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36자)

주방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가죽 신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밑창에 쇠못이 박혀 있어서 들고만 있어도 손목이 처졌다⁠. 사월 초이레 새벽⁠, 나는 신을 비룡 지점 문간에 가지런히 놓고 위에 쪽지를 얹었다⁠. 「⁠발이 아파서 못 신겠음⁠. 짚신⁠.⁠」

풍운 문을 밀고 들어가 하나도 안 깎인 동전 주머니를 계산대에 도로 올려놓았다⁠. 진보덕은 주판을 튕기다가 고개를 들었다⁠. 주판알이 멈췄다⁠.

“⁠빚 다 갚을 때까지 못 가요⁠. 사장님이 저 붙들고 굶기든 말든⁠, 빚은 빚이니까⁠.⁠”

진보덕은 한참 나를 보다가 주머니를 열어 동전 한 닢을 꺼내 제 쪽으로 옮겼다⁠.

“⁠아침에 늦었다⁠. 해 뜨고 왔잖아⁠.⁠”

“⁠해 뜨기 전에 왔는데요⁠.⁠”

“⁠비룡 문간에 들렀다 왔으니 늦은 거다⁠. 알겠냐⁠?⁠”

깎인 한 닢이 이상하게 반가웠다⁠. 풍운이 아직 풍운이라는 말 같았다⁠.

길 건너 비룡 지점에는 새 깃발이 올라가 있었다⁠. 「⁠만두 스무 개 열 닢 · 일각 배달⁠」⁠. 우리 문짝의 「⁠반 시진 배달⁠」 글씨가 하룻밤 새 초라해졌다⁠. 깃발 아래서 비룡 짐꾼들이 줄지어 찜기를 받아 들고 마차에 올렸다⁠. 지붕을 타는 표사는 반석을 포함해 넷뿐이고⁠, 나머지 수십은 마차와 골목을 이어 달리는 짐꾼이었다⁠. 짐꾼들 어깨에 멘 끈이 해져 있었다⁠. 우리보다 나을 것도 없는 어깨였다⁠.

*

이상한 일은 그날부터 사흘 동안 취선객잔에서 일어났다⁠.

취선은 서호 가 객잔 가운데 가장 큰 주방을 가진 곳이다⁠. 문파 거처 손님들이 취선 음식을 시키면 풍운이나 비룡 라이더가 뒷문에서 받아 날랐다⁠. 그런데 풍운 라이더가 뒷문에 가면 음식이 안 나왔다⁠. 반 각을 기다리고⁠, 한 각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사이 비룡 짐꾼들은 뒤에 와서 먼저 받아 갔다⁠.

향은 주문을 받을 때 붙는다⁠. 주방에서 기다린 시간도 향이 탄다⁠. 장대팔은 이틀 동안 취선 뒷문에서만 품삯 서른 닢을 깎였다⁠. 사흘째 아침⁠, 대팔이 골목에서 찜기를 내던졌다⁠.

“⁠주방이 늦는 걸 왜 우리가 무냐고⁠! 향을 주방에다 꽂든가⁠!⁠”

진보덕은 계산대 너머에서 대팔이 내던진 찜기가 깨졌는지부터 살폈다⁠.

“⁠손님은 주방이 늦었는지 라이더가 늦었는지 모른다⁠. 늦으면 풍운이 늦은 거다⁠. 알겠냐⁠?⁠”

“⁠풍운이 늦었으면 풍운이 물어야지⁠, 왜 내 주머니에서 빼⁠!⁠”

나는 대팔 어깨를 붙들고 취선 쪽지를 받아 들었다⁠. 「⁠취선객잔 주방 · 화산파 거처 아닌 동쪽 별채 손님 · 동파육 한 접시⁠」⁠. 향에 불이 붙었다⁠.

“⁠오늘은 내가 기다려 볼게⁠.⁠”

*

취선 주방은 지옥 문 같았다⁠. 아궁이 여덟에서 불길이 솟았고⁠, 무쇠솥 뚜껑이 들썩일 때마다 김이 천장 들보까지 치솟았다⁠. 돼지비계 굽는 냄새⁠, 간장 졸이는 냄새⁠, 생강 써는 냄새가 한데 엉겨 눈이 매웠다⁠. 칼 소리가 북소리처럼 쉬지 않았다⁠. 주방 한가운데서 배가 앞치마를 밀어내는 사내 하나가 웍을 흔들고 있었다⁠. 취선 숙수였다⁠.

