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낮게 부르는 노래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840.

다율이 노트북을 들고 왔다. 케이블이 끊긴 채로 열흘을 놔뒀던 것이다.

“정비관님. 이거 다시 씁니다.”

“…젠더 물리면 신호가 떨어집니다.”

“압니다. 그래서 두 개 물렸습니다.”

0902.

무인 체계를 오늘부터 정식으로 쓴다.

하는 일은 단순하다. 무인 정찰차와 드론이 보내는 열상 영상을 받아서, 그 안에서 차량 모양을 골라내고, 골라낸 것에 번호를 붙여 지도에 올린다.

사람은 그 번호를 보고 쏠지 말지 정한다.

고르는 것은 기계가 하고 쏘는 것은 사람이 한다. 그게 규칙이다.

규칙이 그런 이유는 기계가 틀리기 때문이 아니라, 틀렸을 때 누가 틀렸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체계가 표적을 주면 사람이 세 가지를 본다.

하나, 그 자리에 있을 만한 것인가. 지도에 마을이 있으면 안 쏜다. 둘, 움직이는가. 움직이면 차량이고 안 움직이면 뭐든 될 수 있다. 셋, 다른 눈으로도 보이는가. 드론이 보고 전차 사수도 보면 그건 있는 것이다.

세 가지를 다 보는 데 시간이 든다. 포는 그 시간을 안 기다린다.

그래서 대개 하나만 본다. 숫자를 본다.

1120.

무인 정찰차 2번이 돌아왔다.

왼쪽 바퀴 둘이 찢겨 있었다. 위에 얹힌 열상 포드는 고정 볼트 넷 중 둘만 남아 있었다. 남은 둘도 풀려 있었다.

무인차는 사람이 안 타니까 서스펜션이 단단하다. 그만큼 위에 얹은 것이 흔들린다.

포드가 흔들리면 영상이 흔들리고, 흔들리면 체계가 같은 물체를 두 개로 센다.

남은 볼트 둘을 빼서 나사산을 봤다. 산이 뭉개져 있었다. 뭉개진 볼트는 다시 조여도 또 풀린다.

부품함에서 같은 규격을 찾았다. 둘이 있었다. 나머지 둘은 한 단계 짧은 것으로 채웠다. 짧으면 물리는 산 수가 줄고, 산 수가 줄면 또 풀린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한결은 볼트를 조였다. 규정은 40뉴턴미터인데 토크 렌치가 없어서 손으로 조였다.

9년 하면 자기 손이 대략 얼마인지 안다.

1146.

영상을 켰다.

“정비관님. 화면에 표적 하나가 떠 있는데요.”

지도 위에 번호가 붙은 네모가 있었다. 위치가 정비고였다.

“…여기입니다.”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소각로입니다.”

폐유 소각로가 정비고 옆에 있다. 아침에 켜고 오후에 끈다.

“차량 모양이 아닌데 왜 뜹니까?”

“모양보다 열을 먼저 봅니다. 열이 맞으면 모양을 봅니다.”

“모양은요.”

“…60퍼센트 닮았다고 나옵니다.”

원통이고 옆으로 누워 있고 위에 관이 나와 있다. 그렇게 보면 닮았다.

1210.

다율이 그 표적을 지웠다.

지우는 것은 한 번 누르면 된다. 누르기 전에 3초 걸렸다.

“…지운 게 기록에 남습니까?”

“남습니다. 누가 언제 뭘 지웠는지 남습니다. 제가 그렇게 짰습니다.”

1520.

부품 트럭이 왔다. 커넥터가 왔고 냉각기는 안 왔다.

폴란드 정비병 셋이 상자를 내렸다.

한 명이 노래를 불렀다. 낮게 불렀다. 곡조가 느리고 같은 자리가 두 번 반복됐다.

두 번째 반복에서 옆 병사가 같이 불렀다. 그다음에 나머지 하나도 불렀다.

셋이 부르는데 소리가 크지 않았다.

1548.

“…아까 노래가 뭡니까?”

“…광부 노래입니다. 저 셋 다 슐레지아 출신입니다.”

“…….”

“갱도에서 부르던 겁니다. 소리를 크게 내면 안 되는 곳이라 저렇게 부릅니다.”

1912.

저녁에 사격 요청이 들어왔다.

체계가 잡은 표적이었다. 4,100미터, 숫자는 78이었다.

“…78이면 높습니까?”

“높습니다.”

브란도프스키가 K9 대대에 넘겼다.

1918.

여섯 문이 쐈다. 열여덟 발이었다.

포성이 뒤에서 났다. 우리 포는 뒤에서 나고 저쪽 포는 앞에서 난다. 그것으로 구별한다.

여섯 문이 15초 안에 세 발씩 냈다. 그리고 바로 진지를 옮겼다.

