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72자)
금지령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사월 열여드레 아침, 진보덕이 장롱 깊숙한 데서 비단 장포 한 벌을 꺼내 왔다. 쪽빛 비단에 좀이 두어 군데 먹은, 진보덕이 취선 숙수 시절 설날에만 입던 옷이었다. 입혀 보니 소매가 내 손끝을 한 뼘 넘었고, 아랫단이 짚신 앞코를 덮었다.
“연합 회의에 무명옷 입고 가면 짐꾼 취급한다. 알겠냐?”
“저 짐꾼 맞는데요.”
“오늘은 대표다.”
진보덕은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려 주고, 내 머리띠를 똑바로 고쳐 맸다. 잘린 끝이 짧아서 매듭이 자꾸 풀렸다. 진보덕이 혀를 차며 매듭을 세 번 지었다. 손끝에서 돼지기름 냄새가 났다. 아침에 할멈을 도와 만두소를 버무린 손이었다.
“조합이 이기면 제 품삯은 안 깎으실 거예요?”
“그건 조합이 이기고 나서 따질 일이다. 가서 지고 오기만 해 봐라.”
대팔과 라이더들이 골목에 두 줄로 서서 손뼉을 쳤다. 조합은 어느새 서른둘이었다. 비룡 짐꾼에다 다른 객잔에 딸린 심부름꾼까지 몰래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대팔이 구호를 선창하려다 할멈 국자를 보고 그만뒀다. 담 위로 매화 가지 하나가 날아왔다. 가지에 묶인 쪽지는 짧았다. 「사부님 금지령 편. 미안. 만두는 회의 끝나고.」
*
서호검문 대문 앞에서 목발을 짚은 젊은이 하나가 나를 불러 세웠다. 연무장에서 정강이가 부러졌던 제자였다. 다리에 대나무 부목을 새로 댔고, 손에 붉은 천 한 줄을 들고 있었다. 연무장에서 부목 대신 감아 준 내 허리띠였다.
“약방 사람이 이 허리띠 덕에 뼈가 덜 어긋났다더군. 문주님이 빨아서 돌려드리라 하셨소.”
“문주님이요?”
“떨어진 다리 묶는 법을 아는 배달꾼은 처음 봤다고 하셨소. 그리고는 한참 말이 없으셨소.”
제자는 목발로 대문 안을 가리켰다. 대청 지붕 위로 서호검문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허리띠는 빨래 냄새가 났다. 사흘 동안 새끼줄로 묶고 다닌 허리에 다시 붉은 띠를 감고 별패를 옮겨 꿰었다. 달그락 소리가 제자리를 찾았다.
담장 밖 버드나무 위에는 대팔이 원숭이처럼 매달려 있었다. 대청 창문이 들여다보이는 가지였다. 대팔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주먹을 쥐어 보였다. 입 모양으로 구호를 외쳤다. 주방 늦음은.
*
서호검문 대청은 기둥이 열여섯이었다. 기둥마다 붉은 칠이 벗겨져 나뭇결이 드러났고, 천장 들보는 어른 허리 굵기였다. 대청 안쪽 높은 자리에 방규철이 앉았고, 방규철 앞으로 문파 대표들이 양옆에 줄지어 앉았다. 화산의 송학 진인, 무당 장로와 장로 뒤에 붙어 있는 현진, 아미, 공동, 서호검문 장로들. 문파 자리 아래로 객잔 주인들이 따로 앉았고, 취선 주인이 비단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맨 끝 자리 의자에 곽만금이 배를 내밀고 앉아 있었다. 관아에서 나온 포두 하나가 기둥에 기대 서서 하품을 했다.
라이더는 대청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조합 대표 하나만 문턱에 서도록 허락받았다. 나는 진보덕의 비단 장포를 입고 문턱으로 갔다. 소매가 자꾸 흘러내려 두 손을 계속 뒤로 감췄다. 내 꼴이 꼭 벌서는 아이 같다고, 나중에 현진이 말해 줬다.
방규철이 먼저 일어났다.
“지난 보름 동안 지붕에서 떨어진 배달꾼 때문에 깨진 기와가 백 장이 넘네. 비무장에 떨어진 것이 일곱 번, 다친 사람이 셋이고, 그중 하나는 우리 서호검문 제자일세. 문파 거처 안을 엿본 배달꾼이 있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네. 대회는 강호가 모이는 자리야. 지붕 위의 사람이 만두 함을 메고 있는지 비수를 품고 있는지, 우리는 지붕 아래서 알 길이 없네. 그래서 청원을 올렸네. 대회 기간과 그 뒤로, 음식 나르는 자는 무공을 쓰지 말고 땅의 길로만 다니게.”
