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89자)

개울가의 송아지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새벽 네 시 십이 분⁠, 육한담은 관사 방바닥에서 노트북이 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화면에는 지리산 남쪽 자락의 지도가 떠 있었고⁠, 빨간 점 하나가 무내골 마을을 둘러싼 노란 선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호단 · 마을 경계 안 · 03시 58분⁠」⁠. 호단의 목걸이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점을 찍었다⁠. 반년 동안 점은 반야봉 아래와 뱀사골 위와 달궁 계곡을 돌았다⁠. 노란 선 안쪽에 찍힌 점을 한담이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한담은 이 생각을 오래 붙들지 않았다⁠.

방문을 열자 맞은편 방에서 방준호가 이불째 굴러 나왔다⁠. 머리맡에 초코바 껍질이 세 개 흩어져 있었다⁠.

“⁠선배⁠, 호단 누나 또 마실 나갔어요⁠?⁠”

“⁠마을 안이야⁠. 옷 입어⁠.⁠”

한담은 카키색 작업복 위에 주황 조끼를 걸치고⁠, 거울 볼 틈도 없이 검은 머리를 하나로 땋아 내렸다⁠. 여름 내내 능선을 타느라 그을린 얼굴이 노트북 불빛에 더 검어 보였다⁠. 문간에 기대 둔 추적 안테나를 집었다⁠. 사다리를 옆으로 눕힌 것처럼 생긴 알루미늄 막대였고⁠, 목걸이가 내는 전파를 받으면 손바닥만 한 수신기가 삑삑 울었다⁠.

트럭은 만수천을 따라 내려갔다⁠. 열어 둔 창으로 젖은 낙엽과 밤송이 냄새가 들어왔다⁠. 준호가 조수석에서 휴대전화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선배⁠. 이 점⁠, 우리 아부지 집인데요⁠.⁠”

한담은 대답 대신 기어를 한 단 내렸다⁠. 준호가 센터 추적팀에 들어온 지 넉 달째였다⁠. 무내골에서 나고 자란 준호는 한우 마흔 마리를 치는 집 외아들이었고⁠, 소 대신 범을 따라다니겠다고 집을 나와 관사에 들어왔다⁠. 이력서 특기란에는 「⁠산길 안 헤맴⁠」이라고 쓰여 있었다⁠. 쓰인 대로였다⁠. 준호는 산에서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았고⁠, 사람 앞에서는 자주 말을 잃었다⁠.

“⁠저 차에 있으면 안 돼요⁠?⁠”

“⁠네 아버지 송아지야⁠. 네가 내려야지⁠.⁠”

*

무내골 들머리에서 개들이 한꺼번에 짖었다⁠. 골목마다 불이 켜졌고⁠, 경운기 한 대가 전조등을 켠 채 마을 맨 위 외양간 앞 개울을 비추고 있었다⁠. 자갈밭에 송아지가 모로 누워 있었다⁠. 누런 털이 이슬에 젖어 검었고⁠, 목덜미 아래 자갈만 붉었다⁠. 송아지 곁에서 쉰 넘은 사내가 쇠스랑을 쥐고 있었다⁠. 키는 작고 어깨가 넓었으며⁠, 장화 목까지 개울물이 튀어 있었다⁠. 방칠구였다⁠.

칠구는 트럭에서 내리는 주황 조끼를 보고 쇠스랑 자루를 자갈에 찍었다⁠.

“⁠왔는가⁠. 느그 범이 내 송아지를 물어 죽였당게⁠.⁠”

한담은 장갑을 끼고 송아지 곁에 무릎을 꿇었다⁠. 손전등을 목덜미에 댔다⁠. 송곳니 자국이 위아래로 두 쌍⁠, 숨통 바로 위에 박혀 있었다⁠. 한 번 물고 놓지 않은 자국이라 송아지는 오래 버둥거리지 않았다⁠. 뒷다리 허벅지 안쪽이 손바닥만큼 뜯겼고 나머지는 멀쩡했다⁠. 먹다 말고 간 것이다⁠. 피 냄새 밑으로 다른 냄새가 깔려 있었다⁠. 외양간 기둥 아래에서 올라오는⁠, 버터를 발라 볶은 팝콘 같은 냄새였다⁠.

준호가 코를 킁킁거렸다⁠.

