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13자)

발목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사월 그믐 아침⁠, 비룡 청하방 둘째 지점 문간에서 진보덕이 향을 잘랐다⁠. 반 시진짜리를 또 반으로⁠. 일각짜리였다⁠. 앞치마는 검은 비단에 금박 용이 수놓인 비룡 앞치마였다⁠. 진보덕 배에는 앞치마가 작아서 용 꼬리가 옆구리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부름 왔다⁠. 일각이다⁠. 알겠냐⁠?⁠”

목소리만 그대로였다⁠. 라이더들은 비룡 짐꾼 끈을 어깨에 메고 마차 꽁무니에 붙었다⁠. 마차가 큰길 끝 골목 어귀에 멈추면 찜기를 받아 골목으로 뛰어야 했다⁠. 지붕으로 가면 반 각이면 될 길을⁠, 마차는 큰길을 한 바퀴 돌아 일각을 다 쓰고 골목 어귀에 내려 줬다⁠. 대팔이 찜기를 받아 뛰다가 돌아와서 헐떡거렸다⁠.

“⁠일각 배달이 아니라 일각 기다리기네⁠.⁠”

나는 비룡 끈을 메지 않았다⁠. 할멈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봤다⁠. 곽만금은 나더러 항주를 떠나라고 했다⁠. 떠나기 전에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점심때 대팔이 부엌으로 뛰어 들어왔다⁠. 손바닥에 동전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차돌아⁠. 사장님이⁠, 아니 지점장님이⁠, 아니 사장님이 우리 밀린 품삯을 다 줬어⁠. 열흘치⁠. 주방에서 기다리다 깎인 것까지 다⁠. 서른여섯 전부⁠.⁠”

“⁠다⁠?⁠”

“⁠곽만금 은자로⁠. 계산대에 은자 보자기 풀어 놓고 한 사람씩 불러서 줬어⁠. 한 닢도 안 깎고⁠. 나 풍운 들어와서 한 닢도 안 깎인 거 처음 받아 봐⁠.⁠”

대팔은 동전 꾸러미를 꼭 쥐고 서 있었다⁠. 화를 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몰라서 얼굴이 두 가지를 다 하고 있었다⁠. 나는 아궁이 불을 들쑤셨다⁠. 불티가 튀어 올랐다⁠. 진보덕이 도장을 찍던 손이 왜 한 번도 안 떨렸는지 이제 알았다⁠. 떨릴 일은 밤새 주판으로 다 끝내 놓은 손이었다⁠.

“⁠그래도 간판은 내려갔어⁠.⁠”

“⁠알아⁠.⁠”

“⁠그래도 이건 받았어⁠.⁠”

“⁠그것도 알아⁠.⁠”

*

무림문은 항주 성 북쪽 문이다⁠. 문밖으로 운하가 흐르고⁠, 운하를 따라 큰 상단과 표국 들이 창고를 늘어놓았다⁠. 비룡표국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담을 둘렀다⁠. 담 위에 깨진 사기 조각을 촘촘히 박아 놓아서 손을 짚을 데가 없었다⁠.

그믐 밤이라 달이 없었다⁠. 비룡표국 대청에만 등불이 수백 개 매달려 있었다⁠. 비파 소리와 웃음소리⁠, 잔 부딪치는 소리가 담 밖까지 넘쳤다⁠. 곽만금이 풍운 합병을 축하한다고 연 연회였다⁠. 관아 사람들과 서호 가 객잔 주인들이 초대받았다⁠. 문 앞에 마차가 줄지어 있었고⁠, 취선 주인의 비단 소매가 마차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포두도 군밤 봉지 대신 술병을 들고 들어갔다⁠.

반석과 나는 표국 뒤편 소금 창고 지붕 위에 엎드려 있었다⁠. 반석은 내가 할멈한테 얻어 준 새 짚신을 신고 있었다⁠. 이번엔 반석 발에 맞게 할멈이 밤새 삼아 준 것이었다⁠.

