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612자)

비뚤어도 돼

주인을 지키는 키링 인형 · 연채온

11월 19일 금요일 새벽 세 시 반⁠, 김포 공단의 부서진 정류장 앞에 승합차 한 대가 멈췄다⁠. 차 옆구리에 「⁠망원 뒷골목 상인회⁠」라고 적힌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문이 열리자 말선이 냄비를 안고 내렸다⁠. 냄비 뚜껑 틈으로 김이 새어 나왔다⁠.

“⁠떡볶이 식기 전에 다들 먹어⁠. 새벽 싸움은 배가 불러야 이겨⁠.⁠”

세탁소 사장이 접이식 의자 네 개를 들고 내렸다⁠. 꽃집 사장은 보온병을⁠, 철물점 사장은 손전등 한 상자를 들었다⁠. 무탁의 어머니가 김밥 바구니를 들고 내렸고⁠, 마지막으로 비번인 순경과 지구대 팀장이 점퍼 차림으로 내렸다⁠. 팀장의 점퍼 지퍼 손잡이에 하늘색 귀 토끼가 달려 있었다⁠.

“⁠이모⁠, 다 데려오셨어요⁠?⁠”

“⁠단톡방에 올렸지⁠. 새벽에 김포 갈 사람⁠. 다섯 명이 손 들고 둘은 자는 척했어⁠.⁠”

해나는 정문 옆 경비실 앞에 서 있었다⁠. 무탁이 헌 옷 상자를 발밑에 내려놓고 휴대전화 거치대를 세웠다⁠. 슬아는 깁스한 팔을 점퍼 안에 넣고 왼손으로 메모리 카드를 쥐고 있었다⁠. 승진은 정문 기둥에 기대어 공장 안을 보았다⁠. 3번 창고 앞 출고장에 트럭 열 대가 줄지어 있었다⁠. 출고장에 조명이 대낮처럼 켜졌고⁠, 카메라 두 대와 분홍 현수막이 보였다⁠. 「⁠별토끼 가디언 2차 출고 · 백만 마리가 당신의 밤길로⁠」

“⁠다섯 시 정각에 첫 트럭이 정문을 나옵니다⁠.⁠” 승진이 말했다⁠. “⁠대표님이 트럭 앞에 서서 손을 흔드실 거예요⁠. 그 장면이 생방송으로 나갑니다⁠.⁠”

“⁠사업부장님은 이제 사업부장 아니시잖아요⁠.⁠” 무탁이 말했다⁠.

“⁠그래서 정문 밖에 있죠⁠.⁠”

*

새벽 네 시 반⁠, 무탁이 생방송을 켰다⁠. 화면 위에 숫자가 떴다⁠. 접속 삼백⁠. 무탁은 헬멧을 벗어 옆구리에 끼고 카메라 앞으로 갔다⁠. 목소리가 떨렸다⁠.

“⁠안녕하세요⁠. 공무탁입니다⁠. 여기는 김포고요⁠. 오늘은 반성 중이 아니에요⁠.⁠”

댓글이 올라왔다⁠. 「⁠무탁 왔다⁠」「⁠트럭 영상 그분⁠?⁠」「⁠새벽 네 시 반에 뭐 함⁠」 무탁은 화면을 해나에게 돌리려다 멈추고 슬아를 보았다⁠. 슬아는 메모리 카드를 왼손에 쥔 채 오래 서 있었다⁠. 해나는 슬아를 재촉하지 않았다⁠. 슬아가 정할 일이었다⁠. 열흘 전 뒷문 앞에서 슬아가 그렇게 말했다⁠.

“⁠개발팀 언니한테 물어봤어⁠.⁠” 슬아가 말했다⁠. “⁠언니가 그러더라⁠. 자기가 잘리는 것보다 자기 딸이 공장 토끼 믿고 걷는 게 더 무섭대⁠.⁠”

슬아가 메모리 카드를 무탁의 휴대전화에 꽂았다⁠.

“⁠올려⁠. 내가 정했어⁠.⁠”

화면에 3번 창고가 떴다⁠. 실험용 골목⁠, 매트⁠, 넘어지는 직원⁠. 만 마리가 한꺼번에 귀를 세우는 소리⁠. 태블릿에 찍힌 숫자 「⁠+0⁠.3℃⁠」 무탁의 생방송 접속이 삼천으로⁠, 만으로 뛰었다⁠. 승진이 카메라 앞으로 걸어 나왔다⁠. 셔츠 단추를 맨 위까지 채운 차림이었다⁠. 가방 손잡이의 초록 귀 토끼가 화면에 들어갔다⁠.

