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74자) · 서한결 · 5월 23일(일)

안경 다리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540⁠, 소리가 먼저 왔다⁠.

벌 소리와 비슷했지만 벌보다 높았고 끊기지 않았다⁠. 토마시가 위라고 말했고⁠, 야누시는 해치를 닫으면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이 시간의 하늘은 회색이어서 그 위의 검은 점 하나는 보이지 않았다⁠. 3호차는 능선 뒤에 있었다⁠. 능선 뒤는 정면에서 안 보이지만 위에서는 다 보인다⁠. 드론은 그래서 왔다⁠.

0542⁠,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 장비를 켰다⁠. 차체 위에 선 안테나 넷이 조종 주파수와 영상 주파수를 덮었다⁠. 덮이면 드론은 조종을 잃고 그 자리에 떨어지거나 돌아간다⁠. 소리가 잠깐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광케이블입니다⁠.⁠”

전파를 안 쓰고 실을 풀면서 오는 드론이었다⁠. 실 끝이 조종하는 사람 손에 있어서 재밍이 듣지 않았다⁠. 쏘거나 실을 끊는 수밖에 없었다⁠.

“⁠마레크⁠, 움직여⁠. 아무 데나⁠. 서 있지 마⁠.⁠”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FPV(⁠조종수가 화면만 보고 모는 자폭 드론⁠) 한 대 값은 전차의 천분의 일이다⁠. 그것이 전차를 통째로 죽이지는 않는다⁠. 한 군데만 죽인다⁠. 포탑 위는 정면의 몇 분의 일 두께였고⁠, 위에서 칠 것을 생각하고 만든 차는 세상에 없었다⁠.

0545⁠,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커지는 것은 내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엎드려⁠.⁠”

*

같은 시각⁠, 동쪽으로 20킬로미터⁠.

일리야의 무릎 옆에서 실패가 돌고 있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유리 실이 풀려 나가는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그는 화면만 봤다⁠. 화면 속 초록빛 전차 한 대가 능선 뒤에서 몸을 틀었다⁠. 도망치는 방향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차는 크고 느렸고⁠, 그가 넉 달 전까지 갈던 휴대전화 액정보다도 화면 속에서 또렷했다⁠.

조종수 해치 앞이 화면 가득 커졌고⁠, 화면이 하얘졌다가 검게 끊겼다⁠.

일리야는 조종기를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손이 탁자 위에서 떨렸다⁠. 떨리는 것을 멈추려고 주먹을 쥐자 이번에는 팔꿈치가 떨렸다⁠. 뒤에서 소콜로프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한 번 눌렀다⁠. 길게 누르지 않았다⁠.

“⁠다음⁠.⁠”

부관이 새 실패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

0552⁠, 야누시가 해치를 열고 나왔다⁠. 토마시가 뒤따라 나왔는데 귀에서 피가 흘렀고⁠, 소리가 안 들린다고 너무 크게 말했다⁠. 조종수 해치는 열리지 않았다⁠.

차체 위에 구멍 하나가 나 있었다⁠. 지름이 손바닥보다 작았고 가장자리가 안으로 말려 있었다⁠. 밖에서 보면 그것뿐이었다⁠.

0640⁠, 브란도프스키가 왔다⁠.

“⁠판 서⁠. 조종수였습니다⁠. 이름은 마레크입니다⁠.⁠”

“⁠몇 살입니까⁠?⁠”

“⁠그건 안 물으시는 게 낫습니다⁠.⁠”

한결은 더 묻지 않았다⁠. 폴란드 위생병 둘이 들것을 들고 왔고⁠, 한결은 자리를 비켰다⁠. 비켜 주는 것 말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들것이 지나가는 동안 야누시는 차체 옆에 선 채 궤도의 흙을 군화 끝으로 계속 긁어내고 있었다⁠. 긁어낼 흙이 없어진 뒤에도 긁었다⁠. 토마시는 귀를 손바닥으로 막았다 뗐다 하면서⁠, 들리지 않는 것이 귀 탓인지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자기 이름을 작게 불러 보았다⁠.

브란도프스키가 한결 옆에 섰다⁠.

“⁠3호차는 다시 나갑니까⁠?⁠”

“⁠안에서 봐야 압니다⁠.⁠”

“⁠그럼 보십시오⁠. 야누시가 묻기 전에 답이 있어야 합니다⁠.⁠”

*

0712⁠, 한결은 3호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 차가 다시 나갈 수 있는지 보려면 안에서 봐야 했다⁠.

K2(⁠국산 3세대 전차⁠, 폴란드 도입분⁠)는 안이 좁다⁠. 자동장전장치가 장전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셋이 탄다⁠. 서방 전차는 대개 넷이 타고⁠, 장전수가 20킬로그램 넘는 포탄을 손으로 든다⁠. 이 차는 그 일을 기계가 한다⁠. 기계는 지치지 않는 대신 고장이 나고⁠, 지친 사람은 느려지지만 고장 난 기계는 멈춘다⁠.

