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79자)

열사흘

왕의 고양이 · 강여울

빈전은 대전 서쪽 큰 전각에 차려졌다⁠. 흰 휘장이 겹겹이 내려왔고⁠, 한가운데 붉은 칠을 한 큰 나무 궤가 놓였다⁠. 사람들은 궤를 재궁이라 불렀다⁠. 금손은 이름은 몰랐다⁠. 궤 안에서 침향 냄새가 났다⁠. 아주 옅게⁠.

금손은 재궁을 받친 받침 틈으로 들어가 엎드렸다⁠. 바닥이 찼다⁠. 금손은 나오지 않았다⁠.

사흘째 아침⁠, 기미상궁이 조기 살을 들고 왔다⁠. 받침 틈 앞에 접시를 놓았다⁠.

“⁠금손아⁠. 이리 온⁠.⁠”

이리 온⁠. 금손은 귀를 한 번 움직였다⁠. 나가지 않았다⁠.

기미상궁은 은 젓가락으로 조기 살을 한 점 집어 제 입에 넣었다⁠. 천천히 씹고 삼켰다⁠. 서른 해 동안 수라상 앞에서 하던 대로였다⁠.

“⁠독은 없사옵니다⁠. 드시옵소서⁠.⁠”

받침 틈 안에서 대답이 없었다⁠. 기미상궁은 접시를 한 뼘 더 밀어 넣고 한참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한 점을 더 집어 먹었다⁠. 버리기 아까운 조기였다⁠.

닷새째에는 허리 굽은 늙은 숙수가 왔다⁠. 숙수는 무릎을 꿇기가 힘들어 엎드려서 기었다⁠. 손에 기름에 지진 생선 대가리가 들려 있었다⁠. 수라간에서 금손이 가장 좋아하던 것이었다⁠.

“⁠이놈아⁠, 대가리다⁠. 대가리⁠.⁠”

숙수가 대가리를 받침 틈으로 밀어 넣었다⁠. 대가리가 금손의 코끝에 닿았다⁠. 금손은 고개를 돌렸다⁠. 숙수는 한참 엎드려 있다가 일어났다⁠. 일어나다 허리를 짚고 앓는 소리를 냈다⁠. 상복 입은 내관 둘이 숙수를 부축해 나갔다⁠. 생선 대가리는 받침 틈에 남았다⁠. 밤에 삼색이가 휘장 밑으로 들어와 물어 갔다⁠.

*

이레째에 새 임금이 빈전에 들었다⁠. 연창군이었다⁠. 선왕보다 키가 컸고 걸음이 빨랐다⁠. 숨에서 젊은 땀 냄새가 났다⁠. 젊은 대신이 뒤를 따랐다⁠.

곡을 마친 새 임금이 재궁 밑을 보았다⁠. 받침 틈에서 노란 눈 두 개가 마주 보았다⁠.

“⁠저것이 아직 여기 있는가⁠?⁠”

젊은 대신이 앞으로 나왔다⁠.

“⁠전하⁠, 빈전에 짐승이 드는 것은 예법에 크게 어긋나옵니다⁠. 궐 밖에서는 벌써 요물이 선왕의 숨을 거두어 갔다는 말이 돌고 있사옵니다⁠. 예조에서도 짐승을 치우지 않으면 발인 날을 잡을 수 없다 하옵니다⁠.⁠”

“⁠치워라⁠.⁠”

내관 둘이 받침 앞에 엎드렸다⁠. 손이 틈으로 들어왔다⁠. 금손은 털을 부풀리고 이를 드러냈다⁠. 뒤로 물러났다⁠. 받침 안쪽은 깊었다⁠. 손은 금손의 꼬리 끝에 닿았다가 빠져나갔다⁠.

“⁠멈추시오⁠.⁠”

휘장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흰 상복을 입은 대비가 나왔다⁠. 중전이던 사람이었다⁠. 대비가 새 임금을 마주 보았다⁠.