“⁠폭신컴퍼니 캐릭터 사업부장이었던 피승진입니다⁠. 어제까지요⁠.⁠”

승진은 말을 고르지 않았다⁠. 2003년의 트럭⁠, 스물네 해 지닌 토끼⁠, 제 손으로 풀어 꼬는 기계에 넣은 별 한 뼘⁠. 대전의 횡단보도⁠, 성수동 뒷길의 슬아⁠, 아버지의 간판⁠. 마지막에 승진은 초록 귀 토끼를 카메라 앞에 들었다⁠.

“⁠이 별은 제 길을 압니다⁠. 공장 별은 아무의 길도 모릅니다⁠. 제가 만들었으니까 제가 압니다⁠.⁠”

*

다섯 시 오 분 전⁠, 출고장 조명 아래서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공식 생방송이 시작됐다⁠. 대표 뒤로 3번 창고의 철문이 활짝 올라가 있었다⁠. 선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백만 마리의 별이 꿀 색으로 번졌다⁠.

“⁠여러분⁠, 오늘 백만 마리가 여러분의 밤길로 갑니다⁠!⁠”

대표가 손을 들자 첫 트럭이 시동을 걸었다⁠. 시동 소리와 함께 창고 안에서 소리가 났다⁠. 만 마리의 귀 소리가 아니었다⁠. 백만 마리의 귀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소리였다⁠. 펠트 스치는 소리가 천둥처럼 굴러 나와 정문 밖까지 닿았다⁠. 정문 앞의 망원동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움츠렸다⁠.

대표가 뒤를 돌아보았다⁠. 백만 마리가 귀를 세우고 있었다⁠. 대표의 얼굴이 환해졌다⁠. 기다리던 장면이었다⁠.

“⁠보세요⁠! 백만 마리가 한 사람을 위해⁠—⁠”

대표의 공식 생방송 화면 옆으로 댓글이 쏟아졌다⁠. 무탁의 생방송을 보던 사람들이 넘어온 것이었다⁠.

「⁠지금 어디서 누가 다치고 있다는 뜻이잖아⁠」

「⁠무탁 방송 창고 영상 봐라 0⁠.3도래⁠」

「⁠백만 마리가 귀 세웠는데 아무도 못 지킨다고⁠」

「⁠우리 엄마 가디언 지금 귀 섰음⁠. 엄마 지금 새벽 출근 중인데⁠?⁠?⁠?⁠」

「⁠해외 출고 취소 각⁠」

「⁠대표님 뒤에 지금 누가 다쳤냐고요⁠」

대표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대표는 마이크를 내리고 직원이 내민 휴대전화를 보았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리다가 멈췄다⁠. 뉴스 속보였다⁠. 「⁠새벽 4시 56분 인천 남동공단 출근길 화물차 사고⁠… 20대 근로자 경상⁠」 대표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휴대전화가 다시 떨렸다⁠. 영어로 된 이름이 떴다⁠. 대표는 출고장 구석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첫 트럭은 시동을 건 채 정문 앞 노란 선에서 멈춰 있었다⁠.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출고장을 돌아보았다⁠. 정문 경비실 앞에서 해나는 앞치마 주머니의 실패를 쥐고 있었다⁠. 실패가 뜨거웠다⁠.

*

다섯 시 십오 분⁠, 대표가 정문까지 걸어 나왔다⁠. 마이크도 카메라도 없었다⁠. 분홍 넥타이가 반쯤 풀려 있었다⁠. 대표는 정문 기둥 앞에서 해나와 승진을 차례로 보았다⁠. 무탁이 휴대전화를 내리려 하자 대표가 손을 저었다⁠.

“⁠찍어요⁠. 어차피 다 나갔는데⁠.⁠”

대표는 첫 트럭을 돌아보았다⁠. 기사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대표의 손짓을 기다렸다⁠.

