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이탈 없음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0412.
저쪽이 다시 왔다.
이번엔 밤이 끝나 갈 때 왔다. 하늘 동쪽이 조금 밝았다. 열상으로 보면 제일 나쁜 시간이다.
땅이 밤새 식었다가 데워지기 시작하면 배경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배경에서 차를 골라내는 것은 사람 눈이 한다.
“…토마시. 화면 말고 눈으로 봐.”
“…예.”
야누시는 해치를 반쯤 열었다.
0414.
능선 너머에서 먼지가 올라왔다.
먼지가 올라오면 차량이다. 몇 대인지는 먼지 폭으로 짐작한다.
“…넓습니다.”
“얼마나.”
“…한 대는 아닙니다.”
0417.
먼저 나온 것은 보병 전투차였다.
전차가 아니라 보병 전투차를 먼저 내보내는 이유가 있다. 값이 싸고, 맞으면 어디서 쐈는지 알 수 있다.
야누시는 안 쐈다.
“전차장님.”
“…기다려.”
“…들어옵니다.”
“기다려.”
보병 전투차가 셋 지나갔다. 야누시는 세었다.
셋이 지나가고 나서 뒤가 비었다. 비어 있는 동안 4초가 갔다.
4초 뒤에 나온 것이 본체다.
2,600에서 저쪽 전차가 나왔다.
“철갑탄. 장전.”
“…장전 완료.”
“쏴.”
0419.
첫 발이 맞았다.
두 번째 것이 바로 옆에서 나왔다. 거리가 같았다.
“장전.”
포탄이 올라오는 6초 동안 저쪽이 쐈다.
차체 앞이 울렸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종을 안에서 친 것 같은 소리였다.
“…맞았습니다.”
“어디야.”
“…앞입니다. 안 뚫렸습니다.”
안 뚫렸다는 것은 밖에서 봐야 안다. 안에서는 소리와 냄새로 안다.
뚫리면 그 소리가 다르고, 뚫리면 안에 불이 들어온다. 이번엔 소리만 났다.
토마시가 조준경에서 눈을 안 뗐다. 떼면 다시 찾는 데 시간이 든다.
“…전차장님. 저것 다시 쏩니다.”
“얼마나 걸려.”
“…8초쯤입니다.”
0420.
“마레크. 후진.”
“…후진 안 됩니다.”
“왜?”
“…왼쪽이 안 돕니다.”
궤도가 끊긴 것은 아니었다. 조종간이 안 먹었다.
0421.
야누시는 3초 안에 정했다.
움직이지 못하면 포탑만 돌린다. 몸은 그대로 두고 포만 돌린다.
“…포탑 오른쪽. 천천히.”
“…돌립니다.”
포탑이 도는 데 4초 걸린다. 저쪽이 다시 쏘는 데 8초 걸린다.
4초를 쓰고 나면 4초가 남는다. 그 4초 안에 조준하고 쏴야 한다.
“…들어왔습니다.”
“쏴.”
세 번째 것이 맞았다.
맞고 나서 2초 뒤에 저쪽 것이 왔다. 우리 차 오른쪽 흙에 박혔다.
8초가 아니라 6초였다.
네 번째가 옆에서 나왔다. 각도가 나빴다. 우리 옆을 보고 있었다.
0423.
무전이 들어왔다. 1호차였다.
폴란드어로 짧았다. 야누시는 그것을 듣고 포탑을 돌리지 않았다.
1호차가 대신 쐈다.
한 발이었다. 옆에서 쳤다.
네 번째 것이 멈췄다. 멈추고 나서 안에서 불이 났다. 불이 나면 해치가 열린다.
해치가 하나 열렸다. 사람이 하나 나왔다.
야누시는 그쪽을 안 봤다. 안 보는 것이 규칙은 아니었다. 그냥 안 봤다.
0431.
저쪽이 물러갔다.
물러갈 때는 연막을 친다. 연막 뒤로 빠진다. 그래서 몇 대가 남았는지 아침에야 안다.
0436.
