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12자)

화방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풍운 계산대 위 부름 쪽지 더미가 반으로 줄어 있었다⁠. 사월 열여드레 저녁이었다⁠. 문파 거처에서 오던 부름이 하나도 없었다⁠. 무당 거처 세 끼도⁠, 공동파 만두도⁠, 아미파 동파육도⁠. 대청에서 나온 말은 내가 청하방 골목에 닿기도 전에 항주를 한 바퀴 돌아 있었다⁠. 「⁠풍운 라이더는 거처 안을 엿보고 판다⁠.⁠」

진보덕은 쪽지 더미를 한 장씩 넘기다 말고 나를 봤다⁠.

“⁠세 번째 창이 뭐냐⁠?⁠”

“⁠화산 막내가 몰래 시킨 거요⁠. 사부님이 기름 금하셔서⁠.⁠”

“⁠몰래 나른 건 맞냐⁠?⁠”

“⁠맞아요⁠. 판 건 아니고요⁠.⁠”

“⁠몰래 나른 걸 아는 사람이 너 말고 누가 있냐⁠?⁠”

말문이 막혔다⁠. 설매와 나⁠. 처마에 거꾸로 매달린 나를 본 사람은 없었다⁠. 없다고 생각했다⁠. 진보덕이 주판을 계산대에 탁 내려놨다⁠. 주판알이 한꺼번에 한쪽으로 쏠렸다⁠.

“⁠손님이 몰래 시키면 우리도 몰래 나른다⁠. 그건 장사다⁠. 그런데 손님 몰래 그걸 누가 알게 됐으면⁠, 그건 라이더 잘못이다⁠. 알겠냐⁠?⁠”

“⁠사장님⁠.⁠”

“⁠거처 부름이 반이다⁠. 내일은 더 줄어⁠. 화산 막내 만두 스무 개 때문에⁠.⁠”

대팔이 문간에서 비어 있는 찜기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공동파 거처에서 돌려보낸 찜기였다⁠. 대팔이 뚜껑에 남은 밀랍 자국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사장님⁠, 이거 봐요⁠. 우리 봉인은 찜기 뚜껑에 그대로 남아요⁠. 빈 찜기 하나만 있으면 누구든 밀랍에 찍힌 도장 자국을 떠서 똑같이 새길 수 있다고요⁠. 우리가 손님한테 도장을 줄줄이 나눠 준 거나 마찬가지예요⁠.⁠”

진보덕이 찜기를 받아 들고 오래 들여다봤다⁠. 화가 식는 얼굴이 아니라 다른 화가 붙는 얼굴이었다⁠.

*

해가 지자 할멈 지붕 위로 매화 가지가 날아왔다⁠. 가지가 부러져 있었다⁠. 쪽지는 짧고 글씨가 빨랐다⁠. 「⁠사부님이 세 번째 창에 못 박았어⁠. 사형들이 나만 쳐다봐⁠. 나 괜찮아⁠. 결승 나갈 거야⁠. 만두는 단오에⁠.⁠」

괜찮다는 사람이 괜찮다고 쓰면 대개 안 괜찮다⁠. 나는 쪽지를 허리띠 별패 사이에 꽂고 대팔한테 말했다⁠.

“⁠포두가 쪽지를 주웠다는 화방이 어디래⁠?⁠”

“⁠백제 끝에서 고산 쪽으로 떠 있는 큰 놀잇배⁠. 밤마다 등불을 백 개는 단대⁠. 비무 패를 거기서 사고판다더라⁠.⁠”

“⁠배 저을 줄 알아⁠?⁠”

“⁠짐꾼이 배를 왜 저어⁠.⁠”

“⁠오늘부터 저어⁠.⁠”

*

백제 둑 끝 버드나무 밑에 포두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대청 기둥에 기대 하품하던 포두였다⁠. 손에 군밤 봉지를 들고 호수 한가운데 화방 등불을 구경하고 있었다⁠.

“⁠포두 나리⁠, 어젯밤에 저 화방을 덮치셨다면서요⁠. 오늘은 안 덮치세요⁠?⁠”

“⁠어젯밤엔 기별이 와서 덮쳤지⁠.⁠”

“⁠누구한테서요⁠?⁠”

포두는 군밤을 하나 까서 입에 넣고 오래 씹었다⁠.