조종수 자리는 위생병이 치워 놓았는데⁠, 다 치우지는 못했다⁠. 한결은 그쪽을 보지 않고 포탑 바구니 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파편이 튄 자국이 벽에 못 자국처럼 여럿 나 있었고⁠, 그 자리를 지나는 배선 다발 하나에서 세 가닥이 끊겨 있었다⁠.

0745⁠, 선을 이었다⁠. 굵은 둘은 압착 슬리브로 물렸고 가는 신호선은 납땜을 했다⁠. 압착으로 물리면 접촉 저항이 생기고⁠, 저항이 생기면 포탑이 조금씩 늦게 돈다⁠. 조금 늦게 도는 것은 안 도는 것보다 나쁘다⁠. 사수가 맞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두가 달아오르는 데 4분이 걸렸다⁠. 한결은 기다리는 동안 계기판 위 선반을 봤다⁠.

안경이 하나 있었다⁠. 한쪽 다리가 접히지 않고 벌어져 있었다⁠. 경첩 나사가 빠진 것이었다⁠. 알에는 금이 두 줄 가 있었는데⁠, 둘 다 가장자리에서 시작해 가운데 못 미쳐 멈춰 있었다⁠.

0828⁠, 한결은 공구 상자 맨 아래 칸에서 제일 작은 드라이버를 꺼냈다⁠. 안경 나사는 정비 공구로는 안 된다⁠. 그는 손목시계 고칠 때 쓰는 것을 하나 늘 갖고 다녔다⁠. 나사가 없었다⁠. 전자 부품함을 뒤져 지름이 같은 것을 하나 찾았는데 길이가 길었다⁠. 니퍼로 끊고 줄로 끝을 갈았다⁠. 끝이 뭉툭해야 안경테의 나사산이 안 상한다⁠. 반 바퀴에서 걸려서 빼내 다시 갈았다⁠. 두 번째에 들어갔다⁠. 다리를 접었다 폈다 세 번 했다⁠. 세 번 다 같은 자리에서 멈췄다⁠.

0904⁠, 포탑 스위치를 넣었다⁠. 포탑이 돌았다⁠. 밖에서 누가 손뼉을 한 번 쳤다⁠. 한 번만 치고 말았다⁠.

0912⁠, 밖으로 나왔다⁠. 야누시와 토마시가 정비고 옆 상자 위에 앉아 있었다⁠. 한결은 그쪽으로 걸어가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내밀었다⁠. 야누시는 받지 않고 한참 봤다⁠. 그러다 받았다⁠. 다리를 한 번 접었다 폈다⁠. 토마시가 옆에서 안 들리는 귀로 뭐라고 물었고⁠, 야누시가 대답 대신 안경을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채웠다⁠.

0918⁠, 한결은 정비고로 돌아와 켜 둔 인두를 껐다⁠. 인두 끝에 납이 한 방울 굳어 있었다⁠.

*

1310⁠, 저쪽 포가 먼저 왔다⁠. 한 번에 스물넷이 능선 한 줄을 폭으로 훑었다⁠. 맞히려는 사격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나오게 하려는 사격이었다⁠. 우리 차 넷이 두 번째 진지로 옮기는 30초 동안 능선 위로 몸이 나왔고⁠, 두 번째 사격이 옮긴 자리로 왔다⁠. 위에 떠 있는 드론 하나가 20분 동안 따라다니며 좌표를 넘겼다⁠.

1315⁠, 대포병 레이더가 저쪽 진지를 잡았다⁠. 날아온 포탄의 곡선을 거꾸로 풀자 38킬로미터 뒤가 나왔다⁠. 우리 K9이 닿는 거리였고⁠, 저쪽도 그 거리를 알고 그 거리에 서 있었다⁠. 1316⁠, K9 여섯 문이 15초 안에 세 발씩⁠, 열여덟 발을 몰아 냈다⁠. 38킬로미터를 가는 데 90초가 걸리는 동안 K9은 이미 굴러서 자리를 떴다⁠.

*

0716⁠, 워싱턴⁠.

지하 상황실의 공기는 커피와 복사기 열 냄새로 텁텁했다⁠. 벽 화면 셋 가운데 하나에 대만 해협이⁠, 하나에 한반도 서해가⁠, 나머지 하나에 발트해 남안이 떠 있었다⁠. 긴 탁자 끝에서 합참의 대령 하나가 한 장짜리 브리핑을 나눠 주었다⁠. 제목 줄은 한 줄이었다⁠.

유럽 포병 자산 태평양 전환 검토⁠.

국가안보보좌관이 첫 장을 넘기지도 않고 물었다⁠.

“⁠폴란드에 뭐가 남습니까⁠?⁠”

“⁠폴란드군 자체 화력이 남습니다⁠. 그들 자주포는 우수합니다⁠.⁠”

“⁠몇 문입니까⁠?⁠”

대령이 숫자를 댔고⁠, 보좌관은 그 숫자를 받아 적지 않았다⁠. 탁자 건너편에서 국무부 사람 하나가 손을 들었다⁠.