“⁠주상⁠, 선왕께서 돌아가시기 사흘 전 내게 부탁하셨소⁠. 이 고양이가 어디로 가든 막지 말고 내쫓지도 말라고⁠. 나는 지키겠다고 대답했소⁠.⁠”

“⁠어마마마⁠, 예법이⁠…⁠.⁠”

“⁠예법은 산 사람이 지키라고 있는 것이오⁠. 선왕께서는 이 고양이의 어미 금덕을 손수 묻고 글을 지어 넋을 달래 주셨소⁠. 그때도 예조는 법도에 없는 일이라 했소⁠. 선왕께서 예조 말을 들으셨소⁠?⁠”

새 임금이 젊은 대신을 보았다⁠. 젊은 대신이 받침 틈을 보았다⁠. 틈 안의 노란 눈이 대신을 보았다⁠. 대신이 먼저 눈을 돌렸다⁠.

“⁠빈전 안은 안 됩니다⁠.⁠”

새 임금이 말했다⁠.

“⁠문밖에는 두겠습니다⁠. 어마마마의 약조도 지키고 예조의 말도 지키는 길입니다⁠.⁠”

대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관 하나가 받침 앞에 무청을 깐 광주리를 놓았다⁠. 금손은 광주리 냄새를 맡았다⁠. 나인 냄새가 아니었다⁠. 금손은 제 발로 받침 틈에서 기어 나왔다⁠. 다리가 휘청했다⁠. 광주리에 들어가지 않고 빈전 문으로 걸어갔다⁠. 문턱에 올라가 앉았다⁠. 문턱 안쪽으로 재궁이 보였다⁠. 금손은 문턱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새 임금이 문턱 위의 고양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문턱은 문밖인가⁠, 문안인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젊은 대신까지도⁠.

*

아흐레째 저녁⁠, 남새 대문 앞에 소달구지가 멈추었다⁠. 남새 장수가 고삐를 쥐고 투덜거렸다⁠.

“⁠이번엔 들어가는 거요⁠, 나가는 거요⁠? 이놈의 궁은 실어 나르는 게 고양이 아니면 나인이네⁠.⁠”

나인이 달구지에서 내렸다⁠. 대비가 보낸 상궁이 앞에서 걸었다⁠. 나인은 다리를 조금 절었다⁠. 빈전 문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에 사발 하나를 들고 있었다⁠. 쌀뜨물이었다⁠. 장작더미에서 눈도 못 뜬 새끼에게 손가락으로 찍어 먹이던 것이었다⁠.

“⁠금손아⁠.⁠”

금손이 고개를 들었다⁠. 쌀뜨물 냄새가 났다⁠. 장작 연기 냄새⁠, 쑥 찜질 냄새⁠. 눈을 처음 뜬 날 맡은 냄새였다⁠. 금손은 문턱 끝까지 몸을 끌고 나와 나인의 손가락에 코를 대었다⁠. 손가락 끝을 한 번 핥았다⁠. 쌀뜨물 맛이 났다⁠.

나인이 사발을 내밀었다⁠. 금손은 사발 가장자리에 수염을 대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문턱 안쪽 재궁을 향해 돌아앉았다⁠.

나인이 웃었다⁠. 울면서 웃었다⁠. 수라간 마당에서 짚신을 받던 날처럼⁠.

“⁠고집은⁠. 서방님 고집은 아무도 못 꺾어⁠.⁠”

나인은 사발을 문턱 옆에 두고 밤새 빈전 회랑 끝에 앉아 있었다⁠. 새벽에 보니 사발의 쌀뜨물은 줄지 않았다⁠. 삼색이도 손대지 않았다⁠.

*

열하루째 밤에는 눈이 왔다⁠. 빈전 문턱에 눈바람이 들이쳤다⁠. 늙은 내관이 왼발을 끌며 와서 문턱 옆에 앉았다⁠. 무릎에 솜 누빈 방석 하나를 안고 있었다⁠. 내관은 방석을 금손 옆에 내려놓았다⁠. 금손은 방석으로 옮겨 가지 않았다⁠.

“⁠고집도 선왕을 닮았구나⁠.⁠”

내관이 문턱에 등을 기댔다⁠.

