 있는 자리를 봤다. 선우 손에 든 것을 봤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사람 손은 그날 밤 두 번째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반송 사유 도장이 찍혀 있었다. 수취인 불명. 찍힌 날짜는 십이 년 전 십이월 십일일이었다. 부친 날짜는 십이월 삼일. 여드레 차이. 그러니까 이 편지는 십이 년 전에 부쳐졌고, 여드레 만에 반송되었고, 그 뒤로 십이 년 동안 어딘가에 있다가 오늘 밤 반송함에 들어왔다. 열여덟 통과 함께. 새 편지들 사이에 낡은 것 하나가 끼어 있었다.

봉투는 무거웠다. 종이 한 장 무게가 아니었다. 선우는 그 무게를 손바닥으로 쟀다. 하루에 이천 통을 만지는 손이다. 한 장인지 두 장인지는 들면 안다. 두 장이었다.

그는 그것을 반송 상자에 넣지 않고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규정 위반이다. 반송물은 어떤 경우에도 반송함으로 돌려보낸다. 십이 년 동안 규정을 어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기고 나니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컨베이어는 돌았고 형광등은 켜져 있었고 은비가 반대편에서 하품을 했다.

여섯 시 반 휴게 시간. 선우는 휴게실로 가지 않고 우체국 뒤 계단으로 나갔다. 겨울이라 계단이 얼어 있었다. 앉으니 바지 너머로 시멘트의 찬 기운이 올라왔다. 그 찬 것이 도움이 됐다. 하늘은 아직 어두웠고 동쪽 끝만 조금 회색이었다. 봉투를 꺼냈다.

이미 뜯겨 있었다.

세 번 확인했다. 뜯긴 자리가 깨끗했다. 칼로 그은 것이 아니라 손으로 뜯은 자국인데, 급하게 뜯은 자국이 아니라 조심해서 뜯은 자국이었다. 봉함 부분이 아니라 봉투 옆면을 따라, 종이의 결을 살려서, 천천히. 선우는 그런 자국을 안다. 편지를 아끼는 사람이 뜯는 방식이다. 우체국에서 십이 년을 일하면 봉투 뜯긴 자국만 보고도 받은 사람이 그 편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안다.

안에 종이가 두 장 있었다. 선우가 넣은 것은 한 장이었다. 그것은 확실하다. 열두 번 고쳐 쓰고 마지막에 한 장으로 줄였다. 두 장이면 무겁게 읽힐 것 같아서, 무겁게 읽히면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스물셋은 그런 것을 걱정했다.

첫 장은 선우의 것이었다. 펴지 않았다. 무슨 말을 썼는지 안다. 십이 년 동안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두 번째 장을 꺼냈다. 선우의 글씨가 아니었다. 손이 떨려서 종이가 흔들렸고, 두 손으로 잡았는데도 흔들렸다. 맨 위에 날짜가 있었다. 십이 년 전 십이월 구일. 선우가 편지를 부치고 엿새 뒤. 그 아래 첫 줄이 있었다.

선우에게.

거기까지 읽고 종이를 접었다.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계단에 십 분쯤 더 앉아 있었다. 읽으면 십이 년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십이 년 동안 선우는 하나의 문장 위에서 살았다. 답장이 없었다. 그 문장은 슬펐지만 단단했다. 슬픈 것은 견딜 수 있다. 그 위에 집을 짓고 살 수 있다. 십이 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야간 근무를 골랐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골랐고, 그 일을 잘했다.

답장이 왔었다면. 그러면 십이 년은 무엇이 되는가.

선우는 종이를 다시 꺼냈다. 첫 줄을 건너뛰고 두 번째 문장부터 읽었다.

네 편지를 여섯 번 읽었어.

거기서 그는 소리를 냈다. 무슨 소리였는지 자기도 모른다. 웃음도 아니고 울음도 아닌, 목 안쪽에서 나오다 만 짧은 것. 계단 아래 도로로 첫차가 지나갔다. 여섯 시 사십 분 차. 십이 년 동안 매일 본 버스였다. 그 차가 어디로 가는지 그날 처음 궁금했다.

