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62자)
연잎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연밭은 서호 서쪽 끝, 물이 얕아지는 자리에 펼쳐져 있었다. 오월 초나흘, 연잎이 아직 사람 손바닥만 한 것부터 우산만 한 것까지 물 위에 빽빽하게 떠 있었고, 꽃대는 아직 봉오리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연잎 뒷면이 뒤집히며 은빛으로 일렁였다. 물 냄새에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짐꾼 맏이의 처가 식구들이 쪽배 다섯을 연밭 가장자리에 줄지어 띄워 줬다. 배와 배 사이는 어른 키 두 길쯤이었다. 반석은 들것째 물가 버드나무 그늘에 놓여 있었고, 연밥 따는 아낙 셋이 반석 옆에 앉아 구경꾼 노릇을 했다.
나는 첫 쪽배 뱃머리에 올랐다. 등에 「풍운배달」 함, 손에 할멈이 넣어 준 돌덩이 찜기. 만두 대신 돌을 넣었다. 무게를 맞추라는 할멈 뜻이었다.
“짚신, 지붕처럼 하면 빠진다.”
반석이 버드나무 그늘에서 소리쳤다.
“기와는 밟으면 버틴다. 물은 밟으면 도망간다. 사부가 연못에서 중얼거리던 거 기억나는 대로 말해 줄게. 밟지 말고 밀어라. 발끝 말고 발바닥 다. 숨은 디딜 때 내쉬고.”
“사부님은 그렇게 하고도 빠졌다며.”
“그러니까 사부 말 반만 들어.”
첫 디딤, 뱃전. 둘째 디딤, 배와 배 사이 연잎. 셋째 디딤, 다음 배 뱃전. 둘째 디딤에서 연잎이 내 발바닥을 받아 주는 대신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나는 그대로 따라 들어갔다.
첫 번째로 빠졌다. 물은 허리까지 찼고 바닥 진흙이 짚신을 붙잡았다. 돌덩이 찜기는 머리 위로 들고 있었다. 아낙들이 손뼉을 쳤다.
“찜기는 안 빠졌네!”
두 번째는 연잎을 너무 세게 밀어서 빠졌다. 세 번째는 너무 살살 디뎌서 빠졌다. 네 번째는 숨을 거꾸로 쉬어서 빠졌고, 다섯 번째는 아낙 하나가 “이번엔 된다!”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놀라서 빠졌다. 여섯 번째에 둘째 배까지 갔다가 둘째 배 뱃전에서 미끄러져 빠졌다. 찜기는 여섯 번 다 머리 위에 있었다.
“짚신 제비가 아니라 물 제비네.”
“물 제비는 원래 물에 빠지는 새야?”
“빠졌다 나오는 새지.”
아낙들 말장난에 반석이 들것 위에서 웃다가 발목이 울려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진흙투성이로 첫 배에 기어올라 뱃전에 걸터앉았다. 숨이 찼다. 지붕에서는 한 번도 찬 적 없는 숨이었다.
연잎 위로 소금쟁이 한 마리가 미끄러져 갔다. 다리 여섯 개가 연잎을 누르지 않고 물을 밀었다. 소금쟁이가 디딘 자리에 동그란 물결이 셋 생겼다가 사라졌다. 셋. 디딘 다음에 바로 떠났다. 머물지 않았다.
지붕에서는 디딤마다 기와가 나를 받쳐 줬고, 나는 기와 위에 한순간 머물렀다. 물에서는 머물 데가 없었다. 디디자마자 다음을 디뎌야 했다. 디딤 셋이 하나처럼 이어져야 했다.
일곱 번째로 뛰었다. 뱃전, 연잎, 연잎, 다음 배. 셋째 디딤이 연잎 하나를 더 디뎠다. 연잎 셋이었다. 발바닥이 물에 젖기도 전에 둘째 배 뱃바닥에 내려앉았다. 배가 출렁였지만 나는 서 있었다. 찜기는 머리 위에서 수평이었다.
아낙들이 일어나 연잎을 따서 흔들었다. 반석이 들것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연잎 셋이다! 사부보다 하나 더!”
그러고 나서 나는 일곱 번째로 빠졌다. 기뻐서 뒤로 넘어졌다.
*
여덟 번째 연습을 하려는데 연밭 건너 버드나무 아래 낯익은 볼이 보였다. 설매였다. 도복 위에 낡은 겉옷을 걸치고, 머리에 연잎 하나를 모자처럼 얹고 있었다. 사부님이 결승 전날은 마음대로 다니라고 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설매는 물가 쪽배에 올라 내가 뛰는 걸 한 번 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 셋째 디딤에서 꼭 오른발이 늦어. 왼쪽으로 반 치 흔들려.”
“그건 네 칼이잖아.”
“내 칼은 이제 안 흔들려. 동파육 먹었거든. 네 발이 흔들려.”