한결은 정비지원차 안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포성이 몇 초 간격으로 났는지 세고 있었다. 세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여덟 번 나고 멎었다가, 두 번 더 났다.
0448.
한결은 3호차 옆에 엎드려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12분 뒤에 왔다. 그전에는 못 온다.
“…조종간입니까?”
브란도프스키가 옮겼다. 야누시가 대답했다.
“왼쪽이 안 먹는답니다.”
엎드린 이유가 있다. 저쪽이 물러갔다고 해도 관측은 남긴다. 서 있으면 보인다.
3호차는 능선 아래 있었다. 능선 위로 포탑만 나와 있었다.
한결은 차체 왼쪽으로 붙어서 갔다. 오른쪽은 능선 너머에서 보인다.
한결은 조종수 자리로 들어갔다.
마레크가 자리에서 나와 밖에 앉아 있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것을 다른 손으로 눌렀다.
0455.
조종간은 유압이 아니라 전기다.
조종수가 조종간을 밀면 전기 신호가 가고, 신호를 받은 유압 장치가 궤도 속도를 줄인다. 한쪽을 줄이면 그쪽으로 돈다.
신호선이 끊기면 안 돈다.
한결은 조종간 아래 덮개를 열었다. 나사 넷이다.
안에 커넥터가 하나 있었다. 잠금쇠가 젖혀져 있었다.
아까 차체 앞이 울릴 때 빠진 것이다.
0458.
한결은 그것을 다시 물렸다.
딸깍 소리가 났다.
“…해 보십시오.”
마레크가 들어와 조종간을 밀었다. 왼쪽이 돌았다.
30초 걸렸다.
0502.
야누시가 한결을 봤다. 폴란드어로 뭐라고 했다.
브란도프스키가 옮기지 않았다.
“…뭐랍니까?”
“…옮기지 않겠습니다.”
“…왜요.”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 욕이었습니다.”
“…….”
“30초면 되는 걸 12분 기다렸다는 겁니다.”
0530.
날이 밝았다.
능선 너머에 검은 것이 넷 있었다. 셋은 밤에 잡은 것이고 하나는 1호차가 잡은 것이다.
0545.
포신을 봤다.
3호차가 밤새 열아홉 발 쐈다. 뿌리가 아직 뜨거웠다.
포신은 쏜 만큼 안쪽이 닳는다. 닳으면 탄이 나가는 속도가 떨어지고, 떨어지면 멀리서 아래로 박힌다.
사수는 그것을 모른다. 같은 자리를 겨눈다. 그래서 세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한결은 열아홉을 적었다.
0602.
브란도프스키가 왔다. 서식 한 장을 들고 있었다.
“판 서. 여기에 적을 칸이 없습니다.”
“…압니다.”
“저는 2015년에 정비병 하나를 잃었습니다. 계약직이었습니다.”
“…….”
“이름을 기억하는데 적을 데가 없습니다.”
브란도프스키가 서식을 덮었다.
0640.
한결은 정비지원차로 돌아왔다.
보고서 사본이 하나 놓여 있었다.
손실란 아래에 한 줄이 있었다.
정비지원차 이탈 없음.
한결은 그 줄을 봤다.
어젯밤에 1,100미터를 걸어갔다 왔는데, 서류에는 안 나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궤도 연결핀 열네 개가 아직 거기 있었다.
1140.
낮에 왔다.
밤에 오던 것이 낮에 오면 수가 많다는 뜻이다. 숨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능선 너머 먼지가 한 줄이 아니라 띠였다.
저쪽이 쓰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 세 겹으로 온다.
앞에 보병 전투차를 세운다. 값이 싸고 빠르다. 이것들이 앞으로 나와서 얻어맞는다. 얻어맞으면 우리가 어디 있는지 드러난다. 그게 이것들이 하는 일이다.
드러나면 포병이 그 자리를 때린다. 전차를 부수려고 때리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 하려고 때린다. 움직이면 능선 뒤에서 나와야 하고, 나오면 보인다.
