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점선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930.
소각로를 껐다. 한결이 껐고 다율이 시각을 적었다.
같은 조건을 두 번 만들려면 세 가지가 같아야 한다. 거리, 각도, 사이에 뭐가 있는지.
거리는 흙에 꽂아 둔 막대기로 맞춘다. 각도는 무인차 바퀴 자국으로 맞춘다. 사이에는 오늘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은 못 맞춘다. 오늘은 어제보다 불었다.
한결은 그것도 적었다. 바람 있음.
1010.
1010, 63, 점선. 1050, 71, 실선. 1130, 74, 실선.
“…올라갑니다.”
“식는 중이라 올라갑니다. 온도가 차량 쪽으로 내려오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1148.
무전이 끊겼다.
끊긴 것이 아니라 잡음만 났다. 채널을 바꿔도 났다.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입니다.”
전자전이다. 무전을 덮으면 그다음이 온다.
덮는 방법은 단순하다. 같은 주파수에 더 센 잡음을 쏜다. 우리 전파보다 세면 우리 것이 묻힌다.
채널을 바꾸면 저쪽도 따라 바꾼다. 자동으로 훑는다.
무전이 안 되면 남는 것은 셋이다. 유선, 사람, 미리 정해 둔 약속.
유선은 깔 시간이 없다. 사람은 뛰어야 한다. 남는 것은 약속이다.
약속은 이렇다. 무전이 끊기면 각자 자기 앞을 맡는다. 옆을 믿는다.
1152.
포가 왔다.
이번엔 정확했다. 두 번째 진지 넷 중 셋에 떨어졌다.
두 번째 진지 위치는 우리만 안다. 어제 판 것이다.
파낸 흙은 멀리 버렸다. 드론이 위에서 보면 흙이 먼저 보인다.
버렸는데도 알았다.
방법은 셋이다. 어제 옮기는 것을 봤거나, 드론이 팔 때를 봤거나, 우리 자료 어딘가에 그 좌표가 있었거나.
앞의 둘은 막을 수 있다. 셋째는 어디를 막아야 하는지 모른다.
1155.
3호차가 첫 번째 진지로 되돌아갔다. 되돌아가는 것은 규칙에 없다.
야누시가 그렇게 했다. 저쪽이 두 번째 자리를 알면 첫 번째가 오히려 빈다.
1201.
저쪽 전차가 들어왔다.
무전이 안 되니까 서로 못 부른다. 각자 앞만 본다.
각자 앞만 보면 사이가 빈다. 넷이 나란히 있으면 사이가 셋이다.
사이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면 옆을 봐야 하는데, 옆을 보면 앞이 빈다.
그래서 평소에는 무전으로 나눈다. 오늘은 못 나눈다.
1호차가 왼쪽에서 쐈다. 3호차는 그것을 소리로 알았다.
1204.
“…오른쪽 비었습니다.”
5호차 자리였다. 5호차는 어제 위에서 맞았고 열상이 죽었고 오늘 안 나왔다.
빈 자리로 둘이 들어왔다.
1206.
3호차가 오른쪽으로 돌았다.
돌면서 능선 위로 몸이 나왔다. 나오면 옆이 보인다.
“…나갑니다.”
“나가.”
2,000에서 쐈다. 맞은 자리에서 불꽃이 옆으로 튀었다.
하나가 섰다. 서면서 앞으로 조금 더 밀려 나왔다. 조종수가 마지막에 밟은 것이다.
두 번째가 3호차 옆을 봤다.
1207.
1호차가 뒤에서 쐈다.
두 번째 것이 멈췄다.
1호차는 그 각도를 잡으려고 자기 자리를 버렸다. 버린 자리로 세 번째가 들어왔다.
1209.
1호차가 맞았다.
궤도였다. 왼쪽 궤도가 끊기면서 차가 그 자리에서 돌았다. 반 바퀴 돌고 멈췄다.
멈춘 채로 계속 쐈다. 돌지 못하는 포탑이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는 차였다.
움직이지 못하는 전차는 진지다. 진지는 쏘는 동안만 산다.
세 발을 더 쐈다. 세 발 다 그 자리에서 쐈다.
1211.
3호차가 세 번째를 봤다.
“…2,600. 정면입니다.”
“쏴.”
빗나갔다. 능선 위로 나와 있는 상태라 차체가 흔들렸다.
“장전.”
포탄이 올라오는 6초 동안 저쪽이 쐈다.
포탄이 3호차 포탑 왼쪽 위를 스쳤다. 어제 드론이 뜯어 간 자리 옆이었다.
“…또 스쳤습니다.”
“쏴.”
1213.
맞았다.
