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338자)

결승장 만두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오월 초닷새⁠, 단오⁠. 해 뜨기 전부터 할멈 부엌의 찜통 여섯이 한꺼번에 김을 뿜었다⁠. 할멈이 만두를 빚고⁠, 사모님이 소를 넣고⁠, 진보덕이 찜기를 쌓았다⁠. 연합 몫 한 판⁠, 화산 몫 스무 개⁠, 학 노인 몫 하나⁠. 진보덕은 찜기 뚜껑마다 밀랍을 두르고 계산대 서랍에서 꺼낸 진짜 「⁠풍운⁠」 도장을 하나씩 눌렀다⁠. 손이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

“⁠이것도 깎을 거예요⁠? 늦으면⁠?⁠”

“⁠늦으면 너는 항주를 떠나고⁠, 나는 깎을 사람이 없다⁠. 알겠냐⁠?⁠”

서호에서 북이 한 번 울렸다⁠. 결승 준비 북이었다⁠. 골목 어귀로 서호검문 제자가 목발을 짚고 뛰어 들어왔다⁠. 목발로 뛰는 것을 처음 봤다⁠. 제자가 굵은 향을 내 등짐 향꽂이에 꽂고 부싯돌을 그었다⁠. 연기가 한 줄로 올랐다⁠.

“⁠향이 다 타기 전⁠, 첫 북이오⁠.⁠”

나는 찜기 탑을 등짐 함에 넣고 한 판을 손에 받쳐 들었다⁠. 김이 손등을 데웠다⁠. 진보덕이 내 머리띠 매듭을 세 번 묶었다⁠.

사모님이 빗자루를 든 채 문간에서 한마디 보탰다⁠. “⁠짚신 대표⁠, 만두 식으면 빗자루요⁠.⁠” 할멈은 내 입에 만두 하나를 밀어 넣었다⁠. 뜨거워서 대답을 못 했다⁠. 할멈이 노린 것이 바로 그거였다⁠.

“⁠입 열지 말고 달려⁠.⁠”

*

청하방에서 용금문까지 큰길은 비룡 마차로 메워져 있었다⁠. 마차 서른 대가 바퀴를 맞대고 서서 길 한가운데를 막았다⁠. 마부들은 마차 위에 드러누워 단오 쑥떡을 먹었다⁠. 땅의 길은 닫혀 있었다⁠.

지붕은 열려 있었다⁠. 남의 기와 한 장 깨지 말 것⁠. 나는 할멈 지붕에서 비단 가게⁠, 약방⁠, 장 담그는 집 지붕으로 디딤 셋씩 건넜다⁠. 장 담그는 아주머니가 독 뚜껑을 덮다가 나를 보고 바가지를 흔들었다⁠. “⁠오늘은 뚜껑 밟지 마라⁠!⁠” 이번엔 밟지 않았다⁠. 지붕 아래 골목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젖혔다⁠. 「⁠짚신 제비다⁠」 하는 소리가 지붕을 따라왔다⁠. 마차 위의 마부 하나가 나를 올려다보더니 쑥떡 하나를 던졌다⁠. 나는 한 손으로 받아 입에 물었다⁠. 이번 달 들어 비룡에게서 처음 얻어먹은 공짜였다⁠. 성벽에 닿자 용금문 물문 너머로 서호가 열렸다⁠.

물 위에 쪽배 서른 척이 한 줄로 떠 있었다⁠. 용금문 물가에서 호수 한복판 호심정까지⁠, 줄이 아주 조금 휘어 있었다⁠. 배마다 연밭 사람이 노를 쥐었고⁠, 라이더가 한 사람씩 탔다⁠. 몇 척 옆 물속에서는 아낙들이 어깨까지 잠겨 뱃전을 붙잡았다⁠. 대팔도 물에 들어가 있었다⁠. 민물이라 억울한 얼굴이었다⁠.

“⁠주방 늦음은⁠!⁠”

대팔이 물속에서 외쳤다⁠. 서른 척이 한꺼번에 받았다⁠.

