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83자) · 서한결 · 5월 18~19일
147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12대 중 아홉 대가 살았다.
배기 지그는 여섯 대에서 통했고, 건조기로 돌린 세 대까지 합쳐 아홉이었다. 온도가 넘어 접착부가 밀린 세 대는 주간에만 쓰기로 했다. 브란도프스키가 지휘소에 숫자를 올렸고 여단은 0500에 나갔다.
첫 접촉은 5월 18일 0640이었다.
한결은 그 자리에 없었다. 정비지원차는 4킬로미터 뒤에 서 있었고 그가 들을 수 있는 것은 폴란드어 무전뿐이었다. 반년 동안 배운 것은 숫자와 명사 몇 개여서, 그는 숫자만 들었다. 숫자가 좋지 않았다.
“판 서, 통역할까요?”
운전병이 먼저 물었다.
“해 주십시오.”
“2중대가 능선 뒤에 있답니다. 차체를 숙이고 포탑만 내밀었답니다. …첫 발 나갔습니다. 세 발, 아니 여섯 발입니다. 빠릅니다.”
사람이 넣으면 1분에 세 발이 고작인데 그 속도로 여섯 발이 나갔다면 장전기가 돌고 있었다. 4킬로미터 앞의 포성은 12초쯤 늦게 정비지원차 유리를 울렸다. 그가 듣는 것은 언제나 12초 전의 일이었다.
“맞았습니까?”
“확인 안 한답니다. 맞았으면 다음 걸 쏘고, 안 맞았으면 같은 걸 또 쏘랍니다. 확인하는 동안 저쪽이 쏜답니다.”
0710에 무전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운전병이 통역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3중대 2소대 차량 한 대 피탄입니다. 승무원 이탈 여부는 확인 중이랍니다. 차 번호가 1-4-7입니다.”
한결은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KRE0147, 차대 끝자리 삼삼일. 작년 십일월 이십이일에 인수 점검했습니다. 포수 조준경 초점이 조금 어긋나 있어서 두 번 봤습니다.”
운전병이 그를 쳐다봤다. 한결은 그제야 수첩을 폈다. 31대의 차대번호와 날짜가 그의 글씨로 줄지어 있었고, 147의 줄은 그가 말한 그대로였다. 그는 그 줄 끝에 오늘 날짜를 적고 펜을 닫았다.
북동쪽 하늘에 검은 연기 한 줄이 곧게 올라가고 있었다. 바람이 없어서 연기는 한참 동안 기울지 않았다. 한결은 그것이 147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는 채로 정비지원차 옆에 서서 연기가 어느 높이에서 흩어지는지를 봤다. 운전병이 무전기 볼륨을 줄였다가 다시 올렸다.
0740에 확인이 왔다. 셋 중 둘이 나왔고 하나는 못 나왔다.
“무엇에 맞았답니까?”
“포탄이 아니랍니다. 위에서 떨어졌는데, 소리가 안 났답니다.”
자폭 드론은 소리가 늦게 온다. 프로펠러 소리가 들릴 때는 이미 60미터 안이고, 그 거리에서는 피할 시간이 없다. 승무원이 아는 것은 위가 갑자기 뚫렸다는 것뿐이다. 한결은 147의 점검 기록을 다시 떠올렸다. 조준경 초점은 두 번 봤는데 그 차의 위쪽은 한 번도 안 봤다. 아무도 위쪽은 보지 않았다.
정오쯤 2중대가 연료 때문에 뒤로 빠졌다. 55톤짜리는 하루에 대당 사백 리터가 넘게 먹는다.
집결지로 오는 길에 골다프 남쪽의 작은 마을을 지났다. 집이 스무 채쯤 되는데 사람이 없었다. 마당에 빨래가 널려 있었고 자전거가 넘어져 있었으며, 창틀에 올려 둔 화분의 흙이 아직 젖어 있었다. 교회 앞에는 유리가 다 깨진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저 버스는요?”
“타는 데 시간이 걸렸답니다.”
운전병은 그 말만 했다. 교회 벽에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인쇄한 글씨였고 폴란드어였는데, 운전병이 천천히 읽어 주었다.
“나토는 어디 있나.”
“누가 붙였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사흘 전에 다 나갔습니다. 그런데 종이가 안 젖었습니다. 밤새 이슬이 내렸는데요.”
운전병이 차에서 내려 종이를 떼었다. 테이프가 새것이라 한 번에 떨어지지 않았고, 그는 모서리를 손톱으로 긁어 가며 끝까지 떼어 낸 다음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왜 가져갑니까?”
