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51자)

면접관 자리에 앉은 지원자 41

면접관 속마음이 들린다 · 피오담

2026년 12월 18일 금요일 아침 아홉 시⁠, 7층 사장실 소파 맞은편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지원자 의자처럼 혼자였다⁠. 이번엔 마상구 대표 혼자였다⁠. 전무도 법무팀장도 없었다⁠. 대표는 니트 조끼 대신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고⁠, 손목의 염주를 풀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귀가 또 넓어졌다⁠. 성수동 골목까지 들렸다⁠. 사옥 앞 보도에서⁠, 건너편 카페 창가에서⁠, 지하철역 계단에서⁠, 아침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7층 창을 올려다보며 나를 재었다⁠. ‘⁠A 씨 오늘 출근하나⁠.⁠’ ‘⁠사직했대⁠.⁠’ ‘⁠원래 1등이었대⁠.⁠’ 기사는 밤사이 방향을 바꿔 있었다⁠.

나는 엄마 목소리 대신 대표 하나에 귀를 모았다⁠.

‘⁠조카를 지키려다 조카를 잃었다⁠. 처남도 잃었다⁠. 이 회사는 내 부엌에서 시작했는데⁠.⁠’

“⁠원본 가져왔어요⁠?⁠”

나는 투명 파일을 탁자에 올렸다⁠. 대표가 평가표 석 장을 한 장씩 넘겼다⁠. 「⁠41⁠」 「⁠42⁠」 「⁠43⁠」⁠. 볼펜 동그라미 속 1⁠, 3⁠, 2⁠. 대표는 지원의 평가표를 오래 보았다⁠. 합계 칸에 동그라미 친 「⁠3⁠」 위를 엄지로 한 번 쓸었다⁠.

“⁠3등이었네⁠, 우리 지원이⁠. 드럼은 1등이라던데⁠.⁠”

‘⁠처음부터 3등이었는데 나는 1등이라고 믿고 싶었다⁠.⁠’

대표가 파일을 덮었다⁠.

“⁠오늘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내려놓습니다⁠. 상장 심사는 철회했어요⁠. 회사는 전문경영인이 맡고⁠, 나는 이사회에만 남아요⁠.⁠” 대표의 목소리는 사장실 첫날보다 느렸다⁠. “⁠신입 채용은 원래 점수대로 다시 합니다⁠. 1등 백윤아⁠, 2등 탁성우⁠. 둘 다 정규직⁠. 지원이 합격은 취소합니다⁠. 본인이 원하니까⁠.⁠”

“⁠소경민 팀장님은요⁠?⁠”

“⁠징계는 피할 수 없어요⁠. 감봉 석 달⁠. 그래도 인사팀장으로 남게 할 겁니다⁠.⁠” 대표가 염주를 집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고친 사람이 고치는 법을 제일 잘 알아요⁠.⁠”

‘⁠소 팀장을 내보내면 다음 사람이 또 시키는 대로 고친다⁠.⁠’

“⁠조건이 하나 있어요⁠.⁠”

대표가 웃었다⁠. 사장실 첫날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또 조건이에요⁠?⁠”

“⁠봄 공채 최종 면접에 제가 면접관으로 들어가게 해 주세요⁠. 실무 면접관으로요⁠.⁠”

‘⁠이 애가 면접관이면 아무도 못 고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좋아요⁠. 대신 나도 하나 걸게요⁠.⁠” 대표가 책상 서랍에서 USB 하나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10월 21일 녹음⁠, 회사는 안 지웁니다⁠. 백윤아 씨도 그렇게 들어왔었다는 걸 회사가 기억하게⁠.⁠”

“⁠지우지 마세요⁠.⁠”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USB를 도로 서랍에 넣다가 멈췄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그날 정말 성 보고 맞힌 거예요⁠?⁠”

“⁠아뇨⁠. 들었어요⁠.⁠”

“⁠누구한테⁠?⁠”

“⁠사장님 속에서요⁠.⁠”