“⁠주방 탓이다⁠!⁠”

나는 성벽에서 첫 배로 뛰었다⁠. 뱃전⁠, 물⁠, 다음 뱃전⁠. 둘째 디딤이 물을 밀었다⁠. 소금쟁이처럼⁠, 머물지 않고⁠. 물이 발바닥을 받아 주지 않았지만⁠, 받아 주기 전에 나는 이미 떠나 있었다⁠. 셋째 배⁠, 넷째 배⁠. 찜기는 배꼽 높이에서 수평이었다⁠. 향 연기가 등 뒤로 길게 누웠다⁠.

열 척을 지나자 호수 한복판에 용선 서른 척이 북을 치며 내달렸다⁠. 비룡이 빌린 용선이었다⁠. 우리 줄은 연밭 가장자리를 돌아 용선 물길을 비켜 갔다⁠. 용선 사공들이 북을 치다 말고 우리 줄을 구경했다⁠. 어떤 용선은 북채로 박자를 맞춰 줬다⁠. 하나⁠, 둘⁠, 셋⁠.

*

스무 척째에서 물이 흔들렸다⁠. 호심정 앞을 막고 있던 비룡 화방이 노를 저어 우리 줄 앞으로 미끄러져 왔다⁠. 이 층 누각이 통째로 물 위를 밀고 오는 바람에 큰 물결이 일었다⁠. 쪽배 다섯이 한꺼번에 기우뚱했고⁠, 줄이 끊어졌다⁠. 스물한 척째와 스물두 척째 사이가 다섯 길로 벌어졌다⁠.

화방 처마에서 칼자국 표사가 뛰어내렸다⁠. 스물한 척째 뱃머리⁠, 내 바로 앞이었다⁠. 칼자국의 손이 찜기를 노렸다⁠. 나는 찜기를 든 채 몸을 비틀었다⁠. 칼자국 손이 허공을 잡았다⁠. 두 번째는 발을 걸어 왔고⁠, 나는 뱃전을 차고 위로 피했다⁠. 칼자국이 따라 뛰려다 쪽배가 출렁이는 바람에 중심을 잃었다⁠. 지붕만 타던 발이었다⁠. 칼자국은 물에 빠졌고⁠, 물속의 아낙 둘이 칼자국 뒷덜미를 붙잡아 연밭 쪽으로 끌고 갔다⁠. 놓아주지 않았다⁠.

아낙들이 노를 저어 벌어진 배를 다시 붙였다⁠. 다섯 길이 두 길이 됐다⁠. 나는 건넜다⁠.

스물여덟 척째에서 화방 이 층 난간 위에 곽만금이 나타났다⁠. 비단옷 소매를 걷어붙인 팔뚝에 굳은살 박인 주먹 둘⁠. 곽만금이 화방에서 스물아홉 척째로 뛰어내렸다⁠. 배가 반쯤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 노 젓던 어부 노인이 물에 떨어졌다⁠.

“⁠짚신 대표⁠, 만두는 물에 빠지면 불어 터지오⁠.⁠”

곽만금의 주먹이 왔다⁠. 나는 젖혔다⁠. 주먹이 뱃전을 쳤고⁠, 뱃전 판자가 부서졌다⁠. 두 번째 주먹은 옆으로 피했다⁠. 곽만금 발이 내 디딤 자리를 먼저 밟았다⁠. 그믐 밤 지붕 위와 똑같았다⁠. 이번엔 디딜 데가 물이었다⁠. 나는 물을 디뎠다⁠. 머물지 않고⁠. 곽만금 등 뒤로 돌아 서른 척째로 건넜다⁠.

곽만금이 고함을 지르며 스물아홉 척째 바닥을 내리쳤다⁠. 쪽배 바닥이 쪼개졌다⁠. 배가 가라앉으며 곽만금도 허리까지 물에 잠겼다⁠. 철권은 물을 칠 수 없었다⁠.

*

서른 척째가 마지막이었다⁠. 짐꾼 맏이가 노를 쥐었고⁠, 배 가운데에 반석이 앉아 있었다⁠. 부목 댄 왼발을 뱃바닥에 뻗고⁠, 긴 장대 노 하나를 무릎에 가로 얹고 있었다⁠. 호심정 섬 둘레는 얕아서 배가 더 다가가지 못했다⁠. 섬 돌계단까지 두 길 반⁠.

“⁠늦었다⁠, 짚신⁠.⁠”

“⁠향 남았어요⁠, 사형⁠.⁠”

“⁠발은 하나 남았다고 했지⁠. 하나면 된다⁠.⁠”

반석이 노를 고쳐 쥐었다⁠. 짐꾼 맏이가 뱃머리를 섬 계단으로 틀었다⁠.

