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회랑

K2 (3차대전 3부작 제1부) · 네오

수바우키 회랑은 65킬로미터다.

북쪽이 칼리닌그라드, 남쪽이 벨라루스. 그 사이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잇는 땅이 그만큼 있다. 서울에서 평택까지가 안 된다. 그 길이 끊기면 발트 삼국은 육로로 고립된다. 10년 동안 모든 도상 훈련이 그 65킬로미터에서 시작했다.

5월 17일 0420, 그 길에 실제로 차량이 들어왔다.

서한결은 모롱의 정비고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정비고에는 K2(국산 3세대 전차, 폴란드 도입분) 세 대가 들어와 있었다. 두 대는 주행계통 정기, 한 대는 포수 조준경 습기 문제였다.

“판 서. 브라니에보 나갑니다.”

브란도프스키 준위였다. 폴란드 사람들은 한결의 성을 판 서라고 불렀다. 판이 미스터고 서가 성이다. 반년쯤 지나니 그 호칭이 이름처럼 들렸다.

“몇 대요?”

“여단 전량입니다.”

“조준경 그거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대로 나갑니다.”

정비고 안쪽에서 사람이 하나 나왔다. 노트북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판 서님. 저희 것도 같이 나갑니다.”

신다율이었다. 같은 회사 다른 팀이다. 한결이 55톤짜리를 보는 동안 다율은 그 뒤를 따라다니는 무인 지상차량 여섯 대를 본다. 작년에 전차와 묶어서 판 물건이었다.

“여섯 대 다 됩니까?”

“네 대 됩니다. 두 대는 주행계통인데 부품이 없습니다.”

“무슨 부품인데요?”

“조향 액추에이터입니다.”

“그거 전차 것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규격이 다릅니다.”

“…다르게 만들었네요.”

“다르게 만들어야 따로 팔립니다.”

다율이 웃지 않고 말했다. 회사 이야기를 회사 사람한테 하는 얼굴이었다.

“습기 차면 열상 못 씁니다.”

“압니다.”

한결은 공구를 내려놓았다.

“준위님. 저 계약서상 전투 지역에 못 들어갑니다.”

“압니다.”

“…….”

“그래서 여쭙는 겁니다.”

정비고 밖에서 엔진이 걸렸다. 1,500마력이 한 번에 깨어나는 소리는 다른 무엇과도 안 닮았다. 55톤짜리가 48대 있으면 땅이 운다.

한결은 그 소리를 2년 반 들었다. 창원에서 조립하고, 그단스크에서 하역하고, 모롱까지 실어 오고, 여기 사람들 손에 넘겼다. 넘긴 뒤에도 남았다. 자동장전장치는 손이 많이 간다. 삼 인 승무원으로 분당 10발을 쏘려면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만든 물건은 반드시 손이 간다.

“지금 어디까지 왔습니까?”

브란도프스키가 지도를 폈다. 종이 지도였다. 전자지도는 사흘 전부터 신뢰하지 않는다.

“골다프. 그리고 여기.”

손가락이 두 군데를 짚었다. 회랑의 북쪽 입구와 남쪽 입구였다. 양쪽에서 동시에 들어와 가운데서 만나면 그 65킬로미터는 끊긴다.

“이스칸데르는요?”

“어제 새벽에 12발. 엘블롱크 항공기지하고 오르지시.”

“맞았습니까?”

“활주로는 6시간 만에 복구했습니다. 격납고는 못 씁니다.”

한결은 지도를 봤다.

“공군 못 뜹니까?”

“못 뜨는 게 아니라 안 뜨는 겁니다. S-400(러시아 장거리 지대공 체계)이 칼리닌그라드에서 회랑 전체를 덮습니다. 사거리가 400킬로미터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비어 있는 겁니까?”

“비어 있지 않습니다. 낮은 데는 꽉 차 있습니다.”

“…드론이요.”

“어제 하루에 우리 쪽 정찰 드론 열아홉 대 나갔고 아홉 대 돌아왔습니다. 저쪽 것은 셀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많습니까?”

“판 서. 지금 전차 한 대를 잡는 데 드는 게 뭔지 아십니까?”

“…….”

“대전차 미사일이 아닙니다. 삼십만 원짜리 자폭 드론 하나입니다. 위에서 떨어집니다.”

“…그럼 지상으로만 하는 겁니까?”

“지상으로만 합니다.”

브란도프스키가 지도를 접었다.

“그래서 전차가 나가는 겁니다.”

