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성에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2140.

제2제파는 밤에 왔다.

밤에 오는 이유가 바뀌었다. 전에는 안 보이려고 밤에 왔다. 이번엔 저쪽도 열상이 있다.

열상 싸움은 단순하다. 먼저 본 쪽이 먼저 쏜다. 먼저 쏜 쪽이 대개 이긴다.

먼저 보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렌즈가 깨끗해야 하고, 냉각기가 살아 있어야 하고, 배경보다 표적이 뜨거워야 한다.

앞의 둘은 정비가 만든다. 셋째는 저쪽이 만든다.

저쪽이 오늘 밤에 쓸 방법은 셋 중 하나다.

하나는 그냥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수가 많으면 그렇게 한다. 대신 앞에 선 것부터 죽는다.

하나는 연막을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적외선 연막이면 40초쯤 우리 눈을 막는다. 그 40초에 거리를 좁힌다.

하나는 안 오는 것이다. 안 오고 포만 쏜다. 우리를 그 자리에 묶어 두고 옆으로 돈다.

셋 중 어느 것인지는 첫 40초에 갈린다.

2205.

한결은 정비고에서 열상 여섯 대를 봤다.

냉각기 몸통에 손을 대고 진동을 본다. 고르면 산 것이고, 두 번 끊기고 다시 돌면 이번 주를 못 넘긴다.

넷이 온전했다. 하나는 죽었다. 하나는 애매했다.

죽은 차는 오늘 밤 안 나간다. 나가면 눈으로 싸운다. 눈으로는 3,000미터에서 아무것도 못 본다.

애매한 것은 나간다. 안 나가면 자리가 빈다.

빈 자리가 하나 생기면 옆 차가 두 자리를 맡는다. 두 자리를 맡으면 포탑을 계속 좌우로 돌려야 하고, 돌리는 동안 한쪽은 비어 있다.

한결은 그것까지는 정할 수 없었다. 정하는 것은 브란도프스키다.

2251.

렌즈를 닦았다. 게르마늄이라 한 방향으로만 민다.

폴란드 정비병 둘이 옆에 앉았다. 부품이 없어서 할 일이 없는 둘이었다.

한결이 천을 하나 더 밀어 줬다. 한 병사가 왔다 갔다 닦았다.

“…아니요.”

손으로 한 방향을 그어 보였다.

2312.

“…드바 라지.”

두 바퀴라고 하려던 말이었다.

병사 둘이 멈췄다. 담배를 물었던 쪽이 먼저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흔들렸다.

한결이 말한 것은 두 바퀴가 아니라 두 번이었다.

한결도 웃었다. 웃고 나서야 자기가 웃었다는 것을 알았다.

2340.

“판 서. 정비관들 전부 뒤로.”

“…하나 남았습니다.”

“15분 드리겠습니다.”

2358.

다섯 대가 나갔다. 여섯 번째는 안 나갔다.

0104.

3호차 안.

야누시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배경이 회색이고 그 위에 밝은 것이 없었다.

“…아직입니다.”

“기다려.”

0112.

밝은 것이 하나 떴다. 3,400.

떴다가 사라졌다. 4초 뒤에 다시 떴다.

“…연막입니다.”

저쪽이 적외선 연막을 친다. 보통 연막은 열을 못 막는데 이건 막는다. 안에 금속 가루가 들어 있다.

연막이 열리면 그 안에서 나온다.

“…몇 초 갑니까?”

“…40초.”

연막 뒤에서 저쪽이 무엇을 하는지는 두 가지다. 앞으로 오거나, 옆으로 돌거나.

앞으로 오면 40초에 600미터를 좁힌다. 옆으로 돌면 그만큼 못 좁힌다.

3,400에서 40초를 주면 2,800이 된다. 2,800이면 저쪽 포도 우리를 뚫는다.

0113.

40초 동안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야누시는 그 40초에 포탑을 미리 돌려 놨다. 연막 오른쪽 끝을 겨눴다.

연막을 치고 나오는 쪽은 대개 오른쪽이다. 왼쪽은 늪이다. 지도를 보면 안다.