“⁠선배⁠, 여기서 팝콘 냄새가 올라와요⁠.⁠”

“⁠호단 오줌이야⁠. 범 오줌은 팝콘 냄새가 나⁠.⁠”

“⁠아부지⁠, 들었어요⁠? 팝콘이래요⁠, 팝콘⁠.⁠”

“⁠주둥이 다물어라잉⁠.⁠”

칠구가 휴대전화를 한담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마을회관 벽에 붙은 종이를 찍은 사진이었다⁠. 봄에 범을 풀어 줄 때 센터와 마을이 함께 도장을 찍은 협약서였다⁠.

「⁠가축 피해가 세 번에 이르면 센터는 해당 개체를 다시 잡아 사육 시설로 옮긴다⁠. 사람이 다치면 사살을 검토한다⁠.⁠」

“⁠세 번이여⁠. 이것이 첫 번이고⁠. 두 마리 더 바치고 기다리라는 소리여⁠?⁠”

“⁠기다리시라는 말씀 아니에요⁠. 오늘부터 밤마다 저희가 외양간을 지킬게요⁠.⁠”

“⁠지켜⁠? 오늘 밤은 누가 지켰는디⁠?⁠”

한담은 대답하지 못했다⁠. 경보는 세 시 오십팔 분에 떴고⁠, 송아지는 경보보다 먼저 죽었다⁠.

칠구는 쇠스랑을 외양간 벽에 기대 놓고 송아지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송아지 귀에 달린 노란 귀표를 엄지로 쓸었다⁠. 손톱 밑에 쇠똥이 검게 끼어 있었다⁠.

“⁠이놈 다음 달 경매에 낼라 혔어⁠. 수송아지라 삼백팔십은 받는다고 조합에서 그랬제⁠. 사료값은 해마다 오르고⁠, 조합 빚은 사천이 넘어⁠. 송아지 팔아 사료 사고⁠, 사료 멕여 다음 송아지 받고⁠, 그렇게 한 해를 넘기는 것이여⁠. 송아지 한 마리가 내 한 해 농사여⁠. 아가씨 범이 내 한 해를 묵었당게⁠.⁠”

“⁠보상 신청은 오늘 바로 넣을게요⁠.⁠”

“⁠보상⁠.⁠” 칠구가 코웃음을 쳤다⁠. “⁠앞집 영감 꿀통 곰이 털어 갔을 적에 보상 나오는 데 석 달 걸렸어⁠. 그것도 반만⁠.⁠”

칠구가 휴대전화를 다시 들었다⁠. 신호가 몇 번 가고 굵은 목소리가 받았다⁠. 칠구는 한담이 듣는 데서 또박또박 말했다⁠.

“⁠함양 곽 대장이요⁠? 무내골 방칠구요⁠. 범 잡는 디 얼마 받소⁠?⁠”

한담이 몸을 일으켰다⁠.

“⁠어르신⁠, 호단은 멸종위기종이에요⁠. 쏘시면 감옥 가세요⁠.⁠”

“⁠송아지 잡아묵은 놈은 감옥 안 가고⁠?⁠” 칠구는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았다⁠. “⁠아니⁠, 쏘자는 것이 아니고⁠. 멧돼지 잡는 허가 있잖소⁠. 그 허가 들고 산에 올라가믄 된다고⁠?⁠”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칠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개울가에 어정쩡하게 멈춰 있는 준호를 보았다⁠. 주황 조끼를 아래위로 훑었다⁠.

“⁠니는 어느 집 아들이여⁠?⁠”

준호가 초코바 껍질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방칠구 씨 아들이요⁠. 그리고 추적팀 막내요⁠.⁠”

“⁠둘 다는 안 된다⁠.⁠”

골목에서 확성기 켜는 소리가 났다⁠. 내복 위에 오리털 조끼를 걸친 노인이 손전등을 휘두르며 내려왔다⁠. 이장 주영길이었다⁠. 주영길은 개울가에 닿자 손에 든 메가폰을 입에 댔다⁠.

“⁠아아⁠, 이장입니다⁠. 마이크 시험 중⁠. 아아⁠.⁠”

“⁠이장님⁠, 그거 마이크 아니고 메가폰이에요⁠.⁠”

준호가 말했다⁠. 주영길은 메가폰을 내리고 송아지를 보더니 혀를 찼다⁠. 휴대전화를 들어 송아지를 찍고⁠, 경운기 불빛 아래 한담을 찍고⁠, 저도 한 장 찍었다⁠.

