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99자) · 서한결 · 5월 20일(목)
이탈 없음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412, 저쪽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밤이 끝나 갈 때 왔다. 동쪽 하늘이 조금 밝아 오는 시간은 열상으로 보기에 가장 나쁜 시간이다. 밤새 식었던 땅이 데워지기 시작하면 화면 속 배경이 물결처럼 흔들리고, 흔들리는 배경에서 차를 골라내는 일은 결국 사람 눈이 해야 했다.
“토마시, 화면 말고 눈으로 봐.”
야누시는 해치를 반쯤 열었다. 찬 공기와 함께 젖은 풀 냄새가 들어왔다. 능선 너머에서 먼지가 한 줄이 아니라 폭으로 올라왔다.
먼저 나온 것은 보병전투차 셋이었다. 값이 싸고, 맞으면 어디서 쐈는지 알려 주는 것이 그 차들의 일이었다. 야누시는 쏘지 않고 셌다. 셋이 지나가고 뒤가 4초 동안 비었다. 비어 있는 4초 뒤에 나오는 것이 본체였다. 2,600에서 저쪽 전차가 나왔다.
“철갑탄. 쏴.”
첫 발이 맞았다. 두 번째 것이 바로 옆에서 나왔고, 포탄이 올라오는 6초 사이에 저쪽이 먼저 쐈다. 차체 앞이 울렸다. 커다란 종을 안에서 친 것 같은 소리가 머리뼈를 타고 들어왔다. 토마시는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떼면 다시 찾는 데 시간이 든다.
“안 뚫렸습니다.”
“마레크, 후진.”
“후진 안 됩니다. 왼쪽이 안 돕니다.”
궤도가 끊긴 것은 아니었고 조종간이 먹지 않았다. 야누시는 3초 안에 정했다. 몸이 못 움직이면 포탑만 돌린다. 포탑이 도는 데 4초, 저쪽이 다시 쏘는 데 8초였다. 4초를 쓰고 남은 4초 안에 조준하고 쏴야 했다.
“들어왔습니다.”
“쏴.”
두 번째 것이 섰다. 2초 뒤에 저쪽 포탄이 오른쪽 흙에 박혔다. 8초가 아니라 6초였다. 네 번째 것이 비스듬히 옆에서 나왔는데 각도가 나빴다. 그때 1호차의 짧은 무전이 들어왔고, 야누시는 포탑을 돌리지 않았다. 1호차가 옆에서 한 발로 대신 쳤다. 네 번째 것 안에서 불이 났고 해치 하나가 열려 사람이 하나 나왔다. 야누시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규칙이 아니었다. 그냥 안 봤다.
0431, 저쪽이 연막 뒤로 물러갔다. 몇 대가 남았는지는 아침이 돼야 안다.
*
0448, 한결은 3호차 옆에 엎드려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12분 뒤였다. 그 전에는 올 수 없었다. 저쪽이 물러가도 관측은 남기고, 서 있으면 보인다. 그는 능선 너머에서 보이는 오른쪽을 피해 차체 왼쪽에 붙어서 기었다.
마레크가 조종수 자리에서 나와 궤도 위에 앉아 있었다. 손이 떨렸고,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한결은 그 옆을 지나 조종수 자리로 들어갔다.
이 차의 조종간은 유압이 아니라 전기로 말한다. 조종수가 밀면 신호가 가고, 신호를 받은 유압 장치가 한쪽 궤도를 늦춘다. 신호선이 끊기면 안 돈다. 조종간 아래 덮개의 나사 넷을 풀자 커넥터 하나의 잠금쇠가 젖혀져 있었다. 아까 차체 앞이 울릴 때 빠진 것이었다. 한결이 그것을 다시 물리자 딸깍 소리가 났다.
“해 보십시오.”
마레크가 들어와 조종간을 밀었다. 왼쪽이 돌았다. 30초 걸렸다.
야누시가 해치 위에서 한결을 내려다보며 폴란드어로 길게 말했다. 브란도프스키는 옮기지 않았다.
“뭐라고 합니까?”
“옮기지 않겠습니다.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 욕이었습니다.”
“무슨 욕입니까?”
“30초면 되는 걸 12분 기다렸다는 겁니다. 판 서를 향한 욕은 아닙니다. 12분을 향한 욕입니다.”
마레크가 조종수 자리에서 고개를 내밀고 뭐라고 덧붙였다. 이번에는 브란도프스키가 웃음을 참으며 옮겼다.
