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두 바퀴 돌리니까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1005.
우편이 왔다. 3주 만이었다. 도로가 한 번 끊겼기 때문이다.
부사관이 이름을 불렀다. 마지막 이름을 부르고 상자를 닫았다.
닫고 나서 다시 열었다.
“…판 서.”
봉투 하나였다. 겉에 한글이 적혀 있었다.
한결은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1112.
저쪽이 낮에 왔다.
이번엔 포를 먼저 안 쐈다. 드론을 먼저 보냈다.
여섯이었다.
넷은 자폭이고 둘은 관측이다. 넷이 낮게 흩어져서 들어왔다.
흩어져서 오는 이유가 있다. 한 줄로 오면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 한 번에 다 걸린다. 흩어지면 한둘은 통과한다.
넷이 다 통과할 필요는 없다. 하나면 된다.
전차 한 대 값이면 저것을 천 대 산다. 천 대를 다 잃어도 전차 한 대를 잡으면 남는 장사다.
이 싸움은 그 산수 위에서 돈다.
1113.
재밍을 켰다.
넷 중 둘이 떨어졌다. 둘이 계속 왔다.
“…광케이블 둘입니다.”
“…산탄.”
2호차와 4호차가 쐈다. 하나가 맞았다.
1114.
하나가 남았다.
그것이 5호차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면 아래에서 못 쏜다. 기관총이 그 각도까지 안 올라간다.
기관총은 위로 60도쯤까지 올라간다. 그 위는 못 쏜다.
포탑 바로 위는 어느 전차든 사각이다. 전차는 옆에서 오는 것을 막게 만들어졌다. 위에서 오는 것은 생각에 없었다.
철망을 씌우는 것은 그래서다. 5호차에는 철망이 있었다. 앞쪽에만 있었다.
내려오는 데 2초 걸린다.
1115.
터졌다.
포탑 위, 전차장 해치 뒤였다.
구멍은 손바닥보다 작았다. 안에서 무엇이 튀었는지는 밖에서 안 보인다.
자폭 드론에는 성형작약이 들어간다. 폭약을 깔때기 모양으로 눌러 붙여 놓으면, 터질 때 그 축을 따라 금속이 아주 빠른 줄기로 나간다.
그 줄기가 장갑을 뚫는다. 뚫린 구멍은 작고, 안으로 들어간 것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밖에서 보면 아무 일도 없어 보인다.
5호차 해치가 열렸다. 둘이 나왔다. 셋째는 안 나왔다.
1119.
브란도프스키가 무전을 잡았다.
폴란드어가 길게 나갔다. 그 안에 한결이 아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정비.
“…판 서. 5호차입니다.”
“…승무원은요.”
“하나 못 나왔습니다.”
1131.
한결은 못 갔다.
드론이 아직 위에 있었다. 관측용 둘이 남아 있었다.
관측용은 안 친다. 대신 보고 있다. 사람이 밖으로 나오면 그 좌표가 넘어간다.
넘어가면 20분 뒤에 포가 온다.
관측 드론을 쏘려면 위를 보고 쏴야 하고, 쏘면 그 자리가 드러난다. 드러나면 그것도 좌표가 된다.
그래서 관측 드론이 떠 있는 동안은 아무도 안 움직인다. 움직이는 쪽이 진다.
5호차 옆에 사람이 둘 엎드려 있었다. 그 둘도 안 움직였다.
1140.
포가 왔다.
이번엔 열여섯 발이었다. 5호차 주변에 떨어졌다.
5호차 옆에서 사람이 둘 엎드려 있었다. 아까 나온 둘이었다.
포가 그 자리에 왔다.
1148.
포격이 멎었다.
한결이 뛰어갔다. 브란도프스키가 뒤에서 뭐라고 했다. 안 들었다.
1,200미터를 뛰었다. 뛰면 6분이다.
포격이 멎은 뒤 20분은 대개 안전하다. 저쪽도 진지를 옮긴다.
20분 안에 갔다가 나와야 한다. 갔다가 나오는 것이 12분이니 남는 것은 8분이다.
8분에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다. 사람을 끌고 나오는 것은 되고, 차를 고치는 것은 안 된다.
1155.
둘 중 하나가 살아 있었다.
한결은 그 사람을 끌었다.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뒤로 끌었다.
35미터를 끌었다. 능선 뒤까지였다.
끄는 동안 위에서 관측 드론이 계속 소리를 냈다. 벌 소리였다.
35미터를 끄는 데 4분이 걸렸다. 사람 하나가 장비까지 하면 백 킬로가 넘는다.
한결은 세 번 쉬었다. 쉴 때마다 위를 봤다. 소리는 계속 났다.
