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회선이 하나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전화는 세 번 울리고 끊겼다가 다시 울렸다.

“서 책임님. 본사 무인체계사업팀 박 팀장입니다.”

“예.”

“지금 어디십니까?”

“브라니에보입니다.”

“…거기가 어딥니까?”

한결은 대답을 잠깐 골랐다.

“모롱에서 북동쪽으로 90킬로미터입니다.”

“전선입니까?”

“전선에서 12킬로미터입니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잡음이 들어갔다. 위성 전화라 반 박자씩 늦는다.

“서 책임님. 계약서 어디에 전선 정비가 있습니까?”

“지원 장소가 안 적혀 있습니다.”

“안 적혀 있으면 안 가는 겁니다.”

“…….”

“오늘 중으로 바르샤바로 빠지십시오. 항공편은 저희가 잡습니다.”

“3호차 장전기가 임시 결속입니다.”

“무슨 결속입니까?”

“야전 전화선입니다.”

“…….”

“두 바퀴 물려 놨습니다. 한 벨트는 갑니다. 그다음은 제가 다시 가야 합니다.”

전화가 한참 조용했다. 위성 지연 때문이 아니었다.

“서 책임님. 그거 기록에 남습니까?”

“…….”

“남으면 우리 제품이 야전 전화선으로 굴러갔다는 게 남습니다.”

“안 남기면 다음 정비관이 모릅니다.”

“…….”

“모르면 열여섯 발 쏘고 또 섭니다.”

박 팀장이 숨을 한 번 쉬었다.

“일단 빠지십시오. 그건 나중에 정리합시다.”

전화가 끊겼다.

다율이 정비지원차 옆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다.

“판 서님도 오셨습니까?”

“…나도라니요.”

“저는 아침에 받았습니다.”

“뭐라고 하시던가요?”

“철수하랍니다.”

“…….”

“저는 아직 세 대가 나가 있습니다. 신호 끊긴 3번차는 회수도 못 했습니다.”

한결은 다율을 봤다. 스물아홉이라고 했다. 창원에서 두 번 봤고 여기서 반년을 봤다.

“회수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소프트웨어가 통째로 저쪽에 갑니다.”

“…….”

“차체는 껍데기입니다. 값나가는 건 안에 든 겁니다. 표적 판단하는 부분이요.”

“그거 넘어가면.”

“저쪽이 우리가 뭘 보고 쏘는지를 압니다.”

다율이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 점 세 개가 있었다. 두 개는 초록, 하나는 회색이었다.

“회색이 3번차입니다.”

“마지막 위치는 압니까?”

“400미터까지는 압니다. 그 뒤 30초가 안 올라왔습니다.”

“회선이 하나라고 하셨죠.”

“예. 우선순위가 전차에 있습니다.”

“…….”

“당연합니다. 사람이 타니까요.”

다율이 노트북을 덮었다.

“판 서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하십시오.”

“아까 그 트랙터 말입니다.”

“예.”

“제가 보고 안 올렸으면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3번차 영상은 저만 뽑을 수 있으니까요.”

“…….”

“올리고 나서 계속 생각합니다. 안 올렸으면 오늘 밤에 잘 잤을 텐데요.”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공구함을 열어 궤도 연결핀을 세었다. 열넷이었다.

“신 책임님.”

“예.”

“3번차 어느 쪽입니까?”

“…예?”

“어느 방향으로 400미터입니다.”

다율이 한결을 봤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오늘 밤에 2중대가 그쪽으로 나갑니다.”

“…….”

“가는 길에 끌고 오면 됩니다. 견인고리(끌 때 케이블을 거는 쇠고리)가 규격이 맞으면요.”

“맞습니다. 전차 규격 그대로 썼습니다.”

“그건 잘 만드셨네요.”

다율이 짧게 웃었다. 오늘 처음이었다.

2중대는 2140에 나갔다.

한결과 다율은 정비지원차에 탔다. 대열 뒤에서 세 번째였다. 브란도프스키가 앞에서 무전으로 한 번 확인했다.

“판 서. 두 분 다 타셨습니까?”

“탔습니다.”