그는 종이를 다시 접었다. 이번에는 끝까지 읽지 않았다. 마지막 줄까지 가면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신 봉투 안을 다시 들여다봤다. 두 장을 꺼낸 봉투는 비어 있어야 했다. 비어 있지 않았다.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작은 종이가 봉투 바닥에 붙어 있었다. 부전지. 이 방에서 쓰는 노란 것. 거기 볼펜 글씨가 있었다.

보관. 폐기하지 말 것.

글씨가 낯익었다. 낯익은 정도가 아니었다. 십이 년 동안 매일 밤 옆자리 바구니에 붙어 있던 글씨였다. 획 끝이 위로 살짝 올라가는 「것」.

여섯 시 사십오 분. 선우는 계단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굳어 있었다. 분류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휴게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봤다. 자판기 앞에 강 선배가 서 있었다. 종이컵 두 개를 들고. 하나는 자기 것이고 하나는 늘 선우 것이었다. 십이 년 동안 여섯 시 반이면 그 사람은 커피를 두 잔 뽑았다. 선우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았다. 왜 두 잔인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강 선배가 선우를 봤다. 선우 손에 든 봉투를 봤다.

“읽었냐.”

“…첫 줄만요.”

강 선배가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선우는 받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컵은 강 선배 손에 그대로 있었다. 김이 올라왔다.

“앉아라.”

“근무 중입니다.”

“오 주임한테 말해 놨어.”

선우는 앉지 않았다. 문 앞에 선 채였다. 봉투를 든 손이 무거웠다. 종이 두 장 반의 무게가 아니었다. 그날 새벽 그 봉투는 분류실에서 제일 무거운 물건이었다.

“선배님.”

“어.”

“이거 왜 오늘 반송함에 있었습니까?”

강 선배가 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종이컵 바닥이 철제 탁자에 닿는 소리가 났다.

“선반이 비워지니까.”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 커피를 마셨다. 뜨거운 것을 한 번에 반쯤. 그러고는 선우를 보지 않고 벽을 보고 말했다.

“삼십일일에 다 태운다잖아. 그 전에 줘야지. 십이 년 동안 못 준 거.”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답이라는 것을 남한테 맡기고 산 지 오래된 사람이라서였다. 복도 끝에서 오병철 주임이 불렀다. 마흔다섯. 이번 달에 팔 킬로를 뺀다고 선언한 사람. 손에 삶은 달걀을 들고 있었다.

“선우 씨. 바구니 넘친다. 은비 혼자 못 해.”

선우는 휴게실 문을 등지고 돌아섰다. 강 선배 손에 든 커피는 그대로였다. 김이 조금 줄어 있었다.

분류실은 아까와 같았다. 형광등 서른여섯 개, 컨베이어, 홈으로 떨어지는 소리. 선우는 바구니 세 개를 옮기고 나서 처음으로 선반 앞에 섰다. 십이 년 동안 스무 걸음 옆에 두고 한 번도 앞에 선 적 없는 물건이었다. 철제 다섯 단. 맨 위 단은 비어 있고 아래 네 단이 찼다. 봉투들이 세로로 꽂혀 있었다. 누렇게 뜬 것, 아직 흰 것, 항공 봉투의 빨강 파랑 줄무늬. 봉투마다 노란 부전지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획 끝이 위로 올라가는 같은 글씨. 삼십 년 치의 같은 글씨였다.

발밑에 노란 자루 세 개가 있었다. 소각. 선우는 자루를 발로 밀지 않았다. 대신 선반 둘째 단에 손을 얹었다. 봉투 등이 손바닥에 닿았다. 종이인데, 종이 무게가 아니었다.

조끼 안주머니에서 자기 봉투가 셔츠를 눌렀다. 아침 열 시까지 세 시간 남아 있었다. 그 세 시간 동안 선우는 한 번도 그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았다. 넣으면 마지막 줄까지 읽게 될 것 같아서였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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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하람작가2026.10.09· 1화

    작가 유하람입니다. 열두 해 전에 보낸 답장이 오늘 밤 반송함에서 나옵니다. 1화의 분류실에서 선우가 그 봉투를 집어 드는 순간, 여러분은 무엇을 떠올리셨나요?

  • 한화만더2026.06.06· 1화

    여기서 끊는 건 반칙 아닌가요… 잘 읽었습니다.

    • 유하람작가2026.06.07

      설정을 앞세우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그렇게 봐 주셔서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