“⁠금덕이 죽던 날에도 눈이 왔다⁠. 전하께서 후원 매화나무 밑을 손수 파셨다⁠. 언 땅이라 호미가 튀었지⁠. 소인이 하겠다 하니 비키라 하셨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셨다⁠. 그 밤에 글을 쓰시고⁠, 이튿날 아침 조회에 붕대를 감고 나오셨다⁠.⁠”

내관은 웃었다⁠. 이가 몇 개 빠진 웃음이었다⁠.

“⁠대감이 붕대를 보고 무슨 일이시냐 물었지⁠. 고양이를 묻었다 하시니 대감 수염이 한참 흔들렸다⁠. 네가 있었으면 앞발이 나갔을 게다⁠.⁠”

휘장 밑에서 삼색이가 나왔다⁠. 삼색이는 문턱 위로 올라와 금손 옆에 몸을 붙이고 누웠다⁠. 금손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털이 셋으로 얼룩진 등이 금손의 누런 등을 덮었다⁠. 내관이 솜 방석을 두 고양이 위에 덮어 주었다⁠. 이번에는 금손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

열사흘째 아침⁠, 금손은 문턱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제 다리 같지 않았다⁠. 빈전 회랑을 지나 대전으로 걸었다⁠. 회랑이 길었다⁠. 날마다 뛰어서 지나던 회랑이었다⁠. 금손은 기둥 하나를 지날 때마다 쉬었다⁠.

편전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아무도 앉지 않은 편전은 찼다⁠. 동쪽 창호지가 밝아지고 있었다⁠. 금손은 어좌 계단 셋을 올라갔다⁠. 첫 계단에서 한 번⁠, 둘째 계단에서 두 번 쉬었다⁠. 셋째 계단에서 앞발을 방석에 걸고 몸을 끌어올렸다⁠.

붉은 방석에서 침향 냄새가 났다⁠. 날마다 여기 앉던 사람의 등과 허리에서 옮아 온 냄새⁠. 열사흘 동안 재궁에서 맡은 냄새보다 진했다⁠.

금손은 방석 한가운데에 동그랗게 누웠다⁠. 볕은 아직 오지 않았다⁠. 볕이 고이기 전에 데워 놓아야 했다⁠. 금손은 남은 온기를 방석에 내주었다⁠.

창호지가 하얘졌다⁠. 볕이 마룻바닥을 건너 계단 셋을 올라왔다⁠. 방석 한가운데에 고였다⁠. 금손의 등에 닿았다⁠. 누런 털 위로 옅은 줄무늬가 물결처럼 떠올랐다⁠.

따뜻했다⁠. 금손은 눈을 감았다⁠.

*

늙은 내관이 먼지떨이를 들고 편전에 들어왔다⁠. 왼발을 끌었다⁠. 선왕이 떠난 뒤로도 내관은 아침마다 어좌의 먼지를 털었다⁠. 내관이 방석을 보고 먼지떨이를 내렸다⁠.

“⁠잘 데워 두었구나⁠.⁠”

내관은 계단 아래 오래 서 있었다⁠. 이윽고 무릎을 꿇었다⁠.

대비가 왔다⁠. 금손을 흰 무명에 쌌다⁠. 대비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선왕의 능 곁에 묻겠소⁠.⁠”

젊은 대신이 엎드렸다⁠.

“⁠마마⁠, 짐승을 능 곁에 묻는 법은 없사옵니다⁠. 후세가 웃을 것이옵니다⁠.⁠”

“⁠웃으라 하시오⁠. 웃는 사람도 금손이라는 이름은 외울 것이오⁠.⁠”

새 임금이 편전 문턱에 서 있다가 들어왔다⁠. 흰 무명 끝으로 누런 꼬리 끝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새 임금은 꼬리 끝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산릉은 아직 공사 중입니다⁠. 봉분 밖 동쪽 언덕⁠, 해가 먼저 닿는 자리에 묻으시지요⁠. 선왕께서 가시기 전에⁠.⁠”

늙은 내관이 무명 꾸러미를 받아 안았다⁠. 두 팔에 안은 무게가 가을보다 한참 가벼웠다⁠.

“⁠먼저 가서 데워 두어라⁠.⁠”

젊은 대신이 몸을 일으켰다⁠.