0114.

연막 오른쪽에서 나왔다.

“쏴.”

포가 나갔다. 2,900이었다.

맞았다. 맞은 자리에서 불꽃이 옆으로 튀었다. 튄 것이 아래로 흘렀다.

장갑이 뚫리면 그 안쪽에서 쇳물이 흩어진다. 그게 안에 있는 것을 태운다.

탄이 폭발해서 뚫는 것이 아니다. 아주 무거운 쇳덩이가 아주 빠르게 부딪혀서 뚫는다. 뚫리는 자리는 손바닥보다 작다. 밖에서 보면 작은 구멍 하나다.

안은 다르다.

4초 뒤에 그 차 해치가 안에서 밀려 열렸다. 열린 자리로 불이 위로 섰다.

0116.

두 번째가 나왔다. 같은 자리였다.

“…같은 데로 옵니다.”

“그러면 우리도 안 옮겨.”

옮기는 것이 규칙인데 안 옮겼다. 옮기는 4초 동안 저쪽이 나온다.

“쏴.”

빗나갔다. 연막이 아직 남아 있었다.

“장전.”

0117.

저쪽이 먼저 쐈다.

포탄이 포탑 왼쪽을 스쳤다. 스치면 소리가 길다. 긁고 지나간다.

조준경 왼쪽이 나갔다. 화면 절반이 검게 죽었다.

“…반 나갔습니다.”

“남은 반으로.”

토마시가 얼굴을 조준경에 더 붙였다. 붙이면 눈이 아프다. 눈이 아파도 붙인다.

“…들어왔습니다.”

“쏴.”

0118.

맞았다.

이번엔 포탑이 들렸다. 안에 실린 탄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포탑이 차체에서 떨어져 옆으로 돌아 떨어졌다. 떨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 무거운 것이 공중에 있는 시간이 있었다.

땅에 닿고 나서 소리가 왔다.

포탑이 날아가면 차체 위가 열린다. 열린 자리로 불이 기둥처럼 섰다.

그 불은 오래간다. 탄약이 남아 있으면 한 발씩 계속 터진다. 터질 때마다 불기둥이 흔들린다.

야누시는 그것을 몇 번 봤다. 몇 번을 봐도 세는 것은 안 됐다.

0121.

세 번째는 안 나왔다.

연막이 걷혔다. 걷힌 자리에 두 대가 서 있었다. 둘 다 불이 붙어 있었다.

야누시는 해치를 조금 열었다.

찬 공기와 함께 냄새가 들어왔다. 타는 냄새는 한 종류가 아니다. 고무와 기름과 다른 것이 섞인다.

0148.

무전이 들어왔다.

5호차가 안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열상이 애매했던 그 차다.

“…판 서. 5호차 열상이 죽었습니다.”

“…전투 중에요.”

“예. 지금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0203.

눈으로 보면 3,000미터에서 아무것도 못 본다.

5호차는 능선 뒤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가면 죽고 안 나가면 자리가 빈다.

빈 자리로 저쪽이 들어오면 옆이 열린다.

옆이 열린다는 것은 다음 차의 옆구리가 보인다는 뜻이다. 정면은 두껍고 옆은 얇다.

한 자리가 비면 그 옆이 죽고, 그 옆이 죽으면 그 옆이 죽는다. 그래서 자리는 안 비운다.

브란도프스키가 1호차를 그쪽으로 보냈다. 한 대로 두 자리를 맡게 됐다.

0247.

저쪽이 물러갔다.

연막을 치고 물러갔다. 이번엔 안 쫓아갔다. 쫓아가면 능선을 나가야 한다.

0330.

3호차가 들어왔다.

포탑 왼쪽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손가락 두 개 깊이였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그 아래 쇠가 나와 있었다.

조준경 왼쪽이 통째로 없었다.

한결이 그 앞에 섰다.

“…이건 없습니다.”

브란도프스키가 옮겼다. 야누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0412.

한결은 정비고 기둥 옆에 섰다.

정비고 바닥에 아까 그 병사가 놓고 간 천이 있었다.