“오늘 이건 정비 지원이 아닙니다. 아시죠.”

“압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무인차 회수는 임무에 없다. 다만 가는 길에 있고, 서 있는 물건이고, 견인고리(끌 때 케이블을 거는 쇠고리) 규격이 맞는다. 규정에 없는 일은 대개 그렇게 시작한다.

밤은 그믐이었다. 폴란드 5월 밤은 열 시가 넘어야 어두워진다.

“신 책임님. 열상 되십니까?”

“저는 관이 없습니다.”

“…….”

한결이 자기 것을 넘겼다. PVS-04K(국군 제식 야간투시경)였다. 정비용으로 한 대 갖고 있었다.

“전지는요.”

“리튬입니다. 알카라인은 밤에 죽습니다.”

“…아신다.”

“한국에서 배웠습니다.”

2214에 대열이 섰다. 앞에서 무전이 왔다.

“상공 확인. 회전익(프로펠러로 뜨는 것, 헬기와 드론) 소리.”

모두가 엔진을 껐다. 55톤짜리 12대가 한 번에 조용해지는 것은 소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소리의 종류가 바뀌는 것이다. 궤도가 식으면서 쇠가 우는 소리가 났다.

다율이 아주 작게 말했다.

“드론입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회전익인데 소리가 얇습니다. 헬기면 두껍습니다.”

“…….”

“그리고 안 지나갑니다. 돌고 있습니다.”

한결도 그제야 들렸다. 소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원을 그리고 있었다.

“정찰입니까 공격입니까?”

“지금은 정찰입니다.”

“지금은요?”

“정찰이 좌표를 넘기면 20분 뒤에 포가 옵니다.”

브란도프스키의 무전이 들어왔다.

“산개. 나무 밑으로.”

12대가 갈라졌다. 아주 천천히 갔다. 빨리 가면 흙먼지가 뜨고, 흙먼지는 나무보다 높이 올라간다.

정비지원차만 안 움직였다.

한결이 30분 전에 배터리 단자를 풀어 놨다. 발전기 벨트 장력을 보려고 풀었고 아직 안 물렸다.

무는 데 3분이면 된다. 3분 동안 저 소리가 위에 있다.

“…밀어야겠습니다.”

한결과 다율과 운전병이 내려서 밀었다. 3.5톤짜리를 셋이 미는 것은 안 되는 일인데, 내리막이라 됐다.

나무 밑에 들어가고 나서 소리가 멀어졌다.

2231에 무전이 왔다.

“상공 이탈.”

“좌표 넘어갔겠습니까?”

“…모릅니다.”

다율이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 밝기를 가장 낮게 내려놓고 있었다.

“판 서님. 3번차 신호가 잡힙니다.”

“…예?”

“약하지만 잡힙니다. 아까는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드론이 빠지면서 같이 빠졌습니다.”

“위치는요.”

“여기서 1,100미터입니다.”

한결은 어둠 쪽을 봤다. 1,100미터면 걸어서 15분이다. 야시경을 쓰면 20분이다. 조심하면 30분이다.

“브란도프스키 준위님.”

무전을 넣었다.

“말씀하십시오.”

“3번차 신호 잡혔습니다. 1,100입니다.”

“…….”

“가져오겠습니다.”

“판 서. 아까 상공에 있던 게 좌표를 넘겼으면 그쪽으로 포가 옵니다.”

“압니다.”

“20분입니다.”

“그러면 20분 안에 오겠습니다.”

무전이 잠깐 조용했다.

“…한 명만 데려가십시오. 셋은 안 됩니다.”

한결이 다율을 봤다. 다율은 이미 노트북을 닫고 있었다.

“제가 갑니다. 견인고리 위치를 아는 사람이 저뿐입니다.”

“…….”

“그리고 안에 든 걸 지워야 합니다. 못 끌면 지우기라도 해야 합니다.”

“지우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40초입니다.”

“끄는 데는요.”

“모릅니다. 한 번도 안 끌어 봤습니다.”

한결은 궤도 연결핀 열넷과 견인 케이블을 챙겼다. 다율은 노트북과 케이블 하나를 챙겼다.