1207.
위생병이 왔다.
한결은 손을 봤다. 장갑이 찢어져 있었다. 언제 찢어졌는지 몰랐다.
1240.
5호차 안으로 들어갔다.
셋째 사람은 전차장이었다.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한결은 그 자리를 안 봤다. 안 보고 뒤로 갔다.
포탑 안쪽 벽에 구멍이 여럿 났다. 위에서 들어온 것이 안에서 흩어졌다.
배선 다발 둘이 끊겼다. 포탑 선회와 조준 장치였다.
끊긴 자리는 붙일 수 있다. 문제는 조준 장치 안쪽이다.
안쪽에 렌즈와 거울이 여러 장 겹쳐 있다. 파편이 그 사이로 들어갔으면 통째로 갈아야 한다.
갈 것이 없다.
이건 오늘 안에 안 된다.
1330.
정비고로 돌아왔다.
작업대에 앉았다. 앉고 나서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안에 종이가 두 장이었다.
1338.
편지는 짧았다.
지난달에 아버지가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셨다는 것. 지금은 집에 계시다는 것. 걱정하지 말라는 것.
마지막 줄은 이것이었다.
밥은 어떻게 먹느냐.
1345.
두 번째 종이를 폈다.
집 도면이었다. 보일러 배관 도면이다. 작년 겨울에 한결이 손으로 그려서 벽에 붙여 두고 나온 것이다.
그 도면 위에 다른 글씨가 있었다.
거실 밸브 옆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고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기 두 바퀴 돌리니까 따뜻해졌다.
1352.
한결은 그 줄을 세 번 읽었다.
두 바퀴는 한결이 적어 둔 것이 아니었다. 반 바퀴라고 적어 뒀다.
두 바퀴 돌리면 밸브가 다 열린다. 다 열면 그 방만 따뜻하고 다른 방이 식는다.
한 방만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결은 그 방이 어느 방인지 알았다.
1420.
밖에서 무전이 울렸다.
5호차 승무원 하나가 후송 중에 죽었다는 것이었다. 아까 한결이 끌고 온 사람이 아니라 다른 하나였다.
1508.
한결은 5호차 배선을 폈다.
다발 둘을 잇는 데 네 시간이 걸린다. 오늘 안에 안 된다고 했는데 하고 있었다.
작업대 위에 도면을 놨다. 0.2라고 적힌 종이 옆이었다.
거실 밸브 옆에 화살표가 있었다.
0117.
65로 올린 첫날 밤이었다.
기준을 55에서 65로 올렸다. 화면에 다섯이 떴다. 어제는 열하나였다.
“…여섯이 가짜였습니까, 진짜가 섞여 있습니까?”
다율이 대답하지 않았다.
기준을 내리면 다 보인다. 다 보이면 고르는 데 시간이 든다. 고르는 시간은 사수가 낸다.
기준을 올리면 몇 개만 보인다. 고르는 시간은 줄고, 대신 안 보인 것 중에 진짜가 있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오늘 밤에 무엇이 왔는지에 달려 있다. 그건 아침에야 안다.
0148.
3호차에서 무전이 왔다.
“…정면 1,800에 뭔가 있답니다.”
“화면에는요.”
“없습니다.”
다율이 화면을 확대했다. 그 자리에 흐린 것이 하나 있었다. 번호는 없고 숫자만 작게 떠 있었다.
61이었다.
0155.
61은 55와 65 사이다. 어제였으면 떴다. 오늘은 안 뜬다.
“…저거 띄우십시오.”
“…지금 내리면 아까 뺀 여섯도 다 돌아옵니다. 3호차 사수가 열하나 중에 골라야 합니다.”
0203.
브란도프스키가 무전으로 한 문장을 말했다.
한결이 아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아니다.
쏘지 말라는 뜻이었다.
0209.
15분 뒤에 그 자리에서 사격이 났다.
우리 쪽이 아니었다.
0210.
2호차 왼쪽 40미터에 떨어졌다. 흙이 옆으로 쏟아졌다.
두 번째는 20미터였다. 이번엔 위에서 왔다. 차체 위에 흙이 쌓였다.
첫 발과 둘째 발이 좁혀 오는 것은 저쪽이 보고 고치고 있다는 뜻이다. 셋째는 맞는다.
세 번째는 없었다. 2호차가 먼저 쐈다.
먼저 쐈다는 것은 저쪽 두 번째 탄이 떨어진 뒤에 조준하고 쏘았다는 뜻이다. 그 사이가 20초쯤이다.
20초 동안 조종수는 엔진을 올리지 않았다. 올리면 흔들리고, 흔들리면 사수가 못 맞힌다.