한결은 그것을 주웠다. 천 위에 성에가 앉아 있었다.

0107.

접촉은 4,200에서 시작됐다.

4,200은 서로 보이는데 서로 못 뚫는 거리다. 여기서는 아무도 안 쏜다. 쏘면 위치만 준다.

저쪽은 이 거리에서 넓게 벌린다. 한 줄로 오지 않고 부채처럼 벌려서 온다.

벌리면 우리가 어느 쪽을 먼저 볼지 정해야 한다. 정하는 데 시간이 든다. 그 시간을 벌려고 벌린다.

3,600. 3,100. 2,800.

2,400에서 우리가 먼저 쐈다.

0146.

첫 사격은 여섯 대가 거의 동시에 한다.

동시에 하는 이유는, 여섯 대가 각각 쏘면 저쪽이 하나씩 되받기 때문이다. 한 번에 여섯을 잃으면 저쪽도 잠깐 멈춘다.

여섯 발 중 넷이 맞았다.

맞은 넷 중 둘은 그 자리에서 섰고, 하나는 궤도가 풀려 옆으로 돌았고, 하나는 불이 붙었다.

불이 붙은 것은 뒤에 있던 것들이 피해 갔다. 피해 가면서 줄이 흐트러졌다. 흐트러진 줄은 다시 맞추는 데 시간이 든다.

그 시간이 우리가 두 번째를 장전하는 시간이다.

땅이 먼저 왔다. 발바닥으로 올라오고 그다음에 소리가 왔다.

0203.

3호차가 세 발째를 쏘고 나서 포탑이 안 돌았다.

“…전차장님. 안 돕니다.”

“다시.”

“…안 됩니다.”

야누시는 손잡이를 두 번 당겼다. 안 돌았다.

포탑이 안 돌면 전차가 아니다.

차체를 통째로 돌려야 하는데, 차체를 돌리면 능선 위로 몸이 나온다. 나오면 정면이 아니라 옆이 보인다.

옆은 정면의 3분의 1 두께다. 2,000 안쪽에서 옆을 보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남은 방법은 하나다. 굳은 채로 그 방향만 지키는 것.

0205.

“무전.”

“…뭐라고 합니까?”

“정비.”

0207.

1,900미터 뒤에서 한결이 그 무전을 받았다.

브란도프스키가 옮겼다.

“판 서. 3호차 포탑 선회 정지입니다.”

“…궤도입니까 전기입니까?”

“선회만 안 된답니다.”

한결은 3초를 썼다.

포탑 선회가 안 되는 원인은 밤에 두 가지다. 유압이면 새는 곳을 찾아야 하고 밝은 데서 2시간이 든다. 전기면 접속함이고 어두운 데서 20분이다.

“…전기입니다.”

접속함은 포탑 뒤에 붙어 있다. 포탑이 돌 때 배선이 같이 돌아야 하니까 그 자리에 슬립링이 있고, 슬립링에서 포탑으로 올라가는 자리에 접속함이 있다.

사격 충격은 그 자리로 모인다. 쏠 때마다 조금씩 흔들린다.

세 발째에 빠졌다면 앞의 두 발에서 이미 헐거워져 있었다는 뜻이다.

“어떻게 압니까?”

“유압이면 새는 소리 때문에 승무원이 먼저 압니다. 선회만 안 된다고 했으면 전기입니다.”

0209.

“한결 씨가 갈 수 없습니다.”

“…압니다.”

“우리 정비병이 갑니다. 부품 하나만 주십시오.”

부품 상자에 접속함 커넥터가 둘 있었다. 하나는 새것이고 하나는 지난주에 뜯어낸 중고였다.

중고는 접점 하나가 눌려 있었다. 눌린 접점은 진동에서 빠진다.

한결은 새것을 병사에게 줬다.

0211.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순서를 알려 줄 방법이 없었다.