세 번째 것이 뒤로 물러났다. 맞고도 물러날 수 있으면 안 뚫린 것이다.
물러나는 것을 안 쫓았다. 쫓으려면 능선을 나가야 한다.
1214.
저쪽이 물러갔다.
물러가면서 연막을 쳤다. 적외선 연막이었다.
연막 뒤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안 보인다. 물러가는 것일 수도 있고 자리를 바꾸는 것일 수도 있다.
40초를 기다렸다. 연막이 걷혔다. 아무것도 없었다.
1240.
무전이 돌아왔다.
돌아온 첫 소리가 폴란드어로 길었다. 야누시였다.
브란도프스키가 옮기지 않았다.
“…뭐랍니까?”
“…옮기지 않겠습니다.”
“…5호차 이야기입니까?”
브란도프스키가 대답하지 않았다.
1252.
한결은 알고 있었다.
5호차 열상은 어제 죽었다. 냉각기를 통째로 갈아야 하는데 여분이 없다.
없다는 것을 한결이 사흘 전에 알았다. 알고도 못 구했다.
그 차가 오늘 안 나갔고, 그 자리가 비었고, 그 자리로 둘이 들어왔다.
들어온 둘 때문에 3호차가 능선 위로 나왔고, 1호차가 자기 자리를 버렸고, 1호차가 궤도를 맞았다.
이렇게 이어 놓으면 다 한결에게 온다.
이렇게 안 이어 놓으면 아무에게도 안 온다.
1330.
1210, 66, 실선. 1250, 58, 점선. 1330, 49, 안 뜸.
여섯 줄이 다 찼다.
바람이 분 날이라 지난번보다 빨리 식었다. 빨리 식으면 구간을 빨리 지나간다.
그런데도 실선이 세 번 붙었다. 지난번과 같았다.
바람이 바꾸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는 뜻이었다.
한결은 종이를 봤다. 실선이 셋이었다.
소각로에 실선이 세 번 붙었다.
1408.
다율이 노트북을 닫았다.
“…고친 게 아니었습니다.”
“…….”
“점선을 붙인 건 애매한 걸 애매하다고 표시한 겁니다. 그건 맞습니다.”
“…….”
“그런데 이 소각로는 74까지 갑니다. 74는 애매한 게 아닙니다.”
1520.
1호차가 견인되어 왔다.
왼쪽 궤도가 20미터쯤 늘어져 있었다. 유동륜이 밀려 있었다.
한결이 그 앞에 앉았다.
야누시가 왔다. 한결 옆에 섰다.
한참 서 있다가 폴란드어로 짧게 말했다.
브란도프스키가 이번에는 옮겼다.
“…아까 한 말은 잊으라고 합니다.”
1533.
“…뭐라고 하셨는지 압니까?”
“…압니다.”
“…….”
“냉각기 이야기였습니다.”
한결은 궤도를 봤다.
궤도는 판 여러 개를 핀으로 이어 붙인 띠다. 판 하나가 부서지면 그 판만 뺀다.
빼려면 앞뒤 핀을 뽑아야 하고, 뽑으려면 장력을 먼저 풀어야 한다.
장력을 안 풀고 뽑으면 궤도가 튄다. 튀면 사람 다리가 부러진다.
연결핀 자리가 셋 어긋나 있었다. 이건 오늘 안에 된다.
한결은 주머니에서 핀을 꺼냈다.
열네 개 중에 셋을 썼다.
0930.
소각로를 껐다.
한결이 껐고 다율이 옆에서 시각을 적었다. 0930.
“…선임님. 오늘은 폐유가 얼마나 들었습니까?”
“…모릅니다.”
“지난번보다 적으면 빨리 식습니다. 빨리 식으면 구간을 빨리 지나갑니다.”
다율이 소각로 옆 드럼통을 봤다. 눈금이 있었다.
“…지난번이 얼마였습니까?”
“…안 적었습니다.”
한결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잠깐 서 있었다.
“…제가 안 적었습니다.”
1010.
무인 정찰차 2번을 소각로 정면에 세웠다.
거리는 지난번과 같은 자리에 표시가 있었다. 흙에 막대기를 꽂아 뒀다.
같은 조건을 두 번 만들려면 세 가지가 같아야 한다. 거리, 각도, 그리고 사이에 뭐가 있는지.
거리는 막대기로 맞춘다. 각도는 무인차 바퀴 자국을 보고 맞춘다. 사이에 있는 것은 오늘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 위장망을 걷었다.
바람은 못 맞춘다. 바람이 불면 식는 속도가 빨라진다. 오늘은 어제보다 불었다.
한결은 그것도 종이에 적었다. 바람 있음.
