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613자)

화요일

손주 돌봄 파업 선언 · 윤은류

일곱 시 이십오 분⁠, 계순은 눈을 떴다⁠. 시계를 보지 않고도 알았다⁠. 다섯 해 동안 몸이 외운 시각이었다⁠. 5월 18일 화요일⁠.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이불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3월의 햇빛보다 하얗고 넓었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순범은 일곱 시 십 분에 나갔다⁠. 화요일 목요일 아침 등원은 할아버지 일이었다⁠. 현관에서 순범이 운동화 끈을 묶으며 혼잣말을 하는 소리를 계순은 반쯤 잠결에 들었다⁠. 「⁠출발합니다⁠.⁠」

계순은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일어나는 데 숨 한 번이 들지 않았다⁠. 여섯 주가 지나 있었다⁠. 계순은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검은 허리 보호대가 둘둘 말려 들어 있었다⁠. 지난주 정형외과 의사가 이제 빼고 다니셔도 된다고 했다⁠. 대신 무거운 것은 여전히 들지 말라고 했다⁠. 계순은 보호대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서랍을 닫았다⁠. 찌이익 소리가 나지 않는 아침이었다⁠.

연두 티셔츠를 입었다⁠. 꽃무늬 몸뻬 바지를 입었다⁠. 파마머리는 손바닥으로 눌러도 늘 그렇듯 하늘로 솟았다⁠. 미용실 원장 말대로 오래 갔다⁠. 석 달째였다⁠.

부엌 식탁에 순범이 남긴 쪽지가 있었다⁠. 버스 시간표 뒷면에 볼펜으로 쓴 글씨였다⁠.

「⁠밥 해 놨음⁠. 국 데워 먹을 것⁠. 화요일은 당신 날⁠. 연락 안 함⁠. — 갑의 아버지⁠」

계순은 쪽지를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붙였다⁠. 국을 데워 앉아서 먹었다⁠. 다 먹고 그릇을 개수대에 넣었다⁠. 설거지는 하지 않았다⁠. 화요일이었다⁠.

*

경로당 큰방 창가에 재봉틀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 남문 시장 공구 골목에서 산 중고 공업용 재봉틀이었다⁠. 다섯 해 전 「⁠계순 수선⁠」을 닫으면서 판 것과 같은 회사⁠, 같은 모델이었다⁠. 가게 주인이 계순을 알아봤다⁠. 이 재봉틀 판 아줌마 아니냐고⁠, 다시 사러 올 줄 알았다고 했다⁠. 값은 「⁠엄마수고비⁠」 천삼십에서 냈다⁠. 혜빈이 이체 메모에 다섯 해 동안 적던 네 글자가 이번에는 계순의 손으로 공구 골목 가게 통장에 찍혔다⁠.

창틀에는 천 간판을 매달아 두었다⁠. 흰 광목에 빨간 실로 계순이 직접 수놓은 글씨였다⁠. 「⁠계순 수선 — 화·목 오전 아홉 시부터⁠」 아래에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바짓단·소매·지퍼⁠. 손주 옷 우선⁠.⁠」

아홉 시 정각⁠, 계순은 재봉틀 앞에 앉았다⁠. 발판에 발을 얹었다⁠. 다섯 해 만에 공업용 재봉틀의 발판이 계순의 발바닥을 밀어 올렸다⁠. 계순은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발판을 밟았다⁠. 드르륵⁠. 바늘이 천을 물고 나갔다⁠. 남문 시장 골목의 소리였다⁠.

첫 손님은 아홉 시 오 분에 왔다⁠. 탁세란이었다⁠. 회색 정장 바지를 쇼핑백에 넣어 들고 직접 왔다⁠. 출근 전이었다⁠.

“⁠예약했습니다⁠.⁠”

“⁠예약 없이 와도 돼요⁠. 화요일 첫 손님이니까⁠.⁠”

계순은 줄자를 꺼내 탁세란의 다리 길이를 쟀다⁠. 탁세란이 큰방 바닥에 반듯이 서 있었다⁠. 계순은 무릎을 꿇지 않고 의자에 앉은 채로 줄자를 내렸다⁠. 허리를 깊이 숙이지 않았다⁠. 의사가 하지 말라고 한 일은 하지 않았다⁠. 대신 탁세란에게 한 발짝 앞으로 오라고 했다⁠.