“욕을 하려면 전차장님이 커넥터를 먼저 배우시라고 합니다.”
*
0602, 날이 다 밝았다. 능선 너머에 검은 것이 넷 서 있었다. 밤에 잡은 셋과 1호차가 잡은 하나였다. 한결은 3호차 포신 뿌리에 손을 댔다. 밤새 열아홉 발을 쏜 쇠가 아직 뜨거웠다. 포신은 쏜 만큼 안쪽이 닳고, 닳으면 탄이 멀리서 아래로 박힌다. 사수는 그걸 모르고 같은 자리를 겨누니 세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한결은 수첩에 열아홉을 적었다.
브란도프스키가 서식 한 장을 들고 왔다.
“판 서. 지휘소 화면에 그 줄이 아직 떠 있습니다. 회랑 차단 예상 60시간.”
“지났습니까?”
“어제 오후에 60시간이 지났습니다. 회랑은 안 끊겼습니다. 아무도 그 줄을 안 지웁니다. 틀렸다고 지우면 누가 틀렸는지 적어야 하니까요.”
그는 서식을 내밀었다. 손실 보고서였다.
“여기에 판 서를 적을 칸이 없습니다.”
“압니다.”
브란도프스키는 서식을 도로 접지 않고 한참 들고 있었다.
“저는 2015년에 정비병 하나를 잃었습니다. 계약직이었습니다. 훈련장에서 견인 케이블이 끊어졌는데, 그 친구는 군번이 없어서 사고 보고서에 이름이 들어갈 칸이 없었습니다. 보고서에는 장비 손상 한 줄만 남았습니다.”
“…….”
“이름은 기억합니다. 스물여섯이었고, 기타를 쳤고, 부대 트럭 라디오를 다 고쳐 놓고 갔습니다. 적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서식을 볼 때마다 칸부터 셉니다.”
그는 서식을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고 갔다.
0640, 정비지원차로 돌아오니 보고서 사본이 한 장 놓여 있었다. 손실란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정비지원차 이탈 없음.
한결은 그 줄을 오래 봤다. 어젯밤 그는 1,100미터를 걸어갔다 왔는데, 서류에서 그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었다. 다만 그 서식에는 계급도 군번도 없는 사람이 들어갈 칸이 애초에 없었다. 브란도프스키는 없는 칸에 사람을 적지 않았을 뿐, 사실을 지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본을 반으로 접어 수첩 뒤표지 안쪽에 끼웠다. 운전병이 정비지원차 깨진 창틀에 앉아 그걸 보고 있었다.
“판 서, 그 종이에 판 서 이름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판 서는 어젯밤에 저랑 같이 여기서 잔 겁니다.”
“코는 누가 골았습니까?”
“서류상으로는 아무도 안 골았습니다.”
*
1140, 낮에 왔다. 밤에 오던 것이 낮에 오면 수가 많고 숨을 필요가 없다. 능선 너머 먼지는 한 줄이 아니라 띠였다.
저쪽은 세 겹으로 왔다. 보병전투차가 먼저 나와 얻어맞으며 우리 자리를 드러내고, 드러난 자리를 포병이 때려 우리를 능선 밖으로 끌어내고, 그다음에 전차가 들어온다. 우리는 능선 뒤에 몸을 숨기고 포탑만 내놓은 채 되도록 늦게 쏘았다. 2,000 안쪽까지 들여보내야 옆이 보이고, 옆이 보여야 뚫린다. 늦게 쏜다는 것은 그때까지 맞고 있다는 뜻이었다.
1145, 보병전투차가 붙어 30밀리 기관포를 퍼부었다. 전차를 못 뚫는 대신 밖에 달린 것을 다 뜯어 가는 탄이었다. 포탑 위에서 우박이 함석지붕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는데, 그보다 느리고 무거웠다. 탄 하나가 조준경 덮개를 뜯었다.
“시야 반 나갔습니다.”
“남은 반으로 봐.”
1147, 2,400에서 한 대가 섰다. 두 번째는 2,200에서 빗나갔고, 장전하는 6초 사이에 저쪽 전차가 쐈다. 차체 왼쪽 앞이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안에서 셋의 몸이 한 번씩 떴고 토마시의 이마가 조준경에 부딪혀 피가 났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안 뚫린 것이다. 뒤로 빠지는 동안 30밀리가 따라와 엔진이 있는 뒤판을 두드렸다.
“연기 납니다. 뒤입니다.”
