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안경 다리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540.

소리가 먼저 왔다.

벌 소리와 비슷하다. 다만 벌보다 높고 끊기지 않는다.

“…위입니다.”

토마시가 그렇게 말했다.

야누시는 해치를 닫았다. 닫으면서 위를 한 번 봤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이 시간에는 하늘이 회색이고 그 위에 검은 점 하나는 안 보인다.

0541.

3호차는 능선 뒤에 있었다.

능선 뒤는 정면에서 안 보인다. 위에서는 다 보인다.

드론은 그래서 왔다.

0542.

재밍기를 켰다.

차체 위에 안테나가 넷 서 있다. 조종 주파수와 영상 주파수를 덮는다. 덮이면 드론이 조종을 못 받고 그 자리에 떨어지거나 돌아간다.

소리가 잠깐 멀어졌다.

“…갔습니까?”

“…아니.”

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0543.

광케이블 드론이었다.

전파를 안 쓴다. 실을 풀면서 온다. 실 끝이 조종하는 사람 손에 있다.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이 안 듣는다. 이건 쏘거나 실을 끊는 수밖에 없다.

“…마레크. 움직여.”

“…어디로.”

“아무 데나. 서 있지 마.”

0544.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FPV(조종수가 화면만 보고 모는 자폭 드론) 드론 한 대 값은 전차의 천분의 일이다. 그것이 전차를 죽인다.

전차를 통째로 죽이는 것은 아니다. 한 군데만 죽인다.

포탑 위는 얇다. 정면은 손바닥 두께의 몇 배인데 위는 그 몇 분의 일이다. 위에서 칠 것을 생각하고 만든 차가 아니다.

0545.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커지는 것은 내려오고 있다는 뜻이다.

“…엎드려.”

터졌다.

0545.

차체 위, 조종수 해치 앞쪽이었다.

밖에서 보면 구멍 하나다. 지름이 손바닥보다 작고, 가장자리가 안으로 말려 있었다.

안은 달랐다.

0552.

야누시가 해치를 열고 나왔다.

토마시가 뒤따라 나왔다. 귀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소리가 안 들린다고 했다.

조종수 해치는 안 열렸다.

0611.

폴란드 위생병이 왔다. 들것 하나를 들고 왔다.

한결은 자리를 비켰다. 비켜 주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0640.

브란도프스키가 왔다.

“판 서.”

“…예.”

“조종수였습니다. 이름은 마레크입니다.”

“…몇 살입니까?”

“…그건 안 물으시는 게 낫습니다.”

0712.

한결은 3호차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야 했다. 이 차가 다시 나갈 수 있는지 봐야 하고, 그러려면 안에서 봐야 한다.

K2(국산 3세대 전차, 폴란드 도입분)는 안이 좁다. 승무원이 셋이라 그렇다.

셋인 이유는 자동장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서방 전차는 대개 넷이 탄다. 장전수가 손으로 포탄을 든다. 20킬로 넘는 것을 분당 여섯 번 든다.

이 차는 그걸 기계가 한다. 사람이 하나 줄고, 그 자리에 기계가 들어갔다.

기계는 지치지 않는다. 대신 고장 난다. 지친 사람은 느려지고 고장 난 기계는 멈춘다.

0721.

조종수 자리는 치워져 있었다. 위생병이 치웠다. 다 치우지는 못했다.

한결은 그쪽을 보지 않고 포탑 바구니 쪽으로 몸을 넣었다.

파편이 안에서 튄 자국이 있었다. 벽에 작은 구멍이 여럿 났다. 하나하나는 못 자국 같았다.

배선 다발 하나가 그 자리를 지나갔다. 세 가닥이 끊겨 있었다.

0745.

선을 이었다.

굵은 둘은 압착 슬리브로 물렸다. 가는 신호선은 납땜을 했다. 압착으로 물리면 접촉 저항이 생기고, 저항이 생기면 포탑이 조금씩 늦게 돈다.

조금 늦게 도는 것은 안 도는 것보다 나쁘다. 사수가 맞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두가 달아오르는 데 4분 걸렸다.

0752.

기다리는 동안 한결은 차체 아래를 봤다.

이 차는 현수장치가 유기압이다. 바퀴마다 기름과 가스로 눌러 놓는다.

그래서 차체를 앞뒤로 기울일 수 있다. 앞을 낮추면 포신이 더 내려가고, 뒤를 낮추면 포신이 더 올라간다.

능선 뒤에서 포탑만 내놓고 쏘는 것이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보통 전차는 능선 각도에 포신이 걸린다.

지난 사흘 동안 3호차가 앉아 있던 자리들은 전부 그 각도를 쓴 자리였다.

0758.

그리고 어제 저쪽 것이 왜 그렇게 됐는지도 여기서 갈린다.