그다음에 전차가 들어온다.
우리가 쓰는 방법도 정해져 있다.
능선 뒤에 몸을 숨기고 포탑만 내놓는다. 맞을 면적이 3분의 1이 된다. 쏘고 나면 자리를 옮긴다. 연기가 오르기 때문이다. 안 옮기면 다음 것이 그 자리로 온다. 옮길 자리를 미리 파 둔다. 한 대당 두 자리씩 판다.
그리고 되도록 늦게 쏜다. 멀리서 쏘면 우리 위치만 알려 주고 안 뚫린다. 2,000 안쪽까지 들여보내야 옆이 보이고, 옆이 보여야 뚫린다.
늦게 쏜다는 것은 그때까지 맞고 있다는 뜻이다.
“…토마시. 세.”
“…못 셉니다.”
“그러면 앞줄만 세.”
“…아홉입니다.”
1143.
첫 포탄이 왼쪽 200미터에 떨어졌다.
흙이 위로 솟았다. 솟은 흙이 부채꼴로 퍼지면서 그 안에 검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돌과 나무뿌리와 언 흙덩이다.
두 번째가 100미터에 떨어졌다.
세 번째는 안 떨어졌다. 대신 그 자리 나무 세 그루가 한꺼번에 넘어갔다. 잘려서 넘어간 것이 아니라 밀려서 넘어갔다.
야누시는 해치를 닫았다.
닫는 순간 뭔가가 포탑 위를 훑고 지나갔다. 쇠가 쇠를 긁는 소리였다.
1144.
포병이 왔다.
우리 자리를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다. 능선 한 줄을 폭으로 훑는다. 넓게 뿌려서 안에 든 것을 나오게 만든다.
이걸 견디는 것을 버틴다고 한다. 버티면 저쪽 전차가 2,000 안으로 들어온다.
1145.
“…기관총입니다.”
보병 전투차가 붙었다. 30밀리다.
30밀리는 전차를 못 뚫는다. 대신 밖에 달린 것을 다 뜯어 간다. 조준경, 안테나, 연막탄 발사기, 위에 얹어 둔 짐.
포탑 위에서 소리가 계속 났다. 우박이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것보다 느리고 무거웠다.
탄 하나가 조준경 덮개를 뜯었다.
“…시야 반 나갔습니다.”
“남은 반으로 봐.”
1147.
“쏴.”
포가 나갔다.
2,400에서 보병 전투차가 멈췄다. 멈추고 나서 옆으로 기울었다. 궤도 한쪽이 풀려서 앞으로 쏟아졌다.
풀린 궤도가 땅에 깔리고 차체가 그 위로 올라탔다. 그대로 반 바퀴 돌았다.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것은 안 보였다. 해치가 위가 아니라 뒤에 있다.
1149.
두 번째 것이 나왔다.
“…거리 2,200.”
“쏴.”
빗나갔다.
“…짧습니다.”
“장전.”
포탄이 올라오는 6초 동안 저쪽 전차가 쐈다.
이번엔 소리가 달랐다.
1150.
차체 왼쪽 앞이 들렸다.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안에서 사람 셋이 다 한 번씩 몸이 떴다.
토마시의 이마가 조준경에 부딪혔다. 피가 났다. 흐르는 것을 손등으로 밀었다.
“…뚫렸습니까?”
“…모릅니다.”
“냄새 나나.”
“…안 납니다.”
안 났다. 안 뚫린 것이다.
1151.
“마레크. 뒤로.”
“…갑니다.”
차가 뒤로 갔다. 왼쪽 궤도가 헛돌았다.
“…왼쪽이 헛돕니다.”
“얼마나.”
“…한 바퀴에 반 정도입니다.”
궤도 장력이 풀린 것이다. 아까 그 충격에 유동륜이 밀렸다.
이 상태로도 간다. 대신 방향이 안 맞는다. 왼쪽으로 계속 끌린다.
1153.
능선 뒤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동안 30밀리가 계속 따라왔다. 차체 뒤판에 맞는 소리가 났다.