설매가 쪽배 뱃전에 서서 매화검 보법을 천천히 보여 줬다. 칼 없이 발만. 앞발이 내려앉기 전에 뒷발이 이미 떠 있었다. 꽃잎이 떨어지기 전에 다음 꽃잎이 피는 모양이라고 했다. 내가 따라 하자 쪽배가 기우뚱했다. 설매가 내 팔꿈치를 붙잡았다. 손바닥이 따뜻했다.
“결승 날 만두, 식으면 안 돼. 현진이 반쪽 먹고도 나를 이길 수도 있으니까. 둘 다 뜨거운 걸 먹고 붙어야 공평해.”
“공평하려고 상대 만두까지 챙기는 사람은 처음 봐.”
“배고픈 상대 이기면 이긴 것 같지가 않아.”
설매는 머리에 얹었던 연잎을 벗어 물에 띄웠다. 연잎이 내 다음 디딤 자리로 천천히 흘러갔다. 여덟 번째에 나는 빠지지 않았다. 설매는 박수를 치지 않고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칼을 거두는 사람처럼.
*
해가 기울 무렵 연밭 가장자리에 쪽배가 서른 척 넘게 모였다. 연밥 따는 쪽배가 스물, 서호 남쪽 물가에서 그물 치는 고깃배가 열하나. 대팔과 라이더들이 한나절 서호 둘레를 뛰어다니며 모은 배였다. 라이더들은 지붕은 탈 줄 알아도 노는 저을 줄 몰라서, 배마다 주인이 한 사람씩 같이 탔다. 비룡 짐꾼 아홉은 처가 식구들한테 노 젓는 법을 배우다가 셋이 빠졌다.
대팔이 쪽배 맨 앞에 서서 손가락을 꼽았다.
“용금문 앞에서 호심정까지 쪽배 서른 척을 줄 세우면 배 사이가 두 길. 차돌이 연잎 셋에 두 길은 건너잖아. 그럼 되지 않냐?”
“줄을 똑바로 세워야 돼. 바람 불면 배가 밀려.”
“그럼 사람이 붙잡고 있지 뭐. 배마다 서른여섯 조합이 나눠 타서 노로 버티는 거야.”
“서른여섯인데 배는 서른이잖아.”
“나머지 여섯은 물에 들어가서 배를 붙잡지.”
라이더 여섯이 얼굴을 마주 봤다. 아무도 손을 안 들었다. 대팔이 자기 손을 들었다.
“내가 들어간다. 각시가 소금 빼고 주먹밥 싸 준 지 열흘이야. 물에 들어가면 소금물 맛이라도 보겠지.”
“서호는 민물이야.”
“그러니까 더 억울하지.”
연밥 따는 아낙들 우두머리가 쪽배에서 일어나 대팔을 위아래로 훑었다. 팔뚝이 대팔만 한 아낙이었다.
“물속에서 배 붙잡는 건 우리가 해. 연밭 사람은 물에서 자랐어. 짐꾼은 배 위에서 넘어지지만 말아.”
대팔이 들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비룡 짐꾼 맏이가 대팔 손목을 붙잡아 다시 올렸다. 넘어지지 않겠다는 맹세라고 했다. 라이더 서른여섯이 따라 손을 들었고, 쪽배 서른 척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아낙들이 노로 물을 쳐서 배를 바로 세웠다.
*
단교 위가 시끄러워졌다. 곽만금이 칼자국과 표사 넷을 거느리고 다리 한가운데 와 있었다. 다리 아래 물가에 고깃배 주인들이 모여 있었고, 곽만금은 난간에 기대어 그들을 내려다봤다.
“고깃배 영감들, 내일 서호에 비룡 배 말고 다른 배를 띄우면, 표국 마차는 다시는 영감들 고기를 운하 어시장까지 실어 주지 않소. 서호 고기를 어시장까지 누가 나르오? 지고 갈 거요?”
고깃배 주인들이 서로 얼굴을 봤다. 서호 고기는 붕어와 잉어가 태반이라, 아침에 잡아 운하 어시장에 낮 전에 닿지 못하면 값이 반으로 떨어진다. 그물을 손질하던 노인 하나가 손을 멈췄다. 고깃배 열하나 가운데 셋이 슬그머니 밧줄을 풀었다.
나는 단교로 뛰어올랐다. 젖은 짚신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곽만금 앞, 한 뼘 거리였다.
“국주님, 내일 비룡 배는 서호 한복판에 띄우세요. 용선 경주도 하시고요. 저희는 가장자리 연밭 길로 갑니다. 국주님 배 하나 안 건드려요.”
“짚신 대표, 물에 빠지면 만두도 빠지오. 오늘 일곱 번 빠졌다며.”
“찜기는 한 번도 안 빠졌습니다.”