“⁠금고 방은 대청 뒤 별채다⁠. 대청이 시끄러울 때는 별채를 지키는 표사도 대청에 가서 술을 얻어먹는다⁠. 별채 지붕에 바람 빼는 창이 하나 있다⁠. 국주는 금고 방을 잠그지 않는다⁠. 아무도 못 들어간다고 믿어서⁠.⁠”

“⁠사형은 들어가 봤어⁠?⁠”

“⁠들어가 봤으면 지금 너 데리고 왔겠냐⁠?⁠”

표국 대문 앞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비룡 짐꾼 차림을 한 사내 열둘이 찜기를 산더미처럼 지고 대문으로 몰려왔다⁠. 맨 앞에서 대팔이 목청을 높였다⁠.

“⁠비룡 청하방 둘째 지점이오⁠! 연회에 만두 이백 개⁠! 지점장님이 국주님 축하하라고 보내셨소⁠!⁠”

대문 표사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대팔이 찜기를 대청 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대청 문턱에서 대팔이 일부러 발을 헛디뎠다⁠. 찜기 열 개가 와르르 무너졌다⁠. 만두 이백 개가 대청 바닥을 굴렀고⁠, 객잔 주인들이 비단 소매를 걷고 만두를 줍느라 엎드렸다⁠. 관아 사람 하나가 만두를 밟고 미끄러져 술상을 엎었다⁠. 표사들이 대청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반석이 낮게 웃었다⁠.

“⁠저거 네가 시켰냐⁠?⁠”

“⁠아니⁠. 대팔이 자기가 한다고 했어⁠. 만두는 할멈이 빚었고⁠.⁠”

“⁠진보덕은⁠?⁠”

“⁠지점장님은 모르는 일이야⁠. 대팔이 지점장님 이름만 빌렸어⁠.⁠”

나도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다⁠. 찜기 뚜껑마다 노란 밀랍이 둘러져 있었고⁠, 밀랍 위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풍운⁠」⁠. 진짜 풍운 도장은 하나뿐이었고⁠, 진보덕 계산대 맨 아래 서랍에 있었다⁠. 서랍 열쇠도 진보덕 허리춤에 하나뿐이었다⁠. 모르는 일이라던 사람이 밀랍 두 닢을 또 쓴 것이었다⁠. 등불 아래서 붉은 도장 자국 이백 개가 반짝이는 걸 보니⁠, 목이 메어서 침을 두 번 삼켰다⁠. 반석이 내 옆구리를 툭 쳤다⁠. 들어갈 때였다⁠.

반석이 먼저 담 너머 지붕으로 건너갔다⁠. 사기 조각 박힌 담을 디딤 하나 없이 넘었다⁠. 나는 반석 발자국을 그대로 밟아 따라갔다⁠. 처마⁠, 용마루⁠, 처마⁠. 연회장 등불이 발밑 기와를 붉게 물들였다⁠. 기와가 따뜻했다⁠. 대청 열기가 지붕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별채 지붕 바람 창은 사람 하나 겨우 빠질 만한 크기였다⁠. 반석이 창살을 손으로 비틀어 빼냈다⁠. 녹슨 창살이 끼익 울었다⁠. 대청에서 북이 울리는 바람에 아무도 못 들었다⁠.

“⁠짚신⁠, 들어가서 다른 건 손대지 마라⁠. 도장이랑 쪽지만⁠.⁠”

“⁠사형은⁠?⁠”

“⁠나는 지붕에서 본다⁠. 나는 이 표국에서 얼굴이 너무 알려졌어⁠.⁠”

*

금고 방 안은 생각보다 작았다⁠. 벽에 선반이 셋⁠, 선반마다 옻칠한 상자가 줄지어 있었다⁠. 바람 창으로 들어온 연회장 불빛이 바닥에 네모나게 떨어졌다⁠. 불빛 네모 안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나는 벽에 등을 붙이고 옆으로 걸었다⁠. 피하는 건 사람한테만 하는 게 아니었다⁠.