“⁠칠월부터 수당이랑 쉼 돌봄 시작해요⁠. 첫 쉼 돌봄 선생님들 교육이 다음 주예요⁠.⁠”

“⁠우리 손주들한테 신발 숨기지 말라고 미리 말해 둘게요⁠.⁠”

탁세란이 웃었다⁠. 큰방 벽의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나왔다⁠. 「⁠정부⁠, 지자체 조부모 돌봄 지원 사례 전국 확대 검토⁠」 화면에 화성시청 건물이 지나갔다⁠. 탁세란이 화면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검토만 일 년 할 거예요⁠.⁠”

“⁠수선도 가봉만 한 달 해요⁠.⁠”

*

열 시가 넘자 큰방 문 앞에 줄이 생겼다⁠. 경로당 할아버지 넷이 등산 바지를 들고 왔다⁠. 무릎이 해진 바지⁠, 지퍼가 고장 난 바지⁠, 허리를 줄여야 하는 바지⁠. 허리를 줄여야 하는 바지는 순범의 바둑 맞수 것이었다⁠. 맞수 할아버지는 지난겨울 십 킬로가 빠졌다고 했다⁠. 손녀를 본 뒤로라고 했다⁠.

묘순이 손자들 체육복 세 벌을 들고 왔다⁠. 무릎에 구멍이 셋⁠, 엉덩이에 하나⁠.

“⁠아이고 마⁠, 이놈들 바지는 무릎으로 걷는갑다⁠.⁠”

“⁠무릎에 덧천 대 줄게요⁠. 공룡 모양으로⁠.⁠”

“⁠로봇도 되나⁠. 둘째가 로봇이다⁠.⁠”

줄이 길어지자 순범이 나타났다⁠. 등원을 마치고 경로당으로 온 것이었다⁠. 총무 조끼를 입고⁠,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은행 대기표 기계에서 뽑아 온 것처럼 생긴 종이 쪽지 묶음이었다⁠. 순범이 밤새 가위로 잘라 볼펜으로 번호를 적은 것이었다⁠.

“⁠에⁠, 수선 손님 여러분⁠. 번호표 받아 가세요⁠. 차례대로 호명합니다⁠. 새치기는 하차입니다⁠.⁠”

할아버지들이 웃으며 번호표를 받았다⁠. 묘순이 3번을 받았다⁠. 순범은 준회원 총무 자리에서 처음으로 경로당 사람들 모두에게 무언가를 나눠 줬다⁠. 계순은 재봉틀 바늘 너머로 남편을 봤다⁠. 순범은 번호표를 다 나눠 주고 큰방 구석의 바둑판 옆에 앉았다⁠. 바둑은 두지 않았다⁠. 아내의 재봉틀 소리를 들었다⁠.

*

열두 시⁠, 큰방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점심상이 차려졌다⁠. 묘순이 김밥을 쌌고⁠, 108동 할머니가 열무김치를 가져왔고⁠, 순범이 편의점에서 컵라면 넷을 사 왔다⁠. 할머니 여섯과 할아버지 넷이 둘러앉았다⁠. 계순은 재봉틀 의자에서 내려와 방석 위에 앉았다⁠. 무릎으로 내려앉지 않고⁠, 손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앉았다⁠.

김밥을 하나 집었다⁠. 앉아서 먹었다⁠. 옆에서 손주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줄 사람이 없었다⁠. 계순은 김밥을 끝까지 씹어 삼키고 다음 것을 집었다⁠. 식지 않았다⁠.

“⁠위원장⁠, 오늘 진짜 아무도 전화 안 하네⁠.⁠”

묘순이 말했다⁠. 계순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켰다⁠. 「⁠육씨네⁠」 단톡방은 아침 일곱 시 오십 분 순범의 「⁠정시 도착⁠」 이후로 조용했다⁠.