“⁠풍운입니다⁠. 동파육 한 접시⁠, 동쪽 별채⁠.⁠”

숙수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기다려⁠.⁠”

나는 기다렸다⁠. 향이 한 마디 타는 사이 뒷문으로 비룡 짐꾼이 셋 들어와 찜기를 받아 갔다⁠. 짐꾼들은 찜기를 받을 때마다 숙수의 앞치마 주머니에 무언가를 쑥 밀어 넣었다⁠. 대나무 조각 하나와⁠, 짤랑 소리가 나는 무언가⁠.

나는 아궁이 앞을 돌아 숙수 옆으로 갔다⁠.

“⁠숙수 어른⁠, 그거 뭡니까⁠?⁠”

“⁠뭐가⁠?⁠”

“⁠앞치마에 들어간 거요⁠. 짤랑거리는 거⁠.⁠”

숙수가 웍을 탁 내려놨다⁠. 기름이 튀어 내 팔뚝에 붉은 점 세 개가 생겼다⁠.

“⁠먼저 내주기 돈이다⁠. 비룡은 한 판 먼저 내줄 때마다 두 닢 준다⁠. 풍운은 뭘 주는데⁠?⁠”

“⁠풍운은 별패 주는데요⁠.⁠”

“⁠별패로 쌀 사 먹냐⁠?⁠”

주방 일꾼들이 킥킥 웃었다⁠. 나는 웃음소리 사이로 동파육 접시를 찾았다⁠. 접시는 벌써 완성돼서 찬장 위에서 식어 가고 있었다⁠. 숙수가 일부러 안 내준 것이었다⁠.

“⁠이거 제 거죠⁠?⁠”

손을 뻗자 숙수의 식칼 등이 내 손등을 막았다⁠. 피하는 건 내 일이라 손등을 빼는 건 쉬웠다⁠. 문제는 피하다가 내 팔꿈치가 밀가루 자루를 쳤다는 것이었다⁠. 하얀 가루가 주방 한가운데서 폭죽처럼 터졌다⁠. 아궁이 불길이 밀가루를 받아 화르륵 솟았고⁠, 일꾼 셋이 눈썹을 잃었다⁠. 숙수의 수염 반쪽도 같이 없어졌다⁠.

“⁠이 짚신 놈이⁠!⁠”

숙수가 식칼을 들고 쫓아왔다⁠. 나는 찬장 위로⁠, 들보 위로⁠, 솥뚜껑 위로 피했다⁠. 솥뚜껑은 뜨거웠다⁠. 짚신 바닥이 지글거렸다⁠. 들보 위에서 내려다보니 주방 문간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진보덕이었다⁠. 장대팔이 불러 온 것이었다⁠.

*

진보덕은 밀가루를 뒤집어쓴 주방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숙수 손에 든 식칼을 봤다⁠. 오래 봤다⁠.

“⁠칼을 그렇게 쥐지 말라고 했지⁠. 손목이 먼저 나간다고⁠.⁠”

숙수의 칼끝이 내려갔다⁠. 반쪽만 남은 수염이 떨렸다⁠.

“⁠사부님⁠.⁠”

나는 들보 위에서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진보덕은 20년 동안 이 취선 주방의 숙수였다⁠. 풍운을 차리기 전 일이었다⁠. 지금 웍을 흔드는 숙수는 진보덕이 칼 쥐는 법부터 가르친 제자였다⁠. 그러니까 이 주방은 진보덕의 옛집이었다⁠.

“⁠먼저 내주기 돈 받냐⁠?⁠”

“⁠받습니다⁠.⁠”

“⁠왜⁠?⁠”

숙수가 앞치마 주머니를 뒤집었다⁠. 대나무 조각과 동전이 바닥에 쏟아졌다⁠.