“⁠증거여⁠. 군청에 올릴라고⁠. 아이고⁠, 범 선생이 기어이 내려오셨구먼⁠.⁠”

외양간 뒤 살림집에서 칠구의 아내 나미자가 쟁반을 들고 나왔다⁠. 종이컵 다섯 개에서 믹스커피 김이 올랐다⁠. 나미자는 칠구에게 한 잔⁠, 이장에게 한 잔⁠, 한담에게 한 잔을 내밀고 나서야 준호 앞에서 멈췄다⁠.

“⁠밥은 묵고 댕기냐⁠?⁠”

“⁠관사에서 라면 먹어요⁠.⁠”

“⁠라면은 밥이 아니여⁠.⁠” 나미자는 남은 두 잔을 준호 손에 쥐여 주었다⁠. “⁠하나는 니 거⁠, 하나는 니 선배 한 잔 더⁠.⁠”

칠구가 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고 종이컵을 구겼다⁠.

“⁠범 지키는 사람한테 커피는 뭣 하러 주는디⁠?⁠”

“⁠사람이니께⁠.⁠”

한담은 커피를 반쯤 마시고 개울가 진흙에 찍힌 발자국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앞발 자국 하나가 손바닥 두 개를 붙인 것보다 넓었다⁠. 줄자를 대고⁠, 자국 가장자리에 검지를 넣어 깊이를 쟀다⁠. 봄에 같은 개울가 진흙에서 잰 발자국보다 손가락 한 마디가 더 들어갔다⁠. 뒷발 자국이 특히 깊었다⁠. 한담은 검지에 묻은 진흙을 바지에 닦지 않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한담의 조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떨었다⁠. 센터장 표정훈이었다⁠.

「⁠현장 사진 외부 유출 금지⁠. 장관님 반년 행사가 이십 일 남았습니다⁠. 언론보다 내가 먼저⁠.⁠」

밑에는 어제 저녁 온 전자 우편 알림이 아직 열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연해주 재활센터의 연구원이었다⁠. 「⁠호단은 잘 지내나요⁠? 겨울이 오기 전에 사진 한 장 보내 주세요⁠.⁠」

*

호단은 산등성이 억새밭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혀에 아직 송아지 피 맛이 남아 있었다⁠. 짜고 따뜻한 맛이었다⁠. 아래 골짜기에서 개들이 쉬지 않고 짖었고⁠, 불빛 여러 개가 흔들렸고⁠, 굵은 소리와 높은 소리가 번갈아 터졌다⁠. 두 발로 걷는 것들이 내는 소리였다⁠. 호단은 소리의 뜻을 몰랐다⁠. 소리가 크고 날카로울수록 멀리 있어야 한다는 것만 알았다⁠.

배가 고팠다⁠. 송아지 허벅지 살을 몇 입 뜯었을 뿐이었다⁠. 외양간 문이 덜컹 열리고 불빛이 쏟아지고⁠, 굵은 소리와 함께 쇠 냄새 나는 긴 것이 날아와 자갈에 부딪혔을 때⁠, 호단은 송아지를 놓고 개울을 건넜다⁠. 개울물은 발목까지 찼고 돌은 미끄러웠다⁠. 비탈을 오르는 동안 등 뒤에서 굵은 소리가 오래 따라왔다⁠.

지난봄 이 산에는 멧돼지 냄새가 넘쳤다⁠. 비탈마다 흙을 뒤집은 자리가 있었고⁠, 진흙 구덩이마다 비린 털이 묻어 있었다⁠. 호단은 멧돼지 냄새를 따라 걷기만 하면 배를 채웠다⁠. 여름이 지나면서 냄새가 하나씩 식었다⁠. 멧돼지가 다니던 길에는 사람 땀과 쇠붙이 냄새만 남았고⁠, 어떤 길은 끝에서 녹 냄새 나는 철망이 가로막았다⁠. 고라니는 빨랐고⁠, 개구리와 쥐는 배를 채우지 못했다⁠.

배가 억새를 깊이 눌렀다⁠. 요 며칠 사이 배 속이 무거워졌고⁠, 엎드리면 안에서 무언가가 뒤척였다⁠. 호단은 뒤척임이 멎을 때까지 숨을 낮췄다⁠. 목에 감긴 띠가 턱밑을 눌렀다⁠. 철창 속에서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부터 띠는 목에 있었다⁠. 바위에 문질러도⁠, 앞발로 긁어도 벗겨지지 않았다⁠.

