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52자)
조합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사월 열이틀 아침, 나는 뒤집은 「한 줄 평」 판을 들고 진보덕 계산대 앞으로 갔다. 판 뒷면에 대팔이 숯으로 쓴 두 줄이 있었다. 「주방에서 기다린 시간은 깎지 않는다.」 「비오는 낮에는 향 한 마디 더.」 내 뒤로 라이더 열하나가 한 줄로 서 있었다. 다들 허리띠에 별패를 차고, 다들 나보다 한 발 뒤에 있었다. 대표가 맨 앞이라는 건 이럴 때 맞으라는 뜻이었다.
진보덕은 판을 한참 읽었다. 「비오는 낮」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밤에 비 오면?”
“밤엔 원래 안 뜁니다.”
“어젯밤에 술시까지 뛰었잖아.”
뒤에서 대팔이 헛기침을 했다. 진보덕은 판을 계산대에 엎어 놓고 나를 올려다봤다.
“누가 너를 대표로 뽑았냐?”
“열둘이요.”
“열둘이 다 너냐?”
“저까지 열둘이요.”
진보덕은 주판을 튕겼다. 무언가를 한참 따져 보는 소리였다. 따르륵, 따르륵. 주판알 소리가 멈추자 진보덕이 목소리를 낮췄다.
“차돌아, 너한테만 품삯 열 닢 더 주마. 대표 수고비다.”
뒤에서 라이더 열하나가 숨을 멈췄다. 나는 그게 제일 무서웠다. 깎는 진보덕은 익숙했는데, 더 준다는 진보덕은 처음이었다.
“안 받습니다. 대신 판에 적힌 거 해 주십시오.”
“주방에서 기다린 걸 안 깎으면 누가 무냐? 손님은 늦게 받았다고 별패를 덜 주고 다음엔 비룡을 부른다. 그 손해는 내가 문다. 나는 누가 물어 주냐? 알겠냐?”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라 더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어젯밤 대팔한테 배운 말을 꺼냈다.
“풍운 라이더 조합은 요구합니다. 주방 늦음은 주방 탓입니다.”
“그럼 주방 대신 너희가 만두를 빚든가. 할멈 손이 모자라서 주방이 늦는 데도 있잖냐.”
부엌문 너머에서 할멈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거 좋네. 다들 들어와.”
결국 열이틀 오전 라이더 열둘은 만두집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만두를 빚었다. 대팔이 빚은 만두는 주먹만 했고, 막내가 빚은 만두는 속이 다 터졌다. 내가 빚은 만두는 할멈이 보더니 말없이 도로 반죽에 뭉쳐 넣었다. 점심 무렵 진보덕이 부엌 문간에 와서 팔짱을 꼈다.
“주방에서 기다린 시간은 반만 깎는다. 비 오는 날은 향 반 마디 더. 낮이든 밤이든. 여기까지다.”
대팔이 반죽 묻은 주먹을 들었다가 내렸다. 반만이라도 처음 따낸 것이었다. 라이더들이 서로 얼굴을 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밀가루 묻은 손으로 박수를 쳤고, 부엌에 하얀 구름이 일었다. 할멈이 기침을 하며 문을 활짝 열었다. 골목을 지나던 비룡 짐꾼 둘이 구름 속의 우리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가, 길 건너 비룡 간판을 흘끔 보고 서둘러 지나갔다. 둘 다 고개를 돌리기 전에 한 번 웃었다. 비룡 짐꾼이 웃는 얼굴은 처음 봤다. 늘 마차 꽁무니를 쫓아 뛰느라 입을 벌리고 숨만 몰아쉬는 얼굴들이었다. 웃는 걸 들키면 깎이는지는 아직 몰랐다. 진보덕은 돌아서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대표 수고비는 없다. 안 받는다며.”
*
열이틀 밤, 만두집 뒷방 문을 누가 세 번 두드렸다. 조심스러운 소리였다. 대팔이 문을 열자 사내 아홉이 어깨를 움츠리고 서 있었다. 다들 해진 끈으로 찜기를 멘 자국이 어깨에 시퍼렇게 남아 있었다. 비룡 짐꾼들이었다.
맨 앞의 나이 든 짐꾼이 모자를 벗었다.
“라이더 조합이라는 걸 한다고 들었소. 우리도 들 수 있소?”
뒷방이 조용해졌다. 대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희 비룡이잖아. 반값으로 우리 손님 다 빼 가는.”
“반값은 국주가 정했지 우리가 정했소? 우리는 반값 받고 두 곱으로 뛰오.”
