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520자)

옆에 눈다

남편 옷에서 다른 개 냄새가 난다 · 윤새벽

금요일 아침 아홉 시⁠, 동물병원 대기실은 조용했다⁠. 예리와 나는 문가 의자에 앉았다⁠. 나는 의자 위가 아니라 예리 발치에 엎드렸다⁠. 바닥 타일에서 어젯밤 빗물에 젖은 신발들의 냄새가 아직 올라왔다⁠. 진료실 뒤 닫힌 문 너머에 사람이 넷 있었다⁠. 수의사와 구청 사람⁠, 개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 훈련사와 처음 맡는 사람 하나였다⁠. 모두 종이 냄새가 났다⁠.

문이 열리고 늙은 개가 나왔다⁠. 수의사가 짧은 줄을 잡고 있었다⁠. 늙은 개는 뒷다리를 끌며 대기실을 가로질러 평가실로 걸어갔다⁠. 내 앞을 지날 때 걸음을 늦췄다⁠. 나는 일어나 코를 내밀었다⁠. 늙은 개의 코가 내 코에 닿았다⁠. 어젯밤보다 축축했다⁠. 사료를 반 그릇 먹은 개의 코였다⁠. 아이의 베개 껍데기 냄새가 늙은 개의 볼에 묻어 있었다⁠.

늙은 개는 멈추지 않고 평가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십 분 뒤에 시어머니가 왔다⁠. 머리 굳히는 약 냄새가 오늘은 옅었다⁠. 머리를 감고 굳히지 않은 채 나온 냄새였다⁠. 손목의 붕대는 얇아져 있었다⁠. 변호사는 따라오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예리 옆 의자에 앉았다⁠. 나와 가장 먼 의자가 아니라 예리 바로 옆이었다⁠.

“⁠진술서 뭐라고 쓰셨어요⁠?⁠”

예리가 물었다⁠. 시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가방을 무릎에 올렸다⁠. 가방 안에서 종이 냄새가 났다⁠. 어젯밤에 쓴 종이였다⁠. 잉크가 손에 묻어 있었다⁠.

“⁠너는 왜 안 떠나니⁠. 친정 가 있다며⁠.⁠”

“⁠아직 안 정했어요⁠.⁠”

“⁠정하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라⁠. 이번엔 내가 듣는 사람 하자⁠.⁠”

평가실 문이 열리고 구청 사람이 시어머니를 불렀다⁠. 시어머니가 들어갔고 문이 닫혔다⁠. 사람들은 문이 닫히면 안의 말이 밖으로 안 새는 줄 안다⁠. 개의 귀에는 다 들린다⁠.

“⁠…제가 애 팔을 억지로 끌었습니다⁠. 애가 숨을 못 쉬는데도요⁠. 저 개는 애를 지켰습니다⁠. 손목은 제가 내민 겁니다⁠. 처분 원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진술서는 거둡니다⁠.⁠”

시어머니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없었다⁠. 떨리지도 않았다⁠. 가장 무거운 말을 가장 담담하게 했다⁠. 예리가 내 귀가 문 쪽으로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예리는 내 귀를 보고 무슨 말이 오가는지 짐작했다⁠.

삼십 분 뒤에 문이 다시 열렸다⁠. 늙은 개는 주둥이에 철망 입마개를 하고 나왔다⁠. 수의사가 예리에게 말했다⁠. 밖에 나갈 때는 입마개와 짧은 줄⁠, 일 년 동안 해마다 한 번 다시 보기⁠. 조건을 지키면 집에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애 엄마가 대기실로 뛰어 들어와 늙은 개를 끌어안았다⁠. 늙은 개는 입마개 너머로 애 엄마의 턱을 맡았다⁠. 늘어진 귀가 처음으로 위로 들렸다⁠.