“여기 사람들이 돌아와서 이걸 먼저 보면 안 됩니다.”
운전병은 그 말을 하고 운전석에 올라 한동안 시동을 걸지 않았다.
집결지에 들어오는 전차를 한결은 한 대씩 봤다. 측면 장갑에 자국이 난 차가 넷 있었고 뚫린 차는 없었다. 뚫렸으면 안 돌아왔다.
브란도프스키는 아침보다 열 살 많아 보였다.
“판 서. 오늘 열상을 쓴 아홉 대에서 나온 사격이 전체의 7할입니다. 어젯밤 여섯만 하셨으면 오늘 여섯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세 대는 판 서가 만든 겁니다.”
“세 대 만들고 한 명 못 살렸습니다.”
“그건 다른 계산입니다.”
“저는 그 계산 못 합니다.”
“저도 못 합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안 하면 내일 아무것도 못 정합니다.”
한결은 밀린 접착부 세 대를 다시 뜯었다. 떨리면 안 되는 작업이었는데 손이 조금 떨렸다.
*
정비반은 4킬로미터 뒤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이튿날 새벽에 났다. 147을 궤도만 나간 채로 못 끌고 온 것이 이유였다. 4킬로미터 뒤에서는 가는 데만 20분이 걸린다.
“1,500까지 앞으로 갑니다.”
1.5킬로미터에서 전차포 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압력이다. 한결은 건조기를 내려놓고 유압 공구와 자동장전기 예비 부품을 실었다. 궤도 연결핀 열네 개는 주머니에 넣었다. 싣는 동안 주머니 속 전화가 울렸다. 본사 번호였다. 손에 실리콘이 묻어 있어서 그는 받지 않았다.
“판 서, 그건 뭡니까?”
“이송기(탄약을 장전 위치로 밀어 올리는 벨트) 롤러입니다.”
“많이 나갑니까?”
“한 번도 안 나갔습니다.”
“그런데 왜 가져가십니까?”
“한 번도 안 나갔으니까요.”
0512에 다율의 무인차 3번 신호가 능선 너머 400미터에서 끊겼다. 재밍(전파를 흐려 조종과 영상을 끊는 것)이면 다시 잡혀야 하는데 안 잡혔다. 마지막 30초 영상은 차 안에 남아 있지만 회선이 하나뿐이라 지금은 못 뽑는다고 다율이 말했다.
0524, 관측조가 궤도차량 열둘 이상을 3,600미터에서 잡았다. 지휘소의 지시는 2,500까지 사격 금지였다. 날탄은 멀리서 쏘면 속도가 떨어지고, 속도가 떨어지면 정면 장갑에 자국만 남긴 채 이쪽 위치를 다 내준다. 능선 뒤의 마흔넷은 전부 차체를 앞으로 숙이고 포신만 넘긴 채 기다렸다. 0541, 2,400에서 사격 개시가 떨어졌다. 열한 대가 한꺼번에 쏘았고, 1.5킬로미터 뒤 정비지원차 유리가 한 번 크게 울었다. 두 번째가 6초 뒤, 세 번째가 또 6초 뒤에 나갔다.
0547에 선두 넷이 섰고 나머지는 연막을 쳤다. 좌측 계곡으로 붙는 둘은 능선에 가려 직사가 안 됐다. 세 대가 포신을 하늘로 들어 KSTAM(고각으로 쏴 위에서 때리는 상부공격탄)을 쏘았다. 능선을 넘겨 활강하다가 아래를 훑어 위에서 때리는 탄이었다. 직사보다 둔한 소리가 났고, 0554에 계곡의 둘이 섰다.
0602에 무전이 왔다.
“3중대 2소대 3호차, 장전기 정지.”
한결은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정비지원차는 장갑이 없어서 파편에는 버텨도 직격에는 못 버틴다. 그는 그 확률을 세지 않기로 했다. 세면 못 간다. 3호차는 능선 뒤 사각에 물러나 있었다. 차체도 포신도 멀쩡했고 안에서만 멈춰 있었다. 전차장이 해치 위로 상체를 내밀었다. 야누시라는 이름을 한결은 그날 처음 들었다.
“판 서! 12발째에 섰습니다. 쇠 긁는 소리가 한 번 나고 그대로 섰습니다.”