“⁠비룡 국주가 사람을 보냈더라⁠. 화방에 수상한 쪽지가 돌아다니니 하나 주워다 연합 회장한테 갖다주라고⁠. 갔더니 정말 탁자 위에 딱 하나 있더구먼⁠. 풍운 도장 찍힌 걸로⁠.⁠”

“⁠노름판은요⁠?⁠”

“⁠노름판은 원래 거기 있던 거니까 그냥 뒀지⁠. 국주 배라서⁠.⁠”

대팔이 내 뒤에서 이를 갈았다⁠. 포두는 군밤 봉지를 털며 일어났다⁠.

“⁠나는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이다⁠. 시키는 사람이 바뀌면 나도 바뀌고⁠. 빠지지 말고 다녀와라⁠. 오늘 밤 물이 차다⁠.⁠”

*

서호의 밤은 낮보다 시끄러웠다⁠. 놀잇배들이 등불을 주렁주렁 달고 호수 한가운데를 오갔고⁠, 배마다 비파 소리와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물 위로 미끄러져 왔다⁠. 대팔이 만두집 할멈 사촌한테서 빌린 쪽배를 저었다⁠. 노가 물을 반은 치고 반은 허공을 쳤다⁠. 우리 쪽배는 오리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조금씩 나아갔다⁠.

“⁠차돌아⁠, 너 연자삼초수 원래 물 위에서 하는 거라며⁠. 네가 뛰어가⁠.⁠”

“⁠사부님이 그랬지⁠. 나는 물에서 해 본 적 없어⁠.⁠”

“⁠왜⁠?⁠”

“⁠빠지면 축축하잖아⁠.⁠”

“⁠지금 노 젓는 내 바지는 벌써 다 젖었는데⁠.⁠”

대팔은 노를 젓다 말고 투덜거렸다⁠. 대팔에게는 장가간 지 석 달 된 각시가 있었다⁠. 각시는 대팔이 비룡 짐꾼보다 품삯을 덜 받는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 아침마다 주먹밥에 소금을 덜 넣는다고 했다⁠. 금지령이 서면 소금이 아예 빠질 거라고⁠, 대팔은 노를 반 허공에 저으며 말했다⁠.

화방은 멀리서 봐도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층짜리 누각을 통째로 얹은 큰 배였고⁠, 처마마다 붉은 등이 달렸다⁠. 화방 둘레로 작은 놀잇배 열댓이 붙어 있었다⁠. 나는 우리 쪽배에서 가장 가까운 놀잇배 지붕으로 뛰었다⁠. 첫 디딤⁠, 놀잇배 지붕⁠. 지붕이 출렁 내려앉았다⁠. 기와와 달랐다⁠. 발을 디디는 순간 바닥이 도망갔다⁠. 둘째 디딤은 반쯤 미끄러졌고⁠, 셋째 디딤에서 나는 다음 배 뱃전을 손으로 붙잡았다⁠. 다리 하나가 무릎까지 물에 잠겼다⁠. 사부가 왜 물 위가 진짜라고 했는지 조금 알았다⁠. 물은 디디는 사람 편을 들지 않았다⁠.

놀잇배 넷을 건너서야 화방 처마에 손이 닿았다⁠. 짚신 한 짝이 젖어 철벅거렸다⁠. 나는 이 층 지붕으로 올라가 창 하나에 귀를 댔다⁠.

*

창 안은 넓은 방이었다⁠. 벽 한 면을 나무패가 빼곡히 덮고 있었다⁠. 패마다 이름이 둘씩⁠, 이름 아래 숫자가 적혀 있었다⁠. 「⁠화산 위설매 — 공동 ○○⁠, 일 대 삼⁠」 「⁠무당 현진 — 아미 ○○⁠, 일 대 이⁠」⁠. 서호 비무대회 본선 대진이었다⁠. 패 앞으로 비단옷 입은 손님들이 줄지어 은자를 내밀고 나무패 쪽지를 받아 갔다⁠.