나이 든 짐꾼이 바닥에 앉아 손가락을 꼽았다. 비룡의 일각 배달은 표사 넷이 지붕을 타서 되는 게 아니었다. 표사 넷은 문파 거처 같은 큰 손님만 맡고, 나머지는 마차가 큰길을 달리다가 골목 어귀에서 짐꾼에게 찜기를 넘긴다. 짐꾼은 마차를 쫓아 뛰고, 찜기를 받아 다시 뛴다. 일각을 못 맞추면 짐꾼이 깎인다. 마차가 늦어도 짐꾼이 깎인다. 표사가 늦어도 짐꾼이 깎인다. 짐꾼끼리 말을 섞다 들키면 하루 품삯이 날아간다.
“그러니까 오늘 여기 온 것도 들키면 끝이오.”
“그럼 왜 왔어요?”
내가 묻자 짐꾼이 잠깐 말을 골랐다.
“예선장에서 짚신 제비가 피하는 걸 봤소. 칼 앞에서도 찜기를 안 떨어뜨리더구먼. 우리도 찜기는 안 떨어뜨리고 싶소. 지금은 떨어뜨리면 깎이니까 안 떨어뜨리는 건데, 그거 말고 다른 이유로.”
무슨 말인지 다 알 것 같지는 않았는데, 무슨 마음인지는 알았다. 대팔이 한참 콧김을 뿜더니 할멈이 튀겨 둔 만두피 접시를 아홉 앞으로 밀었다.
“먹어. 들어오려면 구호부터 외워야 돼. 주방 늦음은!”
아홉이 머뭇거리다 따라 했다. “주방 탓이다.”
“목소리가 작다!”
할멈이 부엌에서 국자를 던졌다. 국자는 대팔 뒤통수에 맞았다. 밤이 끝날 때 조합은 스물하나가 됐다. 이름도 바꿨다. 풍운이든 비룡이든 항주에서 찜기를 메면 들 수 있게, 항주 라이더 조합. 대팔은 다음 날 아침이면 서른이 된다고 장담했다.
*
이튿날 해 질 무렵, 세 번째 창 앞에 거꾸로 매달리자 설매가 창을 열자마자 말했다.
“우리 사형이 그러는데, 비룡 찜기 뚜껑이 열렸다 닫힌 자국이 있대.”
“표사한테서 마차로, 마차에서 짐꾼으로 넘어가니까.”
“그것만이 아니래. 어젯밤 사형이 무릎을 다쳐서 약방에 보약 끓인 걸 시켰는데, 오늘 아침에 객잔 마당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사형한테 무릎은 괜찮냐고 물었대. 사형은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설매는 만두를 하나 입에 넣고, 씹기 전에 덧붙였다.
“사부님이 내일 화산 사람들 거처 전부를 비룡 하나로 묶는대. 우리 사형제들 밥까지.”
“그럼 너는?”
“나는 세 번째 창이 있잖아.”
“조합 생겼어. 항주 라이더 조합.”
“나도 들 수 있어?”
“찜기를 메야 돼.”
“검집도 메는데.”
“검집에 만두 넣을 거야?”
설매는 진지하게 검집을 들여다봤다. 만두 몇 개가 들어갈지 재 보는 얼굴이었다.
설매는 볼이 불룩한 채로 웃었다. 귀는 빨갛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찜기를 넘겨받는 설매 손목에 붉은 실 한 가닥이 감겨 있었다. 잘린 내 머리띠 끝이었다. 꿰매 준다더니 손목에 감아 놓은 것이었다.
*
사월 열사흘 오후, 서호검문에서 부름이 왔다. 서호검문은 서호 서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항주 토박이 문파다. 문주 방규철이 연합 회장이라 문간에 늘 다른 문파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그날은 본선을 앞둔 제자들이 연무장에서 마지막 비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연무장 담 위를 돌아 부엌 뒷문으로 갔다. 비무 위를 넘으면 도전이라는 걸 이제 발바닥이 먼저 알았다. 부엌 뒷문에 찜기를 내려놓고 봉인을 확인받는데, 연무장에서 기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비룡의 고수 라이더 하나가 연무장 담을 넘어 비무 한가운데로 곧장 떨어지고 있었다. 얼굴에 칼자국이 난 표사였다. 일각을 맞추려고 담을 돌지 않고 가로지른 것이었다. 연무장 한복판에서 칼을 맞대던 서호검문 제자 하나가 떨어지는 표사를 피하다가 돌바닥에 발을 헛디뎠다. 우두둑 소리가 연무장 담 너머 부엌까지 들렸다.