대표는 한참 나를 보다가 크게 웃었다⁠. 믿지 않는 웃음이었다⁠. 웃음 아래서 속이 들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렇게 진지하게 하니 마케팅을 시켜야지⁠.⁠’

*

2027년 1월⁠, 백조세탁 계산대 위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흘렀다⁠. 「⁠검찰⁠, 결담 전 전무 업무방해 혐의 기소⁠… 노동청⁠, 협의회 회원사 채용 실태 조사 착수⁠」⁠. 화면 속에서 도형석 전무가 검찰청 계단을 내려갔다⁠. 남색 넥타이⁠, 반백 머리⁠. 기자들의 마이크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단을 다 내려가서 한 번 멈췄다가 안경을 고쳐 썼다⁠.

엄마가 다리미를 든 채 화면을 보았다⁠. “⁠저 사람 넥타이 드라이 맡기면 잘해 줄 텐데⁠.⁠”

경민 팀장은 수사에 협조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감봉 석 달을 받은 다음 날⁠, 경민 팀장에게서 사진이 한 장 왔다⁠. 대학 등록금 고지서였다⁠. 맨 위에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납부 완료⁠」⁠. 사진 밑에 한 줄이 붙어 있었다⁠. 「⁠백조세탁 재킷 입고 은행 갔어요⁠.⁠」

2027년 1월 11일 월요일 여덟 시 사십 분⁠, 나는 성우와 함께 6층 마케팅팀 문을 밀었다⁠. 서른 명의 속이 한꺼번에 돌아보았다⁠. 숫자는 출근 첫날과 같았는데 소리가 달랐다⁠.

‘⁠원래 1등⁠.⁠’ ‘⁠저 사람이 2등⁠.⁠’ ‘⁠둘 다 원래 점수로⁠.⁠’ ‘⁠사직서 냈다가 다시 왔대⁠.⁠’ ‘⁠이번엔 아무도 정한 사람이 없대⁠.⁠’

차동만 팀장이 작은 종이 한 장을 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성수역 뒤 칼국수 집 도장 판이었다⁠. 열 칸 가운데 아홉 칸에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다⁠.

‘⁠12월 내내 혼자 다니면서 찍었다⁠. 돌아올 줄 알았다⁠. 아니다⁠, 돌아오길 바랐다⁠. 마지막 칸은 같이 가서 찍자⁠.⁠’

“⁠점심은 오늘부터 다시 백윤아 씨가⁠.⁠” 팀장이 말했다⁠.

성우는 내 옆자리에 앉아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사진 속 성우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성우가 나를 재었다⁠. ‘⁠이 사람 옆자리라니⁠. 3등 만든 사람 옆자리⁠. 근데 2등 찾아 준 사람 옆자리⁠.⁠’ 성우는 소리 내서는 “⁠잘 부탁드립니다⁠, 1등님⁠”이라고 했다⁠.

성우의 아버지가 첫 출근 날 아침 6층으로 떡 상자를 보냈다⁠. 상자에 붙은 쪽지는 반듯한 글씨였다⁠. 「⁠우리 아들 2등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성우는 쪽지를 떼어 지갑에 넣었다⁠. 출근 첫 주에 성우는 회의 때마다 토익 점수를 말하려다 참았고⁠, 수요일부터는 참는 데 성공했다⁠.

미란 대리는 1월 26일에 학자금 대출 마지막 회차를 넣었다⁠. 인사팀 단톡방에 「⁠상환 완료⁠」 네 글자를 올렸고⁠, 차동만 팀장이 축하한다며 두 팀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메뉴는 팀장이 직접 골랐다⁠. 칼국수였다⁠. 26일은 화요일이었고⁠, 팀장은 문 닫힌 칼국수 집 앞에서 두 팀을 세워 둔 채 휴무 안내문을 한참 읽었다⁠. 점심은 이튿날 다시 샀다⁠.