전원을 먼저 내린다. 안 내리고 뽑으면 접점이 탄다. 뚜껑 나사 여섯 개를 대각선으로 푼다. 한쪽부터 풀면 뚜껑이 틀어지면서 방수 고무가 씹힌다. 커넥터를 뽑을 때는 잠금쇠를 먼저 젖힌다. 안 젖히고 당기면 배선이 뽑힌다. 끼울 때는 딸깍 소리를 듣는다. 어두워서 눈으로는 못 본다.

한결은 그것을 폴란드어로 말할 수 없었다.

0213.

종이를 꺼냈다.

나사 여섯 개를 동그라미로 그리고 옆에 1부터 6까지 대각선 순서로 번호를 적었다. 잠금쇠는 화살표로 그렸다. 딸깍은 글자로 못 쓰니까 귀를 그렸다.

전원 스위치는 크게 그리고 그 위에 가위표를 쳤다.

병사가 손전등으로 비춰 봤다. 붉은 필름이 씌워져 있어서 종이가 붉게 보였다.

병사가 귀 그림을 짚었다.

“…딸깍.”

병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뛰었다.

1,900미터를 뛰어간다. 뛰면 8분이다. 걸으면 넘어지지 않고, 뛰면 넘어진다.

그 병사는 뛰었다.

0221.

3호차는 그동안 능선 뒤에 앉아 있었다.

포탑이 오른쪽으로 30도 돌아간 채 굳어 있었다. 정면을 못 본다.

“…토마시. 전방 안 보이지.”

“…안 보입니다.”

“그러면 오른쪽만 봐. 왼쪽은 1호차가 본다.”

0226.

저쪽 보병 전투차 하나가 오른쪽으로 왔다.

굳은 포탑이 마침 그쪽을 보고 있었다.

“…들어옵니다.”

“쏴.”

맞았다.

차체 앞이 뜯겨 나갔다. 앞판이 위로 말리면서 안이 보였다.

그 안에서 사람이 뒤로 나왔다. 둘이 나왔다.

야누시는 세지 않았다.

세는 것은 세 종류다. 남은 탄, 남은 우리 차, 잡은 저쪽 차.

밖으로 나온 사람은 세는 항목에 없다.

0231.

포탄이 3호차 옆 20미터에 떨어졌다.

흙이 옆으로 쏟아졌다. 차체 왼쪽에 흙이 쌓였다.

두 번째가 12미터에 떨어졌다. 이번엔 위에서 흙이 왔다. 해치 틈으로 흙가루가 들어왔다.

토마시가 기침을 했다. 흙이 이에 씹혔다.

0234.

정비병이 도착했다.

포탑 뒤 접속함까지 가려면 차체 위로 올라가야 한다. 포탄이 오는 중에 올라간다.

차체 위는 미끄럽다. 밤이슬이 앉고 그 위에 흙먼지가 앉는다.

올라가서 엎드렸다. 엎드린 채로 뚜껑을 열었다.

엎드리면 몸이 포탑 뒤에 가린다. 앞에서 오는 것은 막힌다. 위에서 오는 것은 안 막힌다.

포탄이 위에서 온다.

나사 여섯 개를 대각선으로 풀었다. 그림대로 풀었다.

0241.

잠금쇠를 젖히고 뽑았다. 새것을 끼웠다.

딸깍 소리는 안 들렸다. 밖이 너무 시끄러웠다.

확인할 방법은 손끝뿐이었다. 잠금쇠가 제자리로 넘어가면 손끝에 턱이 걸린다.

턱이 걸렸다.

“…해 보십시오.”

포탑이 돌았다.

0243.

3호차가 정면으로 돌았다.

돌자마자 2,100에 있던 것을 봤다.

“쏴.”

맞았다.

0312.

무전이 왔다.

“판 서. 17분이었습니다.”

“…예.”

“20분이라고 하셨는데 17분입니다.”

0408.

사격이 멎었다.

브란도프스키가 나왔다.

“제2제파는 물러갔습니다.”

“…우리는요.”

“두 대가 못 옵니다. 한 대는 견인하면 되고 한 대는 안 됩니다.”

0431.

한결은 부품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 중고 커넥터 하나가 남아 있었다. 접점이 눌린 채였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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