방 한쪽 탁자에 관리인 하나가 앉아 쪽지 더미를 넘기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얼굴에 칼자국이 난 사내가 들어왔다⁠. 서호검문 연무장에 떨어졌던 비룡 표사였다⁠. 표사가 관리인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관리인이 은자 한 덩이를 표사 손에 쥐여 주고 붓을 들었다⁠.

“⁠아미 둘째 제자⁠, 어젯밤 보약 두 첩⁠. 허리가 시원찮다⁠.⁠”

관리인이 벽으로 가서 아미파 패 아래 숫자를 지우고 새로 썼다⁠. 손님들이 웅성거리며 다시 줄을 지었다⁠. 표사가 나가고 다른 비룡 표사가 들어왔다⁠. 또 속삭이고⁠, 또 은자⁠, 또 숫자⁠. 문파 거처에 음식을 나르는 비룡 표사들이 거처 안에서 본 것을 들고 와 은자로 바꾸고 있었다⁠. 누가 다리를 절었고⁠, 누가 밤에 술을 시켰고⁠, 누가 사부한테 혼났는지⁠.

관리인 탁자 위에 쪽지 하나가 따로 핀으로 꽂혀 있었다⁠. 다른 쪽지보다 종이가 좋았다⁠. 등불 빛에 글씨가 비쳤다⁠. 「⁠화산 송학 장로⁠. 밤마다 동파육 한 접시⁠. 비룡으로⁠. 「⁠학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시킴⁠.⁠」 관리인이 좋은 종이 쪽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옆 사람한테 말했다⁠.

“⁠이건 팔지 마라⁠. 국주가 표결 날 쓸 거라고 아껴 두랬다⁠.⁠”

옆 사람은 탁자 끝에서 작은 칼로 나무토막을 깎고 있었다⁠. 밀랍 덩이에 찍힌 도장 자국을 옆에 놓고 보면서 한 획씩 따라 깎았다⁠. 나무토막 끝에 「⁠풍⁠」이 나오고⁠, 「⁠운⁠」이 반쯤 나와 있었다⁠. 풍운 도장이었다⁠.

*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 창틀을 붙잡고 몸을 거꾸로 접어 방 안으로 팔을 뻗었다⁠. 탁자 위의 반쯤 깎인 도장을 낚아채는 김에 핀에 꽂힌 「⁠학 노인⁠」 쪽지까지 뜯어 쥐었다⁠. 관리인이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이미 창밖이었다⁠.

“⁠지붕에 쥐새끼다⁠!⁠”

화방 안이 뒤집혔다⁠.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소리가 났다⁠. 나는 지붕 용마루를 따라 뛰었다⁠. 화방 지붕은 배가 흔들리는 대로 같이 흔들렸고⁠, 디딤 세 번이 자꾸 네 번이 되려 했다⁠. 처마 끝에서 놀잇배로 뛰려는데⁠, 앞에 사람 하나가 내려앉았다⁠.

반석이었다⁠. 검은 비단 옷에 가죽 신⁠, 허리에 관아 통행패⁠. 화방 경비를 서고 있었던 것이다⁠.

“⁠짚신⁠.⁠”

“⁠사형⁠.⁠”

반석은 길을 비키지 않았다⁠. 나는 오른쪽으로 피하는 척하다 왼쪽으로 뛰었다⁠. 반석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반석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나를 6년 동안 받아 주던 손이었다⁠. 손목이 비틀리자 반쯤 깎인 도장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도장은 처마를 맞고 한 번 튀어 오르더니⁠, 등불 빛을 받으며 서호 검은 물속으로 퐁 하고 사라졌다⁠.