“⁠인수사가 실사를 미뤘어요⁠. 방금요⁠. 시장 반응을 보고 다시 오겠대요⁠.⁠” 대표가 넥타이를 끝까지 풀어 손에 감았다⁠. “⁠해외 세 곳에서 출고 보류 연락이 왔고요⁠. 위약금은 저쪽에서 먼저 보류를 걸었으니 따져 봐야 돼요⁠.⁠”

대표는 트럭 기사에게 손바닥을 펴 보였다⁠. 기사가 시동을 껐다⁠. 엔진 소리가 멈추자 공단의 새벽이 조용해졌다⁠. 정문 앞의 망원동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원조 사장님⁠. 하나만 물을게요⁠.⁠” 대표가 해나를 보았다⁠. “⁠빈 토끼로 가면요⁠, 금실은 우리한테 파실 거예요⁠?⁠”

“⁠안 팔아요⁠.⁠”

“⁠그럼 우리는 몸이랑 귀만 팔라고요⁠?⁠”

“⁠귀는 공장이 이깁니다⁠.⁠” 승진이 말했다⁠.

대표가 승진을 보았다⁠. 웃음이 났다가 금방 들어갔다⁠. 대표는 손에 감은 넥타이를 내려다보았다⁠.

“⁠금실은 어떻게 나눠요⁠?⁠”

해나는 발밑의 헌 옷 상자를 열었다⁠. 무릎 나간 추리닝⁠, 팔꿈치 구멍 난 니트⁠, 배달 조끼⁠.

“⁠헌 옷 한 벌을 가져오면 한 뼘씩요⁠. 폭신에서 빈 토끼를 산 사람한테도요⁠. 창고 토끼 별은 풀면 돼요⁠. 실은 안 상해요⁠. 풀어서 감으면 다시 금빛이에요⁠.⁠”

“⁠백만 마리를 다 풀어요⁠?⁠”

“⁠생산 2반이 하면 일주일이면 돼요⁠.⁠” 정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반장이었다⁠. 야간조 작업복 차림으로 2동 뒷문에서 걸어 나와 있었다⁠. 가방 손잡이에 손으로 놓은 별 토끼가 달려 있었다⁠. “⁠별 푸는 건 우리가 기계보다 빨라요⁠. 대신 야근 수당 주세요⁠.⁠”

대표는 반장을 보고⁠, 해나를 보고⁠, 승진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이윽고 넥타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피 부장 인사 발령은 그대로 나가요⁠. 사업부장 자리는 내가 못 돌려줘요⁠. 이사회가 정한 거라⁠.⁠” 대표가 승진에게 말했다⁠. “⁠대신 빈 토끼는 피 부장 이름으로 기획서 써서 다음 이사회에 다시 올려요⁠. 회사 밖에서요⁠. 외주로⁠.⁠”

“⁠외주요⁠?⁠”

“⁠우리 회사 돈 받고 남의 회사 일 하는 거⁠. 피 부장이 제일 잘하잖아⁠.⁠”

승진이 웃었다⁠. 대표도 웃었다⁠. 둘 다 오래 웃지 않았다⁠. 말선이 냄비 뚜껑을 열었다⁠. 떡볶이 김이 새벽 공기 속으로 피어올랐다⁠.

“⁠대표 양반⁠, 떡볶이 사 준다며⁠. 오늘은 내가 산다⁠. 대신 다음 주에 망원동 와서 헌 옷 한 벌 내놔⁠.⁠”

*

일주일 뒤 금요일 저녁 여섯 시⁠, 망원동 뒷골목에 탁자가 길게 이어졌다⁠. 말선의 가게 탁자 넷⁠, 세탁소 작업대⁠, 꽃집 진열대⁠, 철물점에서 빌린 접이식 탁자 다섯⁠. 탁자는 떡볶이집 평상에서 시작해 공방 앞을 지나 망원시장 입구까지 닿았다⁠. 공방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문 위에 나사 구멍 네 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탁자마다 사람들이 마주 앉아 있었다⁠. 빈 토끼 한 마리와 바늘 하나와 금실 한 뼘을 앞에 놓고⁠, 서로를 보며 물었다⁠. 밤에 어느 길로 가세요⁠? 딸이 엄마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세탁소 사장이 딸에게⁠. 편의점 야간 조끼를 입은 청년은 맞은편 순경에게 물었고⁠, 순경은 청년에게 물었다⁠. 대답이 길어지면 바늘이 느려졌다⁠. 바늘이 느려지면 옆 사람이 기다렸다⁠.