시어머니는 대기실을 나가다가 문 앞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도 어젯밤에 애 앞에 서더라⁠.⁠”

나는 시어머니를 보았다⁠. 시어머니가 가방에서 박하사탕 하나를 꺼냈다가⁠, 개는 사탕을 못 먹는다는 것이 생각났는지 도로 넣었다⁠. 대신 손을 내 코앞에 내밀었다⁠. 손에서 잉크와 박하와 아물어 가는 살 냄새가 났다⁠. 나는 맡았다⁠. 맡는 것은 맡는 것이다⁠. 꼬리는 흔들지 않았다⁠. 아직은⁠.

*

이 주 뒤⁠, 법원 마당은 바람이 찼다⁠. 은행잎이 다 떨어진 나무 밑에 벤치가 있었다⁠. 개는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예리와 나는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경모와 애 엄마는 아침 열 시에 조정실로 들어갔다⁠. 경모는 넥타이를 똑바로 매고 들어갔다⁠. 애 엄마는 빵 공장에서 곧장 와서 소매 끝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두 사람은 계단 앞에서 서로를 보고 아무 말 없이 같이 올라갔다⁠.

시어머니도 왔다⁠. 시어머니는 조정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왔다⁠. 벤치 반대편 끝에 앉았다⁠. 나와 예리와 시어머니가 한 벤치에 앉았다⁠. 비둘기가 우리 발밑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비둘기를 쫓지 않았다⁠. 오늘은 쫓을 기분이 아니었다⁠. 비둘기 하나가 내 앞발을 쪼았다⁠. 나는 앞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비둘기가 다시 쪼았다⁠. 예리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시어머니가 핸드백을 휘둘러 비둘기를 쫓아 주었다⁠.

시어머니가 가방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서 종이돈 냄새가 났다⁠. 은행 창구에서 갓 나온 냄새가 아니었다⁠. 오래 서랍에 있다가 나온 냄새였고⁠, 우체국 소인 냄새가 났다⁠. 팔 년 전 애 엄마가 등기로 돌려보낸 봉투였다⁠.

“⁠이거 애 엄마한테 줘라⁠. 늙은 개 다리 수술비⁠. 내가 주면 안 받는다⁠.⁠”

“⁠어머님이 직접 주세요⁠.⁠”

예리가 봉투를 받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봉투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팔 년 전에도 이 봉투를 내 손으로 줬다⁠. 안 받더라⁠.⁠”

“⁠그때는 애를 지우라고 주셨잖아요⁠. 이번엔 다르잖아요⁠. 다른 걸 다르다고 직접 말씀하세요⁠. 저희 엄마가 그러셨어요⁠.⁠”

시어머니가 봉투를 오래 보았다⁠. 굳히지 않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바람에 날렸다⁠. 시어머니는 머리를 손으로 누르지 않았다⁠.

열두 시에 조정실 문이 열렸다⁠. 경모와 애 엄마가 같이 계단을 내려왔다⁠. 경모의 귀 뒤는 조용했고⁠, 애 엄마의 목덜미도 조용했다⁠. 둘 다 겁 냄새가 나지 않았다⁠. 지쳤을 뿐이었다⁠.

“⁠애는 엄마랑 살아⁠.⁠”

경모가 벤치 앞에 와서 말했다⁠. 시어머니를 보았다⁠.

“⁠청구서는 내가 거뒀어⁠. 대신 조정으로 정했어⁠. 양육비 다달이 법대로 보내고⁠, 주말에는 내가 데리고 있고⁠, 애 엄마 새벽 근무 날은 내가 아침 일곱 시에 가서 학교 데려다줘⁠. 애한테는 우리 둘이 같이 다시 말할 거야⁠. 아빠가 몰라서 못 왔다는 거⁠, 엄마가 아빠 없다고 한 거⁠. 둘 다 말할 거야⁠. 애가 물어보는 대로⁠.⁠”

시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애 엄마가 시어머니 앞으로 왔다⁠.

“⁠한 달에 한 번이요⁠. 애가 원하면요⁠. 우리 집 마당에서요⁠. 할매도 같이 있을 거예요⁠. 할매가 어머님 냄새를 아니까요⁠. 할매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예요⁠.⁠”

시어머니가 일어났다⁠. 봉투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시어머니의 손이 떨렸다⁠. 미용실에서 남의 머리카락을 수만 번 만진 손이 떨렸다⁠.

