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30자)
연나라 쪽 자리
적국 황태자를 인질로 데려왔더니 내 책사가 되었다 · 윤재하
하나라 사람들은 걸어서 강을 건넜다. 백하 얼음 위로 서른 명 남짓이 한 줄로 걸어왔다. 말은 남쪽 기슭에 두고 왔다. 수레도 없었다. 사람만 왔다. 맨 앞에 선 사람이 짙은 녹색 장포를 입고 있었고, 그 장포 자락이 얼음 위에서 바람에 펄럭였다.
“사람은 받친다며.”
맹초가 고개 아래 들판에 서서 중얼거렸다.
“말은 못 받친다며. 그래서 사람만 오는 거요?”
“하나라 사람들도 백하를 압니다.”
“그럼 두 해 전엔 왜 몰랐소?”
“그때는 제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맹초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품에서 비단 조각을 꺼내 펴 보았다. 맹 자가 쓰여 있었다. 오늘 증인 자리에 쓸 글자였다. 그는 그것을 한 번 들여다보고 도로 품에 넣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획 순서를 외우고 있었다.
협상 장막은 고개 아래 들판 한가운데에 쳐 있었다. 소가죽을 이어 붙인 큰 장막이었다. 장막 안쪽 둘레에는 병부 군사 마흔이 창을 세우고 섰다. 곽윤이 어제 정한 대로였다. 위강의 북방군 이백은 장막 바깥에 둘러섰다. 장막 천 한 겹이 그 둘 사이에 있었다.
*
장막 안에 긴 탁자 하나가 놓였다. 탁자 북쪽이 연나라 자리였고, 남쪽이 하나라 자리였다. 북쪽 가운데 의자 하나는 대표석이었다. 그 오른쪽이 감군 자리였고, 왼쪽이 장군 자리였다.
위강은 대표석 앞에 서서 의자를 뒤로 뺐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앉으시오.”
“장군의 자리입니다.”
“협정을 짠 사람이 앉는 자리요.”
곽윤이 앞으로 나왔다.
“인질이 연나라 대표석에 앉습니까? 하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인질이 아니라 책사요. 폐하가 붙인.”
위강은 의자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낭중, 하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는 하나라 사람들이 정하오.”
나는 대표석에 앉았다. 사슬이 의자 다리에 감겨 한 번 소리를 냈다. 위강이 내 왼쪽에 앉았다. 곽윤이 오른쪽에 앉았다. 손난로를 탁자 아래로 내렸다.
장막 입구가 걷혔다. 찬바람과 함께 하나라 사람들이 들어왔다. 진목이 먼저 들어와 옆으로 비켜섰다. 그 뒤로 짙은 녹색 장포가 들어왔다.
아우는 말랐다. 두 달 전 국경에서 헤어질 때보다 얼굴이 한 겹 깎여 있었다. 아우는 아버지의 장포를 줄여 입고 있었다. 어깨선이 그의 어깨보다 한 치쯤 바깥에 있었다. 아우는 하나라 대표석 앞에 섰다. 탁자 건너 나를 보았다. 내가 앉은 자리를 보았다. 그다음에 탁자 밑으로 눈을 내려 내 발목을 보았다.
아우에게서 차 냄새가 났다. 마른 흙과 꿀을 섞은 것 같은 그 냄새였다.
“형님.”
“폐하.”
아우의 입술이 한 번 떨렸다. 그는 앉았다. 진목이 그 오른쪽에 앉았다.
*
“배를 댔습니다.”
아우가 먼저 말했다. 협상의 첫마디가 협정 이야기가 아니었다. 곽윤이 탁자 아래에서 손난로를 쥐는 소리가 났다.
“나루에서 밤새 기다렸습니다. 불도 켰습니다. 왜 안 오셨습니까?”
“불을 세 번씩 끊어서 켜라고 누가 가르쳐 드렸습니까?”
아우가 대답하지 않았다. 진목이 아우를 보았다. 나는 그 눈길에서 진목도 그 대답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나루에 연나라 병부 군사가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새벽에 물러갔습니다.”