저쪽 전차는 포탑 아래에 탄을 둥글게 세워 둔다. 그 위에 포탑이 얹혀 있다.

거기 불이 붙으면 한꺼번에 간다. 포탑이 들려서 날아간다.

이 차는 탄을 포탑 뒤 칸에 넣고 그 위에 얇은 판을 얹어 뒀다. 불이 붙으면 그 판이 먼저 터지면서 위로 뺀다.

승무원 쪽으로 안 오게 만든 것이다.

만든 사람이 그것까지는 생각했다.

0805.

계기판 위 선반에 안경이 하나 있었다.

한쪽 다리가 접히지 않고 벌어져 있었다. 경첩 나사가 빠졌다.

알에 금이 두 줄 가 있었다. 둘 다 가장자리에서 시작해 가운데 못 미쳐 멈춰 있었다.

0828.

한결은 공구 상자에서 제일 작은 드라이버를 꺼냈다.

안경 나사는 정비 공구로 되는 것이 아니다. 손목시계 고칠 때 쓰는 것을 하나 갖고 다녔다.

나사가 없었다. 전자 부품함에서 지름이 같은 것을 하나 찾았다. 길이가 길었다.

니퍼로 자르고 줄로 갈았다. 갈아서 끝이 뭉툭해야 나사산이 안 상한다.

반 바퀴에서 걸렸다. 빼서 다시 갈았다. 두 번째에 들어갔다.

다리를 접었다 폈다. 세 번 했다. 세 번 다 같은 자리에서 멈췄다.

0904.

포탑 스위치를 넣었다. 포탑이 돌았다.

밖에서 누가 손뼉을 한 번 쳤다. 한 번만 치고 말았다.

0912.

한결은 밖으로 나왔다.

야누시와 토마시가 정비고 옆에 앉아 있었다. 토마시는 아직 귀가 안 들렸다.

한결은 그쪽으로 걸어갔다.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내밀었다.

야누시가 그것을 봤다. 받지 않고 한참 봤다.

그리고 받았다. 다리를 한 번 접었다 폈다.

0918.

한결은 정비고로 돌아왔다.

인두가 아직 켜져 있었다. 껐다.

인두 끝에 납이 한 방울 굳어 있었다.

1310.

저쪽 포가 먼저 왔다.

한 번에 스물넷이었다. 능선 한 줄을 폭으로 훑었다.

이런 사격은 맞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나오게 하려고 한다.

우리 차 넷이 두 번째 진지로 옮겼다. 옮기는 30초 동안 능선 위로 몸이 나온다.

나오는 것을 저쪽이 봤다.

두 번째 진지는 미리 파 둔다. 한 대당 두 자리다. 파는 데 반나절이 걸리고, 팔 때는 흙을 멀리 버려야 한다. 파낸 흙이 옆에 쌓여 있으면 위에서 다 보인다.

그 흙을 어제 다 버렸다. 그런데도 봤다.

1312.

두 번째 사격이 왔다. 이번엔 옮긴 자리였다.

“…어떻게 압니까?”

토마시가 그렇게 물었다. 야누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드론이다. 위에 하나 떠 있고, 그것이 좌표를 넘긴다. 20분 떠 있으면 그동안 우리가 어디로 가든 따라온다.

1315.

대포병 레이더가 저쪽 진지를 잡았다.

저쪽 포탄이 날아온 궤적을 거꾸로 푼다. 포탄은 곡선으로 온다. 곡선 두 점을 알면 나온 자리가 나온다.

38킬로미터 뒤였다.

38킬로미터는 우리 K9이 닿는 거리다. 저쪽도 그 거리를 알고 그 거리에 선다.

서로 닿는 거리에 서서 누가 먼저 찾아내느냐로 정해진다.

찾아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레이더다. 레이더가 켜져 있으면 저쪽도 그 전파를 잡는다. 그래서 레이더도 켰다 껐다 한다.

1316.

K9이 쐈다.

여섯 문이 있었고 여섯 문이 다 쐈다. 한 문이 15초에 세 발을 냈다.

급속 사격이라고 한다. 처음 세 발을 몰아 내고 그다음부터 느려진다. 몰아 내는 이유는, 저쪽도 쏘고 나서 옮기기 때문이다.

1317.

18발이 38킬로미터를 가는 데 90초 걸린다.

그 90초 동안 저쪽이 옮기면 안 맞는다.

K9은 쏘고 나서 30초 안에 옮긴다. 사격 준비도 30초다. 서서 쏘는 것이 아니라 굴러가다 서서 쏘고 다시 굴러간다.

견인포는 그걸 못 한다. 견인포는 붙이고 풀고 하는 데 몇 분이 든다. 그 몇 분에 되받는다.