한결은 창밖을 봤다. 48대가 종대로 서 있었다. 55톤에 유기압 현수장치. 이 물건은 차체를 앞뒤로 숙일 수 있다. 능선 뒤에서 포신만 내밀고 쏘는 자세가 나온다. 폴란드 북동부는 언덕이 낮고 완만하다. 그 지형에서 10도를 더 숙일 수 있다는 것은 10도만큼 안 맞는다는 뜻이다.

설계할 때 그 10도는 강원도를 보고 넣은 것이었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브란도프스키가 말했다.

“하십시오.”

“자동장전장치가 안 먹으면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습니까?”

“수동으로 넣을 수 있습니다. 분당 3발쯤 나옵니다.”

“10발에서 3발.”

“예.”

“그러면 3발 쏘고 죽는 겁니다.”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브란도프스키도 답을 기다린 게 아니었다.

“판 서. 우리 정비관들 교육은 다 받았습니다. 근데 야전에서 장전기가 물린 건 아무도 못 봤습니다.”

“…….”

“저는 명령을 못 내립니다. 당신은 우리 소속이 아니니까요.”

바깥에서 두 번째 종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궤도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는 쇳소리가 아니라 낮고 두꺼운 소리다.

한결은 공구함을 들었다.

“조준경 그거, 실리카겔로는 안 됩니다. 건조기 물려야 하는데 그게 여기 하나뿐입니다.”

“그러면?”

“제가 갖고 가겠습니다.”

브란도프스키가 한결을 봤다.

“계약서 말씀하셨는데요.”

“계약서에 정비 지원이라고 돼 있습니다. 지원 장소는 안 적혀 있습니다.”

“…….”

“그리고 저 물건 48대 중에 31대는 제 손으로 인수 점검했습니다.”

브란도프스키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판 서. 서울에는 뭐라고 하실 겁니까?”

한결은 휴대전화를 봤다. 본사에서 온 마지막 문자는 어제 십사시였다. 현지 상황 파악 중, 추가 지침 대기. 그 뒤로 없었다.

“아직 파악 중이랍니다.”

“언제까지요.”

“모릅니다.”

한결은 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가시죠.”

정비고 문이 열렸다. 오월인데 아침 바람이 아직 찼다.

브라니에보까지 90킬로미터를 6시간에 갔다.

전차는 시속 70킬로미터가 나온다. 그건 시험장 숫자다. 48대가 종대로 가면 앞이 서면 뒤가 다 선다. 6시간 중 2시간은 서 있었다.

한결은 세 번째 차량인 정비지원차에 탔다. 건조기는 뒷칸에 실었다. 이 부대에 하나뿐인 물건이라 벨트를 두 번 감았다.

“판 서. 담배 피웁니까?”

운전병이었다.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한 얼굴이었다.

“안 피웁니다.”

“잘하셨습니다. 여기 지금 담배가 금값입니다.”

“얼마나요?”

“한 갑에 계란 서른 개입니다.”

“…계란으로 삽니까?”

“돈을 안 받습니다. 계란은 먹기라도 하니까요.”

브라니에보 집결지는 옛 협동농장 자리였다. 건물 세 동에 콘크리트 마당이 넓었다. 55톤짜리를 세울 수 있는 바닥이 흔치 않다.

여단 지휘소는 두 번째 동 지하에 있었다.

“판 서. 들어오십시오.”

브란도프스키가 불렀다. 한결은 잠깐 멈췄다.

“저 들어가도 됩니까?”

“들어오셔야 합니다. 장비 상태를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지하는 낮고 추웠다. 지도는 벽에 붙어 있었고 종이였다. 여기도 전자지도를 안 쓴다.

종이 지도 옆에 화면이 하나 있었다. 그건 켜져 있었다.

지도 위에 점이 떠 있고 점마다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궤도차량, 신뢰도 0.91. 자주포, 신뢰도 0.77. 미상, 신뢰도 0.43.

“저건 뭡니까?”

“통합 화면입니다. 나토에서 내려왔습니다.”

“신뢰도라는 게 뭡니까?”

“맞을 확률입니다. 위성하고 드론하고 통신 감청을 다 모아서 기계가 뽑습니다.”

한결은 0.43짜리 점을 봤다. 절반도 안 되는데 지도 위에서는 다른 점들과 똑같이 생겼다.

“0.43도 표적입니까?”

“표적이 됩니다. 사람이 한 번 더 보고 정하는데, 요즘은 볼 시간이 없습니다.”

여단장은 오십 대였다. 계급장 말고는 특별할 게 없는 얼굴이었다.

“가동률.”

참모가 대답했다.

“마흔여덟 중 마흔넷입니다. 넷은 주행계통입니다.”