“⁠늙은 개 다리⁠. 수술비⁠. 다른 데는 쓰지 말고⁠.⁠”

애 엄마는 봉투를 보았다⁠. 시어머니를 보았다⁠. 소인 찍힌 봉투를 알아보았다⁠. 애 엄마의 목덜미에서 땀이 났다가 가라앉았다⁠. 화난 땀이 아니었다⁠.

“⁠할매 수술비로만 쓸게요⁠.⁠”

애 엄마가 봉투를 받았다⁠. 하얀 봉투가 세 번째로 손을 옮겼고⁠,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경모가 예리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 앞이기도 했다⁠.

“⁠나 이제 숨긴 거 없어⁠. 아무것도⁠.⁠”

예리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건 범돌이 정해⁠.⁠”

*

예리는 조정이 끝난 주 토요일에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 베란다 방석은 예리 어머니가 털어서 내 짐에 넣어 주었다⁠. 우리 집 거실에 내 방석이 둘이 되었다⁠.

현관에서 예리가 경모에게 말했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이었다⁠.

“⁠평일 아침 일곱 시에 애 학교 데려다주는 거⁠, 범돌 산책이랑 같이 해⁠. 나도 같이 가⁠. 앞으로 그 집 가는 길은 셋이 가⁠. 그리고 하나 더⁠.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자기 외투 냄새로 알기 전에 자기 입으로 먼저 말해⁠.⁠”

“⁠응⁠.⁠”

“⁠범돌은 어디도 안 가⁠.⁠”

“⁠응⁠. 범돌은 어디도 안 가⁠.⁠”

경모의 귀 뒤는 조용했다⁠. 나는 경모의 신발에 코를 댔다⁠. 골판지와 지게차 기름⁠. 맨 위에 라벤더와 버터가 아주 옅게 묻어 있었다⁠. 이번에는 숨긴 냄새가 아니었다⁠. 예리가 아는 냄새였다⁠. 아는 냄새는 다른 집 냄새가 아니다⁠. 이웃 냄새다⁠.

밤에 안방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들어갔다⁠. 침대 한가운데⁠, 예리와 경모 사이에 올라가 몸을 말았다⁠. 경모가 침대 끝으로 밀려나 새우처럼 몸을 말았다⁠. 예리가 웃었다⁠. 소리 나는 웃음이었다⁠. 오래간만에 듣는 소리였다⁠.

*

십이월 첫 일요일⁠, 첫눈이 왔다⁠.

창밖이 하얬다⁠. 아침 냄새가 달랐다⁠. 눈은 냄새를 덮는다⁠. 덮인 냄새 위로 차갑고 깨끗한 냄새가 얇게 깔린다⁠. 우리 종은 눈을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은 산책을 거부해도 눈 오는 날은 문 앞에서 먼저 운다⁠.

경모가 빨간 가슴줄을 들고 현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침마다 꿇던 무릎이었다⁠. 다섯 달 동안 졌던 무릎이었다⁠.

“⁠범돌⁠. 형이랑 가자⁠.⁠”

나는 경모 앞으로 걸어갔다⁠. 경모 앞에 서서 가슴을 내밀었다⁠. 크림색 가슴 털이 경모의 손등에 닿았다⁠. 경모가 고리를 내 앞다리 사이로 넣었다⁠. 딸깍⁠. 딸깍⁠. 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경모가 고리를 잠그고도 한참 손을 떼지 못했다⁠. 예리가 칫솔을 문 채 욕실 문에 기대어 보고 있었다⁠.

“⁠이것 봐⁠. 얘는 사람 가려⁠.⁠”

“⁠나도 사람이야⁠.⁠”

“⁠이제 범돌한테도 그런가 봐⁠.⁠”

서열은 정했다⁠. 맨 위가 예리⁠, 다음이 나⁠, 다음이 경모⁠. 경모는 맨 아래다⁠. 다만 문 안이다⁠.

