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92자) · 서한결 · 5월 29일(토)

낮게 부르는 노래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840⁠, 다율이 노트북을 들고 정비고로 왔다⁠. 케이블이 끊긴 채로 열흘을 놔뒀던 노트북이었다⁠.

“⁠판 서님⁠, 이거 다시 씁니다⁠. 젠더를 두 개 물렸습니다⁠. 하나만 물리면 신호가 떨어지는데⁠, 두 개를 물리면 떨어진 것끼리 서로 붙잡습니다⁠.⁠”

“⁠그게 원리입니까⁠?⁠”

“⁠아니요⁠. 해 보니까 그렇습니다⁠.⁠”

0902부터 무인 체계를 정식으로 쓰기로 했다⁠. 무인 정찰차와 드론이 보내는 열상 영상에서 차량 모양을 골라내 번호를 붙이고 지도에 올리는 일이었다⁠. 고르는 것은 기계가 하고 쏘는 것은 사람이 한다⁠. 기계가 틀리기 때문이 아니라⁠, 틀렸을 때 누가 틀렸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생긴 규칙이었다⁠. 체계가 표적을 주면 사람은 세 가지를 보게 돼 있었다⁠. 그 자리에 있을 만한 것인가⁠, 움직이는가⁠, 다른 눈으로도 보이는가⁠. 세 가지를 다 보는 데는 시간이 들고 포는 그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대개는 숫자 하나만 봤다⁠.

1120⁠, 무인 정찰차 2번이 바퀴 둘이 찢긴 채 돌아왔다⁠. 위에 얹은 열상 포드의 고정 볼트 넷 가운데 둘만 남아 있었고 그 둘도 풀려 있었다⁠. 사람이 안 타는 차라 서스펜션이 단단해서 위에 얹은 것이 그만큼 흔들렸다⁠. 포드가 흔들리면 영상이 흔들리고⁠, 영상이 흔들리면 체계는 같은 물체를 두 개로 센다⁠. 한결은 산이 뭉개진 볼트를 버리고 부품함에서 같은 규격 둘과 한 단계 짧은 것 둘을 찾아 끼웠다⁠. 토크 렌치가 없어서 손으로 조였다⁠. 9년을 하면 자기 손이 대략 몇 뉴턴미터인지 안다⁠.

1146⁠, 영상을 켜자 지도 위에 번호 붙은 네모 하나가 떴다⁠. 위치가 정비고 옆이었다⁠.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폐유 소각로입니다⁠. 모양보다 열을 먼저 보고⁠, 열이 맞으면 모양을 봅니다⁠. 모양은 60퍼센트 닮았다고 나옵니다⁠.⁠”

원통이고 옆으로 누워 있고 위에 관이 솟아 있었다⁠. 그렇게 보면 닮았다⁠. 1210⁠, 다율이 그 표적을 지웠다⁠. 지우는 것은 한 번 누르면 됐는데 누르기 전에 3초가 걸렸다⁠.

“⁠지운 것도 기록에 남습니까⁠?⁠”

“⁠남습니다⁠. 누가 언제 무엇을 지웠는지 남습니다⁠. 제가 그렇게 짰습니다⁠.⁠”

1520⁠, 부품 트럭이 왔다⁠. 커넥터는 왔고 냉각기는 안 왔다⁠. 상자를 내리던 폴란드 정비병 하나가 낮게 노래를 불렀다⁠. 곡조가 느렸고 같은 대목이 두 번 되풀이됐다⁠. 두 번째 대목에서 옆 병사가 따라 불렀고 그다음에 나머지 하나도 따라 불렀다⁠. 셋이 부르는데도 소리가 커지지 않았다⁠. 브란도프스키가 광부 노래라고 알려 주었다⁠. 셋 다 슐레지아 출신이고⁠, 소리를 크게 내면 안 되는 갱도에서 부르던 노래라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갱도에서는 왜 크게 부르면 안 됩니까⁠?⁠”

“⁠천장이 듣습니다⁠. 저 친구들 할아버지 말로는 그렇답니다⁠.⁠”

상자를 다 내린 병사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고 빈 상자를 차곡차곡 접었다⁠. 한결은 그 곡조가 어디서 끝나는지 기다렸는데⁠, 끝나지 않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셋 중 하나가 한결과 눈이 마주치자 턱으로 상자 더미를 가리켰다⁠. 거들라는 뜻이었다⁠. 한결이 상자를 접는 동안에도 노래는 한 바퀴 더 돌았다⁠.

*

1905⁠, 동쪽으로 20킬로미터⁠.

통신병이 헤드셋 한쪽을 벗고 소콜로프를 돌아봤다⁠.

“⁠주입 완료⁠. 융합 회선입니다⁠.⁠”

소콜로프는 고개만 끄덕이고 손목의 초시계를 눌렀다⁠. 모니터 한쪽에는 폴란드군 자주포 대대가 있을 법한 숲 가장자리가 떠 있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표적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저쪽 자주포가 쏘고 나서 자리를 뜨기까지 몇 초가 걸리는지⁠, 그 숫자 하나를 얻는 데 오늘 저녁을 쓰기로 했다⁠.