0212.
맞았다.
1,800에서 맞으면 안 튄다. 그대로 들어간다.
거리가 멀수록 탄이 힘을 잃는다. 3,000에서 튀던 것이 1,800에서는 들어간다.
그래서 늦게 쏘는 것이다. 늦게 쏜다는 것은 그때까지 맞고 있다는 뜻이다.
저쪽 차가 그 자리에서 멈췄다. 멈추고 나서 위에서 뚜껑이 하나 열렸다.
0214.
저쪽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옆입니다. 2시 방향.”
2호차가 포탑을 돌렸다. 4초 걸린다.
저쪽이 먼저 돌아 있었다.
포탑을 미리 돌려 놓고 기다린 것이다. 우리가 첫 번째 것을 쏘는 동안 두 번째가 각도를 잡았다.
한 대를 미끼로 세우고 다른 하나가 옆에서 기다리는 방법이다. 우리도 쓴다.
0215.
2호차 오른쪽 앞이 맞았다.
이번엔 뚫렸다.
차체 앞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자리에서 불이 났다. 처음엔 작았다가 3초 뒤에 커졌다.
뚫린 자리로 들어간 것이 안에서 흩어진다. 흩어진 것이 뜨겁다. 안에 있는 것 중에 타는 것부터 탄다.
전차 안에는 탈 것이 많다. 기름과 배선 피복과 사람 옷이 있다.
해치 셋이 다 열렸다. 둘이 나왔다.
나온 둘은 땅에 굴렀다. 옷에 붙은 불을 그렇게 끈다. 그렇게 배운다.
0217.
3호차와 4호차가 같이 쐈다.
저쪽 것이 멈췄다.
0246.
2호차 승무원 둘이 후송됐다. 조종수는 팔이었다. 전차장은 화상이었다.
셋째는 안 나왔다.
포탑은 안 날아갔다. 탄약칸 위 판이 터지면서 위로 뺐다. 그 판이 있어서 둘이 나왔다.
만든 사람이 그것까지는 생각했다. 그런데 셋 중 하나는 못 나왔다.
0405.
다율이 정비고 뒤 드럼통 옆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은 안 들고 있었다.
“…선임님. 춥습니다.”
한결은 옆에 앉았다.
0412.
“59였습니다.”
“…예.”
“제가 55로 뒀으면 실선이었습니다. 실선이면 쐈습니다. 쐈으면 2호차가 안 맞았습니다.”
한결은 그 계산을 따라가 봤다.
55였으면 실선, 실선이면 사격, 사격이면 저쪽이 먼저 못 쏨. 세 단계다.
세 단계 중에 확실한 것은 첫 번째뿐이다. 두 번째는 사수가 정하고 세 번째는 저쪽이 정한다.
0424.
“…선임님. 55로 뒀으면 그날 밤 헛간도 실선이었습니다.”
“…….”
“그날 1호차가 헛간에 쐈으면, 그 40초 동안 저쪽이 먼저 쐈을 겁니다.”
“…그건 안 일어난 일입니다.”
“지금 이것도 안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입니다.”
0436.
“정비관님은 화 안 나십니까?”
“…무엇에 말입니까?”
“제가 기준을 올려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한결은 그 말을 한동안 두고 있었다.
“…어제 제가 커넥터를 하나 썼습니다. 중고였습니다. 0.2옴짜리입니다.”
“…….”
“새것을 쓸 수도 있었는데 아꼈습니다. 그게 언제 나갈지는 저도 모릅니다.”
“…나가면요.”
“그 차가 섭니다. 서면 안에 셋이 있습니다.”
0448.
“…그래도 쓰신 겁니까?”
“예.”
“왜요.”
“새것이 넷 남았는데 이번 주에 설 차가 몇 대인지 몰라서요.”
“…….”
“모르면 아끼게 됩니다. 아끼면 오늘 서 있는 차에 중고가 갑니다.”
0503.
“오늘 밤에도 점선 켜십시오. 55로 내리지 마십시오.”
“…….”
“대신 사흘 뒤에 고쳐지면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소각로로 확인하겠습니다.”
“…그건 제가 해도 됩니다.”
“선임님이 하시면 선임님 체계를 선임님이 채점하는 겁니다.”
다율이 일어섰다. 앉아 있던 자리에 서리가 눌린 자국이 남았다.
“…약속하신 겁니다.”
“…예. 약속합니다.”
0545.
한결은 작업대 앞에 앉았다.
세 번째 종이를 접어 세웠다. 사흘 뒤 날짜를 적고 그 아래 숫자를 하나 적었다.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