“⁠안 한다고 했잖아요⁠. 화요일은⁠.⁠”

“⁠아이고 마⁠, 우리 아들은 벌써 세 번 했다⁠. 엄마 밥 묵었나⁠, 엄마 허리 괜찮나⁠, 엄마 오늘 몇 시에 오나⁠.⁠”

“⁠그건 비상 아니고 안부네요⁠.⁠”

“⁠안부도 세 번이면 비상이다⁠.⁠”

큰방이 웃었다⁠. 순범이 컵라면 국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

오후 세 시⁠, 계순은 재봉틀을 덮개로 덮고 복지관 노래 교실에 갔다⁠. 맨 뒷줄 의자에 앉았다⁠. 영채가 옆자리에 가방을 놓아 자리를 맡아 두고 있었다⁠. 강사는 이번에도 반짝이 조끼를 입고 있었다⁠. 노래가 시작되자 계순은 가사를 보지 않았다⁠. 영채는 이번에도 반 키 낮게 불렀다⁠.

노래 교실이 끝나자 영채가 손뼉을 쳤다⁠.

“⁠오늘 저녁 일곱 시⁠. 동탄 호수공원 옆 칼국숫집⁠. 꽃띠들 번개야⁠. 일곱 명 온대⁠.⁠”

“⁠일곱 시⁠.⁠”

“⁠빠지면 니네 집 찾아간다⁠.⁠”

“⁠안 빠져⁠. 화요일이야⁠.⁠”

*

저녁 여섯 시⁠, 경로당 큰방⁠. 계순은 마지막 손님의 바짓단을 박고 있었다⁠. 오늘 받은 옷이 열두 벌이었다⁠. 다 하지 못한 넉 벌은 목요일로 미뤘다⁠. 미루는 일이 낯설었다⁠. 낯설어서 계순은 미룬 옷에 이름표를 하나씩 꼼꼼히 핀으로 꽂았다⁠.

큰방 문이 열렸다⁠. 혜빈이었다⁠. 회사 출입증을 목에 건 정장 차림이었다⁠. 숨이 차 있었다⁠. 혜빈은 재봉틀 앞까지 걸어와 엄마 앞에 멈췄다⁠.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엄마⁠.⁠”

계순은 발판에서 발을 뗐다⁠. 재봉틀이 멈췄다⁠.

“⁠내일 아침 인증 심사야⁠. 오늘 밤 열 시까지 회사에 있어야 돼⁠. 찬솔 씨가 라율이 열나서 소아과 갔는데⁠, 대기가 길대⁠. 라겸이를 저녁 일곱 시부터 열 시까지 누가 봐 줘야 돼⁠.⁠”

혜빈의 말은 빨랐고 정확했고⁠, 숫자가 붙어 있었다⁠. 계순은 딸의 얼굴을 봤다⁠. 눈 밑에 그늘이 있었다⁠. 3월의 그늘보다는 얕았다⁠.

“⁠이번 달 비상 몇 번 썼어⁠?⁠”

혜빈은 대답하기 전에 숨을 한 번 쉬었다⁠. 품질관리팀장은 숫자를 속이지 않았다⁠.

“⁠…세 번⁠.⁠”

“⁠그럼 이번이 네 번째네⁠.⁠”

“⁠엄마⁠.⁠”

“⁠네 번째는 할아버지야⁠. 계약서에 있잖아⁠. 니가 받아 갔잖아⁠. 핀 꽂아서⁠.⁠”

혜빈은 엄마를 봤다⁠. 계순은 재봉틀 위에 손을 얹고 딸을 마주 봤다⁠. 다섯 해 동안 이 순간이 오면 계순은 대답하기 전에 이미 신발을 신고 있었다⁠. 오늘은 신발이 큰방 문간에 벗어 놓인 채였다⁠.

“⁠엄마는 일곱 시에 동창 모임 있어⁠. 영채가 빠지면 집에 찾아온대⁠.⁠”

“⁠…알아⁠.⁠”

계순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돋보기를 내리고 「⁠갑의 아버지⁠」를 눌렀다⁠. 순범이 신호 한 번에 받았다⁠.

“⁠당신⁠, 오늘 밤 일곱 시부터 열 시까지 라겸이 봐⁠.⁠”

전화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순범은 화요일 밤마다 경로당 바둑 리그가 있었다⁠. 결승이 오늘이라고 아침에 말했었다⁠.

“⁠…알았어⁠. 출발합니다⁠.⁠”

계순은 전화를 끊고 이번에는 찬솔에게 걸었다⁠. 소아과 대기실 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아이들 울음소리⁠, 간호사가 이름 부르는 소리⁠.