곽만금이 웃었다. 그러다 웃음이 멈췄다. 곽만금은 내 젖은 머리띠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올렸다. 손가락 힘만으로 머리띠 매듭이 끊어질 듯 팽팽해졌다.
“그 손, 제 사형 발목을 꺾은 손입니다.”
“그러니 놓으시오. 국주님 손에 쥘 것은 머리띠 말고도 많잖소.”
진보덕이었다. 숙수 앞치마를 두른 채 다리를 올라오고 있었다. 숨이 차서 얼굴이 벌겠다. 진보덕은 곽만금 손에서 내 머리띠를 빼내지 않고, 대신 다리 아래 고깃배 주인들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영감들! 비룡이 고기 안 실어 주면 풍운이 실어 주겠소! 고깃배 한 척당 한 달 동안 어시장 배달 공짜! 지붕 타고 가니 마차보다 빨라! 알겠소?”
고깃배 주인들이 웅성거렸다. 그물 노인이 일어나 진보덕을 올려다봤다.
“풍운 사장 쩨쩨하기로 소문났던데.”
“집 팔고 나니 쩨쩨할 것도 없소.”
그물 노인이 한참 진보덕을 보다가 풀었던 밧줄을 도로 말뚝에 감았다. 나머지 둘도 따라 감았다. 곽만금이 내 머리띠를 놓았다. 머리띠가 젖어서 철썩 내 이마에 붙었다.
곽만금은 다리를 내려가며 칼자국한테 말했다. 우리한테도 들리게.
“서른 척이든 마흔 척이든, 물 위에는 바람이 부는 법이지. 내일 호심정 앞 물은 비룡 화방이 지킨다.”
진보덕이 다리 난간에 두 손을 짚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진보덕 옆에 서서 머리띠를 짜냈다. 물이 다리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사장님, 한 달 공짜 배달이면 은자로 얼마예요?”
“묻지 마라. 주판 튕기다 쓰러진다.”
*
밤이 깊어 풍운 문이 닫힐 무렵, 누가 문을 두드렸다. 대팔이 빗장을 열자 흰 수염이 문틈으로 먼저 들어왔다. 송학 진인이었다. 혼자였다. 칼집을 짚고 풍운 문턱을 넘었다. 화산 장로가 배달 가게에 발을 들인 것은 처음이었다.
진보덕이 계산대에서 일어났다. 사모님이 뒷방에서 빗자루를 든 채 내다봤다. 진인은 가게 안을 둘러봤다. 벽에 걸린 찜기, 놋쇠 향꽂이, 「한 줄 평」 판. 판 맨 아래 공동파의 「짚신 제비 또 보내 주시오」에서 눈이 멈췄다.
“주문을 하러 왔소.”
진인이 소매에서 쪽지를 꺼냈다. 붓글씨가 단정했다. 「단오 결승 날 호심정. 만두 스무 개. 화산 제자 몫.」
“결승 만두는 문주님이 시키신 한 판이 따로 있는데요.”
“그건 연합 몫이고, 이건 화산 몫이외다. 스승이 제자 결승 날 밥 한 끼 시키는 데 연합 허락이 필요하오?”
진보덕이 쪽지를 받아 들었다. 진인이 은자 한 덩이와 대나무 별패 다섯 개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별패는 받고 주는 것이라 들었소. 미리 주겠소. 늦어도 다섯이오.”
“늦으면 별패를 덜 주셔야 장사가 됩니다.”
“그럼 늦지 마시오.”
진인은 문턱으로 돌아가다 멈췄다. 등을 보인 채로 덧붙였다.
“스무 개 말고 하나 더. 학 노인 몫.”
진인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사모님이 빗자루를 내려놓고 문틈으로 진인 뒷모습을 내다봤다. 흰 수염이 골목 어귀 등불 아래서 한 번 흔들리고 사라졌다. 진보덕이 쪽지를 계산대 위 향꽂이 옆에 꽂았다. 서호검문 제자가 두고 간 굵은 향 옆이었다. 할멈이 부엌에서 밀가루 자루를 끌고 나왔다. 내일 새벽 빚을 만두가 스물하나 늘었다.
나는 연밭 진흙이 아직 덜 마른 짚신을 아궁이 앞에 세워 말렸다. 짚신 바닥이 김을 올리며 천천히 말라 갔다.
반석이 부엌 문턱 들것에서 몸을 돌려 누웠다.
“짚신, 내일 마지막 배에서 호심정 계단까지는 배가 못 붙는다. 섬 둘레가 얕아서 바닥이 걸려. 두 길 반이다.”
“연잎 셋이면 두 길이잖아.”
“그러니까 반이 남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반석이 천장을 보며 덧붙였다.
“반은 내가 어떻게 해 볼게.”
“그 발로?”
“발은 하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