호심정 위에서 북채를 든 사람이 팔을 들었다⁠. 첫 북이었다⁠. 향은 손가락 한 마디가 남아 있었다⁠.

“⁠짚신⁠, 연잎 셋⁠!⁠”

나는 뱃머리를 찼다⁠. 첫 디딤⁠, 물⁠. 둘째 디딤⁠, 물⁠. 셋째 디딤⁠, 물⁠. 두 길이었다⁠. 반 길이 남았다⁠. 넷째 디딤은 없었다⁠. 연자관에서는 네 번째를 디디면 기와가 깨진다고 배웠다⁠. 물 위에는 깨질 기와도 없었다⁠. 그냥 빠지는 것이었다⁠.

내 발바닥 밑으로 무언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장대 노 끝이었다⁠. 반석이 배 위에서 성한 다리 하나로 버티고 노를 수평으로 내밀고 있었다⁠. 노 끝이 물 위 한 뼘 높이에서 내 짚신 바닥을 받았다⁠.

넷째 디딤⁠. 노는 깨지지 않았다⁠.

나는 노 끝을 차고 호심정 돌계단에 내려앉았다⁠. 계단 이끼에 짚신이 미끄러졌다⁠. 무릎을 찧었다⁠. 찜기는 배꼽 높이에서 수평이었다⁠.

등 뒤에서 반석이 물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짐꾼 맏이가 반석 뒷덜미를 붙잡는 소리가 같이 났다⁠.

*

계단을 뛰어올랐다⁠. 정자 앞마당이 결승 무대였다⁠. 나무 단 위에 설매와 현진이 칼을 들고 마주 보고 있었다⁠. 무대 너머 심판석에 방규철이 앉아 있었다⁠. 무대 위를 넘으면 도전이다⁠. 나는 무대 가장자리를 따라 돌았다⁠. 북채가 내려왔다⁠.

둥⁠.

첫 북과 내 찜기가 심판석 탁자에 닿는 소리가 같았다⁠. 등 뒤 향꽂이에서 마지막 재가 떨어졌다⁠.

방규철이 밀랍 봉인을 손톱으로 확인했다⁠. 진짜 풍운 도장 자국⁠, 반 치 가늘었다⁠. 봉인을 떼고 뚜껑을 들었다⁠. 김이 확 피어올라 방규철의 각진 얼굴을 덮었다⁠. 방규철은 김이 걷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만두 하나를 집어 반으로 쪼갰다⁠. 속에서 다시 김이 올랐다⁠.

“⁠뜨겁군⁠.⁠”

무대 위에서 설매가 칼끝을 내리지 않은 채 코를 킁킁거렸다⁠. 현진도 킁킁거렸다⁠. 결승 무대의 두 검객이 동시에 침을 삼켰다⁠. 구경꾼들이 웃었다⁠.

계단 아래에서 물을 박차는 소리가 났다⁠. 곽만금이었다⁠. 허리까지 젖은 곽만금이 섬 계단을 뛰어올라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눈이 심판석 위 찜기를 향해 있었다⁠. 곽만금은 무대를 돌지 않았다⁠. 설매와 현진이 칼을 맞댄 무대 위를 가로질러 뛰어넘었다⁠. 곽만금 손이 찜기에 닿기 직전⁠, 방규철이 일어났다⁠.

“⁠비무 위를 넘었네⁠.⁠”

방규철의 손이 곽만금 손목을 잡았다⁠. 곽만금이 다른 주먹을 휘둘렀다⁠. 방규철이 주먹을 손바닥으로 받아 흘렸다⁠. 곽만금 몸이 앞으로 쏠렸다⁠. 방규철이 손목을 꺾어 돌리자 곽만금이 무릎을 꿇었다⁠. 세 합이었다⁠.

“⁠결승 무대 위를 넘은 자는 두 사람에게 도전한 것일세⁠. 두 사람이 결승 중이니⁠, 연합 회장인 내가 대신 받았네⁠. 진 것으로 하지⁠.⁠”

호심정 계단에 관아 배가 닿았다⁠. 포두가 군밤 봉지 대신 오랏줄을 들고 올라왔다⁠.