“⁠객잔 주인이 주방 품삯을 반으로 깎았습니다⁠. 비룡이 음식 받아 가는 값을 후려쳐서요⁠. 비룡한테 싸게 넘기는 대신 주방 품삯을 깎은 겁니다⁠. 그 반을 비룡이 먼저 내주기 돈으로 메워 줘요⁠. 일꾼 여덟이 그걸로 먹고삽니다⁠. 사부님이 계셨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진보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앞치마를 하나 집어 허리에 둘렀다⁠. 숙수가 옆으로 비켜났다⁠. 진보덕은 숙수의 칼을 받아 들고 도마 앞으로 갔다⁠. 돼지 삼겹 한 덩이를 올렸다⁠. 칼이 내려갔다⁠. 한 번⁠, 두 번⁠. 내가 처음 보는 진보덕의 손이었다⁠. 동전을 셀 때처럼 쩨쩨하지 않았다⁠. 고기가 반듯한 네모로 떨어졌고⁠, 웍에 기름이 둘렀다가 간장이 둘렀다가 설탕이 녹았다⁠. 주방 일꾼들이 손을 멈추고 진보덕을 봤다⁠.

“⁠풍운 주문은 내가 받으러 올 때 내가 볶는다⁠. 네 손 안 빌린다⁠. 그럼 됐냐⁠?⁠”

주방 안쪽 문이 벌컥 열렸다⁠. 비단옷을 입은 취선 주인이 들어와 밀가루 범벅인 주방과 칼을 든 진보덕을 번갈아 봤다⁠.

“⁠진보덕이 왜 내 주방에 있소⁠?⁠”

“⁠옛 주방에 인사 좀 왔소⁠.⁠”

“⁠인사는 대문으로 하시오⁠. 내일부터 취선 음식은 비룡으로만 내보내오⁠. 곽 국주와 그렇게 약조했소⁠. 풍운 라이더는 뒷문에 얼씬도 마시오⁠.⁠”

진보덕은 칼을 도마에 꽂았다⁠. 칼은 도마 깊이 박혀 떨렸다⁠. 앞치마를 벗어 숙수 어깨에 걸쳐 주고 주방을 나갔다⁠. 나는 들보에서 내려와 찬장 위 식은 동파육 접시를 들고 진보덕을 따라갔다⁠. 아무도 막지 않았다⁠. 숙수가 나를 보고 고개를 한 번 숙였다⁠.

*

동쪽 별채 손님에게는 결국 늦었다⁠. 문을 연 사람은 예선장에서 화산 사형과 칼을 맞대던 아미파 여제자였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가늘게 떴다⁠.

“⁠내 비무를 망친 짚신이네⁠.⁠”

“⁠그날은 죄송했습니다⁠. 동파육 왔습니다⁠. 조금 식었습니다⁠.⁠”

“⁠조금⁠?⁠”

여제자가 접시 가장자리에 굳은 기름을 젓가락으로 톡 쳤다⁠. 기름이 하얗게 엉겨 있었다⁠. 나는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대신 피하는 거 한 번 보여 드릴까요⁠?⁠”

“⁠됐어⁠. 그거 보려고 시킨 건데⁠, 동파육이 식어서 그것도 안 반가워⁠.⁠”

여제자는 접시를 받아 들고 별패 둘을 내밀었다⁠. 하나는 동파육 몫⁠, 하나는 예선장 비무 사과 몫이라고 했다⁠. 객잔 마당 게시판에 예선 결과가 붙어 있었다⁠. 「⁠본선 진출 · 화산 위설매 · 무당 현진 · 아미 …⁠」⁠. 설매는 다음 날 다른 상대를 이겨 올라간 것이었다⁠. 무당 문지기 현진의 이름도 있었다⁠. 만두 반쪽씩 먹고도 이기는 사람이었다⁠.

동파육은 식었고 별패는 둘이었다⁠. 돌아오는 골목에서 진보덕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집 잡힌 거 너도 들었지⁠.⁠”

“⁠네⁠.⁠”

“⁠풍운 차릴 때 잡혔다⁠. 단오 지나고 보름 안에 은자 서른 냥 못 갚으면 전당포가 집을 가져간다⁠. 마누라는 아직 모른다⁠.⁠”

“⁠사모님이 모르세요⁠?⁠”

“⁠말하면 내가 전당포보다 먼저 죽는다⁠.⁠”

진보덕은 골목 끝에 멈춰 하늘을 봤다⁠. 서쪽 하늘에 뇌봉탑 그림자가 길게 누워 있었다⁠. 관아 방 하나가 담벼락에서 반쯤 떨어져 바람에 덜렁거렸다⁠. 진보덕이 방을 손바닥으로 눌러 붙였다⁠.

“⁠내일부터 주방에서 기다린 것도 라이더가 문다⁠. 취선이 막혔으니 다른 객잔 주방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미안하다만 알겠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겠다는 말이 목에서 안 나왔다⁠.