뒤판은 얇다. 엔진이 거기 있다.
“…연기 납니다.”
“어디서.”
“…뒤입니다.”
무전에서 폴란드어가 길게 나왔다. 1호차와 4호차였다.
야누시는 그것을 듣고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1호차와 4호차가 오른쪽으로 빠지고 있었다. 3호차가 멈춘 자리를 저쪽이 보고 있으니, 거기 남으면 셋 다 같은 자리에서 맞는다.
빠지는 것이 규칙이다. 야누시는 그 규칙을 자기가 만들 때 있었다.
1156.
엔진이 멈췄다.
멈추면 조용해진다. 전차 안에서 엔진이 멈추면 밖의 소리가 다 들어온다.
밖에서 포성이 계속 나고 있었다. 우리 것이 여섯, 저쪽 것이 그보다 많았다.
“…내립니다.”
“내리지 마.”
“…불납니다.”
“연기지 불 아니야.”
1201.
1,900미터 뒤.
한결은 정비지원차 안에 있었다.
포탄이 이쪽까지 왔다. 정비 지점을 노린 것이 아니라 넘어온 것이다.
정비 지점은 전선에서 1,900미터 뒤다. 저쪽 포병 사거리 안이다.
사거리 안인데 여기 있는 이유는, 더 뒤로 가면 고장 난 차까지 가는 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30분 안에 못 가면 그 차는 버린다. 버린 차는 저쪽 것이 된다.
한 발이 30미터 옆에 떨어졌다.
트럭 유리가 안으로 쏟아졌다. 한결은 얼굴을 팔로 가렸다. 유리가 팔에 박혔다. 작은 것이 여러 개였다.
옆에 세워 둔 부품 트럭이 그 한 발에 반쯤 벗겨졌다. 적재함 천막이 날아가고 상자들이 흙 위에 흩어졌다.
상자 하나가 터져서 커넥터가 땅에 쏟아졌다.
1204.
무전이 들어왔다.
“판 서. 3호차 엔진 정지. 견인 안 됩니다. 견인차가 못 갑니다.”
“…승무원은요.”
“안에 있습니다.”
“나오라고 하십시오.”
“…밖이 더 위험합니다.”
1210.
한결은 흩어진 커넥터를 주웠다.
무릎을 꿇고 주웠다. 흙이 묻은 것을 옷에 닦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여덟 개를 주웠고 두 개는 못 찾았다.
찾는 동안 포탄이 세 번 더 떨어졌다. 그때마다 엎드렸다가 다시 주웠다.
1232.
포격이 멎었다.
멎은 뒤의 조용함은 이상하게 크다. 귀가 먹먹해서 그렇다.
한결은 일어섰다. 팔에서 피가 소매 안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앞을 봤다.
능선 위로 연기가 다섯 줄 올라가고 있었다. 어느 것이 우리 것인지는 여기서 안 보인다.
1305.
3호차가 견인되어 왔다.
뒤판이 벗겨져 있었다. 엔진 덮개가 반쯤 뜯겨 안이 보였다. 배선이 밖으로 늘어져 있었다.
야누시가 내렸다. 토마시가 내렸다. 마레크가 마지막에 내렸다.
셋 다 서 있었다.
1340.
위성 전화가 왔다. 박 팀장이었다.
“서 정비관. 감사 건 말인데.”
“…예.”
“지시자 칸에 내 이름 넣었어.”
“…팀장님.”
“나는 내년에 나가. 나가는 사람 이름에 붙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전화가 끊겼다.
1420.
한결은 3호차 뒤판을 열었다.
엔진실 안에 흙이 들어차 있었다. 30밀리 탄자가 여섯 개 박혀 있었다.
냉각수 배관 하나가 끊겨 있었다. 그것 때문에 멈춘 것이었다.
배관을 갈면 된다. 배관은 있다.
한결은 주머니에서 커넥터를 꺼내 작업대에 놨다. 흙이 묻은 여덟 개였다.
그 옆에 궤도 연결핀 열네 개를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