곽윤이 의자에서 몸을 아주 조금 바로 했다. 위강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제가 갔다면 그 군사들에게 붙잡혔겠지요. 도망치는 인질이 붙잡히면 그 인질을 둔 장군이 목을 내놓습니다. 폐하께 배를 대라고 귀띔한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압니다.”
나는 열한 줄 협정문을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
“그 이야기는 협정을 읽고 나서 하겠습니다. 오늘 여기 온 사람이 이백 명이 넘습니다. 그 사람들은 형제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아우가 협정문을 집어 들었다. 진목이 옆에서 같이 읽었다. 첫 줄은 청령 능선을 국경으로 한다는 줄이었다. 둘째 줄은 능선 북쪽 마을 셋의 우물과 땅과 나무는 마을 것으로 둔다는 줄이었다. 셋째 줄은 고개 넷 아래에 봄가을로 호시를 연다는 줄이었다. 아우는 둘째 줄에서 오래 멈췄다.
“난곡 사람들이 형님에게 돌을 던졌다고 들었습니다.”
“이마에 맞았습니다. 왼쪽입니다.”
아우가 내 이마를 보았다. 딱지가 앉은 자리였다.
“그래도 이 줄을 넣으셨습니까?”
“그래서 넣었습니다.”
아우가 협정문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붓을 쥘 때처럼 종이를 쥘 때도 아우의 손가락에는 힘이 너무 들어갔다. 협정문 귀퉁이가 그의 손가락 아래에서 구겨졌다.
“형님은 셈을 하셨습니다. 열둘보다 셋이 낫다고. 진 시랑께서 셈은 다 맞다고 하셨습니다.”
“폐하께서는 무엇이 틀렸다고 보십니까?”
“형님이 그 자리에 앉아 계신 것이 틀렸습니다.”
아우가 탁자 건너 나를 똑바로 보았다. 열한 살 때 울기 직전에 짓던 얼굴이었다. 지금은 울지 않았다.
“하나라 사람들은 이 협정을 읽지 않습니다. 하나라 황태자가 연나라 대표석에 앉아 하나라에 협정을 내민 장면만 봅니다. 저는 이 협정에 서명할 수 있습니다. 셈이 맞으니까요. 그런데 서명하는 순간 하나라에서 저는 형을 팔아 연나라와 거래한 황제가 되고, 형님은 나라를 판 황태자가 됩니다. 둘 다 그렇게 됩니다.”
“서명하지 않으시면요?”
“협정이 깨지면 장군은 옥에 들고 형님은 재상부로 간다고 들었습니다.”
아우가 위강을 보았다. 처음으로 위강을 보았다. 위강은 그 눈길을 받았다. 피하지 않았다.
“장군, 형님 발목의 저 쇠는 장군이 채우셨습니까?”
“처음에는 내가 채웠소.”
“지금은요?”
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보지도 않았다. 장군부에서 두 달을 산 나는 그 침묵을 읽을 수 있었다. 아우는 읽지 못했다.
“제가 채웠습니다. 오늘 새벽에.”
내가 말했다. 아우의 눈이 커졌다.
“인질이 서명해야 폐하께서 나중에 이 협정을 연나라가 강요한 것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라에 돌아가셔서 그렇게 말씀하십시오. 형이 쇠를 차고 앉아 있었다고. 그 문은 제가 열어 두었습니다.”
*
아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막 밖에서 바람이 소가죽을 치는 소리가 났다. 병부 군사들의 창끝이 그 소리에 맞춰 아주 조금씩 흔들렸다.
그다음에 아우가 소매 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형님이 문을 하나 열어 두셨으니 저도 하나 열겠습니다.”
진목이 아우의 팔을 잡았다. 아우가 그 손을 떼어 냈다. 부드럽게 떼어 냈다.
“진 시랑, 이건 제가 해야 합니다.”
아우는 종이 두 장을 탁자 위에 나란히 펼쳤다. 첫 장은 연나라 종이였다. 하나라 종이보다 희고 두꺼웠다. 맨 끝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연나라 재상의 도장이었다. 곽윤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섰다.
“정전 한 달 전에 연나라 재상이 저에게 보낸 밀서입니다.”
아우의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이를 물고 있었다.