다율이 노트북을 열었다.
“…점선으로 뜹니다.”
“숫자는요.”
“63입니다.”
한결은 종이에 적었다. 1010, 63, 점선.
1050.
두 번째 기록. 1050, 71, 실선.
“…올라갑니다.”
“예. 식는 중이라 올라갑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식는데 올라갑니다.”
“모양은 안 변하는데 온도가 차량 쪽으로 내려오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제일 위험한 건 언제입니까?”
“가장 닮았을 때입니다.”
“…그게 언제입니까?”
“지금부터 2시간쯤 뒤입니다.”
한결은 손을 소각로 몸통에 대 봤다. 장갑 너머로 아직 뜨거웠다. 장갑을 벗고 대면 안 된다.
1130.
세 번째. 1130, 74, 실선.
1210.
네 번째. 1210, 66, 실선.
1250.
다섯 번째. 1250, 58, 점선.
1330.
여섯 번째. 1330, 49, 안 뜸.
한결은 종이를 봤다. 여섯 줄이었다.
“…선임님. 실선이 셋입니다.”
“…예.”
“소각로에 세 번 실선이 붙었습니다.”
1345.
다율이 노트북을 닫았다.
“정비관님. 고친 게 아니었습니다.”
“…….”
“점선을 붙인 건 애매한 걸 애매하다고 표시한 겁니다. 그건 맞습니다.”
“…….”
“그런데 이 소각로는 74까지 갑니다. 74는 애매한 게 아닙니다. 실선입니다.”
실선과 점선을 가르는 것은 결국 숫자 하나다. 숫자 하나를 어디에 두든 그 위와 아래가 생긴다.
문제는 소각로가 그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기준을 74 위로 올리면 진짜 차량 절반이 떨어져 나간다.
이건 기준으로 풀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결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
“…선임님. 오늘 밤에도 켜십시오.”
“…….”
“어제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1420.
브란도프스키가 왔다.
“판 서. 신 선임. 오늘 저녁에 여단에서 사람이 옵니다.”
“…무슨 일입니까?”
“무인 체계 운용 보고를 받으러 옵니다. 나흘 됐으니까요.”
다율이 노트북을 봤다. 열지 않고 봤다.
“누가 보고합니까?”
“신 선임께서 하십니다. 제가 옆에 앉습니다.”
1900.
여단에서 소령 하나와 준위 하나가 왔다.
천막에 탁자를 놓고 앉았다. 다율이 노트북을 폈다. 한결은 뒤에 서 있었다. 앉을 자리가 없었고, 앉을 이유도 없었다.
보고는 폴란드어와 영어로 오갔다. 다율이 영어로 말하고 브란도프스키가 옮겼다.
나흘 동안 표적 수, 사격 수, 명중 수. 다율이 숫자를 읽었다.
소령이 물었다.
“오탐률은.”
다율이 잠깐 멈췄다.
한결은 그 멈춤을 봤다.
멈춘 것은 1초쯤이었다. 통역이 오가는 자리라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율은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지 않았다. 숫자는 이미 외우고 있었다.
1918.
“오탐은 나흘 동안 확인된 것이 셋입니다.”
“셋이면 낮습니다.”
“…확인된 것이 셋입니다.”
“…….”
“확인 안 된 것이 얼마나 되는지는 재 봐야 압니다. 오늘 낮에 재 봤습니다.”
다율이 종이를 꺼냈다. 한결이 적은 여섯 줄짜리 종이였다.
“정비고 옆 소각로 하나를 세워 두고 네 시간 동안 봤습니다. 여섯 번 재서 실선이 세 번 붙었습니다.”
소령이 종이를 봤다.
“이건 무엇입니까?”
“폐유 소각로입니다. 차량이 아닙니다.”
1932.
“신 소위.”
“…신다율입니다. 계급 없습니다. 방위산업체 파견입니다.”
“신 선임. 그러면 이 체계는 소각로를 세 번 차량으로 봤다는 겁니까?”
“예.”
“나흘 동안 그렇게 돌았습니까?”
“…예.”
“왜 지금 말합니까?”
다율이 노트북을 닫았다.
“오늘 알았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오늘 말하지 않으면 다음에 말할 자리가 없어집니다.”
1948.
소령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위가 뭔가 적었다.
“신 선임. 체계를 끕니까?”
“…아닙니다.”
“왜입니까?”
“나흘 동안 사격의 4할이 이 체계로 붙은 표적입니다. 끄면 그 4할이 사람 눈으로 돌아갑니다.”
“…….”
“대신 실선을 믿지 말라고 화면에 적겠습니다.”