문파 대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학 진인이 수염을 쓸었다.
“제자들이 담 밖 음식 냄새에 마음이 흩어지외다. 지붕으로 날아드는 만두가 없으면 수행도 깊어지겠지.”
송학 진인이 수염을 쓸 때 소매가 내 앞을 스쳤다. 나는 코를 벌름거렸다. 간장과 설탕과 돼지비계가 오래 졸아든 냄새. 취선 주방에서 진보덕이 웍을 흔들 때 나던 냄새였다. 동파육 냄새였다. 결승까지 기름 한 방울 입에 대지 말라는 사람의 소매에서.
곽만금이 웃으며 일어났다.
“비룡도 손해가 크외다. 표사 넷이 지붕을 못 타면 일각 배달은 끝이지요. 그래도 장사는 장사고 강호의 안전은 안전 아니겠소? 비룡은 회장님 뜻을 따르겠소.”
박수가 몇 개 나왔다. 취선 주인이 덩달아 일어나 비단 소매를 털었다.
“객잔도 지붕 배달꾼 때문에 골치가 아프외다. 기와 값은 관아가 물리고, 손님 원성은 객잔이 듣지요. 땅으로 다니는 비룡 마차가 훨씬 점잖소.”
기둥에 기댄 포두가 하품하다 말고 끼어들었다.
“기와 값 물리는 건 관아 일이지만, 지붕에 누가 올라갔는지는 우리도 모르오. 올라간 놈은 다 날아가 버리니까.”
창밖 버드나무에서 누가 크게 기침을 했다. 대팔이었다. 방규철이 창을 한 번 쏘아보고 문턱을 봤다.
“라이더 조합 대표. 할 말이 있으면 하게.”
*
소매를 걷어 올렸다. 두 번 접은 소매가 다시 풀렸다. 그냥 두고 말했다.
“금지령이 서면 라이더는 땅으로 다닙니다. 청하방에서 서호 가 객잔까지 지붕으로 반 시진이면, 땅으로는 한 시진 반입니다. 만두는 식고, 동파육은 굳고, 국은 쉽니다. 그러면 누가 배달을 합니까?”
“땅으로 빨리 다니는 자가 하겠지.”
“땅으로 빨리 다니려면 마차가 있어야 합니다. 큰길은 관아 통행패가 있어야 마차가 다닙니다. 지금 항주에서 마차와 통행패를 제일 많이 가진 데가 어딥니까?”
대청 안의 얼굴들이 하나둘 맨 끝 자리로 돌아갔다. 곽만금은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마차는 짐을 나르려고 산 것이오. 표국은 원래 짐을 나르는 곳 아니오? 짚신 대표 말대로라면 마차 가진 자는 다 도둑이겠구려.”
“도둑이라는 말은 안 했습니다. 국주님 이름이 청원 맨 앞에 있길래 여쭌 겁니다.”
웃음이 몇 군데서 터졌다가 방규철이 주먹으로 탁자를 한 번 치자 멈췄다. 방규철이 일어나 대청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말로는 끝이 안 나겠군. 자네 경공이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면, 지금 보여 주게. 저 들보를 디딤 세 번에 건너 보게. 끝에서 끝까지. 아래 앉은 누구의 찻잔도 흔들지 말고.”
들보는 대청 이쪽 벽에서 저쪽 벽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래로 문파 대표들의 찻잔 열몇이 김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장포를 벗어 문턱에 접어 놓고, 무명옷 바람에 짚신 끈을 조였다.
“들어가도 됩니까? 라이더는 대청에 못 들어간다면서요.”
“발은 들보에만 두게.”
기둥을 한 번 차고 올랐다. 들보 위였다. 나무는 오래 말라 단단했고, 먼지가 손가락 두께로 앉아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찻잔들이 동그란 물웅덩이처럼 김을 올렸고, 찻잔 위로 내 그림자가 지나갈 때마다 문파 대표들이 고개를 젖혀 올려다봤다. 송학 진인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붕 위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흩어진다는 사람다웠다. 첫 디딤, 들보 한가운데 못 박힌 자리 바로 앞. 둘째 디딤, 대들보가 이어지는 쇠 꺾쇠 위. 셋째 디딤에서 나는 반대편 벽을 짚고 기둥을 타고 내려왔다. 아래서 찻잔 하나 달그락하지 않았다.
