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11자)

짚신 제비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소제는 서호 한복판을 남북으로 그은 둑길이다⁠. 버드나무가 줄지어 늘어지고⁠, 둑 사이사이 무지개 모양 돌다리 여섯이 물길을 잇는다⁠. 사월 초엿새 아침⁠, 소제 둑길이 통째로 칼 소리에 덮여 있었다⁠.

서호 비무대회 예선이었다⁠. 다리와 다리 사이 둑마다 나무 단을 쌓아 비무대를 만들었고⁠, 단 둘레로 구경꾼이 버드나무 가지까지 타고 올라가 있었다⁠. 둑 북쪽 끝 높은 단에는 서호검문 깃발이 펄럭였고⁠, 깃발 아래 심판석에 회색 장포 차림의 사내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다⁠. 각진 턱⁠, 깎아 놓은 듯한 눈썹⁠, 무릎 위에 올린 두 주먹⁠. 항주 문파 연합 회장이자 대회 주최⁠, 서호검문 문주 방규철이었다⁠.

내 손에는 「⁠남병산 기슭 공동파 거처⁠, 만두 서른⁠」 쪽지가 들려 있었다⁠. 남쪽이었다⁠. 정자사 지붕도 관아 지붕도 남쪽 길 지붕도 막혔으니⁠, 남은 길은 이 둑뿐이었다⁠.

비무 위를 넘으면 안 된다⁠. 나는 버드나무 꼭대기를 디디며 비무대 옆으로 비켜 갔다⁠. 버들가지는 기와보다 나긋해서 디딤 세 번이 네 번이 되려 했고⁠, 찜기가 기울 때마다 숨을 참았다⁠. 첫 다리⁠, 둘째 다리까지는 좋았다⁠. 셋째 다리 앞에서 길이 끊겼다⁠. 비무대 두 개가 다리 양쪽에 바짝 붙어 있었고⁠, 버드나무는 두 단 사이에 한 그루도 없었다⁠.

향은 반이 남아 있었다⁠. 돌아가면 다 탄다⁠. 나는 비무대 하나를 골라 단 위로 뛰었다⁠. 가장 높이⁠, 가장 빨리⁠, 아무도 못 보게⁠.

모두 봤다⁠.

*

내가 내려앉은 곳은 화산파 사형과 아미파 여제자가 칼을 맞댄 비무대 한복판이었다⁠. 이번엔 모래 대신 나무 단이라 무릎이 더 아팠다⁠. 칼끝 둘이 내 양쪽 귀 옆에서 멈췄고⁠, 구경꾼 수백이 한꺼번에 숨을 들이켰다⁠.

“⁠또 너냐⁠!⁠”

화산파 사형이 내 얼굴을 알아봤다⁠. 취선객잔 마당에서 내 목에 칼을 대던 사형이었다⁠. 둑 위에서 흰 수염이 천천히 다가왔다⁠. 송학 진인이었다⁠.

“⁠두 번이면 실수가 아니외다⁠. 화산 비무 위에 두 번 떨어진 자는 화산이 받아야지⁠.⁠”

심판석에서 방규철이 일어났다⁠.

“⁠비무 위를 넘었으니 도전이네⁠. 물러날 텐가⁠, 받을 텐가⁠?⁠”

“⁠물러나면 어떻게 됩니까⁠?⁠”

“⁠무릎을 꿇고 두 사람에게 절하고⁠, 오늘 예선장에는 발을 들이지 못하네⁠.⁠”

남쪽으로 가는 길은 이 둑뿐이었다⁠. 오늘 못 들어오면 공동파 만두 서른은 비룡 몫이 된다⁠. 나는 찜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말했다⁠.

“⁠받겠습니다⁠. 다만 저는 칼을 못 씁니다⁠. 제 등에 꽂힌 향이 다 탈 때까지 칼끝이 제 몸에 한 번이라도 닿으면 제가 지고⁠, 안 닿으면 저는 배달하러 가겠습니다⁠.⁠”

방규철의 눈썹 하나가 올라갔다⁠.

“⁠만두를 떨어뜨려도 지는 것이네⁠.⁠”

“⁠그건 원래 지는 겁니다⁠. 풍운에서는⁠.⁠”

송학 진인이 뒤를 돌아봤다⁠.