미군 포대가 빠진 뒤로 이 전선의 포는 이것뿐이다.

빠진 이유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통보만 왔다.

브란도프스키가 어제 지도를 보다가 손가락으로 동쪽 끝을 짚은 적이 있다. 폴란드 지도의 동쪽 끝이 아니라, 벽에 붙은 세계 지도의 동쪽 끝이었다.

짚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했다.

1319.

저쪽 사격이 멎었다.

멎었다는 것은 맞았거나 옮겼다는 뜻이다. 어느 쪽인지는 20분 뒤에 안다.

1338.

저쪽 전차가 들어왔다.

포가 멎은 자리로 들어온다. 우리가 아직 고개를 못 들었다고 보고 들어온다.

“…아홉입니다.”

“앞의 넷만 봐.”

1341.

2,300에서 쐈다.

세 대가 섰다. 넷째가 옆으로 돌면서 계속 왔다.

“…안 멈춥니다.”

안 멈추는 것은 두 가지다. 못 봤거나, 보고도 들어오는 것이다.

이 거리에서는 저쪽도 우리를 본다. 못 봤을 리가 없다.

들어오는 이유는 하나다. 뒤에 더 있어서, 앞의 몇을 잃어도 되기 때문이다.

“장전.”

포탄이 올라오는 6초 동안 저쪽이 1,900까지 들어왔다.

1,900이면 우리 옆이 뚫린다.

1343.

무전이 길게 나왔다. 브란도프스키였다.

야누시가 그것을 듣고 해치를 닫았다.

“…뭐랍니까?”

“공중 온다.”

1346.

FA-50 둘이 왔다.

낮게 왔다. 능선 뒤에서 나와서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놓고 갔다. 폭탄이 아래로 떨어지고 그다음에 소리가 왔다.

능선 앞이 한꺼번에 들렸다. 흙과 검은 것이 위로 섰다가 옆으로 퍼졌다.

폭탄은 전차를 정확히 맞히려고 놓는 것이 아니다. 그 근처에 놓는다.

근처에 떨어져도 궤도가 끊기고 조준경이 깨진다. 궤도가 끊기면 그 자리에 선다. 서면 다음 것이 온다.

전차 넷이 그 안에 있었다. 둘이 섰다.

1347.

두 번째가 지나갔다.

지나가고 나서 한 대가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었다. 뒤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기체가 뭔가를 뿌리면서 갔다. 반짝이는 것이 뒤로 흩어졌다.

플레어다. 열을 쫓아오는 것을 다른 데로 보낸다.

저쪽 방공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방공이 살아 있으면 공중은 오래 못 있는다.

맞지 않았다.

1349.

둘이 갔다.

온 지 3분이었다.

FA-50은 오래 못 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연료를 쓰고, 몇 분 쓰고, 돌아가는 데 쓴다.

그래서 언제 부르느냐가 전부다. 일찍 부르면 헛것이 되고 늦게 부르면 못 온다.

1352.

저쪽이 물러갔다.

능선 앞에 여섯 대가 서 있었다. 셋은 우리가 잡았고 셋은 방금 온 것이 잡았다.

1358.

한결은 정비고 앞에 서서 그것을 다 봤다.

1,900미터 뒤에서는 소리가 늦게 온다. 능선 앞이 들리는 것을 먼저 보고, 그다음에 소리가 왔다.

FA-50이 지나갈 때는 반대였다. 소리가 먼저 오고 기체가 나중에 지나갔다.

1420.

한결은 정비고에서 잔탄을 셌다.

1호차 스물둘, 2호차 열아홉, 4호차 스물여섯, 5호차 아홉.

5호차 사수가 해치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결이 아홉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 보였다.

“…나인.”

사수가 손가락 아홉 개를 폈다가 접었다.

1440.

손실 보고서에 3호차가 올라갔다.

차량 3호. 조종수 전사. 조종 계통 복구. 정비 소요, 3시간. 정비 담당, 부대 정비반.

한결은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대대장님. 여기 적을 칸이 없습니다.”

“…압니다. 서식에 민간 계약자 칸이 없습니다.”

“마레크는요.”

브란도프스키가 두 번째 장을 넘겼다.

이름이 한 줄 있었다.

“…적혀 있군요.”

1520.

한결은 부품 상자를 열었다.

중고 커넥터가 하나 있었다. 접점이 눌린 채였다.

핀셋으로 폈다. 한 번에 펴면 부러진다. 세 번에 나눠 폈다.

테스터로 쟀다. 0.4옴이 나왔다. 새것은 0.1옴이다.

다시 폈다. 0.2옴이 나왔다.

작업대 위에 그것을 놓고 옆에 종이를 접어 세웠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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