옮기는 것은 되받을까 봐 그런다. 쏘면 저쪽 레이더가 잡는다.

1921.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정찰 드론이 그 자리를 20분 뒤에 봤다. 흙구덩이 열여덟 개가 있었다.

부서진 것이 없었다.

흙구덩이는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다. 좌표는 맞았다는 뜻이다.

좌표가 맞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1955.

“…신 선임님.”

“…예.”

“78이었습니다.”

“…예.”

“열여덟 발을 썼습니다.”

다율이 화면을 봤다. 그 표적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언제 사라졌습니까?”

“…사격 직후입니다.”

“맞아서 사라진 게 아니라요.”

“…맞았으면 잔해가 남아서 계속 떴을 겁니다.”

2020.

한결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없던 게 떴다가, 쏘니까 없어졌다는 겁니까?”

“…예.”

“그런 게 됩니까?”

다율이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이렇게 말했다.

“…열이 있어야 뜹니다.”

“…예.”

“열이 있으려면 뭐가 있어야 합니다.”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겁니다.”

기름을 부어 놓고 태우면 열은 난다. 모양은 안 나온다.

모양까지 나오려면 그 자리에 뭔가를 세워 놔야 한다. 세워 놓고 우리가 쏘게 만든다.

그러면 우리 포 자리가 드러난다.

“…선임님. 우리 K9이 어디 있는지 저쪽이 압니까?”

“…쐈으니까 압니다.”

2058.

포탄 열여덟 발이 어디로 갔는지는 남는다.

K9 대대는 그 열여덟 발을 오늘 소모로 적는다. 오늘 온 보급은 여든 발이었다.

한결은 그 계산을 했다.

여든 발 중 열여덟이면 오늘 사격의 4분의 1에 가까웠다.

포탄이 오는 길은 항구 하나뿐이다. 그 항구가 밀리면 여든 발이 마흔 발이 된다.

마흔 발일 때 열여덟을 헛것에 쓰면, 그날 우리 전차 앞에 포가 안 온다.

2140.

작업대 앞에 앉았다.

작업대 위에 종이가 세워져 있었다. 0.2라고 적힌 것이었다.

한결은 그 옆에 커넥터 새것 여덟 개를 나란히 놨다.

여덟 개를 놓고 나서 그 곡조를 입으로 한 번 따라 했다. 소리가 안 났다. 입 모양만 움직였다.

0334.

1호차가 사격을 멈췄다.

고장이 아니었다. 사수가 안 쐈다.

0341.

화면에 번호가 붙은 네모가 열한 개 있었다. 네모마다 옆에 숫자가 있었다.

“…1호차 사수가 세 번째 표적을 조준했다가 안 쐈습니다. 형태가 이상했답니다.”

“…뭐였습니까?”

“무너진 헛간이었습니다.”

“확인은 누가 했습니까?”

“사수가 3,100미터에서 배율을 12배로 올려서 봤습니다. 12배로 올리면 흔들려서 오래 못 봅니다. 그래도 봤습니다.”

“…얼마나 걸렸습니까?”

“40초입니다.”

40초 동안 저쪽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배율을 올리면 흔들린다. 손이 아니라 차체가 흔들린다. 엔진이 돌면 그 진동이 그대로 올라온다.

그래서 사수는 배율을 올리기 전에 엔진을 저속으로 내려 달라고 한다. 조종수가 내린다. 내리면 조용해지고 대신 급히 못 움직인다.

1호차는 그 40초 동안 급히 못 움직이는 상태였다.

0355.

세 번째 네모 옆 숫자는 71이었다.

“…71이면 안 의심합니까?”

“…의심 안 합니다. 기준이 55입니다.”

0402.

헛간이 왜 71로 나왔는지는 30분 뒤에 알았다.

무너진 헛간에 함석 지붕이 얹혀 있었다. 함석은 낮에 해를 먹고 밤에 천천히 뱉는다. 새벽 세 시쯤에 뱉는 속도가 차체 엔진 덮개와 비슷해진다.

모양도 비슷했다. 무너진 지붕이 비스듬히 걸려 있어서 열상에서 각이 졌다.

체계는 열을 먼저 보고 모양을 나중에 본다. 둘 다 맞았으니 71이 나왔다.

0417.

같은 화면에서 어제 것을 다시 열었다.

어제 열여덟 발을 쏜 그 표적이었다. 숫자가 78이었다.

“…선임님. 이 78은 몇 시에 처음 떴습니까?”

다율이 기록을 열었다.

“…1907입니다.”

“그전에는요.”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그전에 뭐가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0428.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78이 떴다가, 쏘고 나니 없어졌다.

헛간은 다르다. 헛간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다. 앞으로도 뜬다.

한쪽은 잘못 본 것이고 한쪽은 그렇지 않다.