포탑 뒤 벨트 탄창(포탑 뒤에 탄을 줄지어 싣는 자동장전 통) 점검구를 열자 롤러 하나가 돌지 않았다. 돌지 않는 롤러 위로 탄이 올라타 다음 것을 못 밀고 있었다. 장갑을 벗었다. 두꺼운 장갑으로는 축 클립을 못 잡는다. 5월 폴란드 새벽의 쇠는 맨손을 금방 굳게 만들었다. 120mm 날탄 한 발은 20킬로그램이 조금 안 되는데, 좁은 칸에서 그것을 들어내는 일은 무게가 아니라 각도의 문제였다. 능선 너머에서 저쪽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차체가 한 번씩 울렸고 점검구 가장자리에 흙가루가 흘러내렸다.
“판 서, 얼마나 걸립니까?”
“모르겠습니다. 10분 안팎입니다. 그동안 못 쏩니다.”
야누시가 폴란드어로 무전을 넣고 해치를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중대장이 10분 준답니다. 그동안 2호차하고 4호차가 우리 몫까지 봅니다.”
1분 50초에 걸린 탄을 빼냈고 4분에 롤러를 뽑았다. 축이 휘어 있었다. 휜 축은 펼 수 없다. 예비 롤러는 규격이 맞았지만 축 클립이 신형이었다. 창원에서 작년에 바뀐 것이고, 이 차는 재작년 생산분이었다.
“철사 있습니까? 결속선이면 됩니다. 없으면 통신선이라도 주십시오.”
야누시가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손에 든 것은 야전 전화선이었다. 한결은 피복을 벗기고 심선을 꼬아 클립 자리에 끼운 뒤 두 바퀴 돌려 물렸다. 어느 정비 교범에도 없는 일이었다.
“이걸로 됩니까?”
“한 벨트는 갑니다. 그다음에는 제가 또 오겠습니다.”
7분 40초에 벨트를 걸었다. 손으로 두 칸 돌려 보니 걸리지 않았다. 전원을 넣자 이송기가 한 바퀴, 두 바퀴 돌았다. 야누시가 뭐라고 크게 소리쳤는데, 폴란드어였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았다. 한결이 포탑에서 내려와 오른손을 보니 검지 끝이 찢어져 피가 손톱 밑까지 배어 있었다. 언제 찢어졌는지 몰랐다. 그때 능선 너머로 길고 높은 소리가 뒤에서 앞으로 지나갔다. 40킬로미터 뒤의 K9이었다. 요청한 지 22분 만이었고, 그동안 마흔넷이 자기 탄으로 버텼다.
0648, 선두 제파가 물러났다. 다율이 노트북을 연 채 정비지원차 쪽으로 왔다.
“판 서님. 아침 0620에 자주포, 신뢰도 0.88로 사격이 나간 자리가 있습니다. 3번차가 마지막 30초에 그 자리를 봤습니다. 트랙터입니다. 위에서 보면 열 무늬가 궤도차량하고 비슷합니다.”
화면에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다. 사격 뒤에 정찰 드론이 찍은 것이었다. 옆으로 누운 초록색 트랙터의 흙받이에 흰 페인트로 쓴 글자가 보였다.
“할리나.”
운전병이 소리 내어 읽었다.
“사람 이름입니까?”
“여자 이름입니다. 우리 할머니 또래들이 많이 씁니다.”
한결은 사진을 확대했다. 트랙터 옆 밭고랑에 사람은 없었다. 짐칸 쪽 흙이 둥글게 파여 있었고 운전석 문짝 하나가 떨어져 나가 고랑 저쪽에 엎어져 있었다. 흙받이의 흰 글씨는 붓으로 쓴 것이라 끝 획이 조금 흘러내려 있었다. 누군가 그 트랙터를 오래 몰았고, 자기 이름을 붙여 줄 만큼 아꼈다.
“보고는 올렸습니다. 갱신될 겁니다.”
다율은 언제 갱신되는지 말하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을 덮기 전에 사진을 따로 한 장 저장했다. 파일 이름 칸에는 숫자 대신 여섯 글자를 적었다.
3호차 해치가 열렸다.
“판 서. 아까 세어 보니 열한 발이었습니다. 제가 잘못 셌습니다.”
“한 발 차이입니다.”
“한 발 차이면 뭐가 다릅니까?”
“다음에 어디부터 열지가 다릅니다.”
돌아가는 길에 운전병이 물었다.
“철사로 고치신 거, 서울에 보고합니까?”
“보고하면 못 하게 합니다. 안 하면 나중에 저만 책임집니다.”
“그럼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은 안 합니다.”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렸다. 아침에 안 받은 그 번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