나는 현관을 나서기 전에 거실로 돌아가 방석 하나를 물었다⁠. 친정에서 온 방석⁠, 해가 드는 베란다 구석에 있던 방석이었다⁠. 방석은 내 몸만 했다⁠. 입으로 물고 끌자 방석 끝이 바닥에 쓸렸다⁠. 예리와 경모가 동시에 소리를 냈다⁠.

“⁠범돌⁠, 그거 어디 가져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후문 경비실 앞에서도 방석을 놓지 않았다⁠. 경비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웃었다⁠.

“⁠여우가 이사 가네⁠!⁠”

큰길을 건너고 오래된 동네로 들어갔다⁠. 담장 위 감나무에 남은 감 몇 개 위로 눈이 얹혀 있었다⁠. 방석 끝이 눈에 젖어 무거워졌다⁠. 무거워도 놓지 않았다⁠. 경모가 대신 들어 주겠다고 손을 내밀었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 것은 내가 준다⁠.

골목 끝 파란 대문이 열려 있었다⁠. 아이가 털모자에 하늘색 마스크를 쓰고 대문 앞에서 기다렸다⁠. 경모를 보자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라고도 아빠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경모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손만 흔들었다⁠. 경모도 손만 흔들었다⁠. 손 흔드는 것으로 충분한 아침이 있다⁠.

애 엄마가 대문 안쪽에서 늙은 개의 입마개를 채우고 있었다⁠. 늙은 개의 오른쪽 엉덩이 털이 동그랗게 깎여 있었다⁠. 다음 주에 수술한다고 했다⁠. 깎인 자리에서 소독약 냄새가 났다⁠.

나는 마당으로 들어가 댓돌 아래⁠, 늙은 개가 눕는 시멘트 바닥에 방석을 내려놓았다⁠. 젖은 방석을 앞발로 두 번 눌러 평평하게 폈다⁠. 늙은 개가 다가와 방석을 맡았다⁠. 다섯 해 전의 내 젖내와 예리 어머니 집의 햇볕 냄새를 맡았다⁠. 늙은 개가 방석에 올라가 천천히 몸을 말았다⁠. 고개는 미닫이문 쪽으로 두었다⁠. 아이가 웃었다⁠. 웃음 끝에 쌕 소리가 섞이지 않았다⁠.

산책은 다섯이 나갔다⁠. 경모가 두 줄을 잡았다⁠. 한 손에 내 줄⁠, 한 손에 늙은 개의 줄⁠. 예리와 애 엄마가 뒤에서 걸었고⁠, 아이가 둘 사이에서 눈을 밟았다⁠. 예리와 애 엄마는 많이 말하지 않았다⁠. 아이가 넘어질 뻔할 때 둘이 동시에 손을 뻗었다가⁠, 동시에 거두었다⁠.

골목 입구 전봇대 앞에서 늙은 개가 멈췄다⁠. 눈 위에 쪼그려 앉았다⁠. 하얀 눈에 노란 자국이 번지고 김이 올랐다⁠. 늙은 개가 일어나 옆으로 비켰다⁠. 나를 보았다⁠. 늘어진 귀가 한 번 흔들렸다⁠.

나는 전봇대로 갔다⁠. 늙은 개의 자국 앞에서 다리를 들었다가 내렸다⁠. 덮지 않았다⁠. 반 걸음 옆으로 가서 다시 다리를 들었다⁠.

전봇대 밑 눈 위에 두 자국이 나란히 김을 올렸다⁠. 늙은 암컷의 것과 젊은 수컷의 것⁠. 경모가 두 줄을 한 손에 모아 쥐고 다른 손으로 아이의 털모자에 앉은 눈을 털었다⁠. 예리가 뒤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봇대를 찍었다⁠. 애 엄마가 왜 그런 걸 찍느냐고 웃었다⁠. 김은 오래 올라갔다⁠. 눈이 두 자국 위로 계속 내렸고⁠, 자국은 쉽게 덮이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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