해나는 탁자 맨 앞⁠, 헌 옷 바구니 옆에 앉아 할머니의 실패에서 금실을 풀었다⁠. 헌 옷 한 벌이 바구니에 들어올 때마다 금실 한 뼘을 잘라 건넸다⁠. 실패는 가늘어지지 않았다⁠. 헌 옷 바구니 옆에서 해나가 남은 올을 꼬아 감을 때마다 도로 도톰해졌다⁠. 해나의 발밑에 택배 상자가 쌓여 있었다⁠. 군산⁠, 청주⁠, 제주⁠, 오사카⁠. 상자마다 헌 옷이 들어 있었다⁠. 무탁이 오토바이로 와서 금실 봉투를 한 아름 싣고 마포와 은평과 관악의 다른 골목으로 실어 날랐다⁠.

“⁠누나⁠, 은평 할머니들이 실 더 달래요⁠. 경로당에서 다 같이 놓는대요⁠.⁠”

“⁠헌 옷 받아 와요⁠.⁠”

“⁠받아 왔어요⁠. 할아버지 내복이요⁠. 개무서웠어요⁠. 할아버지가 직접 벗어 주셨어요⁠.⁠”

승진은 무탁이 늘 앉던 낮은 의자에 앉아 무릎을 턱 밑까지 올리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귀와 어깨 사이에 끼고 빈 토끼에 별을 놓았다⁠. 휴대전화 너머에서 어머니가 길을 말했다⁠. 시장 생선 가게에서 은행나무까지⁠, 계단 열한 개⁠. 승진은 검지를 두 번 찔렸다⁠. 밴드를 감고 다시 놓았다⁠.

“⁠엄마⁠, 고등어 가게에서 나와서 왼쪽이에요⁠, 오른쪽이에요⁠?⁠”

“⁠너 서른아홉이야⁠. 그것도 몰라⁠?⁠”

“⁠알아요⁠. 엄마 입으로 듣고 싶어서요⁠.⁠”

슬아는 해나 옆에 앉아 있었다⁠. 깁스는 아직 풀지 않았다⁠. 왼손에 바늘을 쥐고 무릎 위에 토끼를 올려놓고 있었다⁠. 창가에 있던 견본 토끼였다⁠. 귀가 파랬다⁠. 할머니의 작업복으로 단 귀였다⁠. 견본에는 처음부터 별이 없었다⁠. 할머니가 해나에게 남긴 몸이었다⁠. 별을 놓는 사람은 자기 별을 달지 못했다⁠.

“⁠네 길 말해⁠.⁠” 슬아가 말했다⁠.

해나는 금실 한 뼘을 자르다 말고 슬아를 보았다⁠.

“⁠떡볶이집 2층 창고 방에서 내려와서 평상 지나서⁠, 공방 앞에서 한 번 멈춰⁠. 나사 구멍 보고⁠. 시장 입구까지 걸어⁠. 무탁 씨 어머니 김밥집 셔터 소리 나면 돌아와⁠.⁠”

“⁠그게 다야⁠?⁠”

“⁠요즘은 그게 다야⁠.⁠”

슬아는 왼손으로 첫 땀을 놓았다⁠. 바늘이 천을 비스듬히 뚫었다⁠. 두 번째 땀은 첫 땀보다 더 비뚤었다⁠. 슬아가 혀를 찼다⁠.

“⁠망했다⁠. 별이 아니라 불가사리야⁠.⁠”

“⁠비뚤어도 돼⁠.⁠” 해나가 말했다⁠. “⁠길만 알면⁠.⁠”

슬아의 별은 사십 분을 훌쩍 넘겼다⁠. 땀이 이리저리 기울었고 꼭짓점 하나는 두 번 풀었다가 다시 놓았다⁠. 마지막에 슬아는 왼쪽 아래 꼭짓점을 짧게 끊었다⁠. 해나가 하는 것을 여덟 달 동안 옆에서 본 손이었다⁠. 매듭을 짓고⁠, 슬아는 토끼를 해나의 손바닥에 올렸다⁠.

해나의 손끝이 따뜻해졌다⁠. 남이 놓아 준 별의 열이었다⁠. 처음 받아 보는 열이었다⁠.

해나는 토끼를 앞치마 끈에 달았다⁠. 일어나서 탁자 사이를 걸었다⁠. 평상을 지나고⁠, 닫힌 공방 앞에서 한 번 멈춰 나사 구멍 네 개를 올려다보고⁠, 다시 걸었다⁠. 길게 이어진 탁자 위로 가로등이 하나씩 켜졌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서로의 길을 꿰매고 있었다⁠. 앞치마 끈에 매달린 토끼가 걸음마다 흔들렸다⁠. 비뚤어진 별 하나가 파란 귀 아래에서⁠, 시장 입구를 향해 조금 기울어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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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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