잘못 본 것은 고칠 수 있다. 조건을 알면 그 조건을 빼면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은 고칠 수가 없다. 무엇을 빼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임님. 그 78 기록 남아 있습니까?”

“…남아 있습니다.”

“지우지 마십시오.”

“…예.”

0436.

브란도프스키가 왔다.

“판 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체계 화면을 정비고에도 하나 두고 싶습니다.”

“…….”

“정비관이 화면을 보면 어느 차가 얼마나 쐈는지 실시간으로 압니다. 40발 넘는 차를 미리 압니다.”

한결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안 하겠습니다.”

0447.

“화면을 보면 제가 봅니다.”

“…예.”

“보면 판단하게 됩니다. 저 세 번째 표적을 제가 봤으면 71을 봤을 겁니다.”

“판 서는 정비관입니다.”

“압니다. 그런데 제가 옆에서 한마디 하면 그게 남습니다.”

“…….”

“저는 서류에 이름이 안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한마디 하면, 나중에 그 한마디를 아무도 못 찾습니다.”

“…….”

“사격 수는 종이로 받겠습니다. 하루 두 번.”

0512.

브란도프스키가 나가고 다율이 남았다.

“정비관님. 제 체계 못 믿겠다는 말씀이시죠.”

“…아닙니다. 못 믿는 건 저입니다.”

“…….”

“화면에 숫자가 뜨면 저는 그 숫자를 믿습니다. 9년 동안 계기 보고 판단했습니다.”

“…….”

“그런데 저건 계기가 아니라 판단입니다.”

0605.

날이 밝고 저쪽이 왔다.

이번엔 드론이 먼저 왔다. 넷이 왔다.

관측용 하나와 자폭용 셋이었다. 관측용은 높이 있고 자폭용은 낮게 온다.

높이 있는 것은 좌표를 넘긴다. 낮게 오는 것은 직접 친다.

둘이 같이 오는 이유가 있다. 위에서 보고 아래로 안내한다. 조종하는 사람은 20킬로미터 뒤에 있다.

값으로 따지면 전차 한 대에 드론 천 대를 살 수 있다. 천 대가 다 올 필요는 없다. 하나만 맞으면 된다.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을 켰다. 셋 중 둘이 흔들리다가 떨어졌다.

하나가 계속 왔다.

재밍이 듣는 드론은 전파로 조종을 받는다. 주파수를 덮으면 조종이 끊긴다.

끊기면 그 자리에 떨어지거나 마지막 명령대로 간다. 마지막 명령대로 가는 것이 더 나쁘다.

두 대는 흔들리다가 떨어졌다.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재밍이 들었다는 것을 안다.

세 번째는 안 흔들렸다.

0607.

“…광케이블입니다.”

두 번째다. 저쪽이 이걸 쓰기 시작했다.

4호차가 기관총으로 쐈다. 안 맞았다. 드론은 작고 빠르다.

“…산탄.”

전차 기관총에 산탄을 물린다. 알이 넓게 퍼진다. 넓게 퍼지면 맞을 확률이 오른다.

대신 사거리가 짧다. 200미터 안쪽이다.

200미터 안쪽이면 드론이 이미 내려오고 있다는 뜻이다. 쏠 기회가 한 번이나 두 번이다.

포탑 위에 철망을 씌워 둔 차도 있다. 위에서 오는 것을 먼저 걸리게 한다. 걸리면 거기서 터지고, 거기서 터지면 장갑까지 힘이 덜 온다.

3호차에는 철망이 없었다. 어제 뜯겼다.

0609.

두 번째 사격에 맞았다.

드론이 옆으로 돌면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실이 따라 내려왔다.

실은 계속 남아 있었다. 실이 어디서 오는지를 보면 조종하는 자리가 나온다.

0611.

K9 두 문이 그 자리에 쐈다.

여섯 발이었다.

이번엔 잔해가 남았다. 사람이 쓰던 것이 남았다.

접이식 탁자 하나와 모니터 둘이었다. 모니터는 깨져 있었다.

드론을 조종하는 자리는 그렇게 생겼다. 전선에서 20킬로미터 뒤, 나무 밑, 탁자 하나.

어제 78 자리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0715.

한결은 정비고에서 잔탄을 셌다.

1호차 스물둘. 2호차 열아홉. 4호차 스물여섯. 5호차 아홉.

세는 것은 화면으로 안 하고 손으로 한다.

0803.

정비 일지를 폈다.

날짜를 적고 차량 번호와 잔탄을 적었다.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으려다 멈췄다.

적으려던 것은 어제 78 이야기였다. 그건 정비 일지에 적을 것이 아니었다.

한결은 펜을 놓고 일지를 덮었다.

작업대 위에 종이가 세워져 있었다. 0.2라고 적힌 것이었다. 그 옆에 커넥터가 넷으로 줄어 있었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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