표사는 찜기를 품에 안고 한 바퀴 구르더니 그대로 반대편 담을 넘어 달아났다. 연무장에는 정강이를 붙들고 이를 악문 제자 하나와, 깨진 기와 조각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만두 두 개가 남았다. 만두피에 비룡 봉인이 붙어 있었다. 비룡도 봉인을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 없이 담을 넘어 제자 곁에 무릎을 꿇었다. 정강이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내 허리띠를 풀어 나무 막대를 대고 감았다. 사부가 칼은 안 가르쳤지만 떨어진 다리 묶는 법은 가르쳤다. 떨어지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은 떨어진 다음도 가르친다.
“움직이지 마. 약방 사람 불러 줄게.”
그림자 하나가 내 위를 덮었다. 방규철이었다. 회색 장포 자락이 내 어깨에 닿았다. 방규철은 제자의 다리와 내 허리띠와 바닥의 만두를 차례로 내려다봤다. 마지막으로 내 등의 「풍운배달」 함을 봤다.
“또 배달꾼이군.”
“떨어진 건 비룡 표사입니다, 문주님. 저는 부엌 뒷문으로 왔습니다.”
“부엌 뒷문으로 온 자가 왜 지금 연무장 한가운데 있나?”
“다친 사람이 있어서요.”
“비룡이든 풍운이든, 지붕에서 떨어지는 자는 다 같네. 떨어질 때 자기가 무엇을 깨는지 모르지.”
방규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낮았다. 화가 나서 낮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래된 무언가를 누르는 목소리였다. 방규철은 제자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고 연무장을 둘러봤다. 서호검문 제자 수십이 숨을 죽이고 문주를 보고 있었다.
“결승까지 스무날 남짓 남았네. 그동안 지붕에서 사람이 몇이나 더 떨어질지 나는 셀 수가 없어.”
방규철은 제자들에게 들것을 가져오라 일렀다. 내 허리띠는 제자 다리에 감긴 채 들것에 실려 갔고, 허리띠에서 빠진 별패들이 내 손바닥에 수북이 남았다.
*
다음 날 아침, 서호검문 대문과 청하방 골목과 소제 둑길 버드나무마다 같은 방이 붙었다. 관아 방보다 크고, 글씨가 반듯했다.
「배달 무공 금지령 청원. 서호 비무대회 기간과 그 뒤로, 항주에서 음식을 나르는 자는 경공을 포함한 모든 무공을 쓰지 못한다. 지붕과 담과 비무장 위를 다니지 못하고 땅의 길로만 다닌다. 항주 문파 연합 회의, 사월 열여드레, 서호검문 대청. 연합 회장 방규철.」
방 아래 청원에 뜻을 같이한 이름들이 붓으로 줄지어 있었다. 문파 이름이 여럿, 객잔 주인 이름이 여럿이었다. 대팔이 방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다가 맨 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비룡표국 국주 곽만금.」
“이거 이상하지 않냐? 무공 금지되면 비룡 표사들도 지붕 못 타는데. 곽만금이 왜 맨 앞에 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길 건너 비룡 지점 앞에서 곽만금이 이쪽을 보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예선장 버드나무 밑에서 보던 엄지와 똑같았다. 곽만금 옆에서 짐꾼들이 마차에 찜기를 싣고 있었다. 마차가 어제보다 다섯 대 늘어 있었다.
*
해가 기울 무렵 나는 비룡 지점 뒷마당 담 위에 쪼그려 앉았다. 반석이 우물가에서 가죽 신 끈을 고쳐 매고 있었다.
“사형네 칼자국 표사가 서호검문 제자 정강이를 부러뜨렸어. 일각 맞추겠다고 연무장을 가로질러서.”
“칼자국은 국주가 직접 데려온 놈이다. 나한테 묻지 마.”
“일각으로 떠민 건 비룡이잖아.”
반석이 끈을 묶던 손을 멈췄다.
“떠민 건 국주다. 비룡이 아니라.”
“그게 다른 거야?”
반석은 대답 대신 마당 한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새 마차 다섯 대가 바퀴에 진흙도 안 묻은 채 나란히 놓여 있었다. 마차마다 관아 통행패가 매달려 있었다.
“국주가 한 달 새 마차를 열다섯 대 샀다. 항주 큰길 통행패도 사들이는 중이다. 표사 넷한테는 말 한마디 없이.”
“무공 금지되면 사형도 지붕 못 타잖아. 그런데 왜 국주가 청원 맨 앞에 있어?”
“나도 그게 궁금하다, 짚신.”
반석이 일어나 담 위의 나를 올려다봤다. 6년 만에 처음으로 반석 얼굴에 모른다는 표정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