“⁠설매야⁠. 막내의 칼로 충분하니라⁠. 화산의 매화가 짚신 하나를 못 꺾으면 결승은 꿈도 꾸지 말거라⁠.⁠”

볼이 동그란 막내가 비무대로 올라왔다⁠. 위설매였다⁠. 칼을 뽑아 예를 올리는 동안 귀가 빨갰다⁠.

*

매화검은 꽃잎처럼 온다고들 한다⁠. 와 보니 꽃잎이 아니라 우박이었다⁠. 설매의 칼끝이 한 번에 다섯 갈래로 피어 내 가슴⁠, 어깨⁠, 무릎을 차례로 노렸다⁠. 나는 뒤로 미끄러지고⁠, 옆으로 돌고⁠, 단 모서리를 발뒤꿈치로 딛고 몸을 젖혔다⁠. 찜기는 언제나 내 배꼽 높이에서 수평이었다⁠. 뚜껑 틈으로 김이 한 줄 올라 설매의 칼바람에 흩어졌다⁠.

구경꾼들이 처음에는 웃었다⁠. 다음엔 셌다⁠. 한 합⁠, 두 합⁠, 열 합⁠. 스무 합이 넘어가자 누가 소리를 질렀다⁠.

“⁠짚신에 한 냥⁠!⁠”

“⁠매화에 두 냥⁠!⁠”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둑 버드나무 밑에서 배가 불룩한 사내가 손바닥만 한 나무패를 받고 은자를 거둬들이고 있었다⁠. 곽만금이었다⁠. 곽만금 옆에서 비룡 표사 둘이 나무패에 붓으로 무언가를 적어 구경꾼들에게 나눠 줬다⁠. 곽만금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엄지를 들어 보였다⁠. 내가 이기는 데 건 것인지 지는 데 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설매가 칼을 내 어깨 옆으로 바짝 붙이며 다가왔다⁠. 칼등과 내 귀 사이가 머리카락 한 올이었다⁠. 설매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속삭였다⁠.

“⁠아침 굶었어⁠. 사부님이 비무 날엔 맹물이래⁠.⁠”

“⁠그래서 칼이 왼쪽으로 반 치 흔들리는구나⁠.⁠”

“⁠알면 오른쪽으로 피하지 마⁠. 일부러 그쪽으로 찌르니까⁠.⁠”

“⁠왜 알려 줘⁠?⁠”

“⁠만두 식으면 안 되잖아⁠. 그리고 오늘 저녁 세 번째 창⁠, 스무 개⁠.⁠”

설매가 몸을 빼며 칼을 크게 휘둘렀다⁠. 나는 왼쪽으로 피했다⁠. 설매 말대로 칼은 오른쪽 허공만 베었고⁠, 내 옷자락은 멀쩡했다⁠.

등 뒤 향꽂이에서 마지막 재가 기울었다⁠. 재가 떨어지려는 찰나 설매의 칼끝이 위로 솟았다⁠. 피할 데가 없었다⁠. 칼끝이 내 머리 위를 스쳤고⁠, 붉은 머리띠 한쪽 끝이 잘려 나풀나풀 비무대 위로 떨어졌다⁠. 향의 재도 같이 떨어졌다⁠.

둑 위가 조용해졌다⁠. 방규철이 심판석에서 내려와 잘린 머리띠 끝을 집어 들었다⁠. 한참 들여다봤다⁠.

“⁠머리띠는 몸인가⁠?⁠”

송학 진인이 “⁠몸에 걸친 것이니 몸이외다⁠” 하자⁠, 구경꾼 사이에서 장대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짚신 벗겨도 이기겠네⁠!⁠” 웃음이 둑을 따라 퍼졌다⁠. 방규철은 웃지 않았다⁠.

“⁠칼끝은 몸에 닿지 않았네⁠. 이 판은 비긴 것으로 하네⁠. 그러나 하나만 말해 두지⁠. 무공은 협을 위해 쓰는 것이네⁠. 만두 들고 비무대 위에서 춤추라고 있는 것이 아니야⁠.⁠”

방규철은 머리띠 끝을 내 손에 쥐여 주고 심판석으로 돌아갔다⁠. 송학 진인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설매를 내려다봤다⁠. 설매는 칼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볼이 아까보다 조금 덜 동그랬다⁠.