“적는다고 안 믿습니까?”
“…안 믿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적혀 있으면 나중에 누가 확인은 합니다.”
“누가 확인합니까?”
“…오늘 낮에 확인한 사람이 있습니다.”
소령이 뒤를 봤다. 한결이 서 있는 쪽이었다.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브란도프스키가 대답했다.
“정비 지원입니다.”
“소속이.”
“…한국 업체입니다.”
소령이 그것을 적지 않았다. 준위도 적지 않았다.
2020.
보고가 끝났다.
소령과 준위가 나가고 브란도프스키가 남았다.
“신 선임.”
“…예.”
“오늘 말씀 안 하셨어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압니다.”
“…….”
“그래서 말한 겁니다.”
1640.
창원.
하경은 사흘째 냉각기를 봤다.
스물넷 중 스물둘을 봤다. 흔들린 것이 넷이었다.
넷을 뺐다. 스무 대가 나간다.
품질기획팀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정 반장님. 넷을 왜 뺐습니까?”
“…40분에 흔들렸습니다.”
“규격은요.”
“규격 안입니다.”
“…규격 안인데 왜 빼십니까?”
하경은 서랍을 열었다.
종이를 꺼냈다. 열한 장이 아니라 이제 열넷이었다.
“…이건 뭡니까?”
“규격 안쪽 아래로 나온 것들입니다. 두 해 동안 적었습니다.”
“이거 보고된 겁니까?”
“…아닙니다.”
“…왜 이제 말씀하십니까?”
“…오늘 넷이 나와서요.”
2105.
한결은 정비고로 돌아왔다.
작업대 위에 종이 두 장이 세워져 있었다. 0.2와 보일러 도면.
한결은 주머니에서 61이 적힌 종이를 꺼냈다.
뒷면에 여섯 줄이 적혀 있었다. 오늘 낮에 잰 것이었다.
그것을 세 번째로 세웠다.
세 장이 나란히 섰다. 가운데 것이 조금 낮았다.
0510.
부품 트럭이 안 왔다.
사흘째다.
0522.
브란도프스키가 무전을 받고 왔다.
“판 서. 항구가 막혔습니다.”
“…어느 항구입니까?”
“그단스크입니다.”
“…폭격입니까?”
“…아닙니다. 배가 안 옵니다.”
0535.
배가 안 오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배를 만든 데서 안 보냈거나, 오는 길에 다른 데로 갔거나, 하역 순서가 뒤로 밀렸거나.
이번엔 세 번째였다.
미군 물자가 먼저 내려간다. 미군 물자는 태평양으로 가는 배에 실린다.
항구는 크레인 수가 정해져 있다. 크레인 하나가 하루에 내리는 양이 있다.
배가 여덟 척 서 있으면 여덟 척을 다 못 내린다. 순서를 정해야 하고, 정하는 쪽이 있다.
정하는 쪽이 이번 달에 바뀌었다.
0602.
한결은 재고를 셌다.
접속함 커넥터 넷. 궤도 연결핀 열하나. 냉각기 영.
열상 렌즈 닦는 천은 여섯이다. 그건 많다.
재고를 셀 때는 종류별로 센다. 많은 것과 없는 것을 나란히 놓고 본다.
없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이 그 주의 한계가 된다.
이번 주 한계는 냉각기다. 열상이 죽으면 밤에 못 나간다.
0640.
저쪽이 왔다.
아침에 왔다. 이번엔 포부터 왔다.
0642.
첫 사격이 두 번째 진지를 훑었다.
우리가 어제 옮긴 자리다.
“…또 압니다.”
야누시가 무전으로 그렇게 말했다.
0645.
세 번째 자리로 갔다.
세 번째 자리는 사흘 전에 판 것이다. 저쪽이 아직 모르는 자리다.
0651.
포가 세 번째 자리로 왔다.
0653.
“…전 차량 이동. 자리 없음.”
파 둔 자리가 다 드러났다.
0658.
전차 넷이 나무 사이로 흩어졌다.
파 놓은 자리가 아니라 그냥 나무 밑이다. 차체가 다 나온다.
파 놓은 자리는 흙을 파서 차를 낮춘 것이다. 낮추면 포탑만 나온다.
나무 밑은 나무가 위를 가릴 뿐이다. 옆에서 보면 다 보인다.
옆에서 보이면 옆을 맞는다. 옆은 정면의 3분의 1이다.
0702.
저쪽 전차가 들어왔다.
2,800에서 셋이 보였다.
“…쏴.”
첫 발이 맞았다. 두 번째가 빗나갔다.
0704.
3호차가 맞았다.
궤도였다. 오른쪽이 끊겼다.