*

사월 열흘 밤⁠, 만두집 뒷방에 라이더 열둘이 모였다⁠. 할멈이 남은 만두피를 기름에 튀겨 내왔고⁠, 장대팔이 상 위로 올라갔다⁠.

“⁠비룡 짐꾼들 봤냐⁠? 그놈들도 우리랑 똑같이 깎인다더라⁠. 늦으면 깎이고⁠, 찜기 엎으면 깎이고⁠, 짐꾼끼리 말 섞어도 깎이고⁠. 그런데 그놈들은 그래도 비룡이야⁠. 국주가 있어⁠. 우리는 뭐가 있냐⁠?⁠”

“⁠사장님 있잖아⁠.⁠”

“⁠사장님은 우리 품삯 깎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우리도 뭉치자는 거야⁠. 조합⁠. 라이더 조합⁠.⁠”

“⁠조합이 뭐 하는 건데⁠?⁠”

“⁠같이 정하는 거지⁠. 깎을지 말지를 사장 혼자 정하지 말고⁠, 우리랑 같이 정하게⁠.⁠”

라이더들이 튀긴 만두피를 씹으며 웅성거렸다⁠. 이름부터 정하자는 말이 나왔다⁠. 「⁠풍운 라이더 조합⁠」⁠, 「⁠항주 지붕 동지회⁠」⁠, 「⁠향 안 타는 모임⁠」⁠. 「⁠향 안 타는 모임⁠」은 향이 안 타면 우리가 놀고먹는 것 같다고 해서 떨어졌다⁠. 구호도 정했다⁠. 대팔이 주먹을 쥐고 선창했다⁠.

“⁠주방 늦음은⁠!⁠”

“⁠주방 탓이다⁠!⁠”

할멈이 부엌에서 소리쳤다⁠. “⁠시끄러워⁠! 만두 터진다⁠!⁠”

요구도 정했다⁠. 막내 라이더 하나가 손을 들고 하루 한 끼는 사장님이 사 달라고 했다가 다들한테 꿀밤을 맞았다⁠. 소원과 요구는 다르다는 꿀밤이었다⁠. 남은 요구는 둘이었다⁠. 주방에서 기다린 시간은 깎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은 기와가 미끄러우니 향을 한 마디 더 준다⁠. 대팔이 벽에 붙은 「⁠한 줄 평⁠」 판을 떼어 뒤집고 숯으로 두 줄을 크게 썼다⁠. 글씨가 삐뚤어서 「⁠비 오는 날⁠」이 「⁠비오는 낮⁠」으로 읽혔다⁠. 밤에 비 오면 어떡하냐고 누가 물었고⁠, 대팔은 밤에는 원래 안 뛴다고 우겼다⁠.

이름은 풍운 라이더 조합으로 정했다⁠. 대표는 별패가 가장 많은 사람으로 하자고 대팔이 말했다⁠. 다들 허리띠를 풀어 별패를 상 위에 쏟았다⁠. 내 허리띠에서 짚신 제비 덕에 받은 별패가 쏟아져 나왔다⁠. 대팔 것보다 두 배는 많았다⁠.

“⁠아니⁠, 잠깐⁠. 나는 피하는 거밖에 못 하는데⁠.⁠”

“⁠그러니까 딱이지⁠. 사장님 앞에서 잘 피해 봐⁠.⁠”

손 열한 개가 올라갔다⁠. 내 손만 안 올라갔다⁠. 대팔이 내 손목을 잡아 억지로 올렸다⁠. 열두 개가 됐다⁠.

“⁠풍운 라이더 조합 대표⁠, 짚신 제비 육차돌⁠!⁠”

튀긴 만두피 부스러기가 박수처럼 상 위로 튀었다⁠. 나는 내일 아침 진보덕 계산대 앞에 서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동전 한 닢을 깎을 때보다 훨씬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다⁠.

모임이 끝나고 골목으로 나오니 길 건너 비룡 문간이 비어 있었다⁠. 새벽에 놓고 온 가죽 신이 없었고⁠, 신이 있던 자리에 쪽지 한 장이 돌에 눌려 있었다⁠. 반석의 글씨였다⁠. 「⁠신은 늘려 놓겠다⁠. 발은 금방 큰다⁠.⁠」 나는 쪽지를 구겨 허리띠에 꽂았다⁠. 별패들 사이에서 쪽지가 바스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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