*

공동파 거처에 닿았을 때 향은 다 타고 없었다⁠. 늦었다⁠. 그런데 대문 앞에 공동파 제자 열댓이 우르르 나와 있었다⁠. 다들 둑에서 내 비무를 보고 온 사람들이었다⁠.

“⁠짚신 제비 아니오⁠! 봉인 뜯지 마라⁠, 내가 뜯을 거다⁠!⁠”

만두는 미지근했다⁠. 별패는 다섯 개⁠, 은자 한 덩이가 덤으로 따라왔다⁠. 저녁 무렵 풍운 「⁠한 줄 평⁠」 판에 공동파 글씨가 올라왔다⁠. 「⁠피하는 거 보느라 만두 식은 줄 몰랐음⁠. 별 다섯⁠. 짚신 제비 또 보내 주시오⁠.⁠」

짚신 제비⁠. 다음 날 아침이 오기도 전에 항주 객잔마다 짚신 제비가 돌았다⁠. 오후 내내 풍운 문간에 부름 쪽지가 쌓였다⁠. 「⁠짚신 제비로⁠」 「⁠짚신 제비가 와서 피하는 거 한 번만⁠」 「⁠만두는 아무거나⁠, 짚신 제비만⁠」⁠. 진보덕은 처음 한 시진 동안은 입이 귀에 걸려 쪽지를 셌고⁠, 다음 한 시진 동안은 라이더 열둘로 이걸 어떻게 다 나르냐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할멈은 밀가루가 떨어졌다며 국자를 내던졌다⁠. 나는 찜기 다섯을 한꺼번에 등에 지고 세 집을 돌았다⁠. 피하는 거 한 번만 보여 달라는 손님 앞에서는 문간에서 한 번 옆으로 미끄러져 줬다⁠. 별패가 허리띠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

정자사 저녁 종이 울릴 때 나는 맞은편 처마에 무릎을 걸고 취선객잔 세 번째 창 앞에 거꾸로 매달렸다⁠. 창이 열리자 설매가 아니라 설매의 발바닥이 먼저 보였다⁠. 방 안에서 물구나무를 서 있었다⁠. 비긴 벌이라고 했다⁠.

“⁠사부님이 매화가 짚신을 못 꺾었으니 거꾸로 서서 짚신 마음을 알아보래⁠.⁠”

“⁠짚신 마음이 어떤데⁠?⁠”

“⁠피가 머리로 몰려⁠. 만두 줘⁠.⁠”

거꾸로 선 사람한테 만두를 먹이는 건 처음이었다⁠. 나도 거꾸로 매달려 있었으니 둘 다 거꾸로였다⁠. 내가 봉인을 따서 만두를 내밀면 설매가 입으로 받았다⁠. 셋째를 받아먹고 나서 설매가 말했다⁠.

“⁠아까 머리띠⁠, 미안⁠. 사형들이 다 보고 있어서 뭐라도 하나 베어야 했어⁠.⁠”

“⁠덕분에 손님이 늘었어⁠. 짚신 제비래⁠.⁠”

“⁠이름은 내가 먼저 지었어⁠. 속으로⁠.⁠”

설매는 물구나무를 풀고 창턱에 턱을 괬다⁠. 내 손에 쥔 잘린 머리띠 끝을 손가락으로 집어 갔다⁠.

“⁠꿰매 줄게⁠. 바느질은 사형들보다 내가 나아⁠.⁠”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고⁠, 이번엔 내가 먼저 손가락을 뺐다⁠. 창이 닫히기 직전 설매가 빈 찜기에 별패 다섯을 넣어 내밀었다⁠.

*

해가 지고 골목 끝 등불이 하나둘 켜졌을 때⁠, 반석이 풍운 뒷골목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가죽 신 한 켤레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새것이었다⁠. 밑창이 두껍고 발목까지 끈을 묶는 신이었다⁠.