나는 남은 손에 쥔 「⁠학 노인⁠」 쪽지를 품에 쑤셔 넣었다⁠. 반석은 쪽지를 보지 못했다⁠. 아니면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여기 왜 왔냐⁠?⁠”

“⁠사형은 왜 여기 있는데⁠? 이거 노름판이잖아⁠. 문파 거처에서 본 걸 팔고 있잖아⁠. 비룡 표사들이⁠.⁠”

“⁠나는 경비다⁠.⁠”

“⁠경비면 다 괜찮아⁠? 설매 일을 판 놈이 비룡이야⁠. 내 도장 깎은 놈도 여기 있어⁠. 사형 손님 뺏는 건 참았는데⁠, 이건 아니잖아⁠!⁠”

화방 아래서 관리인들이 지붕으로 올라오는 사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반석이 고개를 돌려 아래를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봤다⁠. 내 손목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

“⁠이 화방 임자가 누군지 아냐⁠?⁠”

“⁠누군데⁠?⁠”

“⁠곽 국주다⁠. 노름판도 국주 거고⁠, 비무 패 숫자를 바꾸는 쪽지도 국주가 사들이는 거다⁠. 표사들이 거처에서 본 걸 여기 팔면 국주가 은자를 준다⁠.⁠”

반석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말이 무거운지 한 마디씩 끊어서 내려놨다⁠.

“⁠그리고 국주 마차가 나흘 전엔 열다섯 대였는데⁠, 오늘 서른 대를 넘겼다⁠. 마부도 새로 들였고⁠, 마구간도 두 군데 더 빌렸다⁠. 항주 큰길 마차 통행패는 이제 거의 다 비룡 거다⁠. 금지령이 서면 지붕도 담도 못 탄다⁠. 그럼 남는 건 땅의 길이고⁠, 땅의 큰길엔 비룡 마차만 다닌다⁠. 그날부터 항주 배달은 비룡 마차뿐이야⁠.⁠”

“⁠그럼 사형은⁠? 사형도 지붕 타는 표사잖아⁠.⁠”

“⁠국주는 지붕 타는 표사도 필요 없다⁠. 금지령 서는 날 나도 끝이다⁠. 칼자국도⁠, 나머지 둘도⁠.⁠”

“⁠알면서 왜 경비를 서⁠?⁠”

“⁠표결 날까지는 품삯이 나오니까⁠.⁠”

사다리 끝에 관리인 머리가 보였다⁠. 반석이 내 어깨를 처마 끝으로 밀었다⁠. 떠밀린 나는 놀잇배 지붕 위로 떨어졌고⁠, 지붕이 출렁 꺼지면서 나는 그대로 물에 빠졌다⁠. 서호 물은 사월 밤인데도 이가 딱딱 부딪칠 만큼 찼다⁠. 대팔이 노를 내밀어 나를 쪽배로 끌어 올렸다⁠.

물을 뱉으며 올려다보니 반석이 화방 처마 끝에 서 있었다⁠. 등불이 반석의 얼굴을 반만 비췄다⁠.

“⁠짚신⁠. 알아도 소용없다⁠. 표결까지 보름이 안 남았어⁠. 그 안에 국주를 이길 놈은 항주에 없다⁠.⁠”

반석은 몸을 돌려 화방 지붕 너머로 사라졌다⁠. 가죽 신은 이번에도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팔이 노를 저으며 물었다⁠. 노는 여전히 반은 물을⁠, 반은 허공을 쳤다⁠.

“⁠도장은⁠?⁠”

“⁠호수에 빠졌어⁠.⁠”

“⁠그럼 빈손이야⁠?⁠”

나는 대답 대신 품을 더듬었다⁠. 대팔이 노를 내려놓고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금지령이 서면 비룡 마차만 남는다는 거지⁠? 우리 조합 서른둘도⁠, 비룡 짐꾼 아홉도 다⁠?⁠”

“⁠사형까지⁠.⁠”

“⁠곽만금이 그걸 처음부터 다 알고 청원 맨 앞에 이름을 쓴 거고⁠.⁠”

대팔이 노를 다시 집었다⁠. 이번엔 노가 물만 쳤다⁠. 화가 나니까 노가 제대로 들어갔다⁠.

나는 품에서 젖은 쪽지를 꺼냈다⁠. 먹이 번져 있었지만 「⁠학 노인⁠」 세 글자와 「⁠동파육⁠」 세 글자는 또렷했다⁠. 대청에서 내 코앞을 스치던 송학 진인의 소매 냄새가 쪽지에서 다시 올라왔다⁠. 코를 대 보니 착각이었다⁠. 쪽지에서는 서호 물 냄새만 났다⁠. 화방의 붉은 등불 백 개가 물 위에 흔들리며 우리 쪽배 뒤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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