“⁠찬솔 씨⁠, 라율이 진료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 라겸이는 할아버지가 데리고 있을 거야⁠. 열 시에 혜빈이 오면 교대⁠.⁠”

“⁠네⁠, 장모님⁠. 알겠심더⁠.⁠”

전화를 끊었다⁠. 계순은 휴대전화를 몸뻬 주머니에 넣고 딸을 봤다⁠. 혜빈은 아직 서 있었다⁠. 혜빈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사실 엄마가 안 된다고 할 줄 알았어⁠.⁠”

“⁠그럼 왜 왔어⁠?⁠”

“⁠확인하러⁠. 엄마가 진짜 안 된다고 하는지⁠. 아빠한테 바로 전화할 수도 있었는데⁠, 엄마 입으로 듣고 싶었어⁠.⁠”

혜빈은 재봉틀 옆에 쌓인 옷 넉 벌을 봤다⁠. 핀으로 꽂은 이름표⁠. 맨 위가 탁세란의 정장 바지였다⁠.

“⁠엄마⁠, 손님 많네⁠.⁠”

“⁠화요일엔 사람 많아⁠.⁠”

혜빈은 웃었다⁠. 출입증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가 풀었다⁠. 혜빈은 큰방 문을 나가다가 뒤돌아보고⁠, 무언가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손을 흔들었다⁠. 계순도 손을 흔들었다⁠. 문이 닫혔다⁠. 큰방 창밖으로 딸이 셔틀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구두 대신 운동화였다⁠.

계순은 재봉틀 덮개를 덮었다⁠. 덮개 위에 줄자를 둥글게 말아 올려놓았다⁠. 천 간판을 창틀에서 내려 개었다⁠. 목요일에 다시 걸 것이었다⁠.

*

저녁 일곱 시 반⁠, 동탄 호수공원⁠. 칼국숫집에서 나온 동창 일곱이 호숫가 벤치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영채가 손뼉을 치며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 교실에서 배운 노래였고⁠, 이번에도 반 키 낮았다⁠. 동창 하나가 바로잡으려다 포기하고 반 키 낮게 따라 불렀다⁠. 호수 건너편 아파트 창들에 하나둘 불이 들어왔다⁠.

계순의 몸뻬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떨었다⁠. 「⁠육씨네⁠」 단톡방이었다⁠. 순범이 사진을 한 장 올렸다⁠. 107동 802호 거실 바닥에 할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고⁠, 할아버지 등에 라겸이 올라타 있었다⁠. 라겸은 노란 우비를 입고 있었다⁠. 비도 안 오는데⁠. 소매 끝에 두 줄의 박음질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계순 수선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사진 아래 순범이 글을 달았다⁠.

「⁠버스 놀이 중⁠. 승객 1명⁠. 이상 무⁠.⁠」

이어서 찬솔이 올렸다⁠. 소아과 진료 영수증 사진과 한 줄⁠. 「⁠라율이 목감기⁠. 약 받았심더⁠. 귀가 중⁠.⁠」 혜빈이 마지막으로 올렸다⁠. 회사 회의실 사진도⁠, 글도 없이 이모티콘 하나였다⁠. 머리띠를 두른 할머니가 주먹을 쥐고 있었다⁠. 「⁠투쟁⁠!⁠」 3월 3일 오후⁠, 계순이 이천오백 원을 내고 산 이모티콘이었다⁠. 혜빈이 언제 같은 것을 샀는지 계순은 몰랐다⁠.

계순은 사진을 한참 봤다⁠. 엄지손가락으로 라겸의 우비 소매를 크게 키워 봤다⁠. 빨간 실과 노란 실이 화면 가득 나란히 지나갔다⁠. 계순은 답을 보내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화면이 아래로 가게 벤치 위에 엎어 놓았다⁠.

영채가 계순의 옆구리를 찔렀다⁠. 다음 소절은 계순 차례였다⁠. 계순은 허리를 펴고 숨을 들이마셨다⁠. 보호대 없는 허리가 벤치 등받이에 닿았다⁠. 호수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서 일곱 명의 파마머리를 저마다 다른 쪽으로 눕혔다⁠. 계순은 반 키 높게 불렀다⁠. 영채가 손뼉을 쳤다⁠. 엎어 놓은 휴대전화가 벤치 위에서 한 번 더 떨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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