밤마다 골짜기 아래에서 소 냄새가 올라왔다⁠. 따뜻하고 비릿하고⁠, 젖과 똥과 마른 풀이 섞인 냄새였다⁠. 호단은 여러 밤 냄새 끝까지 내려갔다가 개 짖는 소리에 발길을 돌렸다⁠. 어젯밤에는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바람이 바뀌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바람에 익은 냄새가 실려 왔다⁠. 쓴 약 냄새와 고무 냄새였다⁠. 철창 안에서 오래 맡던 냄새였다⁠. 바닥이 오래 흔들리고 귀가 먹먹하던 날에도⁠, 철창 문이 열리고 처음 숲 냄새가 밀려 들어오던 날에도 약 냄새는 철창 곁에 있었다⁠. 약 냄새 뒤로 달콤한 냄새가 하나 더 따라왔다⁠. 단내였다⁠.

호단은 엎드린 채 귀를 뒤로 눕혔다⁠. 달아나지 않았다⁠. 약 냄새는 한 번도 호단을 몰아세운 적이 없었다⁠. 멀찍이 따라올 뿐이었다⁠.

*

해가 반야봉 어깨 위로 올라올 무렵⁠, 한담은 안테나를 높이 든 채 억새밭 아래 바위에서 멈췄다⁠. 수신기의 삑 소리가 빨라졌다⁠. 쌍안경을 들었다⁠. 팔십 미터 위⁠, 억새가 누운 자리에 호단이 엎드려 있었다⁠.

몸집 큰 아무르 암호랑이였다⁠. 아침 햇빛을 받은 연한 주황 털 위로 굵은 검은 줄무늬가 물결처럼 흘렀고⁠, 가슴에는 흰 털이 넓게 덮여 있었다⁠. 목에는 네모난 송신기가 달린 갈색 가죽 추적 목걸이가 감겨 있었다⁠. 연해주를 떠나기 전날 마취한 호단의 목에 한담이 제 손으로 채운 목걸이였다⁠. 호박색 눈이 쌍안경 너머에서 한담을 보고 있었다⁠. 엎드린 배가 억새를 깊이 눌렀고⁠, 반년 전보다 옆구리가 불어 있었다⁠.

뒤에서 준호가 숨을 몰아쉬며 올라왔다⁠. 입에 새 초코바를 물고 있었다⁠.

“⁠선배⁠, 누나 살쪘어요⁠?⁠”

“⁠조용히⁠.⁠”

한담은 쌍안경을 내리고 바위 옆을 살폈다⁠. 납작한 돌 위에 배설물이 한 무더기 있었다⁠. 나뭇가지로 헤쳤다⁠. 개구리 뼈가 나왔고⁠, 회색 쥐 털이 뭉쳐 나왔고⁠, 소화되지 않은 풀이 길게 딸려 나왔다⁠. 한담은 가지 끝으로 한참을 더 헤쳤다⁠.

“⁠멧돼지 털이 한 올도 없네⁠.⁠”

“⁠그럼 누나 여름 내내 뭐 먹고 살았어요⁠?⁠”

“⁠개구리⁠.⁠”

“⁠다이어트 중이었구나⁠.⁠”

한담은 웃지 않았다⁠. 배설물을 시료 봉지에 담고 입구를 두 번 접어 묶었다⁠. 묶는 동안 쌍안경 속의 옆구리를 생각했다⁠. 봉지에 날짜를 쓰려고 펜 뚜껑을 여는데 준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마을 단톡방이었다⁠. 준호는 화면을 보다가 말없이 한담에게 내밀었다⁠.

「⁠무내골 사람들⁠」

「⁠방칠구⁠: 송아지 묻지 마라⁠. 곽 대장이 얼려 두란다⁠. 쓸 데가 있단다⁠.⁠」

「⁠주영길⁠: 아아 이장입니다⁠. 회관 냉동고 비워 놨음⁠.⁠」

한담은 고개를 들었다⁠. 억새밭 위⁠, 호단이 엎드려 있던 자리에는 눌린 억새만 남아 있었다⁠. 바람이 불자 눌린 억새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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