“열상은.”

“…열둘이 습기입니다.”

여단장이 한결 쪽을 봤다.

“고칠 수 있습니까?”

“건조기가 하나입니다. 한 대에 네 시간 걸립니다.”

“열둘이면.”

“48시간입니다.”

“이틀.”

“예.”

“이틀은 없습니다.”

한결은 잠깐 생각했다.

“여섯 대는 오늘 밤 안에 됩니다. 대신 나머지 여섯은 못 합니다.”

“왜 여섯입니까?”

“습기가 렌즈 쪽인 것과 경통 쪽인 것이 다릅니다. 렌즈 쪽은 2시간이면 됩니다.”

“어느 게 어느 건지 압니까?”

“열어 봐야 압니다.”

“그러면 열어 보십시오.”

여단장이 지도로 돌아섰다.

“상황.”

참모가 지시봉을 들었다.

“북쪽은 칼리닌그라드 방면에서 두 개 제파. 남쪽은 벨라루스 국경에서 한 개 제파. 어제 자정 기준 두 축이 각각 22킬로미터, 31킬로미터 전진했습니다.”

“회랑 폭이.”

“65킬로미터입니다.”

지시봉이 두 점 사이를 짚었다. 남은 거리는 12킬로미터였다.

지하가 조용해졌다.

“공군은.”

“오늘도 못 뜹니다. S-400(러시아 장거리 지대공 체계) 권역입니다.”

“드론은?”

“정찰용 12대 띄웠고 다섯 대 왔습니다. 재밍입니다.”

“공격용은?”

“저희 것보다 저쪽 것이 많습니다. 어제 여단 손실 넷 중 셋이 상부 피탄입니다.”

“…셋이요.”

“위에서 떨어진 겁니다.”

한결은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상부 피탄 셋. K2(국산 3세대 전차, 폴란드 도입분)는 정면이 두껍고 위가 얇다. 세상의 모든 전차가 그렇다. 그래서 지금 제일 많이 오는 것이 위로 온다.

“동맹은.”

참모가 대답을 안 했다.

“말하십시오.”

“…협의 중이라고 합니다.”

여단장이 웃었다. 웃는 소리가 아니었다.

“협의 중?”

“예.”

“저쪽은 지도를 되돌리려는 겁니다.”

“…지도요?”

여단장이 벽으로 갔다. 지시봉으로 발트해 남안을 한 번 훑었다.

“1997년에 나토 동쪽 끝이 어디였는지 아십니까?”

“…….”

“여기가 아니었습니다. 폴란드도 아니었고 발트 삼국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30년 동안 그 선이 저쪽 국경까지 왔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에스토니아 국경까지 140킬로미터입니다.”

“그래서 밀어내는 겁니까?”

“밀어낼 수 있는 데부터 밀어내는 겁니다. 여기가 제일 얇으니까요.”

지시봉이 회랑으로 돌아왔다.

“이게 끊기면 발트 삼국은 육로로 못 갑니다. 못 가는 동맹은 동맹이 아닙니다. 그러면 지도가 한 칸 되돌아갑니다.”

“…한 칸이요.”

“한 칸이면 충분합니다. 한 번 되돌아가면 다음 칸은 훨씬 쉬워집니다.”

“그러면 조약은요.”

“조약은 그대로 있습니다. 종이는 안 찢어집니다.”

“…….”

“한 번 안 지켜지는 걸 보여 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다음부터 그 종이를 믿는 나라가 없어집니다.”

여단장이 지시봉을 내려놓았다.

“나토를 깨는 게 아닙니다. 못 믿게 만드는 겁니다. 그게 훨씬 쌉니다.”

한결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

“…….”

“그래서 우리가 여기 서 있는 겁니다. 12킬로미터 남았고, 우리는 마흔넷입니다.”

지하에서 나오니 밖이 어두웠다. 마당에 전차가 줄지어 서 있었고 배기 열기가 위로 흔들렸다.

브란도프스키가 옆에 섰다.

“판 서.”

“예.”

“여섯 대만 하시면 됩니다.”

“12대 다 하겠습니다.”

“이틀 걸린다고 하셨습니다.”

“건조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기관실 배기 쪽에 지그를 만들어서 걸겠습니다. 온도가 안 맞으면 습기가 도로 찹니다만.”

“…해 보셨습니까?”

“아니요.”

브란도프스키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러면 오늘 처음 하시는 겁니까?”

“예.”

“…….”

“대신 실패해도 지금보다 나빠지지는 않습니다.”

한결은 공구함을 열었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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