대청이 조용했다. 공동파 대표가 먼저 탁자를 손바닥으로 쳤다. 무당 장로 뒤에서 현진이 “오오” 하고 소리를 냈다가 장로한테 옆구리를 찔렸다.
방규철은 자기 찻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찻물 위에 회색 먼지 한 톨이 떠 있었다. 들보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찻잔은 흔들리지 않았네. 그러나 먼지는 떨어졌어. 자네가 떨어뜨린 것이지. 지붕 위의 사람은 자기가 아래로 무엇을 떨어뜨리는지 모르네.”
“먼지는 원래 들보에 있던 겁니다, 문주님. 제가 안 올라갔어도 언젠간 떨어졌을 겁니다.”
“언젠가와 지금은 다르지.”
방규철은 찻잔을 옆으로 밀어 놓았다. 마시지 않았다.
*
무당 장로 뒤에서 현진이 손을 들었다. 장로가 말리려 했지만 현진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무당 현진이오. 한 가지만. 풍운 만두에는 봉인이 있소. 밀랍에 도장을 찍어 뚜껑을 막아 오니, 문 앞에서 누가 손을 댔는지 다 보이오. 그 뒤로 나는 독 검사를 할 일이 없어졌소.”
현진이 잠깐 말을 멈췄다.
“그래서 섭섭하긴 하오만, 무당 사형제들은 덕분에 만두를 반쪽 아닌 온쪽으로 먹소이다.”
웃음이 대청을 한 바퀴 돌았다. 공동파 대표가 짚신 제비 덕에 예선장 구경이 즐거웠다고 거들었다. 아미파 대표는 동파육이 식어 왔다고 투덜거렸다가, 그래도 지붕 위가 땅보다는 빠르다고 인정했다. 객잔 주인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취선 주인은 곽만금만 봤다.
방규철이 한참 대청을 둘러봤다.
“표결은 미루겠네. 사월 스무닷새에 본선이 시작되네. 본선 동안 지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오월 초사흘에 이 자리에서 표결하겠네. 결승 이틀 전일세.”
곽만금의 웃음이 처음으로 반 박자 늦게 따라왔다. 곽만금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어 번 두드리고 취선 주인에게 무어라 귓속말을 했다. 취선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세어 보는 시늉을 했다. 나는 문턱에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니었지만, 지고 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있네.”
방규철이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종이 쪽지였다. 쪽지 끝에 노란 밀랍이 붙어 있었고, 밀랍 위에 붉은 도장 자국이 또렷했다. 「풍운」.
“어젯밤 포두가 서호 화방에서 노름판을 덮쳤다가 주워 온 것이네.”
기둥에 기대 있던 포두가 하품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규철이 쪽지를 펼쳐 읽었다.
“「화산 위설매. 밤마다 동쪽 별채 세 번째 창으로 만두 스물. 사부 몰래. 배부르면 칼이 반 치 느림.」”
대청 안 공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송학 진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수염이 떨렸다. 진인은 쪽지를 보지 않고 나를 봤다. 문턱에 선 나, 세 번째 창 앞에 거꾸로 매달리던 나를.
“비무 패를 사고파는 노름판에서 문파 거처 안의 일을 사고팔고 있네. 그리고 그 쪽지에 풍운 도장이 찍혀 있어.”
“저는 판 적 없습니다.”
“세 번째 창에 만두를 나른 자는 누군가?”
대답할 수 없었다. 나르긴 내가 날랐다. 거짓말을 하면 설매의 일이 거짓말이 된다. 참말을 하면 설매의 일이 대청에 다 펼쳐진다. 어느 길을 디뎌도 기와가 깨졌다. 설매 손목에 감겨 있던 붉은 실 한 가닥이 떠올랐고, 볼이 불룩한 채로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웃던 얼굴이 이 대청 한가운데 펼쳐지는 것을 상상하니 목 뒤가 뜨거워졌다.
“제가 날랐습니다. 팔지는 않았습니다.”
“나른 것은 자네 입으로 말했고, 판 자는 아직 모르네. 그러니 표결 날까지 풍운 라이더는 문파 거처에 발을 들이지 말게. 대문이든 뒷문이든 창이든.”
곽만금이 손뼉을 한 번 치고 웃었다.
“이것 보시오. 그러니 금지령이 필요한 게지요.”
송학 진인이 지팡이 삼아 짚던 칼집으로 바닥을 한 번 찍고 일어났다. 대청을 나가며 문턱의 나를 지나쳤다. 멈추지 않았다. 동파육 냄새가 내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진인의 등 뒤로, 연합 회의가 끝났다는 서호검문 징 소리가 길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