“⁠지부 나리 영이오⁠. 위조 도장⁠, 노름판⁠, 관아 통행패를 돈으로 산 일⁠. 비룡표국 국주를 데려가오⁠.⁠”

포두가 곽만금 손목에 오랏줄을 감았다⁠. 곽만금이 나를 올려다봤다⁠.

“⁠장사는 장사고⁠…⁠…⁠.⁠”

곽만금이 말끝을 잇지 못했다⁠. 포두가 매듭을 당겼다⁠.

“⁠오랏줄은 오랏줄이오⁠. 나는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이오⁠.⁠”

이번엔 곽만금 웃음소리가 나지 않았다⁠.

*

방규철이 심판석 옆에 서서 무대 아래 문파 대표들과 물 위의 서른 척을 둘러봤다⁠.

“⁠배달 무공 금지령은 거두겠네⁠. 대신 단오가 지나면 라이더 조합과 연합이 마주 앉아 배달 길 규칙을 같이 만드네⁠. 비무 위는 넘지 않는다⁠. 남의 기와를 깨면 깬 사람이 문다⁠. 그다음은 조합 대표가 와서 말하게⁠.⁠”

방규철이 만두 하나를 들고 무대로 올라가 설매에게 내밀었다⁠. 하나를 더 들어 현진에게 내밀었다⁠.

“⁠결승 전에 하나씩 먹게⁠. 연합 몫이네⁠.⁠”

설매가 한입에 넣었다⁠. 현진은 반을 베어 물었다가⁠, 나를 보고 나머지 반도 마저 넣었다⁠. 화산 자리에서 송학 진인이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나는 등짐에서 화산 몫 찜기를 꺼냈다⁠. 맨 위에 하나 따로 놓인 만두를 진인이 집었다⁠. 학 노인 몫이었다⁠.

설매와 현진이 칼을 다시 맞댔다⁠. 둘째 북이 울렸다⁠. 서른 합 넘게 매화가 피었다 졌고⁠, 현진의 칼이 무대 위로 떨어졌다⁠. 현진은 칼을 줍기 전에 나를 보고 만두 하나 더 있느냐고 물었다⁠.

*

나는 호심정 돌계단에 앉았다⁠. 허리까지 젖은 무명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무릎에 빈 찜기가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열자 남은 김 한 줄기가 천천히 올라갔다⁠. 송학 진인이 지나가며 찜기 바닥에 대나무 별패 다섯을 넣었고⁠, 방규철이 지나가며 하나를 더 넣었다⁠. 여섯이었다⁠. 별패는 다섯까지인데⁠.

용금문에서 고깃배 한 척이 노를 저어 왔다⁠. 뱃머리에 진보덕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사모님 빗자루를 노 대신 휘두르고 있었다⁠.

“⁠늦었냐⁠?⁠”

“⁠첫 북이요⁠!⁠”

진보덕이 빗자루를 내렸다⁠. 한참 호수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품삯은 안 깎는다⁠. 알겠냐⁠?⁠”

계단 아래 서른 척째 쪽배에서 반석이 물에 젖은 채 노를 끌어안고 있었다⁠. 짐꾼 맏이가 반석 머리에 연잎을 씌워 줬다⁠. 반석이 연잎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노를 들어 보였다⁠. 노 끝 물기 위에 내 짚신 바닥 자국이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물속의 대팔이 뱃전을 붙잡고 구호를 외치려다 물을 먹었다⁠. 대팔이 켁켁거리며 외쳤다⁠. “⁠주방 늦음은⁠!⁠” 서른 척 라이더들이 노를 두드리며 받았다⁠. “⁠주방 탓이다⁠!⁠” 무대 위에서 설매가 칼을 든 채 따라 외쳤다⁠. 송학 진인이 설매를 보고 눈썹을 올렸다가⁠, 만두를 마저 씹었다⁠. 멀리 용금문 물가에서 쪽배들이 밧줄을 풀고 하나씩 흩어졌다⁠. 서른 척이 물 위에 그었던 줄이 천천히 지워졌다⁠. 빈 찜기에서 마지막 김이 올라가 호수 바람에 흩어졌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작가를 구독하면 다음 화가 올라올 때 알려 드립니다.

15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결승장 만두 · 강호 배달 라이더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