“⁠하오면 소신이 산릉까지 따라가겠사옵니다⁠. 법도에 없는 일이면 법도를 아는 사람이 지켜보아야 하옵니다⁠.⁠”

대비가 대신을 보았다⁠. 대신의 소매에서 조기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릉은 도성에서 반나절 길이었다⁠. 석수들이 봉분 자리를 다지고 있었다⁠. 젊은 대신이 동쪽 언덕을 골랐다⁠. 해가 뜨면 봉분 자리보다 먼저 볕이 닿는 비탈이었다⁠. 석수 하나가 삽을 들고 오자 대신이 삽을 받았다⁠.

“⁠법도에 없는 일이니 법도를 지키는 사람이 파겠네⁠.⁠”

언 흙이 쉽게 파이지 않았다⁠. 대신의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늙은 내관이 무명 꾸러미를 구덩이에 내려놓았다⁠. 내관은 꾸러미 위에 마른 감초 한 줌을 뿌렸다⁠. 어의의 약 상자에서 덜어 낸 감초였다⁠. 버린 것을 내관이 주워 두었다⁠.

흙이 덮였다⁠. 작은 흙무덤이 생겼다⁠. 젊은 대신은 물집 잡힌 손을 소매에 넣고 오래 서 있었다⁠.

*

이듬해 봄⁠, 능에 떼가 파랗게 올랐다⁠. 선왕의 재궁은 늦겨울에 능으로 갔다⁠. 봉분 동쪽 언덕 아래에 작은 흙무덤이 하나 있었다⁠. 해가 먼저 닿는 자리였다⁠.

나인은 서문 밖 약방 옆에서 국수를 말아 팔았다⁠. 어미는 겨울을 넘겼다⁠. 봄이 되자 제 손으로 약값을 벌었다⁠. 나인은 연잎 꾸러미 하나를 들고 반나절을 걸어 능까지 왔다⁠. 등에는 무청 깐 빈 광주리를 지고 있었다⁠. 버릇이었다⁠. 서문에서 만난 남새 장수가 이번엔 누구를 데리고 오느냐고 물었다⁠. 나인은 아무도 안 데려온다고 대답했다⁠. 남새 장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무 하나를 광주리에 던져 주었다⁠.

흙무덤 앞에 선비 차림의 젊은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종이 한 장을 들고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궁궐에 누런 고양이 하나⁠, 임금께서 아끼시어 이름을 내리셨네⁠. 금손아 부르시면 곧장 달려오니 사람 말을 알아듣는 듯하였네⁠. 낮이면 섬돌에서 조용히 세수하고⁠, 추운 밤이면 용상 곁에 몸을 말고 잤네⁠.⁠”

나인이 웃음을 참았다⁠.

“⁠사람 말은 다 못 알아들어요⁠. 제 이름하고 밥⁠, 생선⁠, 저리 가⁠. 쉿하고 안 돼⁠. 딱 그만큼이요⁠.⁠”

젊은 사내가 돌아보았다⁠.

“⁠수라간에 있던 분이오⁠?⁠”

“⁠일곱 해를 먹였어요⁠.⁠”

사내가 종이를 내밀었다⁠. 맨 위에 「⁠금묘가⁠」라고 쓰여 있었다⁠. 누런 고양이의 노래라는 뜻이라고 사내가 일러 주었다⁠. 나인은 한문을 읽지 못했다⁠. 종이를 돌려주었다⁠.

“⁠안산에 사는 늙은 선비 한 분도 이 이야기를 듣고 책에 적어 두셨소⁠. 임금이 세상을 떠나자 고양이 또한 밥을 먹지 않고 죽으므로 능 곁에 묻어 주었다고⁠. 백 년 뒤 사람도 읽을 것이오⁠.⁠”

“⁠백 년 뒤 사람들이 금손을 알아서 뭐 해요⁠?⁠”

나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연잎 꾸러미를 풀었다⁠. 생선 대가리 셋이 나왔다⁠. 하나를 흙무덤 앞에 놓았다⁠.

“⁠혼수 갚으러 왔어⁠. 쥐는 빼고⁠.⁠”

능선 너머에서 해가 올라왔다⁠. 볕이 흙무덤 위에 먼저 닿았다⁠. 봉분보다 먼저였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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