첫 선반 상자에서 쇠 냄새가 났다⁠. 열어 보니 관아 통행패가 서른 개 넘게 끈에 꿰어 있었다⁠. 항주 큰길 마차 통행패였다⁠. 반석 말대로였다⁠. 손대지 말라고 했으니 뚜껑을 도로 덮었다⁠.

둘째 선반 상자는 밀랍 냄새가 났다⁠. 뚜껑을 열자 나무 도장 하나가 비단에 싸여 있었다⁠. 「⁠풍운⁠」⁠. 내가 화방에서 호수에 빠뜨린 것과 달리 끝까지 다 깎여 있었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쓸어 봤다⁠. 진보덕이 던져 준 진짜 도장보다 획이 반 치쯤 굵었다⁠. 밀랍에 찍힌 자국을 따라 깎다 보니 밀랍이 녹아 번진 만큼 굵어진 것이었다⁠.

도장 밑에 쪽지 묶음이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 맨 위 쪽지에 「⁠화산 위설매⁠」⁠, 바로 밑에 「⁠아미 둘째 제자 보약⁠」이 보였다⁠. 몇 장 넘기자 「⁠무당 현진 밤참⁠」도 나왔다⁠. 현진은 밤참까지 먹었구나⁠. 묶음 맨 아래에 좋은 종이 쪽지가 하나 더 있었다⁠. 「⁠화산 송학 장로⁠. 밤마다 동파육⁠.⁠」 화방에서 내가 가져온 것의 다른 한 장이었다⁠. 국주는 같은 것을 두 장 받아 두고 있었다⁠.

나는 도장과 쪽지 묶음을 품에 넣고 비단 보자기로 상자 안을 채워 무게를 맞췄다⁠. 뚜껑을 덮었다⁠. 바람 창 아래로 돌아가려는데⁠, 방문 밖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 술 취한 걸음이 아니었다⁠. 반 박자도 흔들리지 않는 걸음이었다⁠.

문이 열렸다⁠. 얼굴에 칼자국이 난 표사가 등불을 들고 서 있었다⁠.

*

나는 바람 창으로 몸을 날렸다⁠. 칼자국의 손이 내 발목을 스쳤다⁠. 짚신 한 짝이 벗겨져 칼자국 손에 남았다⁠. 지붕 위로 빠져나오자 반석이 내 팔을 잡아 끌어올렸다⁠. 아래서 칼자국이 고함을 질렀다⁠.

“⁠지붕이다⁠! 금고 방에 쥐가 들었다⁠!⁠”

대청의 비파 소리가 뚝 끊겼다⁠. 지붕 아래 마당으로 표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등불이 우리를 따라 움직였다⁠. 반석이 내 등을 밀었다⁠.

“⁠담으로 가⁠. 소금 창고 지붕까지⁠.⁠”

담까지 지붕 셋이었다⁠. 첫 지붕을 넘는데 마당 한가운데서 누가 위로 솟구쳤다⁠. 배가 불룩한 몸이 그렇게 가볍게 오를 줄 몰랐다⁠. 곽만금이 두 번째 지붕 용마루에 내려앉아 우리 앞을 막았다⁠. 연회 비단옷 소매를 걷어붙인 팔뚝에 굳은살 박인 주먹 둘이 매달려 있었다⁠.

“⁠장사는 장사고⁠, 도둑은 도둑이지⁠.⁠”

곽만금이 웃었다⁠. 이번엔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웃음소리만 났다⁠.

“⁠짚신 대표⁠, 품에 든 거 내놓으시오⁠. 그러면 땅으로 걸어 나가게 해 주지⁠.⁠”

“⁠제 도장입니다⁠. 국주님이 깎으셨지만⁠.⁠”

곽만금의 주먹이 날아왔다⁠. 바람이 먼저 왔다⁠. 나는 몸을 젖혔다⁠. 주먹이 내 코끝 반 치 앞을 지나 용마루 기와를 쳤다⁠. 기와 세 장이 가루가 됐다⁠. 두 번째 주먹은 옆으로 피했고⁠, 세 번째는 아래로 피했다⁠. 네 번째에서 곽만금 발이 내 디딤 자리를 먼저 밟았다⁠. 디딜 데가 없었다⁠.