*

2월 마지막 토요일⁠, 홍대 앞 지하 공연장⁠. 「⁠반지하 사중주⁠」의 첫 단독 공연이었다⁠. 객석은 마흔 석이었고 서른여섯 석이 찼다⁠. 나와 엄마와 예슬과 성우가 앞줄에 앉았다⁠. 엄마는 공연장에 처음 와 본다며 핸드백에서 귤 네 개를 꺼내 하나씩 나눠 주었다⁠. 첫 곡이 시작되자 엄마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막은 채로 나를 보았다⁠. ‘⁠시끄럽다⁠. 근데 잘 친다⁠. 우리 딸 동기가 저렇게 잘 친다⁠.⁠’ 두 번째 곡부터 엄마는 귀에서 손을 떼고 귤을 까면서 무릎을 쳤다⁠. 박자가 정확했다⁠. 다리미를 서른 해 민 손이었다⁠.

지원은 검은 민소매 차림으로 드럼 뒤에 앉았다⁠. 오른손 검지 굳은살에 결담 수분크림을 바르고 나왔다고⁠, 공연 전 대기실에서 자랑했다⁠. 첫 곡의 첫 박이 떨어졌다⁠. 쿵⁠, 따⁠, 쿵쿵⁠, 따⁠. 면접장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치던 박자였다⁠.

맨 뒷줄 벽 앞에 검은 패딩을 입은 사람이 혼자 서 있었다⁠. 짧게 깎은 흰머리⁠, 손목의 나무 염주⁠. 마상구 대표는 박수도 치지 않고 팔짱만 낀 채 드럼만 보았다⁠. 공연 중간에 대표가 나를 발견했고⁠, 나를 재었다⁠.

‘⁠저 애가 우리 조카를 드러머로 만들었다⁠. 아니다⁠, 원래 드러머였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대표의 팔짱 낀 팔 위에서 손가락 하나가 까딱거렸다⁠. 박자가 반 박씩 늦었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대표는 박수를 세 번 치고 누구보다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지원은 드럼 뒤에서 대표의 뒷모습을 보았다⁠. 스틱을 머리 위로 한 번 들었다가 내렸다⁠.

*

2027년 3월 22일 월요일 아침 열 시⁠, 결담 7층 대회의실⁠. 흰 벽에 큰 창⁠, 창밖 은행나무 가지에 연둣빛 잎눈이 돋아 있었다⁠. 긴 책상에 면접관 넷이 앉았다⁠. 맨 왼쪽은 외부 면접위원으로 온 대학 교수였다⁠. 협의회가 1월에 정한 새 규칙으로⁠, 최종 면접관 가운데 하나는 회사 밖 사람이어야 했다⁠. 다음은 인사팀장 소경민⁠. 갈색 머리를 뒤로 묶고 베이지 재킷을 입었다⁠. 다음 자리에 마케팅팀장 차동만⁠. 넥타이를 맸고⁠, 노트북을 열어 놓고 볼에 손을 괴었다⁠. 맨 오른쪽이 실무 면접관 백윤아였다⁠. 남색 정장 재킷에 흰 블라우스⁠. 엄마가 새벽 다섯 시에 다렸다⁠.

나는 명패를 보았다⁠. 「⁠실무 면접관 백윤아⁠」⁠. 다섯 달 전 이 방에서 내가 목에 걸었던 것은 번호표였다⁠.

면접 십 분 전⁠, 경민 팀장이 평가표 묶음을 면접관마다 나눠 주었다⁠. 내 앞에 놓으면서 한 장을 더 얹었다⁠. 서명 칸만 있는 빈 종이였다⁠.