“⁠오늘 잘 피하더라⁠, 짚신⁠.⁠”

“⁠사형도 봤어⁠?⁠”

“⁠곽 국주도 봤다⁠. 그래서 내가 왔다⁠.⁠”

반석은 우물 두레박을 끌어 올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두레박을 내려놓는 손이 거칠었다⁠. 6년 전 연자관 마당에서 나한테 처음 디딤 세 번을 가르쳐 준 손이었다⁠. 사부가 가르친 건 이름뿐이고 발은 반석이 붙들고 가르쳤다⁠. 처마에서 떨어지면 반석이 밑에 있었다⁠.

“⁠너 오늘 왼쪽으로만 피하더라⁠. 매화 막내가 알려 줬냐⁠?⁠”

“⁠내가 잘 피한 거야⁠.⁠”

“⁠거짓말할 때 머리띠 만지는 버릇은 그대로네⁠.⁠”

나는 잘린 머리띠에서 손을 뗐다⁠.

반석은 신을 내 발 앞에 내려놨다⁠.

“⁠비룡으로 와⁠. 품삯은 풍운의 세 곱⁠. 이 신도 네 거다⁠. 그리고 네가 사부 약값으로 진보덕한테 당겨 쓴 돈⁠, 국주가 내일 아침에 다 갚아 준다⁠.⁠”

숨이 막혔다⁠. 사부가 마지막 겨울에 기침으로 밤을 새울 때⁠, 약방 문을 두드린 돈은 진보덕이 미리 내준 품삯이었다⁠. 나는 약값 빚을 아직 반도 못 갚았고⁠, 빚이 남은 동안은 다른 데로 갈 생각을 한 번도 못 했다⁠. 반석은 그걸 다 알고 있었다⁠.

“⁠사형은 사부 돌아가실 때 없었잖아⁠.⁠”

“⁠그래서 지금 갚겠다는 거다⁠.⁠”

“⁠비룡 돈으로⁠?⁠”

“⁠돈에 비룡이라고 적혀 있냐⁠?⁠”

반석은 우물 턱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봤다⁠.

“⁠풍운은 단오 전에 문 닫는다⁠. 오늘 네가 끌어온 부름도 다 비룡 몫이 된다⁠. 국주는 그렇게 정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이다⁠. 내일 아침까지 생각해⁠. 신은 두고 간다⁠.⁠”

반석이 담을 넘어갔다⁠. 기와는 역시 아무 소리도 안 냈다⁠. 나는 가죽 신을 한참 내려다봤다⁠. 신어 보지 않았다⁠. 한 번 신으면 발이 먼저 비룡으로 길들어 버릴 테니까⁠.

*

가게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진보덕이 계산대에 앉아 오늘 들어온 동전을 열 닢씩 쌓고 있었다⁠. 동전 탑이 열 개도 넘었다⁠. 오늘 하루치로는 풍운이 문을 연 뒤로 가장 높은 탑이었다⁠. 그런데 진보덕은 웃지 않았다⁠. 뒷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우물가 말소리가 다 들리는 거리였다⁠.

진보덕은 탑 하나를 무너뜨려 다시 쌓으며 내 얼굴을 안 보고 말했다⁠.

“⁠비룡이 내일부터 반값으로 판다더라⁠. 만두 스무 개에 열 닢⁠. 우리는 할멈한테 밀가루 값만 열두 닢 준다⁠.⁠”

“⁠오늘 부름 엄청 들어왔잖아요⁠.⁠”

“⁠오늘은 짚신 제비 구경 값이지⁠. 내일 반값 보면 손님은 구경 안 한다⁠. 알겠냐⁠?⁠”

동전 탑이 또 하나 무너졌다⁠. 진보덕은 이번엔 다시 쌓지 않았다⁠.

“⁠가라⁠, 차돌아⁠. 세 곱 준다는데⁠. 빚도 갚아 준다는데⁠.⁠”

“⁠사장님⁠.⁠”

“⁠다음 달 품삯은 못 준다⁠. 집도 잡혔다⁠. 너 붙들고 있다가 너까지 굶긴다⁠.⁠”

진보덕이 계산대 밑에서 내 몫의 동전 주머니를 꺼내 내 쪽으로 밀었다⁠. 한 닢도 깎지 않은 주머니였다⁠. 풍운에 와서 처음 받아 보는⁠, 하나도 안 깎인 주머니였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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