“⁠저쪽이 안 쏘면 어떻게 합니까⁠?⁠”

“⁠쏜다⁠. 저 화면을 믿기 시작한 지 열흘 됐다⁠. 사람은 열흘이면 기계를 믿는다⁠.⁠”

1918⁠, 숲 가장자리 여섯 군데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소콜로프가 초시계를 눌렀다⁠. 불빛이 사라진 자리의 열이 흩어지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지막 하나가 화면 밖으로 빠져나갔을 때 그는 다시 눌렀다⁠. 28초였다⁠. 그는 수첩에 28이라고 적고 그 옆에 여섯 개의 점을 찍었다⁠. 점마다 좌표가 붙었다⁠.

*

1912⁠, 사격 요청이 들어왔다⁠. 체계가 잡은 표적이었다⁠. 4⁠,100미터⁠, 숫자는 78이었다⁠. 높은 숫자였다⁠. 브란도프스키가 K9 대대로 넘겼다⁠. 1918⁠, 뒤에서 포성이 났다⁠. 여섯 문이 15초 안에 세 발씩⁠, 열여덟 발을 냈다⁠. 그리고 바로 진지를 옮겼다⁠.

1921⁠,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20분 뒤에 정찰 드론이 그 자리를 봤다⁠. 흙구덩이 열여덟 개가 정확히 좌표 위에 패여 있었고⁠, 부서진 것은 없었다⁠.

“⁠판 서님⁠, 78은 사격 직후에 사라졌습니다⁠. 맞아서 사라졌으면 잔해가 남아서 계속 떴을 겁니다⁠.⁠”

“⁠없던 게 떴다가⁠, 쏘니까 없어졌다는 겁니까⁠?⁠”

“⁠열이 있어야 뜹니다⁠. 열이 있으려면 뭐가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엔 없었습니다⁠.⁠”

기름을 부어 태우면 열은 나도 모양은 안 나온다⁠. 모양까지 나오려면 그 자리에 뭔가를 세워 놓아야 한다⁠. 세워 놓고 우리가 쏘게 만들면 우리 포 자리가 드러난다⁠.

“⁠우리 K9이 어디 있는지 저쪽이 압니까⁠?⁠”

“⁠쐈으니까 압니다⁠.⁠”

2058⁠, 한결은 계산을 했다⁠. K9 대대는 그 열여덟 발을 오늘 소모로 적을 것이다⁠. 오늘 들어온 보급이 여든 발이었으니 오늘 사격의 4분의 1 가까이가 헛것에 갔다⁠. 포탄이 오는 길은 항구 하나뿐이었다⁠. 그 항구가 밀리면 여든 발이 마흔 발이 되고⁠, 마흔 발일 때 열여덟을 헛것에 쓰면 그날은 우리 전차 앞에 포가 안 온다⁠.

다율은 화면을 오래 봤다⁠. 78이 떴던 자리와 흙구덩이 열여덟 개를 겹쳐 놓고 한 픽셀씩 옮겨 봤다⁠. 좌표는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판 서님⁠. 체계가 틀린 거면 차라리 낫습니다⁠. 틀린 건 고치면 되니까요⁠.⁠”

“⁠틀린 게 아니면 뭡니까⁠?⁠”

“⁠누가 맞게 만든 겁니다⁠.⁠”

다율은 그 말을 하고 나서 노트북을 덮지 않았다⁠. 화면 불빛이 얼굴 아래쪽을 파랗게 비추고 있었다⁠.

2140⁠, 작업대 앞에 앉았다⁠. 0⁠.2라고 적힌 종이 옆에 새 커넥터 여덟 개를 나란히 놓았다⁠. 놓고 나서 낮에 들은 곡조를 입으로 한 번 따라 해 봤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입 모양만 움직였다⁠.

*

자정을 넘기면서 커넥터 넷이 나갔다⁠. 2호차 포탑 접속함 하나⁠, 4호차 조준경 둘⁠, 1호차 조종간 하나였다⁠. 한결은 한 개를 끼울 때마다 작업대로 돌아와 남은 것을 셌다⁠. 셀 때마다 수가 줄었고⁠, 줄어드는 것을 보는 일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0334⁠, 1호차가 사격을 멈췄다⁠. 고장이 아니라 사수가 쏘지 않은 것이었다⁠. 화면의 세 번째 네모 옆 숫자는 71이었다⁠. 기준은 55였으니 의심할 숫자가 아니었는데⁠, 사수는 형태가 이상하다며 배율을 12배로 올렸다⁠. 배율을 올리면 엔진 진동이 그대로 화면에 올라와서 조종수가 엔진을 저속으로 내려 줘야 했고⁠, 그동안 1호차는 급히 움직일 수 없었다⁠. 사수는 3⁠,100미터 너머를 40초 동안 봤다⁠. 저쪽도 40초 동안 이쪽을 볼 수 있었다⁠.