“⁠끝나면 넷이 여기 서명하고⁠, 백윤아 씨가 들고 내려가요⁠. 원본은 이것 하나예요⁠. 보정은 없어요⁠.⁠”

‘⁠이 애가 옆에 있으면 고칠 수가 없다⁠. 다행이다⁠. 고치라는 사람도 이제 없고⁠.⁠’

“⁠팀장님⁠.⁠”

“⁠네⁠.⁠”

“⁠따님은 기숙사 들어갔어요⁠?⁠”

경민 팀장이 웃었다⁠. “⁠작은애가 언니 방 차지했어요⁠. 둘이 문자로 싸워요⁠.⁠” 팀장의 속은 웃음보다 길었다⁠. ‘⁠작은애 원서는 2년 뒤⁠. 그때는 어디서도 3등이 되지 않게⁠.⁠’

지원자 셋이 들어왔다⁠. 맞은편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가운데 의자의 지원자가 목에 건 번호표를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마른 몸에 짧은 커트 머리⁠, 회색 정장⁠, 운동화를 신고 왔다가 대기실에서 구두로 갈아 신은 티가 났다⁠. 발뒤꿈치에 반창고가 보였다⁠.

「⁠지원자 41⁠」

면접관 의자에 등이 닿는 순간이었다⁠.

‘⁠점심 뭐 먹지⁠.⁠’

차동만 팀장이었다⁠. 나는 웃음을 삼켰다⁠. 팀장의 속이 이어졌다⁠. ‘⁠월요일이니까 칼국수는 연다⁠. 41번 면접관한테 확인받자⁠.⁠’

그리고 맞은편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들이 들어왔다⁠. 지원자들이었다⁠. 면접관을 재고 있었다⁠.

‘⁠면접관 중에 제일 어린 사람⁠.⁠’ ‘⁠저 사람 기사에 나온 A 씨 아냐⁠?⁠’ ‘⁠아니겠지⁠.⁠’ 그리고 가운데 의자⁠. 번호표를 쥔 41번⁠.

‘⁠어차피 내정자 있겠지⁠. 서류 서른 번 떨어지고 처음 온 최종인데⁠. 어차피 정해져 있겠지⁠. 웃지 말자⁠. 웃으면 덧니 보인다⁠.⁠’

면접관 자리에 앉아도 들렸다⁠. 평가받는 자리는 지원자 의자만이 아니었다⁠. 맞은편 세 사람이 나를 재고 있었다⁠. 내가 공정한 사람인지⁠, 정해진 사람이 있는지⁠, 이 회사가 들러리 오디션인지⁠. 다섯 달 전 내가 이 방에서 재던 것을⁠, 이번엔 저 사람들이 재고 있었다⁠.

경민 팀장이 첫 질문을 했다⁠. 차 팀장이 두 번째 질문을 했다⁠. 교수가 세 번째 질문을 했다⁠. 41번은 대답할 때마다 번호표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대답은 좋았다⁠. 속은 대답보다 작았다⁠. ‘⁠어차피⁠.⁠’ ‘⁠어차피⁠.⁠’

마지막 순서가 왔다⁠. 경민 팀장이 나를 보았다⁠.

“⁠백윤아 면접관님⁠,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세요⁠?⁠”

41번이 숨을 들이쉬었다⁠.

‘⁠어차피 정해져 있겠지⁠.⁠’

“⁠없어요⁠.⁠”

41번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커졌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대답이 먼저 왔기 때문이었다⁠.

“⁠정해진 사람⁠, 없어요⁠.⁠” 나는 소리 내어 한 번 더 말했다⁠. “⁠이 방 원본 평가표는 면접관 넷이 서명해서 제가 들고 내려가요⁠. 결과는 원본 그대로 나가요⁠.⁠”

41번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속이 들렸다⁠.

‘⁠어⁠? 들렸나⁠?⁠’

덧니가 살짝 보였다⁠. 41번은 웃지 않으려다가 결국 웃었다⁠. 옆자리 지원자 둘도 따라 웃었다⁠. 경민 팀장이 평가표 위에서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는 어깨였다⁠.

나는 물병을 들고 일어나 41번의 빈 물잔에 물을 따랐다⁠. 잔이 넘치기 직전까지⁠. 창밖 은행나무 잎눈 위로 햇빛이 지나갔다⁠. 차동만 팀장이 노트북 화면 구석에 메모 창을 열어 나에게 돌려 보였다⁠.

「⁠칼국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41번이 물잔을 두 손으로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목에 건 번호표가 잔에 부딪혀 달그락⁠, 소리를 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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