“⁠폴란드 대사관이 오늘 아침에만 세 번 전화했습니다⁠. 그쪽에선 이걸 철수라고 부를 겁니다⁠.⁠”

“⁠재배치입니다⁠.⁠”

“⁠받는 쪽에선 같은 말입니다⁠.⁠”

보좌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브리핑 한 귀퉁이에 이니셜을 적고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

미군 포대가 빠진 뒤로 이 전선의 포는 K9 여섯 문뿐이었다⁠. 빠진 이유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브란도프스키가 어제 지휘소에서 지도를 보다가 손가락으로 동쪽 끝을 짚은 적이 있다⁠. 폴란드 지도의 동쪽 끝이 아니라⁠, 벽에 붙은 세계 지도의 동쪽 끝이었다⁠. 짚고 나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338⁠, 포가 멎은 자리로 저쪽 전차 아홉이 들어왔다⁠. 1341⁠, 2⁠,300에서 쏘아 세 대가 섰는데 넷째가 옆으로 돌면서 계속 왔다⁠. 뒤에 더 있어서⁠, 앞의 몇을 잃어도 되는 쪽의 움직임이었다⁠. 장전하는 6초 사이에 넷째가 1⁠,900까지 들어왔다⁠. 1⁠,900이면 우리 옆이 뚫린다⁠.

1343⁠, 여단 무전에 영어가 섞여 들어왔다⁠. 젊은 여자 목소리가 짧게 끊어 말했다⁠.

“⁠고샤 편대⁠, 진입⁠. 3분⁠.⁠”

무전병이 고개를 들었다⁠. 여단 주파수에 공군 목소리가 섞여 들어오는 일은 드물었다⁠. 브란도프스키가 전 차량에 머리를 숙이라고 명했다⁠. 조종수 없는 3호차 옆에 서 있던 야누시는 가슴 주머니의 안경을 한 번 손바닥으로 눌렀다⁠. 고샤라는 이름이 콜사인인지 사람 이름인지 아는 사람은 여단에 없었다⁠.

1346⁠, FA-50 둘이 능선 뒤에서 낮게 튀어나와 지나가면서 폭탄을 놓고 갔다⁠. 능선 앞이 한꺼번에 들렸다가 흙과 검은 것이 옆으로 퍼졌다⁠. 근처에만 떨어져도 궤도가 끊기고 조준경이 깨진다⁠. 전차 넷 가운데 둘이 섰다⁠. 1347⁠, 두 번째 기체가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으며 반짝이는 것을 뒤로 뿌렸다⁠. 열을 쫓아오는 것을 딴 데로 보내는 플레어였다⁠. 맞지 않았다⁠. 1349⁠, 둘이 갔다⁠. 온 지 3분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연료를 쓰고 돌아가는 데 써야 하니 머무를 수 있는 것은 그 3분뿐이었다⁠.

1352⁠, 저쪽이 물러갔다⁠. 한결은 정비고 앞에서 그것을 다 봤다⁠. 1⁠,900미터 뒤에서는 능선 앞이 들리는 것이 먼저 보이고 소리가 나중에 왔는데⁠, FA-50이 지나갈 때는 소리가 먼저 오고 기체가 나중에 지나갔다⁠.

1420⁠, 한결은 정비고에서 잔탄을 셌다⁠. 1호차 스물둘⁠, 2호차 열아홉⁠, 4호차 스물여섯⁠, 5호차 아홉이었다⁠. 5호차 사수가 해치에서 내려다보고 있기에 한결은 아홉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 보였다⁠. 사수가 손가락 아홉 개를 폈다가 접고⁠, 영어로 나인이라고 말하더니 그것이 폴란드어로 무엇인지 한결에게 가르쳐 주려고 세 번이나 되풀이했다⁠. 한결이 네 번째에 겨우 따라 하자⁠, 사수는 발음이 틀렸다며 해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1440⁠, 손실 보고서에 3호차가 올라갔다⁠. 조종수 전사⁠, 조종 계통 복구⁠, 정비 소요 3시간⁠, 정비 담당 부대 정비반⁠.

“⁠대대장님⁠. 여기에도 적을 칸이 없군요⁠.⁠”

“⁠서식에 민간 계약자 칸이 없습니다⁠.⁠”

“⁠마레크는요⁠?⁠”

브란도프스키가 두 번째 장을 넘겼다⁠. 이름이 한 줄 있었다⁠.

“⁠적혀 있군요⁠.⁠”

1520⁠, 한결은 부품 상자에서 중고 커넥터를 꺼냈다⁠. 눌린 접점을 핀셋으로 폈다⁠. 한 번에 펴면 부러지니까 세 번에 나눠 폈다⁠. 테스터로 재니 0⁠.4옴이 나왔다⁠. 새것은 0⁠.1옴이다⁠. 다시 폈다⁠. 0⁠.2옴이 나왔다⁠.

작업대 위에 그것을 놓고 옆에 종이를 접어 세웠다⁠. 0⁠.2⁠.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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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다리 ·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