무너진 헛간이었다⁠. 함석지붕은 낮에 해를 먹었다가 밤에 천천히 뱉는데⁠, 새벽 세 시쯤 뱉는 속도가 전차 엔진 덮개와 비슷해진다⁠. 비스듬히 걸린 지붕이 열상에서 각이 졌다⁠. 열도 맞고 모양도 맞았으니 71이 나왔다⁠.

0417⁠, 한결은 어제 것을 다시 열어 달라고 했다⁠.

“⁠78은 몇 시에 처음 떴습니까⁠?⁠”

“⁠1907입니다⁠. 그 전에는 없었습니다⁠.⁠”

헛간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앞으로도 뜬다⁠. 잘못 본 것은 조건을 알면 그 조건을 빼면 되니까 고칠 수 있다⁠. 78은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빼야 하는지 몰랐다⁠.

“⁠그 기록 지우지 마십시오⁠.⁠”

0436⁠, 브란도프스키가 왔다⁠.

“⁠판 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체계 화면을 정비고에도 하나 두고 싶습니다⁠. 판 서가 화면을 보면 어느 차가 얼마나 쐈는지 실시간으로 압니다⁠. 40발 넘는 차를 미리 알 수 있습니다⁠.⁠”

한결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맞다고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안 하겠습니다⁠. 화면이 있으면 제가 봅니다⁠. 보면 판단하게 됩니다⁠. 저 세 번째 표적을 제가 봤으면 저도 71을 믿었을 겁니다⁠.⁠”

“⁠판 서는 정비관입니다⁠.⁠”

“⁠그래서 안 됩니다⁠. 저는 서류에 이름이 안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서 한마디 하면⁠, 나중에 그 한마디를 아무도 못 찾습니다⁠. 사격 수는 종이로 받겠습니다⁠. 하루 두 번이면 됩니다⁠.⁠”

브란도프스키는 한참 한결을 봤다⁠. 부탁을 거절당한 얼굴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확인한 얼굴에 가까웠다⁠.

“⁠종이는 제가 직접 가져오겠습니다⁠. 0600하고 1800입니다⁠.⁠”

“⁠대대장님이 직접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가져오면 제 글씨가 남습니다⁠.⁠”

브란도프스키가 나가고 다율이 남았다⁠.

“⁠판 서님⁠, 제 체계 못 믿겠다는 말씀이시죠⁠?⁠”

“⁠못 믿는 건 저입니다⁠. 9년 동안 계기를 보고 판단했습니다⁠. 화면에 숫자가 뜨면 저는 그 숫자를 믿습니다⁠. 그런데 저건 계기가 아니라 판단입니다⁠.⁠”

0605⁠, 날이 밝고 드론 넷이 왔다⁠. 관측용 하나가 높이 떠서 좌표를 넘기고 자폭용 셋이 낮게 들어왔다⁠.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을 켜자 셋 가운데 둘이 흔들리다 떨어졌다⁠. 세 번째는 흔들리지 않았다⁠. 광케이블이었다⁠. 4호차가 기관총에 산탄을 물려 쏘았다⁠. 알이 넓게 퍼지는 대신 200미터 안쪽에서만 들었고⁠, 그 안쪽이면 드론은 이미 내려오고 있었다⁠. 두 번째 사격에 드론이 옆으로 돌면서 떨어졌는데⁠, 떨어지면서 실이 따라 내려와 풀밭 위에 반짝이는 선을 그었다⁠. 실을 따라가면 조종하는 자리가 나왔다⁠. 4호차 전차장이 해치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 그 선이 어느 쪽 숲으로 사라지는지를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무전에 방위를 불렀다⁠. 손가락 끝이 떨려서 두 번을 다시 불렀다⁠. 0611⁠, K9 두 문이 그 선 끝으로 여섯 발을 쐈다⁠.

이번에는 잔해가 남았다⁠. 정찰 드론이 보내온 사진에 접이식 탁자 하나와 깨진 모니터 둘이 있었다⁠. 드론을 모는 자리는 그렇게 생겼다⁠. 전선에서 20킬로미터 뒤⁠, 나무 밑⁠, 탁자 하나⁠. 어제 78이 있던 자리에는 그런 것조차 없었다⁠.

*

0640⁠, 동쪽⁠.

소콜로프는 전방 조 하나가 연락을 끊었다는 보고를 받고 수첩을 폈다⁠. 조종병 명단 맨 위에 적힌 12를 줄로 긋고 옆에 11이라고 적었다⁠. 부관이 그의 어깨 너머로 그 숫자를 봤다⁠.

“⁠정비 쪽도 칩니까⁠?⁠”

“⁠정비부터⁠.⁠”

*

0803⁠, 한결은 정비 일지를 폈다⁠. 날짜와 차량 번호와 잔탄을 적고⁠,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으려다 멈췄다⁠. 78 이야기였다⁠. 정비 일지에 적을 것이 아니었다⁠. 펜을 놓고 일지를 덮었다⁠.

작업대 위에 종이가 세워져 있었다⁠. 0⁠.2라고 적힌 것이었다⁠. 그 옆에 커넥터가 넷으로 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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