둘이 나무 밑에서 나왔다.

시계는 2236이었다.

2231.

3호차 안.

야누시는 전차장 자리에서 열상을 보고 있었다.

화면 아래쪽에 밝은 것이 셋 있었다. 셋 다 움직이지 않았다.

“…토마시. 왼쪽 것 배율 올려.”

포수가 배율을 올렸다. 12배에서 화면이 흔들렸다.

“…포탑 있습니다.”

“몇 도야.”

“우리 쪽입니다.”

야누시는 손을 뻗어 장전 손잡이를 잡았다.

“철갑탄.”

“철갑탄.”

마레크가 조종수 자리에서 대답했다.

“…엔진 저속으로 내립니다.”

“내려.”

2233.

포탄이 장전기에서 올라오는 데 6초가 걸린다.

올라오는 동안 포수는 조준을 유지한다. 차가 흔들리면 조준이 흔들리고, 흔들리면 6초가 헛것이 된다.

열상 화면에서 저쪽 포탑은 밝게 뜬다. 포탑 안에 사람이 있고 사람이 열을 낸다. 차체보다 포탑이 먼저 보인다.

야누시는 포탑 오른쪽 아래를 봤다. 거기가 제일 얇다. 정면 장갑은 두껍고 옆은 얇다.

2,900미터에서 옆을 맞히려면 저쪽이 옆을 보여 줘야 한다. 안 보여 주면 정면을 쏜다.

정면을 쏘면 뚫릴 수도 있고 튈 수도 있다.

“…준비.”

“쏴.”

포가 나갔다.

차체가 뒤로 밀렸다. 안에서 소리는 크지 않다. 밖이 크다.

“…맞았습니다.”

“다음.”

2234.

두 번째 것이 움직였다.

“…움직입니다. 오른쪽으로.”

“거리.”

“2,900.”

“쏴.”

빗나갔다.

“짧습니다. 100 올려.”

“…100 올립니다.”

두 번째 발이 맞았다.

맞으면 화면이 한 번 하얘진다. 열이 확 퍼져서 그렇다. 하얘진 것이 가라앉는 데 4초쯤 걸린다.

그 4초 동안 아무것도 안 보인다. 4초는 저쪽이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2236.

세 번째 것이 안 보였다.

“…없어졌습니다.”

“없어진 게 아니라 안 보이는 거야.”

야누시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지난주에 같은 말을 들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후진. 30미터.”

“후진합니다.”

차가 뒤로 갔다.

30미터 뒤로 가면 능선이 조금 더 올라온다. 몸이 덜 나온다. 대신 시야가 좁아진다.

이것을 헐다운이라고 한다. 포탑만 내놓고 차체를 숨긴다. 맞을 면적이 3분의 1이 된다.

문제는 쏘고 나면 연기가 오른다는 것이다. 연기가 오르면 자리가 드러난다. 그래서 쏘고 옮긴다.

야누시는 지난주에 옮기지 않은 차 한 대가 어떻게 됐는지 봤다.

2238.

세 번째 것이 먼저 쐈다.

포탄이 차체 앞을 지나갔다. 지나가는 소리는 안 들린다. 흙이 튀는 것만 보인다.

“…어디야.”

“…모르겠습니다.”

“토마시.”

“…연기 봤습니다. 10시 방향.”

“거리.”

“…3,100.”

“…포탑 돌려. 천천히.”

포탑이 돌았다. 빨리 돌리면 관성으로 지나친다. 지나치면 되돌려야 하고 되돌리는 데 시간이 든다.

“…들어왔습니다.”

“쏴.”

2239.

맞았다.

야누시는 해치를 조금 열었다. 열면 안 되는데 열었다.

밖에 연기가 세 군데 있었다.

찬 공기가 들어왔다. 안에 있던 냄새가 그제야 느껴졌다. 화약 냄새와 사람 냄새와 기름 냄새다.

야누시는 그 냄새를 여섯 달 맡았다.

2242.

같은 시각, 1,100미터 뒤.

한결은 무인 정찰차 3번 앞에 서 있었다.