“정전 협정에 하나라 황태자의 머리를 보낸다는 줄을 넣겠다. 하나라 둘째 황자가 그 줄에 동의하면, 연나라는 둘째 황자가 보위에 오르는 것을 돕겠다.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둘째 장은 하나라 종이였다. 얇고 누런빛이 돌았다. 그 위에 아우의 글씨가 있었다. 획 끝이 떨리는 글씨였다. 맨 끝에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귀퉁이가 둥글게 깨진 휘 자였다.
“그리고 이건 제가 재상에게 보낸 답입니다. 사본입니다. 원본은 재상이 가지고 있습니다.”
아우가 나를 보았다.
“형님, 저는 형님 머리에 서명했습니다.”
장막 안의 누구도 숨을 쉬지 않았다. 진목이 눈을 감았다. 위강의 손이 탁자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나는 아우의 도장을 보았다. 연못가에서 내가 손톱으로 문질러 둥글게 다듬어 준 그 귀퉁이였다. 그날 나는 아무도 이 도장을 흉내 내지 못할 거라고 말해 주었다. 아무도 흉내 내지 않았다. 아우가 직접 찍었다.
“그런데 형님 머리가 오지 않았습니다. 몸이 갔습니다. 장군이 바꿨다고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보위에 앉아 있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편지에 쓴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배도 진심이었습니까?”
“배는 진심이었습니다. 불을 세 번 끊어 켜라고 한 것은 재상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걸 오늘 아침 나루에서 병부 군사들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아우가 재상의 밀서를 내 쪽으로 밀었다.
“형님, 이걸 가지십시오. 연나라 황제가 이걸 보면 재상은 끝납니다. 적국 황자와 몰래 거래한 재상이니까요. 이걸로 장군도 살리시고 협정도 형님 뜻대로 하십시오. 대신…”
아우가 숨을 한 번 쉬었다.
“대신 저와 같이 하나라로 돌아오십시오. 황위는 편지에 쓴 대로 드리겠습니다. 저는 형님 머리에 서명한 손으로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
곽윤이 일어섰다. 손난로가 탁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뚜껑이 열리고 재가 마른 풀 위에 쏟아졌다.
“그 종이는 연나라 재상을 모함하는 위서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았다.
“감군의 이름으로 거둡니다. 병부 군사는 들어라. 탁자 위의 종이를 거두고, 하나라 황제를 장막 밖으로 모셔라.”
장막 안쪽 둘레의 병부 군사 마흔이 창을 내리고 칼을 뽑았다. 마흔 개의 칼이 칼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진목이 아우 앞으로 몸을 던졌다. 하나라 수행원들이 소매 안에서 짧은 칼을 꺼냈다.
나는 탁자 위에 손을 뻗었다. 재상의 밀서와 아우의 답장을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사슬이 의자 다리에 걸려 몸이 앞으로 쏠렸다. 병부 군사 하나가 내 손목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그때 내 왼쪽에서 위강이 일어섰다. 그는 장막 안에서 칼을 뽑지 않았다. 장막 안에는 장군의 칼이 들어오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는 내 손목을 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칼날이 탁자 모서리에 박혔다. 그리고 그가 장막 천을 향해 소리쳤다. 짧게, 한 마디였다.
“베어라.”
장막 밖에서 칼 이백 자루가 동시에 소가죽을 갈랐다. 장막 북쪽 벽이 위에서 아래로 길게 찢어졌다. 찢어진 자리로 국경의 마른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고, 그 바람 속에 북방군 이백이 서 있었다. 맨 앞에 맹초가 있었다. 칼을 쥔 손 반대편 손에 맹 자를 쓴 비단 조각을 아직 쥐고 있었다.
종이 두 장이 내 손 안에서 바람에 펄럭였다. 한 장에는 연나라 재상의 도장이, 다른 한 장에는 귀퉁이 깨진 아우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탁자 건너에서 아우가 진목의 어깨 너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연경까지는 말로 열흘이었다. 하나라 도성까지는 강 건너 엿새였다. 나는 두 장을 다 쥐고 있었고, 어느 쪽으로 먼저 가져갈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