무전에서 1호차와 4호차의 폴란드어가 길게 나왔다. 둘이 오른쪽으로 빠지고 있었다. 3호차가 멈춘 자리를 저쪽이 보고 있으니 거기 남으면 셋이 같은 자리에서 맞는다. 빠지는 것이 규칙이었고, 야누시는 그 규칙을 만드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무전 손잡이를 쥐었다가 놓았다.
1156, 엔진이 멈췄다. 엔진이 멈추면 밖의 소리가 전부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 포 여섯과 그보다 많은 저쪽 포가 섞여서 울렸다.
“내립니까?”
“내리지 마. 밖이 더 위험해.”
“연기가 들어옵니다.”
“연기지 불이 아니야. 불이면 냄새가 달라.”
토마시가 붕대 대신 장갑 한 짝을 이마에 대고 눌렀다. 마레크는 조종간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조종간을 쥐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
1158, 동쪽으로 20킬로미터.
소콜로프는 옆 모니터에 뜬 사진 한 장을 보고 있었다. 능선에서 1,900미터 뒤, 방수포를 덮은 트럭 두 대와 그 옆에 쌓인 상자들이었다. 그는 포병 회선에 짧게 말했다.
“정비 트럭 위치 확인. 시험 사격 넷.”
*
1201, 1,900미터 뒤.
포탄이 정비 지점까지 왔다. 한결은 넘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비 지점은 저쪽 포병 사거리 안에 있었지만, 더 뒤로 가면 고장 난 차까지 가는 시간이 늘어나고 30분 안에 못 가는 차는 버려야 했다. 한 발이 30미터 옆에 떨어졌다. 정비지원차 유리가 안으로 쏟아졌고, 얼굴을 가린 팔에 작은 유리 조각이 여럿 박혔다. 옆에 세워 둔 부품 트럭의 천막이 날아가 상자들이 흙 위로 흩어졌다. 상자 하나가 터지면서 커넥터가 땅에 쏟아졌다.
“판 서, 3호차 엔진 정지입니다. 견인차가 못 갑니다. 승무원은 안에 있습니다.”
1210, 한결은 무릎을 꿇고 흩어진 커넥터를 주웠다. 흙 묻은 것을 옷에 닦아 주머니에 넣었다. 찾는 동안 포탄이 세 번 더 떨어졌고, 그때마다 엎드렸다가 다시 주웠다. 여덟 개를 주웠고 두 개는 끝내 못 찾았다. 1232에 포격이 멎었다. 팔에서 난 피가 소매 안쪽으로 흘러 손목에서 굳어 갔다.
1305, 3호차가 견인되어 왔다. 뒤판이 벗겨지고 엔진 덮개가 반쯤 뜯겨 늘어진 배선이 보였다. 야누시가 내렸고 토마시가 이마에 붕대를 감은 채 내렸고 마레크가 마지막에 내렸다. 셋 다 서 있었다. 한결은 셋을 한 명씩 차례로 봤다. 서 있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도 그는 오래 봤다.
1340, 위성 전화가 왔다. 박 팀장이었다.
“서 정비관. 감사 건 말인데, 결속 지시자 칸에 내 이름 넣었어.”
“팀장님.”
“나는 내년에 나가. 나가는 사람 이름에 붙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전화가 끊겼다. 한결은 끊긴 전화를 한참 귀에 대고 있었다.
1420, 3호차 뒤판을 열었다. 엔진실 안에 흙이 들어차 있었고 30밀리 탄자 여섯 개가 박혀 있었다. 한결은 탄자를 하나씩 펜치로 뽑아 발밑에 늘어놓았다. 뭉툭하게 찌그러진 쇳조각들은 아직 미지근했고, 흙과 냉각수가 섞인 달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냉각수 배관 하나가 끊겨 있었다. 멈춘 원인은 그것이었다. 배관은 있었다. 갈면 된다.
마레크가 옆에 쪼그려 앉아 탄자 여섯 개를 한 줄로 세웠다가, 크기대로 다시 세웠다. 뭘 하느냐고 묻자 그는 서툰 영어로 대답했다.
“기념품. 엄마한테.”
“어머니가 좋아하십니까?”
마레크는 잠깐 생각하더니 탄자를 전부 쓸어서 흙 속에 도로 버렸다.
한결은 주머니에서 커넥터를 꺼내 작업대에 놨다. 흙이 묻은 여덟 개였다. 그 옆에 궤도 연결핀 열네 개를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