앞에서 포성이 계속 났다. 우리 것과 저쪽 것이 섞였다.

“왼쪽입니다.”

다율이 손전등을 켜지 않고 손으로 짚었다.

왼쪽 궤도가 끊어져 있었다. 연결핀 한 자리가 뜯겨 나갔고, 궤도가 스무 뼘쯤 풀려서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이거 끌려면 궤도를 떼야 합니다.”

“얼마나요?”

“혼자 하면 12분입니다.”

한결은 시계를 봤다. 포가 온다고 한 시각까지 13분 남아 있었다.

2243.

궤도를 떼는 일은 순서가 있다.

장력을 먼저 푼다. 유압으로 밀어 놓은 유동륜을 뒤로 물려서 궤도를 느슨하게 만들고, 그다음에 연결핀을 뽑는다.

장력을 안 풀고 핀을 뽑으면 궤도가 튄다. 튀면 사람 다리가 부러진다.

유압 밸브를 찾는 데 2분이 걸렸다. 우리 전차와 자리가 달랐다.

밸브는 차체 아래쪽에 있었다. 엎드려야 손이 닿았다.

엎드리면 하늘이 안 보인다. 하늘이 안 보이는 것이 그날 밤에는 편했다.

2247.

“…판 서.”

“말씀하십시오.”

“40초 걸린다고 했는데, 400초 걸립니다.”

“…왜요.”

“지우는 건 40초인데, 지우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 게 오래 걸립니다.”

다율이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있었다. 화면 불빛을 옷으로 덮었다.

이 차 안에 다율이 2년 짠 표적 판단부가 들어 있다. 두고 가면 저쪽이 가져간다.

2251.

앞에서 포성이 멎었다.

멎은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무전이 들어왔다. 브란도프스키였다.

“판 서. 몇 분입니까?”

“…5분입니다.”

“3분입니다. 포가 앞당겨졌습니다.”

“…왜 앞당겨집니까?”

“미군 포대가 오늘부로 빠졌습니다. 우리 것으로 쏘는데 우리 것은 사거리가 짧습니다.”

한결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빠졌다니 어디로요.”

“…모릅니다. 아침에 통보만 왔습니다.”

“…….”

“판 서. 뛰십시오.”

2254.

다율이 노트북을 닫았다.

“…지웠습니다.”

“전부요.”

“전부입니다.”

한결은 핀을 안 뽑았다. 뽑을 시간이 없었다.

궤도를 그대로 두고 둘이 뛰었다.

2257.

포가 왔다.

뒤에서 왔다. 여덟 발이었다.

한결은 엎드렸다. 흙이 등에 떨어졌다. 소리가 나고 나서 흙이 왔다.

여덟 발이 다 앞쪽에 떨어졌다. 무인차가 있던 자리였다.

여덟 발이면 한 문이 여덟 번 쏜 것이 아니라 여덟 문이 한 번씩 쏜 것이다. 한 번에 다 쏘고 바로 옮긴다. 그러지 않으면 되받는다.

다율이 옆에서 팔로 머리를 감쌌다. 노트북을 배 밑에 넣고 있었다.

2302.

나무 밑에 도착했을 때 브란도프스키가 서 있었다.

“두 분 다 오셨습니다.”

“…예.”

“차는요.”

“못 가져왔습니다.”

브란도프스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대대장님. 3호차는요.”

“…셋 잡고 하나 놓쳤습니다.”

“우리는요.”

“…한 대가 궤도를 맞았습니다. 굴러서 왔습니다.”

2310.

3호차가 들어왔다.

야누시가 해치에서 내렸다. 얼굴에 검댕이 묻어 있었다.

한결이 그쪽으로 갔다.

포신 뿌리에 손을 댔다. 뜨거웠다. 오늘 밤에 몇 발 쐈는지는 손으로 안다.

“…열한 발입니까?”

야누시가 한결을 봤다. 폴란드어로 뭐라고 했다.

브란도프스키가 옮겼다.

“12발이랍니다.”

2318.

한결은 정비지원차에 올라탔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궤도 연결핀이 만져졌다. 세어 봤다.

열넷이었다. 하나도 안 썼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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