반석이 끼어들었다⁠. 곽만금의 오른팔을 두 팔로 휘감아 붙들었다⁠. 곽만금이 왼 주먹으로 반석 옆구리를 쳤다⁠. 반석 숨이 꺾였다⁠. 그래도 팔을 안 놓았다⁠.

“⁠반석아⁠. 표사 품삯으로 네 사부 벌금 갚게 해 준 게 누구냐⁠?⁠”

“⁠갚은 건 나였소⁠.⁠”

“⁠내가 키운 걸 내가 꺾게 만드는구나⁠.⁠”

“⁠짚신⁠, 가⁠!⁠”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반석이 곽만금 팔에 매달린 채 나를 봤다⁠. 멍든 눈과 성한 눈이 같이 나를 봤다⁠.

“⁠도망만 잘하면 사람은 안 죽는다며⁠! 그거 하나 배웠잖아⁠! 가⁠!⁠”

나는 갔다⁠. 가는 것 하나는 잘했다⁠. 디딤 셋⁠, 담장⁠, 소금 창고 지붕⁠. 뒤에서 기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은 아무도 안 했으니 나는 뒤를 돌아봤다⁠.

두 번째 지붕 위에서 곽만금이 반석을 떨쳐 냈다⁠. 반석이 용마루에 쓰러졌다⁠. 곽만금이 발을 들었다⁠. 발이 반석 왼 발목 위로 떨어졌다⁠. 등불 수백 개 아래서 똑똑히 봤다⁠. 소리가 났다⁠. 마른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였다⁠. 반석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연자관 처마에서 떨어진 나를 받아 줄 때처럼⁠.

표사들이 지붕으로 올라와 반석의 두 팔을 붙들고 끌어내렸다⁠. 마당 등불 아래로 반석이 사라졌다⁠. 마당 한구석에서 포두가 술병을 든 채 지붕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포두는 고개를 돌렸다⁠.

곽만금이 지붕 위에서 나를 향해 소리쳤다⁠.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목소리였다⁠.

“⁠짚신 대표⁠! 사형 발목은 내가 맡아 두지⁠. 품에 든 걸 표결 날 꺼내면⁠, 나머지 발목도 맡아 두겠소⁠!⁠”

*

할멈 지붕 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짚신 한 짝만 신고 있었다⁠. 맨발 한쪽이 기와에 긁혀 피가 났다⁠. 아프지 않았다⁠. 아픈 데가 따로 있어서 발까지 아플 자리가 없었다⁠. 골목 아래로 대팔과 짐꾼 열둘이 빈 찜기를 메고 하나둘 돌아오고 있었다⁠. 대팔이 지붕 위의 나를 올려다보고 손가락을 둘 펴 보였다⁠. 둘이 갔는데 왜 하나냐고 묻는 손가락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짚신 한 짝만 남은 발을 내려다봤다⁠.

품을 열었다⁠. 다 깎인 「⁠풍운⁠」 도장 하나와 노끈으로 묶인 쪽지 묶음⁠. 묶음 맨 아래 좋은 종이의 동파육 쪽지⁠. 반석 발목 하나와 바꾼 것들이었다⁠.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너무 가벼웠다⁠. 사형 발목이 이 정도 무게일 리가 없었다⁠. 나는 도장과 쪽지 묶음을 기름종이에 세 겹으로 싸서 허리띠 안쪽에 묶었다⁠. 별패들이 기름종이 위에서 달그락거리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골목 아래 비룡 둘째 지점 간판에 그믐 밤 바람이 부딪혔다⁠. 금박 용이 덜컹거렸다⁠. 간판 아래⁠, 내려진 풍운 옛 간판이 담벼락에 기대어 있었다⁠. 할멈이 버리지 말라며 세워 둔 것이었다⁠. 나는 도장을 꼭 쥐고 옛 간판을 내려다봤다⁠. 바래진 「⁠운⁠」 자 위로⁠, 대팔이 소매로 닦아 놓은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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