끊긴 궤도가 앞으로 쏟아지면서 차가 그 위로 올라탔다. 한쪽만 올라타서 차가 기울었다.
0705.
기운 채로 쐈다.
기울면 포신이 수평이 아니다.
포탑을 옆으로 돌리면 포신이 위나 아래로 딸려 간다. 차가 기울어 있으니 그렇다.
조준 장치가 그것을 계산해서 보정한다. 보정할 수 있는 각도가 정해져 있다.
이 차는 유기압 현수라 차체를 반대로 기울여 맞출 수 있다. 다만 그건 궤도가 성할 때다.
한쪽 궤도가 끊긴 채로는 못 한다.
“…넘습니다.”
“쏴.”
빗나갔다.
0707.
1호차가 옆에서 쐈다.
들어오던 것이 멈췄다.
0712.
저쪽이 물러갔다.
0748.
한결이 3호차로 갔다.
궤도가 스무 뼘쯤 늘어져 있었다. 연결핀 자리 넷이 어긋났다.
넷을 갈면 된다.
주머니에 열하나가 있었다.
0755.
궤도를 갈 때는 장력을 먼저 푼다.
유동륜을 뒤로 물려 궤도를 느슨하게 만들고, 어긋난 판 앞뒤의 핀을 뽑는다.
뽑을 때 궤도가 튀지 않게 사람이 하나 더 붙어 누른다. 폴란드 정비병이 붙었다.
판을 빼고 새 판을 넣고 핀을 도로 박는다. 박을 때는 망치로 친다. 소리가 크게 난다.
넷을 썼다.
일곱이 남았다.
일곱이면 이런 일을 두 번 더 할 수 있다. 세 번째부터는 못 한다.
0830.
브란도프스키가 서류를 들고 왔다.
“판 서. 본사에서 왔습니다.”
한결이 그것을 받았다.
한국어였다.
0838.
귀국 명령서였다.
명령이라고 적혀 있지만 명령이 아니다. 민간인에게는 명령을 못 한다.
「철수 권고」라고 적혀 있었다.
0845.
사유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계약상 안전 확보 불가 지역 근무 확인. 본인 동의 시 즉시 귀국 조치.
0852.
날짜가 비어 있었다.
본인이 적는 칸이었다.
0910.
박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 정비관.”
“…예.”
“그거 받았지.”
“…예.”
“내가 올린 거야.”
0918.
“…왜 올리셨습니까?”
“항구가 막혔어. 부품이 안 가.”
“…압니다.”
“부품이 안 가면 자네가 할 게 없어.”
“…….”
“없는 걸로 고치는 건 정비가 아니야.”
“…….”
“자네 지금 뭘로 고치고 있어.”
“…있는 걸로 고칩니다.”
“그게 몇 개 남았어.”
“…핀 일곱입니다.”
“그다음엔.”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0925.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 정비관. 나 내년에 나가. 나가기 전에 자네 보내고 싶어.”
“…….”
“날짜만 적어서 보내.”
0940.
전화가 끊겼다.
1015.
한결은 그 종이를 들고 정비고로 갔다.
작업대에 놨다.
작업대 위에 종이가 세 장 있었다. 0.2와 보일러 도면과 여섯 줄.
셋 다 이 자리에서 만든 것이다. 저항을 잰 것, 집에서 온 것, 소각로를 잰 것.
네 번째는 서울에서 왔다.
네 장이 나란히 섰다. 네 번째 것이 제일 컸다. 서식이라 그렇다.
1120.
3호차가 궤도를 갈고 나갔다.
야누시가 해치에서 내려다봤다.
한결을 봤다.
폴란드어로 뭐라고 했다. 짧았다.
브란도프스키가 옆에 없었다.
1125.
한결은 못 알아들었다.
야누시가 손으로 뭔가를 했다. 손바닥을 위로 펴서 두 번 들었다.
한결은 그것도 못 알아들었다.
1140.
정비병 하나가 지나가다 그것을 봤다.
영어를 조금 하는 병사였다.
“…히 세이즈, 씽큐.”
“…….”
“앤드.”
“…앤드.”
“…씽큐 포 스테잉.”
1155.
한결은 작업대로 돌아왔다.
종이 넷이 나란히 있었다.
한결은 네 번째 것을 집었다.
날짜 칸이 비어 있었다.
1210.
한결은 그 칸에 아무것도 안 적었다.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1240.
부품 상자를 열었다.
접속함 커넥터가 넷 있었다. 궤도 연결핀이 일곱 있었다.
한결은 일곱을 세어 보고 다시 넣었다.
세는 동안 밖에서 시동이 걸렸다. 네 번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